“여러분, 말씀 좀 나눌까요?”
매천귀는 진지하게 ‘가시죠’ 하는 포즈를 취했고 간다면 가는 능연과 달리 연문빈 등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매천귀의 뒤를 따라 복도 끝 휴게실로 들어갔다.
금 선생도 매천귀에게 불려 나와 곁에 앉아 주시하는 눈빛으로 사람들을 살폈다.
“샘날 정도로 다들 젊군.”
매우 정통적인 의사인 금 선생은 다소 위에서 내려보듯 후배를 대하는 사람이었고, 늘 연공서열을 따지는 경향이 있었다.
연문빈과 마연린은 그저 바보처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운화병원 레지던트와 훈련의인 그들은 여기저기 치이는 신세다 보니 치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여원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까지 선임 레지던트였고 지금은 치프 레지던트지만, 주임 의사가 된 금 선생으로서는 다 똑같이 멋대로 굴릴 수 있는 존재였다.
초짜 때부터 치이면서 자란 좌자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금 선생은 그들과 완전히 반대 케이스였다. 유명 대학을 나와 젊은 나이에 주목을 받고, 환자와 보호자의 신뢰를 얻은 데다가 매천귀라는 연줄을 잡아 높이 올라서 감히 건드릴 사람이 없는 위치에 올랐다.
명의란 바로 금 선생 같은 의사를 가리킨다. 사회생활 할 때, 그를 건들 수 있는 사람도 건드리지 않을 것이고, 건들지 못하는 사람은 냉큼 피하는 그런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금 선생은 네 사람을 보며 다시 싱긋 웃었다.
“다들 힘 좀 빼지.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려고 모인 거 아닌가.”
매천귀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바로 불을 붙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담배를 피우는지 물었고, 유일한 흡연자 좌자전도 고개를 흔들었다.
“음, 안 피우면 좋죠. 인사부터 좀 하지요. 여자분이 여원 선생 맞죠?”
모두를 둘러보던 매천귀의 얼굴에 엄격한 미소가 피어났다.
“예.”
여원은 온순한 새끼동물처럼 순순히 대답했다.
“딱 봐도 헬스하신 것 같은 분이, 연문빈 선생 맞죠? 능 선생 퍼스트 어시?”
“예.”
연문빈은 다급하게 대답했고 좌자전과 마연린과도 인사를 나눈 매천귀가 이어서 마취의를 찾았다.
“마취의 소 선생은 안 왔나요?”
“소 선생은 미리 수술실에 준비하러 갔습니다. 제가 가보지요.”
금 선생이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매천귀는 금 선생의 뒷모습을 보며 손으로 담뱃갑을 털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전부터 능 선생한테 더 좋은 팀을 꾸려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사람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런데 금 선생이 그러더군요. 훌륭한 팀은 반드시 최강 팀일 필요가 없다고요. 가장 어울리는 팀이 중요하다고. 지난 수술, 그리고 치유한 환자들이 여러분이 훌륭한 팀임을 이미 증명했지요.”
상대가 치켜세워주는 걸 알면서도 연문빈 등은 조금 흥분했다.
“능 선생은 특별한 사람이네요.”
능연의 이야기를 입에 올린 매천귀의 얼굴에 사나움이 놀랍게도 조금 줄었고, 네 사람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것뿐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특별하기만 한 게 아니죠.”
좌자전이 말문을 열고 하는 말에 매천귀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팀과 나누겠다는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 잘 없습니다.”
네 사람은 멈칫했다가 표정까지 진지해졌다.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점만 봐도 능 선생은 좋은 리더네요.”
매천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수시로 말투를 바꾸었다. 그로서는 말로 이런 애송이(좌자전을 포함해서)를 설득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매천귀의 말에 연문빈 등 일행의 기분은 무의식적으로 이리저리 바뀌었다.
그들은 자신이 능연을 만나기 전을 떠올렸고, 무심한 것 같아도 핵심을 찌른 능연의 지도 방식, 다정하진 않아도 생각이 면밀한 능연의 일 처리 스타일, 새벽 3시에 운화병원에 도착하던 능연, 골관절 센터, 무신 시 1 병원 등 수많은 병원에 출장 수술 가던 능연 등등을 떠올렸다.
밑밥을 충분히 깔았다고 느낀 매천귀가 그때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개인적인 거라도 상관없으니 지금 말해요.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어떻게든 들어줄 테니.”
그는 특별히 ‘개인적인 것’을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것을 결론 냈다. 매천귀는 생각에 잠겨 주저하는 초짜 의사 네 명을 바라보며 내심 웃음이 나왔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효도하고 싶은 것이니 부담가지지 말아요. 여러분 부담을 조금 덜어주고 싶은 것뿐이랍니다.”
네 사람은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여원 선생, 레이디 퍼스트니까 먼저 말씀하는 게 낫겠군요.”
매천귀가 여원을 지명하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대하며 바라봤다. 사실 매천귀는 다른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매우 좋아한다. 특히 큰돈 들이지 않고 누군가의 평생소원을 들어주는 건 사실 매우 성취감이 높은 일이다.
“사실 전 뭐 바라는 게 없습니다.”
“아무거나요. 사람이라면 다들 꿈이 있고, 바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매천귀는 얼굴에 근육까지 부드러워져서 기억을 되살리는 듯 웃었다.
“나도 어릴 때 제일 하고 싶던 일이 전투기를 타는 거였습니다. 어느 날 아저씨 한 명이 저를 훈련기에 태웠을 때 그 느낌이······.”
매천귀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모처럼의 기회임을 아는 여원이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국가 보호 구역에 가고 싶습니다. 수집을 좀 할 수 있으면 좋고요. 음, 동물이나 곤충 같은 걸 좀 만져 보고 싶어서요. 단순히 폐기물 수집이죠.”
“하하, 여 선생은 자연을 좋아하는군요. 좋습니다. 그건 쉽지요. 그런데 폐기물 수집이라니, 그건 무슨 뜻이지요?”
“생물 폐기물 말씀입니다.”
“나뭇잎이나, 호박 그런 거요?”
“조금 다릅니다.”
“알아야 준비할 수 있으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야 해요.”
매천귀가 손을 흔들어 밖에서 대기하는 아랫사람을 불렀고, 아랫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기록할 준비를 하며 노트를 펼쳤다. 그 모습에 여원은 조금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동물 분변을 수집하고 싶습니다.”
“응?”
담뱃갑을 가지고 놀던 매천귀가 동작을 멈췄다.
“신선한 게 아니라도 됩니다. 오래된 변도 괜찮습니다. 위험하지 않아요.”
“오······. 자네, 관련 부서에 문의해 보도록.”
매천귀가 고개를 돌려 아랫사람에게 지시하자, 아랫사람의 얼굴이 혼란스러워졌다.
“분변 관련 정부 기관 말씀입니까?”
“된다는 말씀이세요?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임업국(林業局)에 문의했을 때 곧바로 거절당했거든요. 심지어 미친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어서······.”
아랫사람은 예의 바른 얼굴을 하며 속으로 임업국이 그렇게 일을 잘할 줄 몰랐다고 생각했다. 매천귀의 얼굴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나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리움이 가득한 얼굴도 아니고 놀란 듯이 굳어 있었다.
잠시 후, 매천귀는 여원의 존재를 잊은 듯 시선을 연문빈에게 돌렸다.
“연 선생, 자네는?”
여원을 지켜보던 연문빈은 갑자기 기대감이 증폭했다. 여원이 말한 얼토당토않은 요구도 들어준다면 본인의 요구는 더 간단하지 않은가!
“저는 결혼하고 싶습니다!”
연문빈은 매천귀를 바라보다가 곁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기대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매천귀가 지그시 연문빈을 바라봤더니 연문빈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매천귀는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지만, 결국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는 이제 곧 부친의 수술에서 퍼스트 어시스던트를 맡을 연문빈 의사를 바라봤다.
“맞선 자리 마련해보도록 하죠.”
“저는 엉덩이 큰 사람이 좋습니다. 헬스 좋아하면 더 좋고요, 가슴이 좀 커도 상관없습니다.”
노트를 들고 기록하던 아랫사람이 망연한 듯 적어 내려가면서 내심 혹시 나도 마누라를 구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기대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좌 선생은?”
매천귀는 지친다고 생각하면서 나이가 가장 많은 좌 선생을 바라봤다. 그러자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던 좌자전이 냉큼 대답했다.
“아들 학교를 옮기고 싶습니다.”
매천귀는 한숨 돌리며 아랫사람에게 적어두라고 지시했다. 그로서는 누군가의 직장을 바꿔주거나 학교를 바꿔주는 건 기본으로 하는 일이었다. 아랫사람도 역시 조금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원하는 학교가 엄청난 학교가 아니라면 그의 선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좌 선생님, 아드님을 어느 학교로 보내고 싶습니까? 지금은 어딜 다니죠?”
아랫사람이 본인이 할 일의 난도를 체크하겠다는 듯 묻자, 좌자전은 끙 소리를 내고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응? 그럼 원하는 건 있습니까?”
“사실 원하는 건 없습니다. 책임감 있는 학교를 바랄 뿐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게 책임져주면 됩니다.”
좌자전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요?”
매천귀가 더 이야기해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얼토당토않은 의사들의 요구를 듣다가 좌자전처럼 소박한 요구를 들으니 마음이 다 편해졌다. 안색을 살피던 좌자전은 매천귀의 입가가 다 흐물흐물해진 걸 보고는 순간 농구, 축구, 수영, 검도, 테니스, 골프를 떠올렸다. 그리고 피아노, 바이올린, 소묘, 유화, 스페인어······.
그러나 신중한 성격인 좌자전은 그런 것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그게 답니다.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으면 됩니다. 제 전처가 애를 잘 키울 줄 몰라서, 학교 선생님이 신경 써야 해서요.”
좌자전이 무던하게 하는 말에 매천귀는 다시 한번 한숨 돌렸다. 그러니까! 이게 정상적인 의사지.
매천귀는 고개를 끄덕여 승낙하고는 마연린을 바라봤다. 훈련의 마연린은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한 미소를 지었고, 매천귀의 얼굴 근육이 살짝 누그러졌다.
이렇게 밝게 웃는 의사라면 정상적인 걸 요구하겠지!
매천귀가 갈등하고 있는 바로 그때 소가복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매 선생님, 찾으셨다고요?”
“아, 마취의 소가복 씨군요.”
소가복이 공손한 모습으로 입구에 선 모습에 매천귀가 기이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금 선생한테 얘기 들었나요?”
“들었습니다.”
“좋아요, 앉으시죠. 같이 마 선생 부탁 들어봅시다.”
매천귀는 피로한 듯 이마를 짚었고, 소가복은 의아하다는 듯 반대편으로 가서 앉았다.
“마 선생?”
“제 와이프를 한동안 연수 보내주실 수 있나요? 단계가 나뉘는 그런 데로요.”
진작에 생각을 끝낸 마연린은 창백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드러냈다.
‘그래, 이거지! 이게 의사한테 어울리는 부탁이지!’
매천귀의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의사가 높은 직위를 원하고 연수 가고 싶고, 그런 건 성취욕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팀, 잠재력 있는 팀, 실력 있는 의료팀 구성원의 마땅한 요구가 아닌가 말이다.
“마 선생, 구체적으로 얘기해도 됩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 건지, 어떤 방면의 연수를 바라는 건지.”
“제 와이프는 비뇨기과 주치의입니다. 어디든 좋고요, 관련 분야면 더 좋겠죠. 관련 없다면 조금 쓸모 있기만 해도 됩니다. 요점은 단계가 나뉜다는 것입니다.”
“단계가 나뉜다는 건 어떻게?”
비뇨기과라는 단어에 잠시 혹했던 매천귀가 다시 물었다.
“제일 좋은 건, 우선 두세 달 갔다가 한 달 돌아왔다가 다시 두 달 갔다가 다시 한 달 돌아왔다가, 그리고 두 달. 이렇게 반복되는 겁니다.”
마연린은 세심하게 분배하면서 허리를 문질렀고, 매천귀와 아랫사람은 마연린의 섬세한 분배에 사로잡혔다.
“얼마나 반복합니까?”
“가능한 만큼요. 길면 길수록 좋습니다.”
아랫사람이 궁금한 듯 묻는 말에 마연린이 냉큼 대답했다.
“그런데 이유는?”
“그게······.”
더 궁금해진 듯 묻는 매천귀의 말에 마연린은 하하 웃었다.
“말 안 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매천귀 머릿속엔 지금 갖가지 물음표가 가득이라서, 하나 더 추가된다고 변할 것도 없었다.
“이 정도 장시간 연수라면 학교에 다니는 게 좋겠군요. 공부하면서 학위도 따고. 시간이 긴 게 좋다면, 삼사 년? 너무 긴가요?”
“아니요! 완전히 좋습니다!”
아랫사람이 고민하면서 하는 말에 허리춤에 손을 대고 있던 마연린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소가복과 연문빈은 동정하는 눈으로 마연린을 봤고, 좌자전은 부러움 조금에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매천귀는 시간이 좀 흐르면 반드시 거기에 있는 비밀을 알아내겠다고 몰래 다짐했다.
“소 선생, 자네는? 생각해뒀나요?”
매천귀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처럼 선물을 투척할 준비를 했다.
“생각했습니다. 오면서 생각했지요.”
소가복은 겸연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대학 시험 600점 넘는 실력으로 이런 좋은 일을 마주했을 때 이래저래 많은 생각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사람이 자신의 가장 절박하고 간절한 바람도 모르고 산다면 인생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겠나. 사람은 유비무환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수술실의 둥근 의자처럼 말이다. 보기엔 간단해도 사실 많이 복잡하다. 우선 둥근 의자는 공공재산이라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다음, 수술실의 둥근 의자는 모두 소독한 것이라 마음대로 가지고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할 수 없다. 서서 하는 수술이 얼마나 힘든지 체험하고 싶으면 아직 운행되고 있는 입석 기차를 타보면 된다.
사실 소가복에게 3초만 줘도 정확하게 그가 가장 필요하고 간절한 것을 외칠 수 있다. 매천귀 앞에서 소가복은 담담한 말투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제가 돈을 모두 P2P 회사에 넣었는데요, 그걸 찾아올 수 있을까요?”
“그럼요.”
매천귀의 표정이 평온했다.
“번거롭지 않을까요? 사실 제가 잘 몰라서······.”
“해명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 들은 요구 중에 가장 정상적인 요구네요. 음, 이제 다른 일 없으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소가복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하는 말에 매천귀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생활, 그리고 일에 대해 달콤한 꿈을 꾸며 흩어졌다.
“좌 선생, 좌 선생은 잠시 나 좀 보시죠. 간호사 두 명이랑 능 선생은 별말이 없어서, 내가 고민해 봤는데, 병원에 이야기해서 공로패든 뭐든 줄까 하는데, 어떻소?”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쓸데없는 말을 할 좌자전이 아니었다. 매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웅해드리죠.”
매천귀는 좌자전을 따라 그를 수술실 앞까지 데려다주고 걸음을 잠시 멈췄다가 돌아서 나왔다.
수술실 분위기는 점점 긴장되어 갔다.
집도의 자리에 선 능연 맞은편은 퍼스트 연문빈이고 마연린과 여원 둘이 존재감 있는 조수를, 좌자전은 존재하지 않는 듯 수술실 안을 둥둥 떠다니며 언제든 후보의 후보를 맡을 준비를 했다.
황 교수는 마취의의 작업대 쪽에 서서 모니터링 기기 위의 데이터를 바라보며 능연의 수술을 참관했다. 수술 중 결정권은 없으나 수술 중단할 직책과 권력이 있었다.
“수술 과정은 모두 모니터링되네. 음성과 영상 모두 카피 되고. 그리고 수술실에도 동행 참관인이 있네.”
황 교수는 능연에게 눈치주듯 그렇게 말하고는 능연을 바라봤다.
“자, 능 선생. 잘 부탁하네.”
“네. 수술 시작할 준비들 하죠.”
능연은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날 벌써 담관 결석 절제술을 세 건이나 했고, 환자의 특수한 신분이 아니었다면 네 번째 수술도 진작 끝났으리라.
연문빈 등은 조금 긴장한 듯이 자세를 가다듬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능연은 바로 메스를 요구하지 않고 사람들을 둘러봤다.
“예습부터 할까요? 우리 간 절제 수술을 많이 했습니다. 수술 전 협진에서도 많은 이야기 나눴고요. 연 선생님, 이번 수술의 포인트와 어려운 점을 말씀해 보시죠.”
“에? 아······.”
안 그래도 멍해져 있던 연문빈은 지명을 받은 다음 더욱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상급 의사가 하급 의사를 괴롭히는 방법은 많은데 그중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이었다.
신망 있는 상급 의사의 질문은 하급 의사에 대한 교육과 지도라면, 신망 없는 상급 의사의 질문은 그냥 괴롭힘일 뿐이다.
물론 치료팀 팀장이 하급 의사를 괴롭힐 일은 영원히 없다. 그런 치료팀 팀장이 있다면 그에게 유아적 취미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수술 포인트와 어려운 점은 절제할 때 출혈 문제? 출혈 제어?”
연문빈은 수술 전 협진 때 들었던 내용을 입에 올렸다.
“출혈 제어는 맞습니다만, 간 부분 출혈뿐만 아니라 개복 시 출혈도 주의해야 합니다.”
해부 경험이 한가득 쌓인 능연은 수술대의 뚱뚱한 환자를 바라보며 자신이 봉착한 문제가 무엇임을 잘 알고 있었다. 전동 메스를 쓸 수 없으니 출혈 제어가 복잡한 시스템 작업이 된 것이다.
그제야 생각난 연문빈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간격도 찾기 어려울 수 있어.”
“음, 그리고요?”
능연이 여원을 바라봤다.
“간이 약해.”
여원이 깔끔하게 대답했다.
“음, 조심스럽게 쥐어야 합니다.”
능연도 매우 명쾌하게 대답했고 말하는 동시에 손을 내밀어 메스를 요구했다. 미리 그려 놓은 선을 따라 길고 긴 절개구를 그렸다.
연문빈의 시선이 능연의 메스를 따라 움직였다. 표피를 자른 능연의 손은 계속 안으로 향해 누리끼리한 지방층에 도달했다. 황 교수가 미리 코치 줘서 그렇지, 연문빈은 지금 할 말이 아주 많았다.
토실토실한 배는 그냥 거슬리기만 한 게 아니라 손대기 어렵기까지 했다.
“피가 스며 나온다. 전동 메스도 같이 쓰는 게 어때?”
“괜찮습니다. 거즈 주세요.”
연문빈이 난처한 얼굴로 나지막이 묻는 말에 능연은 팔을 뻗어 거즈를 받아 피가 나오는 위치를 눌러 지혈했다.
측면에 서 있던 황 교수는 능연이 거즈로 간단하게 지혈을 성공한 걸 보고 내심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문빈에게 말했다.
“전동 메스를 쓰면 지방이 액화되기 쉽다네. 그러면 수술 후 회복이 매우 어려워져. 가능하다면 수술 후를 생각해서 거즈로 지혈하는 게 낫지.”
연문빈에게 하는 말 같아도 사실은 밖에 있는 매가 사람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능연을 집도의로 선택한 것은 황 교수에게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수작을 부릴 생각이었다면 명망 있는 의사를 선택하는 게 본인도 부담이 훨씬 덜했다.
능연을 선택한 이상 황 교수도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황 교수는 그래도 의연하게 간 절제 기술이 좋고, 성공률이 높고, 예후가 좋은 능연을 선택했다.
그것 때문에 황 교수도 갖가지 스트레스를 받았고, 특히 못미더워하는 매가 사람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가족부터 친척, 가까운 친척부터 먼 친척, 먼 친척부터 부하들까지 모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나마 오랜 시간 어르신의 홈닥터를 맡아 오면서 쌓은 신뢰와 막대한 자신감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긴 해도 황 교수는 매가 사람들이 수술 과정에서 받을 큰 스트레스를 본인이 조금 줄여줄 수 있길 바랐다.
환자 보호자에게 수술 전과 수술 중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수술이 진행되기 전에는 설사 수술실로 들어갔더라도 메스가 들어가기 전엔 다들 아직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수술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자가 마취되고 복강에 메스가 들어가고 나면 수술이 주는 공포감이 순식간에 절정에 이른다. 갖가지 ‘만일’, 갖가지 ‘혹시’가 순간 보호자들의 대뇌를 지배한다.
매가 큰딸은 온갖 위기 상황을 겪었음에도, 두 눈을 꼭 감은 아버지 모습이 모니터에 드러나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안 와서 다행이네.”
큰딸이 눈물을 훔치며 말하자 매천귀도 답답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계를 내려다봤다.
“훌륭한 의사를 찾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했으니까 이제 하늘에 맡길 수밖에.”
“너도 그런 말을 다 하네?”
큰딸이 매천귀의 얼굴을 힐끔 봤다. 매천귀의 잔뜩 찌푸린 얼굴에 매가 특유의 사납고 냉랭한 모습이 가득하자,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수술에서 첫 번째 리스크는 개복이었는데, 이제 그 위기는 지났습니다. 능 선생 지혈 기술이 상당합니다.”
금 선생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일부러 젊은 의사를 추켜세우려는 게 아니라, 동작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흠 잡을 게 하나도 없었다. 특히 그동안 지켜 봐온 능연의 수술마다 봐왔던 지혈 기술은 금 선생이 가장 탄복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매천귀의 시선이 모니터를 한 번 스쳤다.
“그렇다면, 수술이 지금까지는 순조롭단 말이지?”
“순조롭습니다. 이제 배를 열어서 가능한 한 시야를 노출해야 합니다. 시야라는 건 수술 시야를 말하는 거죠. 어르신이 좀 뚱뚱한 편이라 그게 쉽지 않습니다.”
“라이트 위치 좀 조절하세요. 이제 간문 정맥을 막을 겁니다.”
TV에서 능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배를 이미 연 모양입니다. 음, 앞부분이 매우 순조롭단 뜻이죠. 수술 진도도 매우 빠른 거고요. 집도의 말대로 앞으로 포인트는 혈류를 막는 겁니다. 집도의가 간문 정맥을 선택해서 난도가 좀 있습니다. 몇 가지 방안이 있는데요,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최대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피할 수밖에······.”
“혈류 막았습니다. 시간 재세요.”
능연의 목소리가 다시 전해지자 금 선생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뒤쪽의 큰 모니터를 바라봤다.
풀 앵글에 능연이 벌써 간에 손을 대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금 선생은 입을 쩍 벌리고 무심결에 시계를 내려다봤다. 그동안 능연이 해온 수술과 비슷한 속도였다.
금 선생은 고개를 숙여 안경을 밀어 올리면서 놀란 모습을 감췄다.
환자마다 수술 난도가 다 다른데 시간이 다 비슷하다는 건 말이 쉽지, 의사가 보기에도 능연이 수술을 지극히 노련하게 컨트롤한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금 선생은 다시 한번 능연이 했던 수술들을 떠올리다가, 능연은 이미 환자를 수술하는 정도를 너머서 환자의 상태를 자신이 익숙한 모드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혹은 수술을 완전한 자신의 리듬으로 진행할 능력이 능연에게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같이 어려운 수술에서도 속도를 줄이거나, 수술 리듬을 조절하지 않고 전에 했던 난도 낮은 수술과 같은 속도, 같은 리듬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이것이 바로 그가 좋아하는 리듬이라는 뜻이고, 수술을 완벽히 장악했다는 뜻이었다.
물론 금 선생이 지금 생각하는 장악이란 100점짜리 시험에서 98점 맞는 그런 장악이 아니다. 환자가 수술대에 오를 때 기대하는 최고 수준은 결코 98점이 아니다. 어르신이 바라는 의사도 결코 98점짜리 의사가 아니다.
“금 선생, 지금 문제없는 거지?”
“없습니다. 잘하고 있어요.”
매가 큰딸이 불안한 듯 묻는 말에 금 선생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은 간 질환을 오래 앓아오지 않았습니까. 간 내 담관결석이 오래되어서 조심스럽게 처리해야 합니다. 담관경으로 돌을 꺼낼 때 중요한 지표가 잔석률(殘石率)인데, 최대한 깔끔하게 꺼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꺼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시간이 좀 걸려······.”
“됐습니다. 결석 거의 꺼냈습니다.”
능연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밖에서 수술실 목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는 걸 아는 수술실 의사들이 최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바람에 능연의 목소리가 더욱더 또렷하게 전해졌다. 물론, 능연은 그런 수술실을 가장 좋아했다.
금 선생은 경악한 듯 모니터를 바라봤다.
“끝났다고?”
“문제 있나?”
“아닙니다······.”
매천귀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금 선생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갑자기 학교 다닐 때 체스를 배웠던 일을 떠올렸다. 학교에 적수가 없고 기원에도 적수가 없이 무신 시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 나중에 이제 갓 프로 기사가 된 사람을 하나 만나서······.
상대방은 평범한 기술로 아마추어들을 무너뜨리고 다녔다.
“됐습니다. 출혈 제어하고요. 마 선생님, 훅 당기세요.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간이 약하네요. 황 교수님, 나중에 어르신 다이어트 계속하라고 권해 주세요.”
능연은 고개를 숙인 채 수술하면서도 설명해야 할 부분은 자세히 설명했다. 황 교수가 싱긋 웃으면서 내뱉은 숨이 모니터 위에 퍼졌다.
“어떻게 된 건가?”
“수술이 기본적으로 성공했습니다.”
“성공? 끝났다고? 이렇게?”
뭔가 느낀 듯 묻는 매천귀의 말에 금 선생은 머뭇거리며 대답했고, 매천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연달아 질문을 던졌다.
“예, 끝났습니다.”
“문제없이?”
“보기에······. 없는 것 같습니다.”
금 선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큰, 수술이라고 하지 않았나?”
“NBA 선수가 아마추어 경기하는 거랑 같은 거죠.”
프로 체스로 예를 들까 했지만, 설명이 명확하지 않을까 봐 비유를 바꿔서 대답하고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대단한 의사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많이 보면 볼수록 홈닥터 생활에 신념이 생겼다.
“식염수로 여러 번 헹구고 깨끗하게 석션하세요. 연 선생님, 직접 하시고요.”
능연은 손을 흔들어 지방 덩어리와 기름을 털어내고는 장갑을 바꿔 달라고 지시했다.
“능 선생, 자네가 직접 폐복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황 교수가 다급하게 하는 말에 안 그래도 직접 할 생각이었던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마무리 봉합이라도 뚱뚱한 사람은 제법 어려워서 연문빈 등에게 도전성이 높은 작업이었다.
황 교수는 수술 자체만큼 폐복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능연이 장갑을 갈아 끼는 틈에 특별히 수술대 곁에 서서 도와주겠다는 티를 냈다.
연문빈 등은 아무리 상황이 특수한 상황이라도 대학교수를 자신의 조수로 부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능연이 돌아올 때까지 배를 닫는 과정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 그러나 수술실 안과 밖, 의사든 환자 보호자든 모두 평안해 보였다.
보호자들은 지금까지 진행된 수술 상황을 이해할 시간도 필요했다.
“시작합시다. 으, 또 기름 묻었네.”
막 갈아 낀 장갑에 기름이 잔뜩 묻자 능연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황 교수가 헛기침했다.
“복강 내부 검사 안 해도 되나?”
“무슨 문제 있습니까?”
“문제는 없지만, 수술 시간이 짧아서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말일세.”
황 교수는 걱정이 되긴 했다. 능연의 수술은 항상 그랬지만, 아무래도 어르신 수술은 조심하면 할수록 좋으니까. 능연도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직접 검사하시죠.”
수술 검사 기기는 매우 전문적이라서 영상의학과 의사가 필요하기도 하고, 능연은 조작할 줄도 모르고 조작할 필요도 못 느꼈다. 그런 검사를 집도의가 일일이 해야 한다면, 조수들은 고기나 팔러 가야 할 테니까 말이다.
황 교수는 검사하는 사이 능연 곁으로 다가가 나직하게 예쁘게 잘 닫아야 한다고 속삭였고, 능연은 그런 요구를 반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한편으로 뚱뚱한 사람 배를 닫는 것 자체도 의미 있었다.
체형이 일반인 환자의 폐복 과정은 형식적이지만, 뚱뚱한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지방을 꿰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인 봉합하듯이 바늘땀을 촘촘히 꿰맸다가는 지방이 시시각각 흘러나와 존재감을 나타낼 것이다. 그렇다고 세심하게 꿰매지 않아서 사강(死腔: dead space)이 형성됐다가는 복잡한 감염 문제가 발생해서 약을 쓰고 어쩌고, 환자가 괴롭게 된다.
능연도 매가 어르신 같은 뚱뚱한 환자를 자주 만나는 게 아니라서, 고난도 봉합 퀘스트를 하는 느낌으로 마스터급 단속 봉합으로 겨우겨우 봉합했다.
곁에서 잠시 지켜보던 황 교수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 성공했으니 이제 예후가 문제였다. 특히 매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후 문제.
복강 내 간 유합은 의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 무슨 변화가 있는지, 좋은지 나쁜지 환자와 보호자가 알 수 없어서 대부분 의사의 이성적 해석과 설명에 기대곤 한다. 그러나 배 위에 남은 절개구 유합은 작고 압축된 예후 문제로 받아들인다.
작은 문제라고 하는 이유는 대부분 절개구 유합이 잘 되든 아니든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르든 빠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이가 주시하고 주목할 때는 문제의 집합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상처가 감염되거나 지방이 액화하거나 하면, 매가 사람들이 순순히 받아들일지, 황 교수는 심히 의심스러웠다.
물론 수술 전체 상태가 좋으면 작은 흠은 다들 이해해주겠지만, 공이 깎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간 절제를 그렇게 잘해놓고, 지방 액화 같은 문제로 점수가 깎인다면 그것도 불편한 일이지 않은가. 황 교수가 일부러 능연에게 직접 하라고 코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같은 의사로서 보기에 연문빈 같은 초짜 의사한테 대단한 능력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해. 수술도 다 끝났으니까, 마무리만 깔끔하게 잘하자고.”
황 교수가 그렇게 말하면서 오른 다리로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둥근 의자를 발치로 끌어당겼다. 마취제 양을 조절하느라 바쁘던 소가복이 튀어나올 것 같은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 교수님? 수술 더 안 보시려고요?”
소가복은 눈을 부릅뜨고 황 교수의 다리 밑을 바라봤다.
“앉아서도 보이네. 능연이 직접 배를 닫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나.”
황 교수는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여전히 긴장한 상태였다. 수술을 부디 잘 마무리하는 것이 지금 황 교수의 가장 큰 바람이었다.
소가복은 실룩거리는 볼을 달래며, 오늘은 수술이 별로 없으니 의자가 없어도 그만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게다가 의자가 고장 날 것도 아니고, 어차피 무신 시 1 병원의 의자라서 상관 없다고.
“소 선생, 어디 불편한가?”
“환자가 안정적인데, 제가 뭐 불편할 게 있겠습니까. 하하하.”
슬쩍 소가복을 본 황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얀 가운을 휙 쳐서 가다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껄껄 웃었다.
“안정적인 게 최고지.”
황 교수의 관심이 마취의에게서 어르신으로 옮겨갔다.
“됐습니다. 전 손 씻으러 갑니다.”
폐복 작업을 마친 능연은 장갑을 벗고 수술실을 떠났다.
밖으로 나온 능연은 다시 손을 씻고 샤워실로 향해 기름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온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는 새로운 속옷과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하얀 가운을 걸친 다음 상쾌하게 수술 구역을 나왔다.
그때 매가 전체는 벌써 난리가 났다. 전화해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 친구에게 연락하는 사람, 동료에게 감사하면서 새로운 동료를 맞이하는 사람, 수술 상황에 관심을 보이며 의사에게 질문하는 사람, 후속 처치와 앞으로 어떤 보약을 먹어야 할지 묻는 사람······.
매천귀는 그 사이에서 동요하지 않는 모습으로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역시 큰형님이 다르구만. 이렇게 큰일도 침착하게 치렀잖아.”
“막상 일이 시작되면 걱정할 것도 없지 뭐.”
“어르신 깨어나면 큰아들을 더 의지하겠어.”
“큰형님이야 어릴 때부터 침착했잖수.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아봤지 내가.”
매가 자제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이런 때가 아니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능 선생.”
매천귀가 갑자기 일어나니 사람들이 웅성거림을 멈췄다. 능연은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거의 일상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는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매천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수술 성공했습니다.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문제없었습니까?”
매천귀는 살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수술동의서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발생할지도 모르는 숨은 증상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나이가 너무 많고, 몸이 뚱뚱한 편이고 간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그렇지, 그래도 모두 순조롭게 극복했습니다.”
능연은 항상 환자 보호자를 대하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능연이 순조롭게 가족과 소통 해낸 걸 보고 주먹을 불끈 쥔 좌자전 얼굴에 뿌듯함이 펼쳐졌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요?”
“새로운 문제가 없으면 곧 퇴원할 수 있을 겁니다.”
매천귀가 저도 모르게 난처한 표정을 짓자 능연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 뜻이 아니라······.”
“제가 뭐 더 할 게 있나요? 다음 수술하러 가야 하는데.”
“아니, 우리 가족이, 뭘 할 게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만······.”
멍하니 바라보는 능연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매천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자 능연은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수술 구역으로 돌아갔다.
매천귀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려 황 교수와 금 선생을 바라봤다.
“외과 의사로군.”
황 교수가 뜨끔한 듯 한마디 했다.
“외과 의사야!”
금 선생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감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