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화병원 응급센터의 대기실엔 배를 부여잡거나 어깨를 붙잡은 응급 환자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혼자 두 자리를 차지한 장평은 다리를 꼬고 핸드폰을 만지면서 수시로 고개를 들어 지겨운 듯 눈앞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바라봤다.
마을 위생병원에서 20년 동안 일한 장평은 병원 냄새에 익숙했고, 병원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다. 운화병원 같은 최첨단 병원이라도 그의 눈엔 똑같이 더럽고 지저분한 곳일 뿐이었다.
장평은 깔보는 눈으로 사람들을 한가득 무시하면서 내려다봤다.
‘겉으로는 흔적이 드러나지 않아도 사방엔 세균 덩어리고,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엔 어디서 온지도 모를 폐기물이 가득할 텐데 뭘.’
콧등에 주름을 만들어도 냄새가 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싫기만 했다. 특히 위생병원보다 훨씬 많이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장평.”
하얀 가운을 입은 좌자전이 운동화를 신고 장평 곁에 가서 섰다. 전처는 지금도 그가 익숙한 모습이긴 하지만 조금 더 세련되어졌다. 구불구불한 펌 머리도 아니었고, 젊을 때처럼 생머리였다.
옷도 제법 예뻤고 춥지도 않은지, 변함없는 미니스커트 차림에 양털인지 융인지 모를 스카프를 칭칭 감고 있었다. 낮은 코엔 선글라스가 걸려 있고, 입술엔 새빨간 립스틱을 발라서 자세히 안 보면 병원의 간호사와 비슷······.
좌자전이 전처를 살피는 동안 전처 장평도 트집 잡는 눈빛으로 좌자전을 주시했다.
“드디어 꿈에도 바라던 HLA(중국 남성복 브랜드) 입었네?”
장평은 좌자전의 눈빛을 무시하며, 이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설을 내뿜었다. 좌자전도 얼굴색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전에 광고 보고 그냥 해본 말일 뿐이야.”
“그래서, 그거 안 사줬다고 이혼하고 직접 사 입은 거야? 번 돈 다 써서 좋겠네?”
“당신이 바람피워서 이혼하기로 한 거지.”
“아들은 당신 아들 맞잖아! 그런데도 말을 이런 식으로 해? 이혼을 쉽게도 하더라? 내가 아이 낳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여자가 아이 한번 나으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냐고. 그거 다 갚았어? 됐어. 이혼하니까 좋네. 집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안색이 변해서 쏘아붙이던 장평이 머리를 넘기자 긴 검은 생머리가 허공에 휘날렸다.
“아들 학교 일로 상의할 거 있다며.”
좌자전은 표정 변화 없는 모습으로 장평을 흘깃 봤고, 좌자전을 노려보던 장평은 별 효과가 없자 주변을 둘러보며 피식 웃었다.
“아이고 대단하네. 이제 대도시로 왔다고 본 게 많다 이거지?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해? 누가 그런 용기를 줬어? HLA?”
“HLA랑 무슨 상관이야. 진지하게 이야기나 하자고.”
좌자전이 할 수 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예전에는 말 한마디도 못 했다. 하면 할수록 상황이 나빠졌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혼을 한 번 더 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새장 속에 새는 어렵게 날아가 봐야 멀리 날지도 못해. 공원이 무슨 숲인 줄 알아? 꼬라지 하고는. 내가 실수한 게 아니네. 계속 당신이랑 살아 봐야 싸구려 옷이나 입고 샤오미 핸드폰이나 썼겠지.”
“애플 사줬었잖아.”
“왜? 아깝냐? 다른 사람들은 차도 수시로 바꾸는데, 고작 핸드폰 바꿔줘 놓고 큰 소리야? 나도 월급 받는 사람인데, 애플이 뭐?”
점점 흥분한 장평은 목소리까지 날카로워졌다. 주변에 기다리던 사람이 하나씩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시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어서 분함에 얼굴이 벌게지고 근육이 굳었던 좌자전은 갑자기 편안해졌다.
어쩌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욕 먹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런 짓을 수도 없이 견뎌 왔는데, 이제는 참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다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멍해진 장평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눈가 주름과 볼에 팔자 주름이 진해졌다.
좌자전은 그저 미소 지었을 뿐인데, 눈가 주름, 팔자 주름, 미간 주름, 목주름이 변함없이 진했다.
“내가 어디 부탁해서 우리 아들 제3 초등학교에 넣었어. 입학에 든 돈이랑 부탁하느라 든 돈은 내가 해결했으니까 앞으로 아이 등하교 책임져. 아침이랑 저녁에 나 지금 사는 곳에서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오면 돼. 점심값은 당신이 내고.”
장평은 좌자전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차 한 대 사지 그래? 요즘은 대출로 살 수 있다더라. 정 안 되면 렌트하거나 빌려. 내 일자리도 해결됐으니까, 명절 지나면 금화랑 학교 앞으로 이사 가서 살 거야”
“실험 학교에 보낼 생각이야. 우리 애, 똑똑하니까 뭘 배워도 빠르겠지. 전엔 형편이 안 되어서 그렇지, 지금은 기회가 왔으니까 실험 학교가 더 나아.”
말을 자르는 좌자전의 모습에 그를 힐끔 바라본 장평이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이 꿈꾼다고 다 이뤄질 거 같으면, 당신은 진작에 죽었어. 내 말 잘 들어, 내가 아들을 제3 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는 것도 다 금화 덕이야. 그 사람 만나면 고분고분하게 굴어. 당신이 윗사람 대접할 때 발휘하는 역겨운 그 기운, 30%만 꺼내도 충분하니까.”
“실험 학교······.”
“됐다구! 어디서 듣고 와서 염불이야. 왜? 제1 학교가 아니라서 우스워? 당신이 그럴 능력이 있으면 직접 가던가. 안 되면 그냥 찌그러져 있어.”
하고 싶은 말이 뱃속 가득하던 좌자전은 갑자기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는 장평의 검은 긴 생머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실험 학교 수속 이미 끝냈어.”
“됐거든. 대체 무슨 허풍이야. 애 제3 초등학교에 보내려고 금화가 누굴 찾아간 줄 알아?”
“전화로 확인했고, 학적부도 이미 옮겼어. 오늘 나도 그 이야기 하려고 만난 거야.”
“······누구 엉덩이 핥았니?”
의아한 듯 바라보는 장평의 모습에 좌자전이 웃음을 터트렸다. 쏘아줄 말이 태산이었지만, 그저 평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일 애 데리러 갈게.”
한참 만에 말을 꺼낸 좌자전은 한마디 남기고 하얀 가운을 펼치며 그 자리를 떴다. 그런 좌자전의 뒷모습을 보며, 장평은 갑자기 그 남자의 등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을 만큼 곧게 보였고 아까 자신만만하던 눈빛도 남자답게 여겨졌다.
“어울리지도 않은 짓 하고 있네!”
장평은 붙인 지 얼마 안 되는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려고 걸음을 서둘렀다.
좌자전은 바로 휴게실로 향했다.
그 역시 며칠 동안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모처럼 휴가를 내고 왔으니 일단 잠을 보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해가 하늘 높이 떠 있었다.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봤더니 부재중 전화가 잔뜩 떠 있었고, 시간은 정오 12시였다.
“어떻게 이렇게 잤지.”
좌자전은 한숨을 내쉬면서 능연 밑에 있는 건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1년 더 지냈다가는······.
좌자전의 시선이 막 도착한 문자 메시지로 향했다.
- [OO은행] 존경하는 좌자전 님, 운화 지점 금요일 재정 관리일에 참석해주시길 바랍니다.
좌자전은 자신이 한 번도 이런 문자를 받아 본 적이 없음을 확신했다. 지금까지 관리받을 재산이 없었으니까.
“차 한 대 사자.”
좌자전은 돌발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다년간 숙원인지도 모른다. 새 차를 사서 전처 앞에 나타나는 것.
좌자전은 은행에서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어 보면서 연문빈의 BMW 5시리즈를 떠올렸다.
대출받으면 살 수 있겠지? 그땐 BMW를 타고······.
이른 아침, 접난의 뾰족한 잎사귀에 지난밤의 촉촉함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 듯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에어컨 앞에 놓인 에피프레넘은 조금 건조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뭇잎을 말고 피곤해 보이는 느낌을 주었다.
에피프레넘 옆에 엎드리고서 동병상련인 듯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연문빈 곁에 놓인 콜라도 영혼을 잃고 미지근해져 있었다.
콜라 옆에 족발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때 핸드폰 소리가 울리자 연문빈이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무신 시에서 족발 가져갈 차가 왔어요. 한 광주리 더 달라는데요?”
핸드폰 너머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전해졌다.
“없어. 여분은 하나도 없어.”
연문빈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직원이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연문빈은 기지개를 켠 다음 찬물을 한 잔 마시고 느긋하게 방에서 나갔다.
“연 선생님!”
그러자 안면 있는 보호자가 곧바로 연문빈을 향해 인사했다. 간 절제 수술 환자는 회복기가 길어서 보호자가 자주 보였다. 그렇게 한동안 입원해 있는 동안, 자주 보는 회진 레지던트는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심지어 레지던트의 동선을 파악했다가 길을 막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면 같이 걸으면서 더 많은 정보를 얻거나.
연문빈은 누군가 잡아당길 때까지 능연처럼 사회성 있는 미소를 지어 주었다.
“저 좀 도와주세요.”
마연린이 초조한 듯 부탁했다. 무신 시에 있는 동안 마연린의 변화가 가장 컸다. 고강도 수술 때문에 자신감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간 절제 같은 큰 수술은 운화병원에서는 정상이라면 몇 달은 있어야 겨우 훅맨 자격이 주어지고, 사오 년은 지나야 지금 그가 손에 넣은 기회를 겨우 얻는다.
그러니까 능연 아래 있게 된 마연린은 사오 년 시간을 절약한 셈이었다. 말하자면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정력제랄까. 소꼬리, 호랑이 뼈, 해마, 부추, 농어, 생굴, 오징어, 콩팥, 검은깨 같은 것보다 훨씬 효과 좋은.
또 한편으로 무신 시 공기가 좋아서인지, 무신 시로 온 이래 마연린은 혈색까지 좋아져서 얼굴이 불그스레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눈밑살과 다크써클까지 사라졌다.
“능 선생이 동의해야 대신 근무를 서지. 능 선생한테는 말했어?”
연문빈은 그런 마연린을 보며, 특히 그가 새벽 3, 4시까지 잘 수 있는 행복을 부러워하면서 의외라는 듯 물었다.
“네. 능 선생이 괜찮대요. 그런데 선생님한테 가능한지 물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자료는 다 준비 해뒀어요. 몇 시간 정도 시간 내서 읽어 주실래요? 능 선생이 물어볼지도 몰라요.”
“뭐? 시험까지?”
마연린이 양손을 모으고 다시 부탁하며 하는 말에 연문빈이 목소리를 높였다.
능연이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능팀은 대신 근무 서는 일이 드물었다. 능연이 수술 중에 질문할 때도 있어서 특히 큰 수술을 앞뒀을 땐 조수들은 하나같이 많은 자료를 읽어야 했다.
능연이 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도 불이익은 없지만, 조수들은 희한하게 열심히 자료를 읽곤 했다. 그러나 일부러 시험을 보지는 않는다.
“통과 못 할 거 같은데.”
연문빈은 뜨끔해서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능연 밑에 있는 의사들은 지금 간 절제 수술에 상당히 익숙해졌지만, 자료를 읽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와이프가 운화에서 온대요. 1박이라 내일 돌아간다고 꼭 오라잖아요.”
그러자 마연린이 어쩔 수 없어서 그런다는 듯 다시 부탁했다.
“좌 선생님도 아직 안 돌아왔는데 그럼 나랑 여원 둘이 어시하는 거네. 그럼 안 돌아갈 텐데. 어쩐지 능 선생이 시험 본다 했다. 너까지 없으면 빡세겠는데.”
연문빈이 눈썹을 치켜떴다. 능연 같은 속도로 수술하는 의사는 조수가 셋이라도 빡빡하게 돌아가서 무신 시 2 병원에서 준비해준 인원을 같이 돌리곤 했다.
그러나 능 팀 효율, 수준과 비교하면 2 병원 팀은 실력이 떨어졌다.
전문 간담췌외과가 없을뿐더러 간 절제에 관한 기초 지식도 없다. 기초 지식이 없는 건 능 팀과 비슷하지만, 그들의 학습 시간과 수술 시간, 그리고 직접 수술에 참여할 기회는 여원, 연문빈 등과 당연히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수술 빈도가 늘어날수록 능연의 조수와 무신 시 2 병원 팀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물론 절대가치로 보면 무신 시 2 병원 팀도 조수를 하기에 충분했다. 능연의 강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도 정신이 멀쩡한지, 4시에 일어나는 걸 늦잠으로 여기는 걸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게 문제였다.
다만 각도를 바꿔서 보면, 능연과 그의 팀이 이렇게 오래 2 병원에 머물 수 있는 것도 능 팀의 인원 부족 때문이었다. 전부 능 팀 인원만으로 2 병원의 병상 등 자원을 사용했다면 언젠가 병원에서도 반대하게 될 테니 말이다.
“딱 하루만요. 2 병원 의사한테도 말해줬어요. 나중에 밥 살 테니 좀 도와달라고. 두 팀이 번갈아 하면서 해주세요. 오늘 총 3건이거든요.”
마연린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간절하게 부탁했다.
“이자까지 해서 수술 5건 빚진 거다.”
연문빈은 족발을 팔면서 족발만 잘 삶게 된 것이 아니라 계산도 밝아졌다.
“네네, 좋아요.”
마연린은 승낙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가서 옷 갈아입고 올게.”
연문빈이 드디어 미소를 드러냈다. 수술 5건이라니, 운만 좋으면 이틀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연달아 그렇게 쉴 수 있을 리는 없지만, 나눠서 쉰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은 수술을 넘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섯 손가락 단지 수술?
마연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떠나려고 하는데 간호사 한 명이 그를 불러 세웠다.
“마 선생님 잠시만요. 택배 왔어요. 아침에 왔는데, 전해드릴 시간이 없었네요.”
간호사가 특별히 신경 써주며 말했다. 병원에서 택배를 직접 눈앞에까지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받는 의사는 부주임급 이상이거나 아니면 능연 같은 부류였다.
감사 인사한 마연린은 택배를 받자마자 바로 테이프를 뜯다가 순간 안색이 확 변했다.
“뭔데?”
“장갑이요.”
“뭐라고?”
호기심 넘치는 질문에 마연린은 두어 걸음 내딛고는 겨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못 알아들은 연문빈이 되물었다.
고개를 돌려 연문빈의 얼굴을 본 마연린은 그의 얼굴에 난 여드름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선생님은 필요 없는 거요.”
마연린이 끌어안고 있는 상자를 힐끔 본 연문빈은 그제야 깨달았고,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더니 재빨리 반박했다.
“누가 그래? 나 손 잘 안 씻어서 써야 하는데.”
“형!”
마연린이 눈가를 축 늘어뜨리는 모습에 연문빈이 뿌듯한 듯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마 선생님, 여기도 택배 두 개 있네요. 따로따로 왔어요. 이것도 가지고 가세요.”
너스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가 더 커다란 택배 꾸러미 두 개를 발치에서 꺼내 올렸다. 궁금한 듯 고개를 돌리던 마연린은 택배를 뜯어보고는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왜 한꺼번에 안 보냈대.”
팝콘 먹는 표정인 연문빈이 가르침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물었다.
“메이커가 다르니까요.”
마연린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