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빛이 감도는 분홍색 간 끝에 누렇게 변한 부분은 딱 봐도 변질이 된 것처럼 보였다.
물론, 변질된 것이 맞다.
능연은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변질된 간을 들어 올렸다.
시장에서라면 가게 명예를 손상할 정도의 간이었지만, 환자로서는 가장 좋은 간이었다.
능연의 그랜드마스터급 간 절제술, 맨손 지혈, 복부 해부 경험 170회가 있으니 문제를 일으킬 확률은 매우 적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능연 성격상, 확률이 매우 적다는 걸 믿을 리가 없다.
확률이 적다고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방송국에서 아역 연기자를 찾을 때 전체 도시 아이 중에 두어 명 합격하는 건 확률이 매우 낮은 일이지만, 능연은 그런 확률과 상관없이 뽑혔다.
능연의 인생 경험은 그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어 성격이 매우 섬세해졌고, 이제 거의 천성이 되었다. 그래서 설사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능연은 아주 자세히 자신이 행한 모든 스텝을 체크했다.
능연은 간을 살짝 쥐어 받치고는 약간 들어 올렸다. 조수와 간호사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간의 위치에 모였다. 능연의 시선도 마찬가지로 환자의 간에 쏠렸지만, 주의하는 포인트가 달랐다.
능연은 자신의 동작을 컨트롤해서 어깨 주위에 힘쓰기 편한 위치를 확보하고 오른손으로 잡은 메스로 환자의 간을 그어 왼손으로 당겼다.
그러자 환자의 변질된 간이 뚝 떨어졌다.
몇 번이고 본 장면이지만, 연문빈은 여전히 숨을 들이쉬었다가 민감하게 입을 다물었다. 손으로 간을 떼어내는 장면은 누구라도 두려워한다. 노련한 나이 든 의사도 그런데, 초짜 의사들은 어련할까.
“됐습니다. 불활성 박리 순조롭게 끝났으니 수술 계속합니다.”
능연의 편안한 말투에 연문빈 등의 마음도 순간 홀가분해졌다.
“손으로 간 떼어내는 게 이제 무신 시 2 병원 시그니처가 되겠네. 어제 식당에서 보니까, 이제 간을 볶지 않고 손으로 뚝뚝 떼서 탕으로 내놓았더라고.”
“좀 징그럽지 않아?”
두 겹 받침대 위에 선 여원이 하는 말에 졸음이 밀려오던 소가복이 정신을 퍼뜩 차린 듯 대화를 이었다. 그러자 연문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간은 볶아야 제맛이지. 그게 뭐야. 요즘 식당들 음식으로 장난치나.”
능연은 조수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고개를 숙여 환자의 간을 살피면서 재빨리 손을 놀려 묶었고 그런 능연의 모습에 익숙한 조수들도 태연하게 자기들끼리 떠들었다.
특히 세 사람 몫을 하며 하루에 대여섯 시간밖에 못 자 너덜너덜해진 소가복은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잠들까 걱정이었다.
그는 모니터를 힐끔 보고는 환자 상태가 양호한 걸 확인하고 안도하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장난인 게 낫지, 2 병원 식당 밥 진짜 맛없어. 그게 진지하게 내놓은 거라면, 뭘 기대할 게 있겠냐?”
“난 노란 콩 족발탕 맛있는 거 같아요.”
“어이구, 입맛들 하고는.”
여원이 의견을 내자 연문빈이 껄껄 웃으면서 소가복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왜? 이 환자 식당 한다던데, 아니면 소 선생님더러 환자 깨우라고 해서 직접 물어보지 그래? 노란 콩 족발탕이 맛있는 음식인지 아닌지.”
“맛있다고 하면 다시 마취하고? 맛없다고 하면 환자를 어쩔 생각이냐, 너.”
울컥해서 하는 여원의 말에 연문빈이 놀리듯 대답했다.
“식당 일 하는 사람이 노란 콩 족발탕을 못 하면 천벌 받지. 내가 무슨 짓 할 필요 있겠냐?”
“그럼 가서 가족한테 물어봐야겠네. 환자가 평소에 그걸 먹는지 안 먹는지.”
환자의 굵고 짧은 목을 힐끔 보고 여원이 말하자 연문빈이 신이 나서 받아쳤다. 그때 능연이 한숨을 내쉬면서 허리를 펴고 조금 전에 마친 봉합을 유심히 심사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먹고 싶어도 며칠 못 먹어요. 슬슬 돌아가야죠.”
“응? 돌아가려고?”
놀라서 묻던 소가복은 출장 수술하던 나날이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기운이 쭉 빠졌다. 돈과 목숨, 고르기 참 힘든 일이었다.
“논문 마무리했거든요. 이 수술 끝나면 슬슬 돌아갈 준비해도 됩니다.”
능연이 선을 정리하면서 대답했다.
“이렇게 빨리.”
소가복은 갑자기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굳이 말하자면, 한 일주일은 더 버티면 좋을 것 같았다. 일주일이면 수술비를 적잖게 벌 수 있으니까.
P2P로 난 구멍도 메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못하면 남을 수도 있고.
“무신 시 2 병원은 자체 환자가 없고, 금 선생 환자도 끝이에요. 알아서 찾아오는 환자가 있나 보고, 없으면 ICU도 자리가 없는데 돌아가야죠.”
“여기 ICU 수준이 좀 그렇긴 해. 금 선생님이 의사 몇 불러서 서포트 안 했으면 진작 무너졌을 거야.”
자주 ICU에 상황 체크하러 가는 연문빈은 2 병원 수준에 항상 불만이 많았었다. 그러자 여원이 독설을 내뱉었다.
“운화병원도 거기서 거기거든.”
“그래도 2 병원보다 낫지. 1 병원보다도 낫고.”
“하긴 우리 병원엔 괜찮은 의사도 있지. 영 아닌 의사들도 몇 있지만.”
“응, 섞여 있지.”
여원이 한마디 덧붙이자 연문빈도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 ICU가 필요해요. 전문적인 ICU요. 많을 필요는 없어도 있어야 해요.”
능연이 갑자기 하는 말에 연문빈, 여원, 소가복과 간호사들은 감탄하며 능연 선생을 바라보면서도 속으로 ‘저딴 허튼소리를 믿을 거 같냐.’고 생각했다.
다들 능연을 너무 잘 알았다. 응급센터에 자체 ICU가 생긴다고 해도 규모가 작으면 능연이 순식간에 채울 테고, 그러니 전문적이고 많을 필요 없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응급센터에 자체 ICU가 생긴다면······. 연문 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면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좋아요를 눌렀다.
“자, 주의들 하세요. 이제 차단된 부분 해제합니다.”
말을 마친 능연은 잠시 기다리다가 다들 집중한 것을 확인하고는 제1 간문을 잡고 있던 포셉을 천천히 놓았다.
“피 안 나와.”
“실도 튼튼하고.”
“혈관도 좋아······.”
연문빈과 여원이 혹시 뭔가 놓치지 않았는지 재빨리 주변 상태를 체크했다. 능연 역시 진지하게 여러 번 체크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수술은 지극히 순조로웠고, 분명히 평균 넘는 수준이리라. 이번 수술이 끝나고 시스템에서 검증까지 받으면 능연의 판단력도 한층 올랐다는 증명도 된다.
“닫으세요.”
능연은 자리에서 물러나며 작업을 연문빈에게 넘겼다. 조수를 키울 필요가 있었다. 능연이 배를 닫는 건 이제 시간 낭비지만 연문빈들에게는 아직이었다.
능연은 아무런 조언도 없이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고 잠시 후 연문빈이 순조롭게 폐복을 마쳤다.
그러자 능연 눈앞에 역시나 제시어가 나타났다.
- 퀘스트 완성: 초 고수준 수술 (10/10)
- 퀘스트 내용: 초 고수준 수술을 통해 환자의 통증을 제거할 것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상자
은빛과 흰색이 감돌면서 반짝이는 중급 보물상자는 몹시 사랑스러웠다.
능연은 환자가 병실로 향하는 걸 지켜보면서 장갑과 수술복을 벗고 샤워실에서 기분 좋게 샤워한 후 옷가지를 전부 갈아입고 나와서 그제야 상쾌한 기분으로 상자를 열었다.
보물상자가 열리는 순간 빛이 은은하게 흐르면서 보물이 나타······.
“능 선생님!”
“능 선생니임~.”
지나가던 간호사 두 명이 능연을 보고는 기뻐하며 고함쳤고, 능연은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간호사 둘이 부끄럽고 또 기쁜 듯 볼을 붉혔다.
“능 선생님 얼굴에 빛이 나는 거 같아.”
“정말 잘 생겼어. 무지개 같아.”
“이렇게 잘생긴 의사가 만날 수술해야 한다니, 너무 불공평해.”
“그러니까! 다른 선생님들은 게을러빠져서 돼지처럼 휴게실에 누워있잖아. 자기가 의사면서 다이어트도 안 하고 말이야.”
“야야, 다른 선생님 이야기하지 마. 지금 능 선생님 하얀 가운 입은 모습 보고 있는 거 안 보여? 진짜 멋지다.”
두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면서 서서히 능연의 시야 범위에서 사라졌다. 능연의 시선이 보물상자에서 나와 허공에 떠있는 스킬북에 고정됐다.
스킬북 첫 페이지에 ‘림프절 근치술’(그랜드마스터급)’이라고 쓰여 있었다.
능연은 웬일이냐는 듯 주석을 들여다봤다.
아무리 모든 의학 기술은 다 가치가 있다고 해도, 게다가 매우 가치가 있다고 해도, 그중에 더 가치 있는 기술이 있기 마련임을 부정할 수 없다.
림프절 근치술은 간단히 말하자면 암세포 확산을 막는 기술이다. 악성 종양은 대부분 림프샘을 통해 확산한다. 그래서 특정 암 근치술을 할 때 보통 관련 림프샘을 제거한다.
예를 들어 유방암은 유선 림프를, 자궁암은 골반 림프를 제거해야 한다. 간도 암이 발생하면 재발과 전이 확률을 낮추기 위해 수술한 후 림프샘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림프샘을 제대로 잘 처리한다면 환자는 조용히 운명이 준비해둔 걸 기다릴 자격이 생긴다. 다시 말자면, 이 기술은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의학 기술이었다.
현대인은 암 관련 질환으로 사망이 잦은 걸 고려하면 이 기술의 실용성과 환자의 생명으로 연장하는 가치는 대대적으로 드러난다.
간 절제술과 림프절 근치술을 터득한 능연은 기본적으로 간암 수술에 필요한 기술을 갖춘 셈이다.
능연은 핸드폰을 꺼내 곽 주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희 간암 수술할 환자 있나요?”
“응급센터에 말인가?”
“예.”
“응급센터에 간암 환자?”
곽종군은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이었다.
“가끔 급성 간 파열 암 환자를 만나긴 하지만 응급처치 후 간담췌외과로 넘기지. 게다가 그런 환자들이 모두 악성 종양 절제에 적합하단 법도 없고.”
“그렇긴 하네요······.”
능연은 다소 실망한 듯 대답했다.
“아님 이렇게 하지. 자네가 간암 수술하고 싶다면 간담췌외과로 가서 몇 건 하면 되지 않겠나. 먼저 참관하고 배우면서 하다 보면 직접 할 기회가 올 걸세.”
“그래도 되나요?”
“내가 간담췌외과에 말해 보지. 그러나 며칠 기다려야 할 걸세. 그렇게 쉽게 동의하진 않을 거야.”
곽종군은 이번에도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잘됐군, 돌아와서 쉬면서 우리 진료과 워크샵에 참석하게나. 난 또 이것 때문에 전화한 줄 알았네.”
“워크샵이요?”
“하하하, 응 위에서 시킨 일이야. 누구나 한 번은 참석해야 해. 그래도 제법 재미있다네. 자전거도 타고 경치 좋은 곳에서 놀기도 하니까. 자네가 갔다 오면 내가 간담췌외과 노인네들을 설득해 놓을 테니 돌아와서 수술 구경하면 되네.”
외과 의사는 누구나 수술 방식을 확장하려고 한다. 평생 한두 가지 기술을 집중해서 키우는 의사도 있지만, 그들도 의사 생활 초기에는 여러 가지 기술을 접할 수밖에 없다.
응급센터 같은 진료과의 의사가 여러 수술을 할 수 있을수록 당연히 유리하다. 곽종군이 좀 전에 이야기했던 간 파열 암 환자도 응급센터에 처리할 사람이 있으면 임시로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믿음직스럽다.
능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며칠 있다가 워크샵 끝나고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다른 진료과 동료들과 같이 갈 수도 있는데?”
“누구나 꼭 가야 합니까?”
“물론이지. 의무일세. 그리고 젊은이들이 스트레스 해소할 기회도 주려는 거야. 워크샵 갔다가 솔로 탈출하는 사람도 해마다 있다네. 흠, 자넨 필요 없겠군. 어쨌든 꼭 참석해야 하네. 어쩔 방법이 없어. 자네도 지금 레지던트라서······.”
곽종군은 한참 동안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다가 다들 무신 시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황 교수와 금 선생이 관련된 일에다 운화병원 ICU가 꽉 차서 능연을 내보냈지, 곽종군님은 당연히 능연과 그의 치료팀이 그리웠다. 지금 운화병원 ICU는 그렇게 빡빡하지 않고 말이다.
능연은 사실대로 무신 시 1 병원, 2 병원의 상황을 ICU 상황에 집중해서 설명했고 능연이 얼마나 채웠는지 이야기를 들은 곽 주임이 다 뜨끔했다.
이제 막 응급센터를 설립한 처지에 일반 병실보다 비싼 자체 ICU를 설립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능연의 화제는 곧바로 본인의 논문 <간 내 담관결석에 응용된 정밀 간 절제> 이야기로 돌아갔고 곽종군은 다급히 호응하면서 벌렁대는 가슴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