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25화 (306/877)

용두협은 용두촌과 가까워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두촌은 최근 몇 년 관광객이 많아져서 현지에 도로도 새로 보수하고 산간 도보로도 재정비했고 농가를 따로 규정된 구역으로 몰아서 더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었다.

주말엔 더욱 복잡했다.

각종 자가용, 블랙 택시, 대형 버스와 통근 버스가 주차장을 가득 채운 바람에 운화병원에서 렌트한 대형 버스는 먼 위치에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

“잘됐다, 능 선생님 우리랑 같이 라이딩 가요.”

핫팬츠를 입고 겉옷은 허리춤에 둘러 몸매를 드러낸 간호사 몇 명의 모습에서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능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들은 버스에서 자전거를 끌어냈다.

“능 선생님, 제가 자전거 두 대 가지고 왔어요. 같이 타요. 용두촌 라이딩 유명해요. 산에 흐르는 강도 볼 수 있어서 재미있거든요.”

“경치 구경하려면 걷는 게 낫죠!”

이번엔 외과 의사 몇 명이 능연에게 함께하자고 요청했다. 그들은 지난번 워크샵에 참석하지 않아서 이번에 참석했다. 사실 여자 의사들이 도보 여행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가능한 놀이를 고르자면 걷는 게 제일 허들이 낮아서였다.

“전 숲에 들어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능연이 신중하게 고개를 저었다. 숲을 걸어서 지나는 것엔 그가 제일 싫어하는 무질서한 생활과 환경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 바비큐 해요.”

워크샵 담당 현지 여행사에서 가이드를 네 명이나 보냈고, 모두 열정이 넘치는 싱그러운 아가씨라 수많은 간호사가 눈을 흘겼다.

바비큐라는 말에 능연은 그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망설였다.

“바비큐 좋지. 어디서 할 건가요?”

뒤에 앉아 있던 조낙의가 튀어나오며 물었다. 그는 청모자를 쓰고 있어서 해적 같아 보였다. 센터에 있는 젊은 가이드 아가씨는 힐끔 조낙의를 보더니 바로 흥미를 잃었다. 주로 병원 가이드를 맡는 가이드는 40대 주치의가 돈도 권력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체력이 안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고 딱 보면 못생겼는지 잘생겼는지 알 수 있어서 나이를 따져볼 필요도 없었다.

“소규모로 할 거라, 이제 자리가 없을 거 같네요.”

센터 가이드가 유들유들 조낙의를 거절하자 조낙의는 껄껄 웃고는 입을 내밀면서 고개를 돌려 주 선생을 바라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 사장님도 같이 오자고 할걸. 스토브 가지고 오라고 했으면 우리도 바비큐 할 수 있는데.”

“쓸데없는 생각하네. 고기는 누가 구워?”

“내가 굽지.”

자다 일어나 졸린 눈으로 버스에서 내리면서 주 선생이 대답하는 말에 조낙의가 노련하게 대꾸했다. 운화병원에서 10년 넘게 생활해 오면서 주 선생을 상대할 땐 타협하는 법을 진작 터득했다. 물론 처음에는 일거리를 넘기는 주 선생이 배려하는 줄 알고 진심으로 감사했던 시절이 있었다.

“뭐 하러 사서 고생해. 고기 먹여줄 농가가 천지일 텐데.”

“직접 구워야 재미있지. 그럴 거면 소가 식당에서 먹지 뭐하러 여기까지 나와.”

“바비큐는 암을 유발합니다.”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초짜 의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발표했다. 그 자리에 의사들은 껄껄 웃기만하고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줄지어 버스에서 내린 의사들은 농가체험팀, 등산팀, 절팀으로 나뉘었다. 나머지 팀 역시 나서서 능연에게 요청하는 사람이 있었다.

“전 농가체험 갈래요.”

잠시 고민하던 능연은 다년간 쌓아온 경험으로 재빨리 결정을 내렸고 주변에 실망한 탄식이 퍼졌다.

그러나 능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래 누군가는 실망하기 마련이고,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병원으로 돌아가도 능연을 만날 수 있는 간호사와 의사는 아쉽긴 해도 거기까지였지만, 젊고 아름다운 가이드들은 몹시 아쉬워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 또 언제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만날지 모른다.

“나 말리지 마, 필살기를 써야겠어.”

센터 가이드가 립스틱을 다시 바르면서 기세를 끌어모으는 모습에 곁에 있던 가이드가 직접 나설 생각에 은근슬쩍 그를 말렸다.

“그럴 필요 있어? 돈 많은 남자 꼬시려고 필살기를 그렇게 오래 연마한 거 아니었어?”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니? 하지만 잘생긴 남자가 남편이 된다면 꿈꾸면서도 웃을 거라는 건 내가 알지.”

센터 가이드가 가슴을 활짝 펴고 높은 하이힐 차림으로 몇 발짝 떼다가 악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그녀는 까지는 데 없고 화장이 뭉개질 일도 없도록 수풀 쪽으로 넘어졌다. 의사들이 저절로 소리가 나는 쪽을 따라 그를녀 바라봤다.

능연 역시 따라 시선을 돌리다가 힐끔 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기껏해야 다리가 삐는 정도는 단순 응급과 정형외과의 일이라 능연은 익숙하긴 해도 관심이 없었다.

“전 앞에 좀 가볼게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스팔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순간 작은 돌을 밟고 발이 미끄러져 바닥에 넘어졌다.

넘어진 능연은 조금 멍해졌고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에 멍해졌다.

“능 선생님이 다 넘어지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인데 넘어질 수도 있지. 그게 뭐라고.”

간호사 하나가 엄청나게 놀라며 하는 말에 곁에 있던 다른 간호사가 타박했다.

“너 능 선생님이 넘어지는 거 봤어?”

“아니.”

“그러니까! 아니 그런데 왜 아무도 부축하지 않는 거야. 능 선생님 넘어진 거 처음이야. 너무 너무 멋있다. 사진 찍어야겠어.”

이야기하는 새 누군가 벌써 능연에게 다가갔고, 몸을 일으킨 능연은 힘을 주어 바닥을 밟으면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리 삔 것 같은데······.”

능연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귀엔 천둥벼락처럼 들렸다.

“다리를 뼜다고요?”

“정말로 다리를 삐었어요?”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던가. 대체 누가 한 짓이야?”

그 자리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가 흥분해서 떠들면서 우르르 능연에게 몰려들었다. 그러자 능연은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감췄다.

“그냥 삔 거예요.”

“여기서 사진 찍을 기기가 없잖아요. 뼈 다쳤는지 안 다쳤는지 모르니까 다친 상황 보고 처리할 수밖에 없겠네요.”

원래 도보 여행을 하려던 의사가 큰 소리로 웃고는 노련하게 말했다.

“잠시만요, 제가 장갑 가지고 왔어요.”

적당히 못생긴 레지던트가 쭈뼛쭈뼛하는 말에 순식간에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과거를 회상할 때 그는 이 순간을 자신의 가장 화려했던 순간으로 기억했다.

잠깐 숨 쉬는 사이 능연은 주변이 꽉 막히도록 사람들에게 둘러싸였고 의사들은 남녀불문하고 시끌벅적하게 누가 처리할 건지 떠들었다.

그러나 언제든 나설 준비가 된 간호사들은 그나마 평온했고, 다들 딱 붙어 있는 사이 유 간호사가 위치를 지정해주었다.

“내가 제3 스크럽, 내 왼쪽부터 제2, 제1. 내 오른쪽이 제1 수술대 간호사, 제2. 이렇게 순서대로.”

“이렇게······. 많이 필요해?”

“우리 기구 있어?”

“수술대도 없잖아.”

어린 간호사들은 영문을 몰라서 작은 소리로 속닥대기 시작했다.

“장기 이식해 봤잖아. 각자 자기 할 일만 딱 하고 물러나는 거야. 우리 모두 한 스텝만 하고는 순서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거지.”

“아.”

“그럼 되겠네.”

“응, 말대로 하면 되겠다.”

그것도 왜 모르냐는 것 같은 유 간호사의 말에 간호사들이 일제히 동의했고, 곧바로 커다란 바이주 병을 꺼내 손과 팔뚝을 소독하고는 크게 한입 꿀꺽 삼키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에 멀리서 보기만 할 뿐, 끼어들지 못한 남자 관광객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센터 가이드가 달려가서 능연이 탈 휠체어를 구해오자 주차장 보안 요원과 사무실 직원 각각 두 명이 죽어도 도와주겠다며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휠체어 왔어요. 다들 비켜보세요.”

“저 응급처치 할 줄 압니다! 좀 비켜주세요.”

센터 가이드가 몰려 있는 사람들 밖에서 고함치며 힘겹게 길을 뚫었고 뒤를 따르는 보안 요원도 뒤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녀의 눈앞에 분명히 하얀 가운을 입은 사진이 붙은 직원증이 대롱거렸다.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이것도 워크샵 항목인가요?”

직원증을 본 보안 요원이 의아한 듯 묻자마자 직원증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에 능연의 다리 상처를 만지면서 검사한 의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모두 장갑을 낀 손으로 만졌다. 휴대용 기관지 절개 키트에 능연이 사전에 여러 개 넣어둔 장갑으로.

“상처 소독 끝.”

“드레싱 하죠.”

“고정할 것 좀 가지고 와.”

능연을 둘러싼 무리 안에 자리 잡은 의사들이 서로 브리핑하는 모습에 주 선생이 놀라고 감탄하는 모습으로 뒤에 서 있는 레지던트 정배에게 물었다.

“잉? 고정판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

“용두촌 같은 곳은 열흘, 보름에 한 번 다리 다친 사람이 우리 병원으로 오잖아요. 모처럼 나온 거니까 봉사활동 할 생각이었죠. 잘하면 등산하다가 다친 사람 만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럼 나뭇가지보다 고정판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편하겠다 했죠.”

“녀석, 다음에 우리 집 올 땐 아무거나 가지고 오지 말고 미리 준비해서 와라. 워크샵 올 땐 좋은 거 가지고 오면 안 되냐?”

“이렇게 써먹잖아요.”

“AED 안 가지고 와서 고오맙다고 생각해야 하냐?”

주 선생이 웃음을 터트렸다.

“고마워하시지 않으셔도 돼요. AED야 구급차에 다 있지만, 고정판은 모를 일이잖아요. 에이, 난 미녀가 산에서 미끄러져서 다리 다치면 제대로 처리하려고 가지고 온 건데.”

“그래, 뭐 어쨌든 정 선생이 가지고 온 고정판 쓸모 있네.”

주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능연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는 고정판으로 능연의 다리를 고정했다.

“그냥 조금 삔 거뿐이에요.”

“확신할 수 없잖아. 그건 사진 찍어 봐야 확실해지지.”

능연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에 정배가 대답했다.

“그냥 돌멩이 밟고 발 삔 거뿐입니다. 판 댈 필요 없습니다.”

“이왕 가지고 온 거 안 쓰면 아깝잖냐.”

능연이 마지막 말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지만, 주 선생은 듣지 않고 강행했고 능연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전에 이런 케이스도 있었어. 그것도 작은 건이었는데 환자가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머리에 작은 상처가 났다고 꿰매고 가려고 하더라고. 근데 내가 말리고 CT를 찍었다가 동맥암 진단한 적도 있어. 내가 안 붙잡았으면 그 동맥암이 터져서 죽는 결과를 맞이했겠지?”

정배가 턱을 치켜들며 하는 말에 옆에 센터 가이드가 흥미가 생긴 듯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물었고 미녀가 관심을 보이자 정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제가 우리 병원 신경외과 의사를 소개해줬죠. 실력 좋은 의사로요. 바로 입원했고, 환자가 보험도 있고 제때 발견했는데, 위치가 조금 안 좋긴 했어요.”

“당신이 소개한 의사가 잘 치료한 건가요?”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그게 뭔데요?”

“시원한 데 찾아서 뭐 좀 마시면서 이야기할까요?”

정배는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굴었다. 평소에 수술실에서도 이런 식이었다.

“먼저 이야기하시죠.”

웃으며 몸을 비비 꼬는 센터 가이드의 모습에 정배도 따라 웃었다.

“그래요. 나중에 입원했던 환자가 뇌 수술을 했는데 못 버텼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대뇌 출혈을 못 잡아서 수술대에서 내려 오지 못했죠.”

한참 웃으며 몸을 꼬던 센터 가이드가 굳어서 묻자 정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능 선생님도 그렇게 되는 거예요?”

“난 그냥 다리 삔 거라고요.”

능연을 바라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 C컵 브라, 아니 C(센터) 가이드의 모습에 능연은 다리가 다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일단은 그래 보입니다.”

“그럼요, 그럼요. 당연히 그냥 다리 삔 거죠.”

정배가 센터 가이드에게 눈치를 주자 센터 가이드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 다들 힘 모아 능 선생을 휠체어에 올립시다.”

더 미적거리다간 워크샵이 끝나겠다는 생각에 주 선생은 못 들어주겠다는 듯 말했고, 간호사 몇이 앞다퉈 능연을 부축하러 나섰다.

간호사 하나가 능연의 왼 다리, 또 하나가 오른 다리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팔뚝을 들고 각자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데리고 가려고 몸을 틀었다.

능연에게는 너무 익숙한 광경이었다.

“다들 스톱! 다들 돌아가시고, 주 선생님 저 좀 민박집에 데려가 주세요.”

“바로 산에서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능연이 다리에 힘을 주고 스스로 일어나 휠체어에 올라타자 센터 가이드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냥 다리 삐었을 뿐입니다. 선생님 계속 그러고 계실 건가요? 정말로 산에서 내려가야겠는데요?”

“그래, 그래. 가자.”

능연이 다시 한번 강조한 다음 고개를 주 선생을 향해 돌리자 주 선생은 다급하게 휠체어를 밀었다. 능연이 다리를 치켜들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비켰다.

평평하게 리모델링된 주차장은 휠체어를 밀기 너무 수월해서 주 선생은 몇 걸음 만에 능연을 스쿠터에 올려놓고는 휠체어를 접었다.

“이 민박집에서 마작해도 됩니까?”

“그럼요. 됩니다.”

주 선생이 묻는 말에 시동을 걸며 대답한 기사가 뒤를 돌아 능연을 바라봤다.

“잘생긴 청년 다리가 이렇게 됐는데도 산에 가서 마작하려고요?”

능연은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듯 그저 묵묵히 기관지 키트를 만지작거렸다.

바람도 없고 비도 없는 그날 용두촌은 날씨가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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