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새하얗고 윤기 도는 큰 거위가 퐁퐁 샘 솟는 분수 아래 서서 누구를 봐도 마음에 들지 않고, 누구를 봐도 촌닭 같이 생각하는 작은 눈으로 양쪽을 힐끔대며 존재감을 폭발했다.
환자 보호자들이 분수 밖에서 걸음을 멈추고 거위를 구경했다. 전에는 분수를 구경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시선이 큰 거위 ‘향만원’에게 향해 있었다.
큰소리로 고함 지르면서 거위의 시선을 끌려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거위는 무시하는 눈빛으로 힐끔 보고는 기껏해야 뒤뚱뒤뚱, 얇은 체인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범위까지 다가갔다가 우아하게 돌아서서 똥을 싸는 게 다였다.
똥을 본 적 없는 아이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거위도 똥 싸?”
“어떻게 서서 응가하는 거지?”
“거위는 왜 똥 싸고 똥꼬 안 닦아?”
아이들은 별별 질문을 하면서 분수 주위를 마구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그저 따라 빙빙 돌 수밖에 없었다.
거위는 그것도 비웃는 듯 바라봤다.
신입이지만, 분수에 백조도 없으니 ‘향만원’은 원장처럼 굴었다.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닥타닥, 신발 굽 소리가 번잡한 휴게공간이라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울리자, 거만하고 우아하고 새하얀 몸뚱이가 순간 굳었다.
소리가 나는 근원지 쪽으로 살짝 튀어나온 거위 대가리가 힘겹게 돌아갔다가 공포스러운 실루엣에 신속하게 시선을 고정했다.
148cm의 평범하고 조금 왜소한 편인 실루엣이었다.
그 몸은 주변에 있는 멍청한 초등학생보다 더 연약했다. 그러나 향만원은 그것의 공포를 잘 알고 있었다.
“닥쳐!”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여원은 단호하게 거위의 우아하지 못한 행위를 제지하고는 분수를 사이에 두고 교육을 시작했다.
“네가 그러면 사람들이 시끄러워한다고! 자꾸 그러면 입 막아 버릴 거야!”
거위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백옥 조각상처럼 위장이라도 하는 듯 굳은 채로 분수 안에 서 있었다.
여원이 허리를 숙여 가느다란 다리 체인을 건져냈다.
다른 아이들도 그 얇은 스테인리스 체인을 건지려고 시도했었지만, 큰 거위한테 쫓겨 숨이 멎을 뻔했었다. 그러나 여원이 건질 때는 큰 거위가 끽소리도 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물러났다. 거위는 절망하며 여원 앞으로 끌려가서 대빵에게 느껴지는 각종 야수의 기척을 느끼고는 꿈쩍도 하지 않고 온순하게 굴었다.
국가 공원을 누비고 돌아온 여원은 40킬로 이하의 작은 동물이 더는 두렵지 않았다.
여원이 익숙한 듯 왼손을 뻗어 아무렇지 않게 거위의 날개를 잡아 올리면서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어 체온계를 꺼내 항문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거위를 든 채,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아무 논문이나 열어서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원은 다시 체온계를 꺼내 허공에 대고 비춰보면서 혼잣말하듯 눈금을 읽었다.
“41도. 그저께보다 조금 높네. 야, 몸조심해라, 너.”
여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거위를 내던졌고 익숙한 물속으로 돌아간 향만원은 안간힘을 써 날개를 퍼덕이면서 여원에게 멀어진 다음에야 조용히 몸을 돌렸다.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거위 똥을 모아 한 삽으로 커다란 락앤락에 넣고 가까운 곳에 있던 전자렌지에 넣어 시간과 온도를 조절하고는 기다렸다가 잘 구워진 거위 똥을 꺼내 화단에 던졌다. 그 모든 과정이 쿨하고 노련해 보였다.
“이번엔 잘했어. 앞으로도 똥은 한자리에 싸도록.”
여원은 거위가 알아듣든지 말든지, 몇 마디 교육하고는 타박타박 사라졌다.
여원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거위는 그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목을 번쩍 치켜들고 다시 도도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운화병원 간담췌외과는 주임 하원정을 비롯하여 의사들이 모두 의국에 모여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원정은 운화병원이 밖에서 모셔온 엘리트였고, 박사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주치의, 부주임, 주임 루트를 타고 과 주임까지 한 발짝 한 발짝, 비교적 쉽게 승진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병원이란 제도 따로, 내부 생태 따로인 곳이다.
곽종군 같은 박힌 돌에게 하원정은 어제 막 들어온 새내기 같은 존재였다. 간담췌외과 과 주임 타이틀을 머리에 이고 있지만, 일반 외과 대주임하고 비교하면 하원정은 아직 멀었다. 또한 수부외과 금서 주임 같은 엘리트 진료과의 대주임하고 비교하면 하원정은 증정품 같은 존재였다.
물론 토박이 의사가 어떻게 대하든 과 주임은 어쨌든 과 주임이라 진료과 안에서 가진 권력은 상당했고 이치 밝은 제약회사 직원은 과 주임이라도 황제처럼 대접했다.
하원정 역시 그동안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해 왔다. 박사 졸업한 이후 인생이 순풍에 돛단 듯 평온했으니 말이다.
지도교수는 국내 유명 간담췌외과 전문가였다. 물론 전문가가 아니라면 박사의 지도교수가 될 수도 없고. 간담췌외과에서 제법 잘 일해온 하원정은 사망률도 높지 않았고, 발표하는 논문의 IF도 높은 편이었다. 진료과에서 완성하는 수술량도 해마다 늘었고, 키워낸 유능한 의사도 점점 많아졌으며, 2년에 한 번씩 새로운 수술 방법을 전개하기도 했다.
운화병원 같은 지방 정상급 병원 수준에서 하원정은 딱 틀에 박힌 수준의 의사였다.
운화 시 사람들은 운화병원 간담췌외과를 최우선으로 선택하지 않고, 창서성으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순서를 따지면 3등엔 못 든다고 해도 5등 안엔 안정적으로 들었다.
창서성 탑3가 아닌 병원이 두어 군데 운화병원 간담췌외과 앞에 낄 때도 있다는 말이지만, 어쨌든 5등에 드는 것만 해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해마다 자기 진료과 순위를 속으로 계산하면서 창서성 내 간담췌외과의 위협을 고민하는 동시에 일반 외과의 위협도 고민해 오던 하원정은 다른 곳도 아닌 자기 병원 응급의학과에서 올해 최대의 위협을 가할 줄은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 이제 응급의학과가 아니고 응급센터이지만,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응급센터 곽 주임 오셨습니다.”
실습생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보고하고는 줄행랑쳤다. 희생된 불쌍한 아이였으니, 도망가 버리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원정이 휙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나가보지. 다들 할 일들 하라고.”
고개를 돌린 하원정이 모두를 바라보며 위엄을 부렸다. 말을 마친 후 그는 힘찬 발걸음으로 의국에서 나갔다.
10초 후, 의국에 있던 의사가 모두 일어났다.
“나 회진.”
“나는 회진간다.”
“나는 수술하러 가야겠다.”
“나는 수술.”
다들 신선한 핑곗거리 찾기도 귀찮았다. 열 명 남짓한 의사들은 이심전심으로 하원정의 꽁무니를 바라봤다.
곽종군이 발걸음도 당당하게 복도에 나타났고, 하원정도 발걸음이 당당하게 다가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양군 접촉을 앞두고 충돌하는 공군부대처럼 십몇 미터를 앞두고 격렬하게 충돌했다.
곽종군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걸음을 빨리하자 하정원도 다리를 뻗으면서 똑같이 걸음을 빨리했다.
두 사람 모두 양군 접촉을 앞두고 미친 듯이 견제하는 포병부대처럼 당장에라도 부딪힐 듯 가슴을 활짝 폈다.
갑자기, 하원정이 탱크부대처럼 손을 뻗더니 이어서 허리를 숙였다.
“곽 주임님, 우리 간담췌외과에 참관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렇게 직접 왕림하시니 누추한 곳이 다 빛나는 것 같습니다.”
하원정은 곽종군의 손을 쥐고 살며시 흔들면서 대입 시험 때 외웠던 고서에 나올 문장을 읊었다.
“참관은 무슨. 그냥 미리 좀 와 본 거지. 알잖나, 요즘 환자들 까다로운 거.”
곽종군은 살짝 고개를 까딱했다. 그는 금 선생을 통해 매가 어르신의 환우를 소개받았다.
매천귀의 홈닥터인 금 선생이 능연을 오랫동안 데리고 있었던 것도 당연히 곽종군의 동의와 묵인이 있어서였다. 적당한 의사에게 적당한 환자를 소개하고 환자와 의사 모두 흡족한 상태로 만드는 것, 그것이 금 선생 같은 중국식 홈닥터가 생존하는 길이었다.
환자의 신분을 대략 아는 하원정은 얼굴에 미소를 그득 띠었다.
“뭐 이야기할 거 있으면 마음 놓고 하세요. 우리 간담췌외과······.”
“이쪽 설비를 좀 써야 할 것 같네. 그러니 수술실도 여기 걸 쓰는 게 낫겠지.”
“그러세요.”
“그럼 됐네, 됐어.”
하원정이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곽종군도 드디어 웃음을 보였다.
운화병원은 수술층 제도가 있다. 응급센터 이외의 다른 진료과의 수술실은 다 같은 층에 모여 있는데, 관리가 편하기도 하고 코스트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층에 있어도 수술실은 진료과마다 다른 설비가 배치되고 조작하는 간호사와 의사도 달랐다.
응급센터에서 진행하는 간 절제술이나 간 내 담관 결석 같은 수술에 비해 간암 수술은 수술실 조건도 상당히 좋아야 한다.
능연이 편하게 수술하려면 간담췌외과 수술실을 쓰는 게 가장 나았다.
“써도 된다고 하니, 능연 불러오겠네.”
“예,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하원정은 쓴 말을 꿀꺽 삼켰다. 꼭 곽종군이 오랜 시간 부려온 박힌 돌 위엄 때문만이 아니라 능연이 하는 수술을 하정원도 직접 봤었다.
간담췌외과 과 주임으로서, 하원정은 능연의 수술을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환자 자료까지 찾아서 살폈었다. 100여 건의 수술 자료를 보고 하원장이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두려워 마. 내가 미친 짓만 하지 않으면 과 주임이 바뀔 일은 없어.’
“능 선생 오고 있습니까?”
“전화해서 올라오라고 하겠네.”
곽종군은 핸드폰을 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고, 당연하게 그 뒤를 따르는 하원정 뒤에 또 한 무리 의사가 뒤따랐다.
잠시 후, 능연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휠체어를 타고 다리를 뻗고 다리에 고정판을 대고 다섯 발가락과 발바닥을 드러낸 채, 여전히 끝내주게 멋졌다.
“이게······.”
휠체어에 앉은 능연을 본 하원정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하면 빨리 낫거든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 발로 일어났다.
“수술에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하지만······.”
하원정의 입가가 실룩댔다.
“환자 왔나요?”
“입원해 있네.”
“가보죠.”
능연은 다시 휠체어에 앉아 고정판을 댄 다리를 높이 치켜들었다.
등 뒤에 서 있다가 냉큼 휠체어를 미는 연문빈의 양 팔뚝이 불룩 올라오는 것이 천생 휠체어를 밀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꽤 젊어 보이는 환자는 기껏해야 60세 정도 되어 보였고 주름도 별로 없는 얼굴로 병상에 앉아 가족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환자 아내는 탕비실에서 눈물을 훔치다가 의사들이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눈물을 찍고는 밖으로 나왔다.
“이 여사님. 능 선생이 이제 막 돌아와서 바로 요 선생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하원정이 환자 아내를 향해 웃어 보이면서 곁에 있는 곽종군을 소개하고는 뒤에 있는 능연이 보이도록 자리를 내주었다.
연문빈이 가볍게 능연을 앞으로 밀고 나왔다.
한쪽 발에 판을 대고 휠체어에 단정히 앉은 능연은 여전히 잘생겨 보였다.
이 여사는 멈칫했다가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선생님이 바로 매가 어르신 수술한 의사신가요?”
이 여사는 아마도 발 이야기를 하려다가 순간 깨달은 듯 말을 바꾼 듯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간 내 담관 결석 수술만 했습니다.”
“우리 집 양반이 전에 어르신과 같은 요양원에 있었어요. 저는 모르고요. 금 선생님 말씀만 들었는데 선생님이 수술을 아주 잘하신다고요. 그래서 우리 집 양반 수술도 할 수 있을까 해서······.”
곽종군 일행은 이미 들었던 이야기에 그저 예의 바른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가 어른과 같은 요양원에 있었고 알고 지내던 사이라면 보통 사람은 아니리라.
매가 어르신은 특별한 사람이니 특별한 요구가 있었고, 창서성에서 수술하기로 한 것도 황 교수를 시켜서 능연을 오래 살펴본 다음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에 비해 요학의 부부의 선택은 명확했다. 금 선생에게 정보를 받아서 바로 이쪽으로 연락한 것이다. 지금 보니 이 부부는 단순하게 매가 어른의 선택을 믿고 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
형편이 더 좋았다면 더 많은 사전 준비와 분석을 했을 텐데 말이다. 황 교수나 금 선생은 둘째치고 적어도 여러 군데 수소문을 하고 간암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주치의의 상황을 체크했을 것이다.
그러나 매가 어른과의 관계만 빼면 요학의 부부는 사실 평범한 시민 계급일 뿐이다. 그들은 황 교수나 금 선생을 초빙할 능력도 없고 더 조사할 여력도 없었다. 심지어 알아봐도 소용이 없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매가 어르신의 의사를 찾는 게 그들로서는 최선이었을 수도 있다.
사실 대다수 환자가 그랬다. 협화나, 화서 혹은 운화병원 앞에서 줄 서는 환자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증상과 의사를 전면적으로 분석할 능력과 실력이 없어서 사람 많은 병원에 가고, 입소문이 좋은 병원에 갈 수밖에 없다. 사실 의사의 특기 분야, 수술 예후, 심지어 해당 의사가 수술을 직접 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채로.
그러나 큰 병원, 입소문 난 병원을 찾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가성비가 가장 좋은 방법인 건 맞다.
요학의 부부가 능연을 찾은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은 의학도 모르고 자문을 구할 사람도 주변에 없으니 결국 매가 어르신과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뭐, 틀린 것은 아니었고.
물론 그건 능연 생각이고 곽종군과 하원정은 능연의 수준이 어떤지 확신할 수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능연이 간 내 담관 결석 수술하는 건 봤지만, 간암 수술은 담관 결석과 천지 차이가 난다.
“요 선생님께서 본인의 병세를 잘 알고 계신가요?”
능연이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병실로 향했다.
“알아요. 컨디션도 괜찮은 편이고, 믿음도 있답니다.”
“네. 어쨌든, 간암이니까요.”
재빨리 뒤따르는 이 여사를 향해 능연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우리도 압니다.”
“네.”
능연은 긴말하지 않았다. 중기 간암 증세였지만, 그는 그랜드마스터급 림프절 근치술과 마스터급 간 절제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암 증상이란 단순한 외과 문제가 아니고 능연이 할 수 있는 것도 지극히 국한적이었다.
기껏 해 봐야 자기가 맡은 환자를 다른 의사 손에서보다 몇 년 더 살게 해주는 것이랄까.
능연은 병실 안으로 들어가 요학의와 인사를 나눴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요학의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일부러 농담을 했다.
“능 선생님, 제 수술하기 두려워서 다리를 부러뜨린 건 아니지요?”
“그냥 삔 겁니다. 며칠이면 낫습니다. 지금은 빨리 회복되라고 이렇게 한 것입니다.”
능연은 진지하게 해명했다.
“다리를 삐었는데 고정판까지요? 하하하, 나는 공장에 있을 때 다리가 부러져도 판을 안 댔지요.”
“아, 그럼 다리 저시나요?”
하하 웃으며 말하던 요학의는 능연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접니다. 많이 흉하지는 않고요. 결혼도 한걸요? 물론, 능 선생은 그런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다. 잘생겼으니 절름발이가 됐어도 결혼 못 할까 걱정은 없······.”
“아버지!”
침대 곁에 앉아 있던 아들이 목소리를 높인 다음 못 말리겠다 듯 능연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능 선생님,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고정판 떼기 귀찮아서 하고 있는 거예요. 다리 삔 걸로 고정할 것까지 없는데, 어차피 댄 거 굳이 뺄 건 없어서요.”
잠시 멈췄다가 한 마디 더 붙여서 해명하는 능연의 모습에 요학의는 멍하니 능연을 바라보다가 다시 웃었다.
“의사들은 사람 골리는 방법도 참 다르네요.”
“아버지!”
요학의 아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는 또 능연에게 사과했다. 능연은 사회가 기대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버지 기분이 좋은 것도 매우 중요하답니다. 가이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고요. 어쨌든, 제 다리는 수술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겁니다.”
능연은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서 두 다리를 짚고 서서 허리를 굽히고 메스 잡는 동작을 보여줬다. 그냥 삔 거라, 걷지 않는 상태에서는 아예 아프지도 않았고 걸을 때 조금 통증이 느껴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수술할 때 집도의는 대부분 움직일 일이 없었다.
능연은 자기가 다리 삔 것일 뿐인 걸 알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확신이 그다지 없었다. 하원정을 비롯해서 모두 벌떡 일어났고, 요학의 아들은 능연을 보호하려는 자세까지 재빨리 취했다.
기계 공장 직원인 요학의의 아들이 휙 일어나니 고대 무사처럼 용맹한 느낌도 들었다.
연문빈도 무심결에 앞으로 나와 요학의의 아들과 근육을 사이에 두고 가슴을 맞부닥치고는 눈을 마주치며 서로 감탄했다.
병실에서 나온 능연은 요학의의 MRI를 받아 말없이 컴퓨터를 켜고 판독했다. 천장 넘는 사진이라 대충 보면 몇 분 만에도 보지만 자세히 살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능 선생. 이번에 요학의 환자 간암 수술, 얼마나 자신 있어?”
곁을 바짝 따르며 능연의 표정을 살피던 연문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간암에 자신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어요.”
능연이 연문빈을 마주 봤다.
“깨끗하게 제거해도 재발 가능성 있잖습니까.”
“음.”
연문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간 절제 100건 넘게 하고 이제 간암 절제하잖아요.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나머지는 림프에 달렸고, 내과도 중요하겠네요.”
능연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선생님이 요학의 환자한테 붙으세요. 하루에 세 번 회진하고 매일 상황을 정리해서 알려 주세요. 저는 팀원이랑 림프 연구하겠습니다.”
“응? 바로 수술하는 거 아냐?”
“소화기 내과에서 일단 화학치료랑 방사선 치료해 보자네요. 수술은 그다음에 하자고. 저도 찬성입니다.”
능연은 모든 치료 과정에 관여하는 게 아니었다. 사실 외과의는 대부분 수술의 일부를 책임질 뿐이다. 그러나 초짜 의사는 수술 일부라고 해도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연문빈은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능연의 휠체어를 밀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