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으로 정문성을 맞이하는 곽종군 뒤를 따르는 족히 여덟 명은 되는 의사는 의국에 남아 있던 인원 전부였다. 곽종군은 어차피 할 일도 없는 초짜 의사들을 데리고 분위기 띄우는 데 인색한 사람이 아니었다.
갑자기 느낌이 확 온 정문성은 예전에 수도 없이 운화병원을 왜 그렇게 들락거렸는지 다시 떠올렸다. 사람 체면 세워줄 때는 화끈하게 세워주는 곽종군이 다른 사람을 훈계할 때 모습은 그야말로 리더력 MAX를 찍는 순간이었다.
“곽 주임님.”
“문성 씨, 언제 오나 했네.”
곽종군이 한때 가장 친밀했던 때처럼 정문성을 대번 얼싸안았다.
“곽 주임님······.”
“승진했나?”
“네, 그래도 아직 기자입니다.”
“가세, 가세. 수술 한 건 구경해. 가면서 이야기하자고.”
곽종군은 정문성을 끌고 수술 층의 간담췌외과 수술실로 들어갔다.
“다 찼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순회 간호사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을 꺼냈다.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반응이었다. 수술실엔 인원 제한이 있어서 들어가고 싶다고 다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수술실 필터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감염 확률도 올라간다.
수술실에 온 대주임이나 원장의 얼굴을 보고는 인원이 찼다는 소리를 못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먼저 이야기하고 고개를 돌리곤 했다.
곽종군이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온 걸 보고 간호사는 바로 긴장해서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치의 아래로는 수술실에서 참관하지 말고 참관실로 가도록.”
곽종군은 역시나 싱긋 웃고는 눈을 굴리더니 명령했고, 그 자리에 있던 초짜 의사들은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수술실에서 나갔다.
곽종군은 정문성을 데리고 사람들을 지나 앞으로 나갔다.
“수술실에서는 플래시를 쓸 수 없으니 필요하면 이따 따로 세팅해서 찍자고.”
“압니다.”
오랜만이긴 해도 규칙은 기억하고 있었다.
명목상 집도의인 하원정은 고개를 들어 정문성을 보고는 부러운 듯 잠시 바라봤다. 기자를 부르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었다. 하원정의 손을 거친 기자도 벌써 열댓 명 되는데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 남은 사람 중에 도움 되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그리고 그는 기자에게 제공할 만한 폭발적 뉴스거리가 별로 없었다. 응급의학과처럼 매일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니 말이다.
“포셉.”
“조금만 더 들어 주세요.”
하원정이 고개를 들고 살피는 사이 능연은 수술 진도를 뺐다.
간 절제 수술은 너무 익숙했고, 간암 병소 자체를 제거하는 건 담관 결석보다 복잡할 것도 없었다.
하원정은 벌써 그 점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명목뿐인 집도의인 수술을 아예 능연에게 맡겼다.
곽종군이 직접 세운 사람인데, 굳이 힘을 뺄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은근히 언짢았다. 그러나 하원정은 겉모습과 온화한 분위기를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차라리 참고 말지 말을 꺼낼 생각은 없었다.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던 정문성의 렌즈가 곧 능연에게 고정되었다.
‘이야, 정말 잘 생겼군.’
정문성은 속으로 감탄하면서 셔터를 계속 눌렀다. 그는 단숨에 사진 수백 장을 찍고는 그제야 카메라를 내려놓고 곁에 있던 곽종군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수술 하는 겁니까?”
“조기 간암 근치술.”
근치술이라고 해도 정말로 암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건 아니고 가능한 한 암세포를 제거하는 외과 수술일 뿐이었다.
“환자는 몇 살인데요?”
“예순 넘었지. 구체적 나이가 필요한가?”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세컨드 어시 모자 위에 저거 기러깁니까? 웬 분홍색이지.”
세컨드 어시란 팔뚝 38cm 연문빈을 말하는 것이었다.
연문빈의 오늘 수술복은 지정된 녹색 복장이었지만 모자는 직접 가지고 온 분홍색이었다. 게다가 양쪽에 기러기 무리가 있는.
곽종군도 눈을 껌뻑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세컨드는 능연이 데리고 온 조수야. 무슨 생각으로 저런 모자를 쓴 건지. 아무튼, 능연이 오늘 퍼스트라네. 오늘은 그를 집중적으로 찍어줬으면 해.”
“퍼스트가 데리고 온 조수요?”
이 바닥을 잘 안다면 잘 아는 정문성이 의아한 눈으로 곽종군을 바라봤다.
“능 선생은 말하자면 우리 운화병원 스타 의사라네. 간 수술도 정형외과 수술도 매우 잘하지.”
“간이랑 정형외과를 같이요?”
곽종군이 껄껄 웃으며 하는 말을 정문성이 다시 한번 반복했다. 그러자 곽종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를 끌고 방향을 바꿨다.
옆에서 보니 능연은 여전히 고정판을 대고 있었고, 정문성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정형외과 수술을 직접 자기 몸에 한 겁니까?”
“능 선생은 다리를 다쳤지만, 작은 상처에 굴복하지 않고 수술에 나선 걸세!”
곽종군은 바로 그 장면을 원했었고 정문성은 일단 뭐가 됐든 카메라를 꺼내 들고 15 연사를 찍었다. 그리고 능연에 대해 좀 더 물으려고 고개를 돌리던 정문성은 무의식중에 연문빈의 모자를 끌린 듯이 바라봤다.
“분홍색, 도화 색깔 같네요.”
“음.”
정문성이 중얼거리는 말에 곽종군은 잘 모르겠지만 가볍게 대꾸했다.
“기러기도 도화운의 상징 같은데요?”
정문성은 신문 기자라서 그런 걸 잘 알았다. 곽종군도 그제야 ‘아’ 하고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연 선생도 발ㅈ······, 아니, 결혼할 때가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