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33화 (314/877)

능연은 누군가가 문을 가로막고 있는 건 살짝 즐거운 일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일단 문이 가로막히면 생각지도 못한 개인 공간이 생기고 그런 공간이라면 조금 특별한 일을 저질러도 다른 사람들이 용서해준다.

문 안에 갇혀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오늘은 순조롭게도 수술실에 갇혔으니 더 특별한 일을 하기로 결정 내렸다.

“안녕하세요. 도울 일 있을까요?”

수술복을 입은 능연이 창문 사이로 복강경 수술을 보다가 대번 문을 밟고 들어갔다.

환자 왼쪽에 서 있던 이제 막 주치의가 된 집도의가 눈을 부릅뜨고 수술대 위에 붙은 모니터를 보다가 힐끔 보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능, 능 선생?”

“네네. 담낭 절제 하세요?”

“그, 그렇지. 담낭 절제.”

“이제 막 시작하셨네요.”

목소리까지 흔들리는 쪼랩 주치의의 모습에 능연이 씨익 웃었다. 그러나 주치의는 조금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 굳은 얼굴로 능연을 바라봤다.

“응, 이제 막 시작했지.”

곁에 있던 레지던트는 문밖에 서서 보고 들어왔지 않냐고 속으로 태클을 걸었다. 마침 레지던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능연이 미소 지으며 복강경을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미안하게 어떻게 그래.”

젊은 쪼랩 주치의가 심하게 당황했다. 능연보다 열 살 정도 많지만, 병원에서 나이는 하나 쓸모없었다.

운화병원에서 능연의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었다. 그는 직책도 없고, 뭐 대단한 대회에 출석한 적도, 혹은 단체 맞선 같은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곳에 나타난 적도 없다. 곽종군처럼 열심히 싸우면서 정든 관계로 대단한 이름값을 날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능연의 일은 거의 모든 병원에 소문이 났다.

처음에 사람들은 실습생 신분인 능연이 잘생겼다는 것과 특별한 맨손 지혈을 한다는 것으로 떠들었었다. 그러나 유위신의 아킬레스건 보건술을 집도하게 되고 더 많은 운동선수와 외국인들이 그를 지명하여 수술을 하게 된 후로 능연의 명성은 예전과 달라졌다.

빈번하게 출장 수술을 하게 되고 이제 독립된 팀까지 가지니 사람들이 능연을 대하는 태도까지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의사란 실력이 자신감이고, 출장 수술할 수 있는 실력이라면 더욱 큰 자신감이 된다.

수부 외과 주임 왕해양 선생이 그렇게 자신의 출장 수술 비용에 연연한 이유도 바로 1만 위안이라는 가격은 국내 일류, 거의 정상급에 가까운 가격이자 엘리트 진료과의 주임 의사나 받을 수 있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한 건에 1만 위안 수술비! 의사에게 그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신분과 지위에 관한 일이다.

지금 중국 국내에서 1만 3천, 더 많이는 1만 5천 위안이나 되는 출장 수술비는 정상 중의 정상급 가격이었다. 진정한 교과서급 인물의 출장 비용 말이다.

물론 출장 수술 비용으로 지위를 나타내려면 끊임없이 할 수술이 있어야 했다.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기 티켓도, 조수에게 지급할 타당한 보수도, 마지막으로 매번 갈 때마다 요구하는 수술량이 있는지도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였다.

그러나 뭐가 어찌 됐든, 능연처럼 자주 출장 수술을 나가고, 심지어 간다고만 하면 오라는 곳이 얼마나 있는 의사는 이미 단순한 초짜 의사가 아니다.

이론적으로 어떤 병원이든 이런 의사라면 전체 진료과 하나를 내세워서라도 잡아 두려고 한다.

운화병원이라고 해도, 상황만 맞으면 새로운 진료과를 열 수 있다.

많은 병원에 일반 2 외과, 3 외과 그리고 위장 2과, 위장 3과가 있는 것도 결국 외과의의 자부심과 자존심, 지위를 세워주기 위한 것이다.

아부가 되는 사람은 주임 의사가 될 수 있지만, 기술이 되는 사람은 반드시 주임 의사가 된다.

수술실에서 능연 같은 의사가 지켜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외과 의사라면 누구라도 신경 쓰는 것이 당연했다.

힘들게 수학 문제 풀고 있는데 올림피아드 수학 천재가 복습을 마치고 궁딩이를 깨끗하게 씻고 옷을 차려입고 팝콘 먹으면서 곁에서 지켜본다고 생각해 보자.

긴장할까? 부끄러울까? 분통 터질까?

간담췌외과 쪼랩 주치의의 온몸의 세포가 울부짖었다. 그는 곁에 있는 레지던트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러나 레지던트가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를 능연에게 내주었다.

지금 간담췌외과는 주임인 하원정부터 능연의 편의를 봐주는데, 하찮고 하찮은 레지던트가 병원 생활이 너무 편하지 않은 이상 버틸 리가 없었다.

“그럼 제가 복강경 들겠습니다.”

능연은 신이 나서 환자 복강 안에 들어간 작은 막대기를 손으로 쥐었다.

집도를 맡은 쪼랩 주치의는 손까지 떨기 시작했다.

“아이고, 능 선생이 직접, 아님, 그냥 집도할래?”

능연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주치의가 한참 고민하다가 묻는 말에 능연은 손이 근질근질했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담낭 제거는 안 해봐서요. 선생님이 집도하세요.”

전문가급 복강경 기술이 있고 담낭 구조에 대해서도 상당히 익숙하지만, 능연은 그래도 일단 천천히 하기로 했다.

한 번 더 양보하던 주치의는 능연이 정말로 집도할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닫고 그제야 전전긍긍 니들홀더를 잡았다.

오늘 복강경 수술은 복강경 수술의 꽃인 삼안(三眼) 수술이었다.

배꼽에 구멍을 뚫고 복강경을 삽입해서 위에 있는 카메라와 렌즈로 복강경 안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다. 조수가 그 복강경을 조작하면서 수술 시야와 조명을 전면적으로 책임진다.

듣기에는 조금 기술이 필요한 것 같지만, 사실상 수술 스텝만 알고 해부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거나 아니면 수술 두어 번 지켜본 적 있으면 해부를 모르는 의료진도 마찬가지로 조수를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니 복강경 어시는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특히 담낭 절제 같은 작은 수술은 그저 옆에서 복강경 잡는 작업, 즉 복강경을 들고 빙글빙글 잘 돌리기만 하면 된다.

상대적으로 집도의는 조금 복잡했다.

능연이 복강경을 잡고 있으니 집도의의 부담이 당연히 더욱 커졌다.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하세요.”

능연은 모니터로 보이는 방공호 같은 복강을 바라보며 얼굴 가득 미소 지은 채 신이 나 있었다.

수술만 할 수 있다면 꼭 집도가 아니더라도 무조건 좋았다.

물론! 집도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내, 내가 왜 긴장해.”

집도의는 스스로 진정시키듯 오른손으로 복강경 스틱을 들고 살며시 부들부들한 간을 들어 올렸다.

“환자가 젊은 편인가 봐요?”

간의 색을 본 능연이 물었다. 그가 절제했던 간들은 대부분 나이 많은 환자의 간이었다.

“나이는 적은데, 결석은 안 작아.”

긴장이 가신 집도의가 하는 말에 능연이 ‘아’ 하고 대답했다.

“단순한 담낭 결석입니까?”

“응. 올해 28살. 일 년 전부터 이유도 없이 오른쪽 복부에 이상한 통증이 나타났대.”

힐끔 능연을 본 주치의가 대답했다. 완전히 상급 의사에게 보고하는 모드였다. 집도 위치에 서 있다고 모든 의사가 능연처럼 강한 자신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자신감이 부족하면, 집도의가 지도 수술을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능연은 듣기만 할 뿐 다른 말 없이 그저 모니터를 바라보며 조수 본분을 다했다.

렌즈를 든 조수가 수술 시야를 잘 확보하면 직무를 다 수행한 것이다. 능연이 대화 상대가 되어주거나 주치의의 기분을 편하게 해 주는 것 같은 부가 의무를 하지 않아도 집도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능연이 그 자리에 있으니 집도의 역시 이야기할 기분이 아닌 듯 온 정신을 다 집중했다.

“담낭 상태가 그래도 괜찮네. 크기도 적당하고 파열된 곳도 없고.”

집도의는 시험 보던 때처럼 조심스럽게 스틱을 들고 움직였다.

“간하고 담낭이 붙었네. 심하지는 않고.”

유심히 들여다보던 그가 다시 능연을 보며 이야기했고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유착 부분 박리하실 거죠?”

“응. 그럼 시작한다.”

주치의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한번 유심히 보다가 분리 포셉을 들었다.

환자의 복강 안에 이산화탄소가 가득해지면서, 환자 복강이 팽팽히 부풀어 올라서 더 큰 공간과 더 좋은 시야를 제공했다.

방공호 같은 복강 안에 간은 붉은 버섯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고, 들어내니 그제야 담황색 담낭이 보였다.

환자의 담낭은 주먹만 했다. 주치의는 어쩔 수 없이 위치를 조정해서 적당한 자리를 찾은 후 다시 분리 포셉을 넣고 찰칵찰칵 한 부분 자르고 또 한 부분 잘랐다.

점착을 해결한 주치의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능연을 바라보는 표정도 조금 가벼워졌다.

“능 선생은 오늘 수술 없어?”

“네. 밖에 팬들이 막고 있어서, 며칠 동안은 안 나가려고요.”

“며칠?”

주치의가 깜짝 놀랐다.

“잠은 안 자?”

“마취 선생님들이 쓰는 당직실에서 자죠, 뭐. 휴게실도 괜찮고요.”

안 자도 된다고 하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밤새 수술한다고 해도 같이할 사람이 없을 수도 있으니 스태미너 포션을 아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님 본인 수술은?”

“못 나가면 회진도 못 하니까, 수술 급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주치의가 물었다. 바로 나가서 간암 수술할 생각이 없다는 능연의 대답에 주치의는 놀라서 말도 못 하다가 담낭 절제가 끝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계속 이렇게······ 수술 구경하겠다고?”

“가끔 조수 해드릴게요. 수술 몇 개 배우죠, 뭐. 담낭 절제술 괜찮은 거 같네요.”

능연이 아주 겸손하게 대답했다. 복강 해부 경험이 있고 열지혈 스킬에 전문가급 복강경 기술이 있는데 담낭 절제술을 한 번 본지라 기본적으로 직접 해도 별문제 없었다.

그러나 능연은 몇 번 더 보면서 한동안 배우기로 했다. 그런 능연을 보는 집도의의 얼굴엔 ‘휴가’ 내고 싶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심지어 억제할 수 없이 강렬한.

수술실 밖, 의사 하나가 모자를 쓴 채 머리를 숙이고 걸어나갔다.

“잠시만요.”

달콤하게 생긴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를 막고 옆 모습을 보더니 그제야 웃어 보였다.

“잘못 봤네요. 죄송해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갈 길을 갔다. 잠시 후, 마스크를 낀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다른 여자가 다가갔다.

수술실을 오가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 모습을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분이 되었다.

에어 조던을 신은 연문빈은 짝퉁 에어조던을 신고 열심히 제 할 일을 하는 남자 팬을 스치면서 피식 웃었다.

“능 선생을 수술실에 가둘 생각을 하다니, 순진도 하지.”

“쥐를 쌀 창고에 가둔 꼴이지.”

여원이 내린 평가에 멈칫한 연문빈이 다급하게 좌우를 살폈다.

“야, 말 조심해. 누가 듣겠다.”

“들으면 뭐? 사실이잖아.”

여원이 느긋하게 모자를 쓰고 당황하지도 않고 끈을 맸다.

“능 선생이 들으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다른 의사들이 들었다가 무슨 일 생길지, 무섭지도 않냐?”

여원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실랑이하기 싫어진 연문빈은 몇 발짝 나가다 풉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냐?”

“능 선생을 수술실에 넣어 놓는 건 정말 쌀 창고에 쥐를 가둔 거 같긴 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웃겨서.”

의아한 듯 묻는 여원의 말에 연문빈은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여원은 웃지 않고 바보 보는 표정으로 연문빈을 보다가 그의 왼쪽을 바라봤다.

“곽 주임님 계시냐?”

연문빈의 웃음이 서서히 굳었고, 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뒤에 계시냐?”

이번에도 끄덕였다.

“반만 들으셨냐, 다 들었냐?”

여원이 도와줄 수 없어서 안타깝다는 듯 손을 모았다. 연문빈은 한숨을 쉬고는 뒤를 돌았고, 바보 보듯이 자신을 보는 곽 주임과 간담췌외과 하원정 주임을 봤다.

“곽 주임님, 하 주임님.”

연문빈은 최대한 환하게 웃으려 애썼다. 그러자 곽종군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연문빈, 내가 뭐라고 해야 할까?”

“곽 주임님······. 해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애잔한 연문빈의 목소리에 그를 바라보던 곽종군이 10초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해명해.”

연문빈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드라마에선 이렇게 진행되지 않던데? 게다가 여원을 팔지 않는 이상 뭘 어떻게 해명한단 말인가.

연문빈이 눈을 굴려 여원을 바라봤다. 148cm 여원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슬쩍 웃어 보이자 송곳니가 튀어나왔다. 국가 보호 구역에 생활하는 작고 포악한 짐승처럼.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곽 주임님. 제가 농담한 겁니다.”

연문빈은 젖먹이 고양이처럼 온순하게 굴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곽종군 앞에서 젖먹이 고양이였다.

곽종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상급 의사에겐 존경을 표해야지. 특히 수술실에선 해도 되는 농담이 있고, 안 되는 농담이 있다네. 그건 지켜야지.”

“네······.”

“오늘하고 내일, 자네가 응급의학과 모든 사람 식사를 책임지게. 배달을 시키든, 식당에 데리고 가든, 컵라면을 사 오든 다 자네가 할 일이야. 알겠나?”

“네.”

곽종군이 엄한 표정으로 하는 말을 연문빈이 어디 감히 반항할 수 있을까. 주임 냄새만 맡아도 다리가 다 후들거리는데.

곽종군은 위엄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원정을 향해 웃어 보였다.

“하 주임, 갈까?”

“그러죠.”

하원정도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그들이 코너를 돌아 사라지자, 연문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성큼성큼 여원의 뒤를 따랐다. 더 늦으면 수술 시간에 맞추지 못한다.

그때 곽종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능연의 지금 모습은 정말 쌀통에 떨어진 쥐 같긴 하지. 아까 보니까 입이 다 찢어졌더구먼.”

“정말 그렇게 수술을 좋아합니까?”

하원정은 아직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자 곽종군은 웃음소리를 조금 줄이고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능연이 쥐였다면 쌀 배아도 했을걸? 하하하하.”

하원정도 억지로 따라 웃었지만,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아, 진짜 타이밍하고는.”

복도 다른 쪽에 있던 연문빈은 분통터지는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웃음을 참던 여원이 풉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 나오냐?”

“아니, 얼마 전에 자연 보호 구역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아냐, 하지 마.”

연문빈이 당황해서 막았지만, 그 말을 여원이 들을 리가 없었다.

“되게 웃긴단 말이야. 쥐 한 마리가 순진하게 먹을 거 찾으러 나왔다가, 우리 인도하는 사냥개한테 쫓겼거든? 도저히 더는 도망 못 가겠으니까 스컹크처럼 사냥개한테 방귀를 뀌는데, 똥까지 나온 거야. 웃겨 죽을 뻔!”

연문빈의 표정이 싸해졌다.

“방귀 뀌고 싶었는지 무서워서 똥 싼 건지 니가 어떻게 아냐?”

“그러면 재미없잖아.”

“됐다. 그래서?”

“물려 죽었어.”

“야! 재미있냐? 재미있어?!”

화가 난 연문빈이 단숨에 제 분홍색 모자를 벗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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