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이 다시 출장 수술실로 돌아갔을 때, 복도엔 이미 사람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호기심에 지켜봤고, 누군가는 통화를 하면서 현장에 참관할 수 없는 의사에게 보고했다.
분명 수술을 하면서 핸즈프리로 듣고 있는 의사가 있을 것이다.
출장 수술에서 문제가 생기면 연대 책임이 생긴다. 그러니 출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반드시 수술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수술에 지극히 익숙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의사가 문제를 일으켰다면, 다들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게 당연했다.
같은 줄에 있는 수술실 세 칸에서도 쉴 새 없이 사람이 들락거렸다.
순회 간호사들도 한 번씩 나와 봤다. 수술하는 의사는 나오지 못했지만, 다른 수술실에서 참관하던 의사들은 모두 한 바퀴씩 돌았다.
병원 수술실은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매우 밀폐된 공간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상 병원 수술실은 공장 작업실보다 사람이 더 많이 몰린다.
수술대 주변이나 수준 높은 무균 환경을 유지할까, 수술대 이외의 부분은 참관하는 의사, 물건을 전하러 온 간호사, 혹은 놀러 온 의사로 기본적으로 붐볐다.
운화병원 같은 정상급 지방 병원엔 하급 병원에서 온 훈련의가 몇백 명씩 있는데, 그들은 수술에 참여하지 못할 때는 다들 수술실을 들락거리며 참관한다.
담낭, 낭종 혹은 단지 이식 같은 수술은 지방 병원에서 흔한 수술이었고, 참관하는 의사도 빈번하게 출입한다. 간 절제 같은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수술은 더욱 몰리기 마련이었다. 어느 해 어느 월 어느 날, 복잡한 케이스를 마주쳤을 때, 오늘 본 수술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 큰 병원일수록 수술실에 오가는 의사가 더욱 많다. 외국 큰 병원 수술실엔 전 세계에서 참관 온 의사들로 넘쳐서 줄을 서야 했다. 고향으로 돌아간 의사들은 자기가 한 수술이 아닌 봤던 수술로 홍보하기도 한다.
중국 외과 수술도 처음엔 그렇게 발전해 왔다.
능연은 수술실 문을 밟아 안으로 들어갔다.
수술실 바닥에 피 묻은 거즈가 가득했고, 자체 수혈하고 재회수한 통에도 피가 가득했다.
곽명성은 미간을 단단히 좁히고 뻘겋게 물든 포셉을 쥐고 화를 내고 있었다.
“불 좀 밝게 할 수 없습니까? 바닥 좀 닦아요. 미끄러지면 어쩌려고 이럽니까? 피는요? 아직인가요? 다들 뭐 하는 겁니까?”
집도의가 화를 내는 건 수술실 일상이었다. 수술이 순조롭지 않을수록 집도의는 심하게 화를 냈다. 물론, 그냥 화를 심하게 내는 사람도 있지만.
곁에 있던 빙지상 교수도 응급처치 무리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늙고 쇠약한 몸이라 피가 넘치는 복강에 손을 꽂고 있어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원정은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수술실에서 능력 있는 의사일수록 통화할 일이 많았다.
다들 한두 마디만 하고 끊지만, 계속 전화가 들어왔다. 특히 많은 업무를 담당하는 주임 의사쯤 되면 전화가 오지 않아도 걸 일이 생긴다.
지금 하원정은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출혈입니까?”
아직 손을 씻지 않아 바로 수술대로 달려갈 수 없는 능연은 우선 곁에 있는 곽종군에게 상황을 물었다. 응급의학과에서 30년 생활한 곽종군은 피를 많이 봐왔고, 대량 출혈도 물론 많이 봤다. 그는 침착하게 서서 능연을 바라봤다.
“간 절제할 때, 혈관 종양을 피하려다가 혈압이 너무 높아서 그랬는지, 혈관이 터져버리고 말았네.”
“정맥이요?”
“응. 간 출혈도 심해.”
“얼마나 됩니까?”
“2, 3천?”
“많네요.”
능연도 딱히 심하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응급의학과에 막 들어왔을 때처럼 환자가 피를 많이 흘리면 당황하지 않았다. 아무리 대량 출혈이라도 제어만 되면 되돌릴 희망이 있으니까.
물론 출혈 정도가 심해지면 제어력은 점점 약해지고 환자의 예후도 점점 나빠진다.
능연은 수술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유심히 상황을 관찰했다.
수술을 계속 지켜보진 못했지만, 사전에 MRI를 읽었었다. 그리고 곽명성은 희한한 수술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고 기껏해야 개량된 간문 경로 간 절제를 선택했을 뿐이다.
능연은 계속해서 지켜보면서 곽명성의 수술 중 판단과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곽명성이 딱히 뭔가 잘못한 건 아니고 그저 운이 나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문정맥 고압 환자를 간문 경로 절제술로 선택한 것은 위험성을 높였다고도 할 수 있었다.
지금 그 위험이 터진 것이다.
능연은 본인이 수술했다면 다른 판단과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했다. 심지어 간문 경로 간 절제 자체를 선택하지 않았으리라.
그는 마스터급 간 절제술이 있고 사전에 MRI 사진도 읽었다. 그리고 170회 복부 해부 경험과 그랜드마스터급 열 지혈 스킬,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 스킬이 있다.
응급의학과 출신인 능연은 간 절제 그리고 지혈 쪽에 극대한 기술과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작 조금 강한 전문가급에 마스터급에 이르지 못한 곽명성으로서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다만 환자 상태가 확실히 복잡했고 곽명성이 가장 좋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선택은 수치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사망 토론할 때는 의사들이 수치로 판단할 수 있을지 몰라도, 수술 과정에서 내리는 수술 판단은 영원히 감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위험이 큰 수술에서 내리는 결정은 수풀 사이를 걷는 것과 같아서 멧돼지에게 쫓기는데 눈앞에 늑대 발자국 있는 길, 곰 발자국, 그리고 호랑이 발자국이 있는 세 갈래 길이 나타날 수도 있다.
어떤 때는 꼭 실력이 없어서 수술 중 결정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고, 실력 있다고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다. 그저 잘못 내린 결정을 바로 잡을 능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엔 운이 존재했다. 바로 지금 곽명성 선생이 겪는 것처럼.
능연은 마스크를 끼고 곽명성 가까이 다가가 머리를 내밀고 복강 안을 살폈다.
“무슨 일입니까?”
곽명성의 말투가 좋지 않았다. 수술이 순조롭지 않으면 누구나 포악해진다. 서 있느라 지쳐서 동작도 느려졌지만, 빙지상은 여전히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다.
“능 선생, 무슨 생각 있나?”
“제 지혈 기술은 간 절제 기술보다 좋습니다.”
능연은 아주 잠깐밖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마스터급에서 그랜드마스터급이 되기까지 적어도 수술 천 건은 필요하다. 혹은 더 많은 전제 조건이 따르거나. 그러니 그랜드마스터급 열 지혈과 맨손 지혈 기술이 있는 능연의 지혈 기술이 간 절제 기술보다 좋은 건 당연했다.
빙지상은 오랜 시간 교수 생활해 오면서 갖가지 천재를 봐왔다. 능연이 매가 어르신의 간 내 담관결석 수술을 했다는 걸 떠올린 그는 능연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손 씻고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능연이 말을 멈추고 기다렸다. 그러자 곽종군이 흠흠 헛기침하며 뒤에서 능연을 끌어당겼다.
“출장 수술 오신 거 아닌가. 지금 나서다니,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어.”
하원정은 누군가 방패가 되어준다는 안도감에 멍하니 능연을 바라봤다.
“살리면 되잖습니까.”
“못 살리면?”
“도움 될 겁니다.”
능연의 사고방식은 곽종군과 완전히 달랐다.
“능 선생이 도와준다면 고맙지요. 그럼 부탁하겠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걸 기다리지 않고 빙지상이 결론을 냈다. 피가 이 정도로 났는데 자칫 잘못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고 사망 선고해야 할 상황도 닥칠 수 있었다. 자신에겐 이미 더 좋은 해결 방안이 없었고, 제자 곽명성은 갈등하는 모습이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쓸데없는 말은 하나도 없이 몸을 돌렸다.
”손 씻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몇 분 후, 능연이 다시 돌아왔다.
그때 복도엔 소식을 듣고 온 의사와 간호사가 가득했다. 수술실에 들어올 수 없으니 밖에서 수술실의 기척을 들으며 문 사이로 상황을 지켜봤다.
교과서에 나오는 당당한 빙지상 교수가 출장 수술에서 실수했다는 건 많은 사람이 토론할 만한 화제였다.
능연은 한마디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복을 입고 장갑을 꼈다.
”한번 만져 보겠습니다.“
능연은 그렇게 말하며 피로 미끌미끌한 복강 안으로 손을 꽂았다.
“지혈제 쓰셨어요?”
능연이 간을 더듬으면서 물었다.
“트라넥사민산(tranenxamic acid), 에탐실레이트(Etamsylate) 썼어요. 수술 전에도 썼고.”
곽명성이 대답하자 능연은 알았다고 하고 손가락으로 계속 더듬었다.
곽명성이 이미 긴급 봉합 처리를 했고, 상처 부위도 대부분 초음파 메스로 굳혔지만, 피는 여전히 쉴 새 없이 스며 나왔다.
전형적인 운이 나빠서 실력을 다 발휘 못 한 경우였다.
곽명성의 조작은 문제없고 수술 전 준비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표준은 넘었다. 하지만 환자가 그래도 대량 출혈이 생겼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능연은 머릿속으로 환자의 MRI와 다른 영상 자료를 떠올렸다.
순수한 외과 의사로서 능연은 생화학 같은 내과 정보는 거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환자 영상 자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똑똑히 기억했다.
능연은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왼손으로 간 마사지를 했다. 거의 간을 스치듯이 매우 가볍게 넘어가는 동시에 오른손도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그때 에어타이트 도어가 열리면서 의교과 뇌 주임이 다급하게 들어와 곽종군 한 번 보고 능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능 선생. 확신 없으면 안 해도 돼. 이런 식으로 하다가 사망 토론 리포트를 두 달 동안 쓸 수도 있어.”
의사에게 테이블 데스는 모두 사고에 속하지만, 그것도 어떤 급 병원에서 일어나느냐를 봐야 했다.
을급이나 이갑 병원에서는 자신이 없으면 바로 상급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야 하므로 수술 중에 사람이 죽으면 일이 심각해진다. 그러나 삼갑병원, 특히 운화병원 같은 좋은 병원에서는 수술 중에 사람이 죽는 일도 불가피했다. 그래서 조작 실수만 아니면 처벌도 적당히 내리고 의사 인생을 한방에 망치는 일도 없다.
그렇지만 뇌 주임 눈엔 그 적당한 처벌조차 겪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멀쩡히 직책 취소되고, 몇만에서 몇십만 글자짜리 보고서를 쓰고, 여기저기 심사에 불려 다니고, 벌금을 내는 건 장난이 아니니까.
능연이 출장 수술을 해서 돈이 부족하지 않은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망 토론은 의사들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고, 보고서 쓰는 건 짜증 나는 일이다.
“할 수 있습니다.”
능연은 한마디 간단히 대꾸하고 곽명성에게 말했다.
“맨손 지혈로 출혈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빨리 석션해서 복강을 비우고 상황을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아요.”
제안을 받아들인 곽명성은 능연을 바라보고는 바로 물었다.
“석션 강도 높이는 건 언제 할까요?”
“지혈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2분?”
능연은 환자 간이 망가질까 봐 걱정되었고, 힘쓰는 것도 제한이 있어서 완전히 혈류를 차단할 수 없을까 봐 걱정했다.
환자 복강 안에 흐르는 피가 석션되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하원정은 봐도 무슨 상황인지 모를 뿐이었다.
하원정은 끈적거리는 혈액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다 했다. 능연의 동작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별생각을 다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모든 동작을 뱃속에서 하니, 복강에 적혈량이 줄어든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곽종군은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이번엔 혈액 센터에 전화했다. 이어서 주 원장에게도 전화했다.
혈액 센터와 병원 고위층 협조 없는 수술을 이어갈 수 없을 출혈량이었다.
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혈관 종양. 차단.”
능연은 말도 빨랐고, 손동작도 빠르게 이리저리 헤집으면서 혈관 종양 위치를 조금 노출시켰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적어도 아까 곽명성이 한참 헤매도 위치를 찾지 못했던 혈관 종양의 끄트머리를 노출시켰다.
물론 곽명성이 너무 큰 동작으로 간을 헤집을 엄두를 못 내서 그런 것도 있었다. 능연이 가진 맨손 기술이 없으니, 동작을 크게 했다가는 예상할 수 없는 결과를 유발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다.
“1분 30초 필요합니다. 적어도요.”
곽명성은 더는 감추고 숨기고 할 것이 없었다. 여기서 조금만 잘못해도 출혈 제어를 하지 못해 수술이 완전히 실패하게 된다. 가능만 하다면,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간을 잡고 있던 능연이 눈썹을 찡그렸다. 2분도 긴데, 곽명성이 지금 1분 30초를 더 달라고 한다.
“제가 꿰맬게요. 실 당기는 거 도와주세요.”
능연은 오른손으로 환자 간을 쥔 채 스크럽 간호사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니들 홀더, 가는 실.”
이제 몇 호사인지 따질 시간이 없었고 간호사는 가장 가는 실을 꿰어 두었던 니들 홀더를 능연에게 건넸다.
능연은 왼손으로 니들 홀더를 잡고 단번에 환자의 간 중심을 뚫고 나갔다.
그제야 능연이 뭘 하려는 건지 깨달은 곽명성이 서둘러 선 정리를 도왔다.
능연은 재빨리 몇 바늘 더 뚫은 다음에 정밀하게 점 봉합을 시작했다.
일 분도 안 되는 사이, 능연이 니들 홀더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다 됐습니다. 이제 오른손에 힘 빼겠습니다.”
곽명성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능연의 손놀림을 바라봤다. 바보가 아니라면 능연의 레벨과 수준을 알 수 있었다.
“석션 계속해요.”
능연은 한마디 더 하고는 서서히 간을 놓았다.
간에서 피가 조금씩 스며 나오고 있었지만, 온통 피범벅은 아니었다.
“나머지 간 절제를 끝내죠.”
능연의 말투에 명령조가 조금 더해졌다. 수술대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전쟁터에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듯이, 수술대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도 단 한 사람이다.
능연은 이제 간 절제 수술을 곽명성에게 완전히 넘길 수는 없었다. 사실, 곽명성에게 계속하라고 해도 그가 계속할 수도 없었다.
곽명성은 고개를 숙이고 능연에게 협력하며 묵묵히 조수가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빙지상 교수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나 자리를 비켜주고는 천천히 장갑을 벗으면서 흥미로운 듯 능연을 바라봤다.
그로서는 조금 창피한 날이었다. 그러나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죽는 것보다야, 조금 창피한 게 나았다.
수술 한두 건으로 그의 위치가 정해질 것도 아니었다. 오늘 수술은 국제회의 중 참관 수술도 아니고 학술 동지에게 전시해 보일 시범 수술도 아닌 그저 출장 수술일 뿐이다.
빙지상 교수는 능연이 사람을 구해냈다는 것에 더 크게 놀랐다. 아까 직접 봤기 때문에, 자신은 이 환자를 살릴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지금이 전성기라도 해도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이 전성기라면 수술을 이 지경까지 오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자신은 있었다.
그러니 곽명성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능연의 실력이 막강하다는 것도.
“능 선생은 어디 학교 졸업했나?”
수술이 안정된 상태로 접어든 걸 본 빙지상이 물었다.
“운화 대학 부속 의학원입니다.”
“운대였군. 운대에 이빈농이라고 아는 교수가 있지.”
“이 교수님 작년에 은퇴하셨습니다. 기초 수업을 들은 적 있습니다.”
“그렇지, 퇴직할 때가 되긴 했지. 능 선생은 박사 졸업생인가?”
“본과입니다.”
“보, 본과라고? 그럼 언제 병원에 들어왔나?”
“올해라고 쳐야 할 걸요?”
빙지상이 놀라서 묻는 말에 능연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고 빙지상이 의아한 듯 곽종군을 바라봤다.
“하늘이 내린 천재죠.”
곽종군이 껄껄 웃으며 하는 말에 빙지상은 할 말이 없다는 듯 능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는 예순 넘어서 살겠다고 아등바등한데, 누구는 스물 몇에 그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 간 절제 수술을 하다니.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고 주 원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이제 괜찮습니다. 능연이 맨손 지혈하고 상처도 봉합해서 환자 상태가 안정됐습니다.”
주 원장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곽종군이 먼저 말했다.
“아······.”
기세등등하게 들어왔던 주 원장은 단번에 긴장이 풀린 듯 쪼그라들었고, 금방 다정한 얼굴로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지금 상황은?”
“원래 계획대로 수술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능연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속도는 안 되겠지만요.”
그러자 곽명성이 얼굴이 어두워져서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운이 나빴어요. 초음파 메스.”
능연은 다른 방법이 아닌 곽명성의 생각대로 천천히 간 절제를 진행했다. 남이 절반이나 한 수술인데, 여기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모두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게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능연이 곽명성의 생각대로 진행할수록 곽명성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다른 건 접어두고, 능연이 초음파 메스를 다루는 수법만 해도 그의 실력의 몇 배는 되었다.
초음파 메스를 든 능연의 손이 조직 위에서 높이 지나가자 단번에 정확하게 그어졌을 뿐 아니라 주변 조직 손상도 거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능연이 이 수술방식에 대해 곽명성 본인보다 훨씬 노련하다는 것이었다. 곽명성이 주력 수술방식으로 일 년 넘게 놀아온 수술방식을 말이다.
수술실 문이 다시 열리고, 원장 대신 상황을 살피러 온 원장 비서가 들어왔다. 비서는 소개도 없이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바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대량 출혈이 일어나서요. 지금은 지혈했습니다.”
곽종군의 말에 비서가 다시 물었다.
“환자는요? 살릴 수 있습니까?”
“네. 살릴 수 있을 겁니다.”
곽종군은 긍정적 대답을 한 셈이고, 비서도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때 수술실 문이 다시 열리더니 레지던트 몇 명이 고개를 삐쭉 내밀며 들어왔다.
주 부원장, 원장 비서, 의교과 뇌 주임, 곽 주임, 하원정, 빙지상 등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저희는······.”
레지던트 몇 마리는 메두사라도 본 듯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입가에 맴도는 말을 결국 내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