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46화 (327/877)

능연은 초음파 메스를 조작해서 몇 번 긋고는 들어 올려 자리를 비웠다.

메스 아래에는 보통 담관과 혈관이 있었다.

능연이 명령 내리기 전에 곽명성은 이미 니들 홀더를 들고 담관 결찰, 혈관 결찰을 하고 능연더러 자르게 했다.

두 사람은 거의 교류 없이 수술을 진행했고, 주변 의사들도 익숙한 듯 지켜봤다. 다들 각자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술이 진행될수록 대화 소리가 점점 커지기까지 했다.

정상적인 수술실은 기본적으로 그런 상태다.

의사들이 수술 상황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은 사실 드물다. 긴장한 분위기는 더 드물고. 없는 건 아니지만, 의사들이 진지하게 논쟁할 일이 생길 땐 사실 의사의 극한에 달한 것이다. 거기에 난도까지 높아지거나 수술에 실수까지 생기면 제어력을 잃는 경우가 생긴다.

아까 곽명성처럼 말이다.

문정맥 고압 합병 간 경화가 바로 그의 극한이었는데 혈관 종양도 있고, 거기에다 환자가 피도 잘 굳지 않으니 실수 한 번에 대량 출혈이 일어났다.

전성기 시절의 빙지상, 혹은 지금의 능연이라면 그렇게까지는 당황하지 않고 변함없이 웃고 떠들면서 해나갔을 것이다.

능연이 지금 하는 것처럼 거의 커뮤니케이션 없이 하는 수술도 드물었다.

판매원들이 손님 없을 때 몰려서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의사들도 수다를 좋아했다. 의사들의 장점은 환자는 대부분 무의식 상태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저항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다 없는 수술실은 이상했고, 마실 나온 의사가 있는 수술실이 당연했다.

의사가 수술실에 왔는데 환자가 아직 안 왔다면? 수술이 끝났는데 다음 수술까지 틈이 빈다면, 멍청하게 수술실에서 기다릴까? 당연히 다른 수술실에 참관하러 가지 않을까? 그러다가 모 주임이라도 만나면 그 김에 아부를 떨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잘 아는 의사를 만나면 신나게 수다 떨 수 있고, 일하면서 신나게 수다 떠는 것이 바로 외과 의사의 이상적 생활이었다. 그런 각도에서 보면, 외과 의사가 개처럼 바쁜 것 같아도 기본적으로 밤새 게임을 하거나 채팅하는 상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잘 모르는 의사라면 더욱 수다를 떨어야 한다. 수다를 떨어야 친해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잘 모르면 수술할 때 커뮤니케이션을 더 해야 한다.

다만, 그건 평범한 의사 혹은 약체 의사들 사이의 일이다.

평범, 또는 약체 수준을 넘어선 의사는 수술방식을 잘 안다면 수술 과정 내내 한마디 교류 없이 하는 것도 완전히 가능하다.

지금 능연처럼, 눈 감고도 곽명성의 수술방식을 알 수 있으니 그냥 하면 됐고, 곽명성에게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설명할 필요는 더욱더 없었다. 일 년 넘게 본인이 주력 수술로 해오던 수술방식을 모른다면 그 자리에서 머리통을 쪼개도 억울하다 할 수 없으리라.

사실 곽명성은 지금 반쯤 넋이 나간 상태이긴 했다.

대량 출혈이 일어났을 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고, 지혈하고 능연이 간 절제를 시작했을 때 머리통이 이미 멍해져서 그저 기계적으로 능연을 따라 수술을 진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손을 놀리고 놀리다가, 곽명성은 드디어 스트레스 반응에서 빠져나와 아까 일어난 일을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아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곽명성은 퍼스트 어시스던트가 할 하찮은 일을 하며 속으로 하나하나 되짚기 시작했다.

첫째, 환자 대량 출혈! 능연이 지혈했지?

첫 스텝에서 곽명성은 더는 진행하지 못했다.

장난해? 간 수술에서 대량 출혈이 일어나는 건 세계적으로도 난제거든?

지혈의 어려운 점은 삼박사일 동안 토론할 수 있고, 해결 방안······ 해결 방안은 의학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그 복잡성으로 3년은 떠들 수 있다.

2, 30년 동안 배운 간담췌외과 의사가 오늘 같은 대량 출혈을 만난대도, 지혈을 못 하면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능연은 정말로 지혈을 했다.

곽명성의 머릿속에 곧바로 능연이 오른손으로 간을 쥐고 왼손으로 재빨리 봉합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은 아무리 해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손과 간 모두 피와 거품 안에 있어서 곽명성은 능연의 맨손 지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왼손 봉합은 곽명성 눈앞에서 진행된 것이다.

동작, 속도, 정확도, 그 어느 것도 잊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능연이 왼손잡이가 아니라는 것을 곽명성이 똑똑히 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쓰는 손으로 간을 잡을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혹시 능연이 쓰는 손이 아닌 손으로 맨손 지혈을 했다면 더욱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곽 선생님. 이제 불활성 박리합니다.”

능연이 드디어 한마디 했고 그가 입을 열자마자 수군수군 사담을 나누던 수술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아, 응. 직접 하시죠.”

곽명성은 수술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고, 끝내고 집에 가고만 싶었다. 가서 잘 쉬면서 오늘 일어난 일을 정리하고.

능연은 곽명성의 동의를 얻어 자기가 익숙한 방법으로 메스와 손을 함께 써서 간을 떼어냈다.

손으로 간을 떼는 건 능연에게 그보다 더 익숙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노년 간 경화 환자였지만 조금의 실수도 없었다.

그 부분도 곽명성과 조작 방법이 달랐다. 곽명성은 커버드 모스키토 포셉을 사용했다.

“단면 처리하겠습니다. 식염수 준비해주세요.”

이번엔 간담췌외과 주치의에게 한 말이었다. 아까 곽명성 조수를 하던 두 의사 모두 간담췌외과 하원정의 직계 제자였다. 지금 수준의 간 절제는 하원정 본인도 못 해서 그의 제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까 대량 출혈을 본 두 사람은 지금 곽명성보다 훨씬 제정신이 아니었다. 물론 잡일을 하는 건 아무 문제 없었다.

“식염수 준비했어.”

주치의는 능연의 지시대로 T형 파이프에 생리 식염수를 소량 주입한 다음 담즙이 새지 않는지 확인했다.

능연도 유심히 지켜봤다.

지금 정도까지면 수술은 기본적으로 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곽명성도 드디어 기분을 정리했고 머쓱한 듯 사방을 둘러봤다.

“감사합니다. 신세 졌네요.”

승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능연을 한 번 바라보고 지도 교수인 빙지상을 본 곽명성은 뭐라고 해야 좋을지조차 몰랐다.

“천만에요. 마침 수술 전에 환자 MRI 자료를 읽어서 혈관 종양 위치가 안 좋은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응혈 기능도 좋지 않아서 수술 위험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능연이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빙지상 역시 크게 연연하지 않는 모습으로 껄껄 웃었다.

“이번 걸음은 크게 창피도 당하고 손해가 큽니다. 하하하. 원래 능 선생 환자였나?”

“원래 간담췌외과 환자고 수술은 제가 하기로 했었습니다.”

능연은 전혀 쓸데없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 그렇지. 능 선생은 응급의학과 의사지.”

일반 외과 출신 빙지상은 능연의 수술 모습을 보고 나니 그 역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능연은 계속 수술을 진행한 다음 배까지 직접 닫고 환자를 수술대에서 내려보냈다.

그때, 퀘스트 완성 시스템 제시어가 나타났다.

중급 보물상자 하나가 빛을 내며 능연 앞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같은 의사의 감탄’ 초급 보물상자도 주르륵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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