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집에 있는 동안 묘 선생을 가르치고 직접 꿰매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구 진료소 손님은 탄탄한 편이라 매일 고정적으로 봉합이 몇 건, 수액 환자 열 몇 사람이 있었다.
진료소에 수액 맞으러 오는 환자가 백을 넘으면 꽤 짭짤했고, 에스테틱 같은 특별 서비스가 있으면 초과 이윤을 낸다.
능가에서 리모델링을 고려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서 온 것이었다.
능연은 며칠 동안 눈이 떠질 때까지 마음껏 자고 그루잠도 잔 다음에야 느긋하게 병원으로 갔고, 회진만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간 절제는 큰 수술이라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ICU에 들어가고 심하면 1, 2주 더 심하면 20일도 입원했다.
병원 ICU의 침대는 한계가 있기에, 가득 찬 다음에 다시 회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다른 진료과에서도 수술을 해야 하니 능연 혼자 ICU를 다 채울 수 없었다. 아무리 잘생겨도 기본 법칙은 따라야 지 않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능연의 조수들도 모두 지친 상태라는 것이었다.
수술도 하고 책도 읽고 회진 같은 일상 업무도 해야 하고 정상 의사라면 써낼 수 없을 만큼 많은 차트도 정리해야 하는 데다가 주말엔 출장 수술까지 가야 하는 능팀은 이미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이번 주엔 간 절제 수술하지 맙시다.”
벽에 쌓여가는 미완성 리스트를 보며 능연은 잠시 템포를 늦추기로 결정 내렸다.
이제 막 관절경 하 십자인대 재건 스킬도 얻었고, ‘담낭 절제술’ 퀘스트도 완성하지 못해서 그 역시 살짝 조정이 필요했다. 적어도 정형외과 서적을 두 권은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느, 능 선생. 간 절제 안 하면 뭐 하려고?”
의자에 앉아 차트를 쓰던 좌자전이 후두까지 떨면서 물었다.
“환자 있으면 다들 이야기해도 되고 없으면 며칠 침대 비우는 것도 좋습니다.”
사실 더 비울 침대도 없었다. 장기 입원을 시행하는 능팀 병상은 진작 부족이었고 지금 비어있는 것도 요 며칠 동안 환자가 퇴원해서 비워진 것이다.
“휴, 휴가?”
좌자전은 하마터면 만세를 부를 뻔했고, 연문빈과 여원도 조금 늦게 반응하며 불가사의라고 생각하는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정말 환자 안 받아도 돼?”
“당분간요. 며칠 쉬어요.”
의아한 듯 묻는 연문빈의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곽 주임님한테 전화해야겠다.”
퍼뜩 정신 차린 좌전이 서둘러서 환자의 싹을 자르러 갔다.
응급센터에 소속되어서 외래 진료를 하지 않는 능팀은 그들이 치료를 중단하면 스스로 찾아오는 환자는 줄어들었다. 환자가 있다고 해도 응급 환자는 트랜스하고, 아닌 환자는 며칠 뒤로 미뤄도 전혀 상관없었다.
“그동안 우린 차트나 채우자고.”
좌자전은 아예 일을 안 한다는 방식은 상상도 안 했다. 차트를 채워 두지 않으면 나중에 골치 아파진다.
“그럼 병실 한 번 가서 둘러 볼게요. 여 선생님 같이 가요. 원감은 계속 시행해야죠.”
능연은 다른 사람이 의견 낼 틈을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감 같은 걸 하고 싶은 의사는 없었다. 다들 자기가 제일 깨끗하다고 생각하면서, 설사 사흘 샤워를 안 해도 나는 냄새 안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알콜겔로 손을 소독했는지 매번 검사하는 건 더욱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수술 전 손 세척이야 당연히 하지만 병실 소독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리고 원감은 골치 아픈 일이라 의사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쉬웠고 간호사와 수간호사도 종종 잘 협조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해야만 할 수 있는 그 작업의 성과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능연은 다른 사람의 비방과 불만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변 불만을 일일이 신경 썼다면, 100번째 연애편지를 받았을 때 벌써 어찌할 줄 몰랐겠지.
그러니 여원 등도 원감을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능연은 여전히 계속하고 있었다. 원감을 하는 게 맞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알콜겔 휴대하는 게 얼마나 복잡한 일도 아니고 말이다.
“하수도도 청소해야 합니다. 각 병실 화장실도 더 자주 청소해야 하고요. 원래 있던 청소 빈도는 만원 상태 대응할 땐데, 지금은 추가 병상까지 있으니 더 자주 해야 해요.”
“사람 구해서 할까? 간호사들도 다들 안 하려고 해서.”
“그렇게 해요. 실습생들 좀 더 동원하고요.”
열심히 받아적으며 나지막이 묻는 여원의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원은 고개를 들어 실습생을 바라보고는 다시 속삭였다.
“사람 구해서 하려면 돈이 꽤 많이 들어. 곽 주임님한테 말씀드려야 해.”
“이따 전화 드릴게요.”
능연은 진작 진료과 경비를 일정 비용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사실 나이든 의사가 팀을 이끄는 것이면 독립된 경비를 받을 수도 있었다.
물론 약체 의사가 이끄는 팀은 경비가 하나도 없고 주임 눈치를 일일이 살펴야 한다.
“알콜겔도 조금 더 사고요.”
한 바퀴 검사한 능연은 그새 알콜겔 하나를 다 쓰고 라벤더 향 알콜겔을 꺼내며 말했다.
“저는 간담췌외과 갑니다. 하청 업자 만나보세요.”
“간 절제 안 한다며?”
여원이 부르르 떨며 물었다.
“담낭 환자 있나 보려고요. 장안민 선생님이 저 집도해도 된다고 했거든요.”
“오, 그래······.”
여원은 사라지는 능연을 보며 몰래 안도했다.
간 절제는 아킬레스건 수술과 달리 퍼스트, 세컨드 어시스던트 모두 부담이 심했다. 능팀에서 그나마 연문빈과 마연린이 잘 버텼고 그렇다고 해도 장안민이 도와주기 시작한 후로 다들 짐을 조금 내려놓았다.
여원과 좌자전은 수술실에서 그렇게 편하지 못했다. 아킬레스건 수술에서 훅을 당기거나 하는 건 모든 레지던트가 할 수 있지만, 간 절제 수술할 때면 여원은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수술이 논문 쓰는 것처럼 쉬우면 좋겠다.”
논문을 떠올린 여원은 그제야 기분이 조금 좋아졌고 각 문헌을 떠올리다가 자신의 소장품이 생각나자 여원의 얼굴에 미소까지 퍼졌다.
능연은 어슬렁어슬렁 간담췌외과 병실 구역으로 향했다. 한동안 간담췌외과 병실 환자의 절반을 능연이 늘렸고, 회진도 한두 번 간 것이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들도 고분고분 인사했다.
전에는 수술실에서 활개 쳤다면, 빙 교수 일 이후 간담췌외과 전체에서 활개 치고 있었다.
어느 날 능연이 모모 국제 회의, 혹은 국내 회의, 혹은 원외 합동 진단에서 그날 수술을 케이스 리포트로 꺼낼지도 모른다는 걸, 하원정이든 그의 부하든 절대로 절대로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장안민 선생님 어디 계신가요?”
담낭 수술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생긴 능연은 하얀 가운 입은 의사 하나를 붙들고 물었다.
“특별 병실에.”
의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간담췌외과 특별 병실은 전에 간부 전용 병실이었다. 특수 병실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의사와 간호사의 별도 케어가 있는 간담췌외과 환자, 특히 큰 수술을 한 환자 우선으로 굴리는 병실이었다.
능연은 감사 인사를 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들어가기도 전에 사람들이 작은 응접실에 몰려 있는 게 보였고 복도에 서성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지나가겠습니다. 잠시만요.”
능연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목소리를 내며 통로를 만들어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응접실에 이어진 병실에도 사람이 가득했다.
“주 선생님, 다른 생각은 마세요. 담낭염일 뿐입니다. 다들 흔하게 걸리고, 며칠 만에 퇴원합니다.”
“선생님, 자네 학생들 너무 신경 쓰느라 몸을 안 돌봤어.”
“주 선생님, 학생이 아무리 중요해도 본인 몸은 돌보셔야 해요.”
침대 주변 사람들은 얼굴 가득 미소 지은 채 다들 자기 할 말만 했다.
침대의 환자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고, 웃고 싶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아 울상을 했다.
“다들 그러지 말게. 안다네, 나는, 나는······. 암이지?”
주 선생은 혀가 굳은 것 같아서 ‘암’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했다.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다들 거짓말하는 거 안다네.”
“누가 거짓말을 해.”
“유 교장, 내가 30년 동안 교편을 잡았는데 작년에 한 달 입원했을 때도 고작 과일 바구니 보냈잖은가. 그런데 지금은······.”
주 선생은 주변에 가득한 과일 바구니를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봤다. 유 교장은 난처한 듯 웃으며 도와달라는 듯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자 학급 주임이 입술을 핥으며 주 선생 곁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주 선생. 자네 아들이 교육국에 발령 났대.”
멈칫했던 주 선생의 얼굴이 서서히 밝아졌다.
“그럼 나 담낭염이야?”
“네, 담낭염입니다.”
환자가 진정된 걸 확인한 장안민이 대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심한 건 아니지만, 유착이 있습니다. 그래도 절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원하신다면 바로 수술 배정하겠습니다.”
“잘라! 자르자고!”
주 선생은 저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