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종군은 분수가에 서서 분수 안 큰 거위가 여자아이를 쫓았다가 남자아이를 쫓았다가 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곁에 있는 접난 잎사귀를 하나 뜯어 살짝 깨물면서 말을 꺼냈다.
“얘 이름이 향만원이라고?”
“네. 향만원입니다. 능 선생이 붙였습니다.”
곽종군 곁에 있던 제약회사 직원 고맹이 대답했다. 그는 등이 조금 굽었으며 얼굴에 여드름 흉터가 여기저기 있었다. 고맹은 제약회사 직원 중에 가장 못생긴 축에 드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제일 잘 버티는 무리에 속하기도 했다. 그는 몸이 약해서, 가짜 술만 마시면 토하는 바람에 가짜 술 판별 능력이 생겼고 의사들은 그를 데리고 술 마시는 걸 좋아했다. 그의 진짜 술 마시는 주량은 형편없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곽종군은 요즘 건강을 신경 쓰기 시작했고, 진짜 술을 마시는 것이 건강 챙기는 데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었다. 오늘 그가 고맹을 데리고 나온 것도 술이 땡겨서였다.
“능연이 지은 이름이 참 느낌이 있구만.”
“향만원······ 이요?”
입맛을 다시며 하는 곽종군의 말에 고맹이 어리둥절한 듯 물었다.
“그렇지. 거위고기 구우면 그야말로 향기가 온 마당에 다 퍼지니까 말일세. 젊을 때 시골이 고향인 의사를 따라 마을에 진료 간 적 있는데 그때 마을 사람들이 커다란 거위를 잡아서 그 자리에서 배갈이랑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고맹은 멈칫하다가 분수대 쪽을 바라봤고, 큰 거위는 107cm짜리 운화 초등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를 쫓으며 꽉꽉 대고 있었다.
고맹은 제약회사 직원의 각오로, 특공대라도 된 기분으로 이를 악물었다.
“제가 잡아 오겠습니다.”
“향만원을 이길 수 있고?”
곽종군이 무시하는 듯 168cm 고맹을 바라봤다. 고맹은 멈칫하더니 그럼 동료를 불러 잡겠다고 했다.
“그냥 동료 불러다 시장가로 사 올 생각은 못 하지?”
곽종군은 가짜 술 때문에 머리가 둔해진 고맹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30년산 배갈을 선물 받았다네. 마오타이든 뭐든 몇 박스 준비하라고. 내가 자리 만들 테니까.”
“네.”
제약회사 직원은 상대가 누구냐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곽종군 같은 주임이야 어떻게든 잘 모실까 생각부터 하고 지출을 고민한다. 이갑 병원 응급의학과 주임이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고 거위를 살지 말지도 고민할 수도 있다.
“휴우.”
“주임님?”
“일이 많은 가을이구나.”
곽종군은 고개를 흔들면서 접난 잎사귀를 새로 하나 뜯어 입에 넣고 천천히 깨물었다.
“일이 많다고요?”
고맹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응급센터 쪽을 바라봤다. 그때, 곽종군뿐만 아니라 한가해 보이는 의사가 수두룩했다.
응급이란 그런 것이다. 환자가 없을 땐 없다. 작은 병원 응급실엔 하루에 환자가 안 오는 때도 있고, 의사들은 그럴 때 어슬렁거리거나 치질을 앓거나 외에 할 일이 없었다.
운화병원 응급의학과는 이제 응급센터로 승급했으니 정말로 환자가 하나도 없진 않지만, 환자의 비율이 줄자 의사들도 한가해졌다.
특히 요 며칠 능연 치료팀이 수술을 안 하는 바람에 여원과 좌자전 모두 응급실에서 도우면서 다른 의사들의 업무량을 줄였다. 다른 응급의학과 의사들과 달리 능연의 수술을 한동안 따라 들어간 좌자전과 여원은 환자는 뺏는 거라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외과 기술이 부족해서 연습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모두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건 아니었다.
“자네는 몰라. 응급의학과는 한가하면 안 되네. 응급의학과가 한가해지면 큰일 나기 쉽다고.”
“왜요?”
곽종군이 나긋나긋 혼잣말하는 말에 고맹이 더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운화 같은 도시 인구로 보면 매월 응급환자수는 거의 고정되어 있다네. 오늘 한가하면 내일 그만큼 돌아온단 소리지.”
곽종군은 분수 안에 향만원을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거위 큰 거 구하게. 반은 탕으로 끓이고 나머지는 주방장 가져다주고 알아서 맛있게 해달라고 해. 요즘은 먹는 걸 다들 따지지 않아서, 메인 요리 하나만 잘하면 나머지는 오이나 땅콩 같은 걸로 먹으면서 술 마시면 되니까.”
“네.”
고맹은 곽종군의 리듬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면서 멍청하게 대답했다.
“한가할 때 많이 보충해 둬야지. 나중에 바쁘면 또 못 마신다고.”
곽종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는 술 마실 기회가 별로 없어서, 제일 심할 땐 술이 고파서 새벽 3시에 마시러 갈 때도 있었다.
요즘 며칠 한가해지자, BOSS의 기분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곽종군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곽종군은 엄숙한 표정과 미소를 같이 드러냈다. 표정은 여전히 엄숙했지만, 입가가 실룩거렸다.
“알겠습니다. 네. 문제없습니다. 걱정마십시오.”
곽종군은 연달아 네 마디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눈을 문지르면서 미소를 지우고 엄숙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원장 처조카가 교통사고가 났다는구만.”
말을 마친 곽종군이 응급센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즈기여, 얼굴을 문지르셔도 입가의 웃음이 지워지지 않으셨는데요?’
고맹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잠시 넋을 놓은 새에 곽종군은 통화하면서 멀리 사라졌다.
“일반 외과, 정형외과, 소화기 외과 협진하게 부르고, 신경외과, 흉부외과도 불러. 간담췌외과? 불러야지. 능연도 부르고.”
곽종군은 부를 수 있는 과를 다 불렀다. 물론 정말 다 부른 건 아니지만, 교통사고에 부를 만한 과는 그 정도였다.
고맹은 거위를 어떻게 할지 물어야 하나 마나 고민하면서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 진료과 사람들이 응급센터에 모였다.
원장의 처조카 교통사고라니, 교육국 고위층 아버지의 담낭염보다 훨씬 큰일이었다.
능연도 사무실에서 불려 나왔고 좌자전이 제일 먼저 곁으로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코치했다.
“능 선생, 가서 최대한 이야기하지 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비장 파열에 골절 몇 군데라던데요? 큰 수술 아닐 겁니다.”
수간호사의 브리핑을 들은 능연이 대답했다.
“능 선생님. 지금 원장님 처조카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낭종 제거만 해도 대단한 수술이라고요. 아시겠어요?”
말을 마친 좌자전은 능연의 표정을 보다가 자기가 쓸데없는 잔소리 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우리 수술할 때 말 안 하고 하기만 하는 거 어때?”
“계속 그렇게 했잖습니까?”
사무실에 있다가 수술이 있단 소식에 달려온 능연은 기분이 좋은 편이었고 좌자전은 안심인 듯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물었다.
“능 선생, 비장 절제, 얼마나 자신 있어?”
“무슨 뜻입니까?”
“그게······. 내 말은 전에 능 선생이 비장 수술하는 거 몇 번 봤지만, 잘 모르겠더라고. 간 절제로 예를 들면 비장은 어느 수준이라고 생각해?”
좌자전은 그보다 더 완곡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고 능연은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간 절제랑 비슷할걸요? 그런데 간 절제는 요즘 많이 해서 간 절제 쪽이 조금 더 능숙할 거고요. 그래도 비장이 더 쉽긴 해서······.”
거기까지 들은 좌자전은 벌써 깜짝 놀라서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님, 언제 비장 절제도 배우셨대요? 어떻게 배운 거여요?!”
“어떻게 배웠는지 알려 드릴 수 없는 방법으로요?”
시스템을 남에게 빌려줄 수도 없고, 능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좌자전은 조금 실망하다가 별것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이고는 원장 쪽을 바라보다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이따 자신감을 가지고 원장님 주의 좀 끌어 봐. 적어도 원장님이 능 선생을······.”
좌자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능연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좌우로 고개를 돌렸고 주변에 ‘휘황찬란’, ‘기세등등’ 같은 단어를 뿌렸다.
원장 역시 바로 능연을 발견했으며 엄숙하고 매너 있는 모습으로 능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