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부인이 다급하게 병원으로 달려왔다.
가끔 건강검진이나 친구 병문안, 가족 병실이나 다른 일로 병원에 왔었지만, 환자 보호자 신분으로 병원에, 그것도 응급의학과 수술실에 오는 건 처음이었다.
“상황이 어때요?”
“조금 전에 수술동의서, 그리고 이런저런 것들에 사인했소.”
입이 바짝 말라서 묻는 아내의 말에 원장은 최대한 표면적으로나마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학진이 어떤 상태인가요?”
“비장 파열, 간 파열, 골반 골절······.”
원장의 말을 들은 원장부인은 비틀거렸다.
“내 동생······ 동생한테 애는 학진이 하나에요.”
“앉아요, 앉아.”
원장이 다급하게 아내를 끌어 앉히고 부채질을 해주었다.
“학진이는 이미 병원에 도착했고, 병원에서 가장 좋은 의사들이 모두 안에 있어요. 그러니 걱정할 거 없어. 그것보다 더 심한 환자도 우린 다 구했었고, 학진이 상황이 제일 심각한 것도 아니라오.”
못 들었으면 모를까, 그 말을 들은 원장부인은 아예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나이 든 아내가 우는 모습에 원장도 난처해졌지만, 현명하게 더는 입을 떼지 않았다.
잠시 후, 울다 지친 원장부인이 고개를 들어 눈물을 닦고는 티슈로 얼굴을 가린 채 말을 이었다.
“학진이는 아버지가 가장 예뻐하는 손자예요. 애가 귀염받을 짓도 제일 잘하고, 공부도 제일 잘하고 머리도 좋아요. 당신도 아이들 중에 가장 장래가 밝다고 했잖아요.”
“그렇지.”
“지금은 어떤지 가서 물어봐요. 부모님께 이야기도 해드려야 해요.”
원장부인은 응급처치실 안을 흘끔 봤는데, 그의 시선엔 안의 상황은 보이지 않고 바닥에 흥건한 피만 보였다. 거의 굳어가는 피를 보는 원장부인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가서 알아보라고 하겠소.”
원장이 눈치를 주자 비서가 냉큼 달려갔다.
울다 지친 원장부인은 멍하니 의자에 앉아 아무런 말도 없이 앞쪽을 바라봤다.
한참 후에야 비서가 응급처치실에서 나왔다. 골관절 센터 축 원사가 자기 제자인 박사를 비서로 삼는 것처럼 원장 비서도 의사였다.
의사 중에서 고르고 골라 뽑은 비서였고, 수술도 하고 장 정리도 해본, 수술에 익숙하고 수술 이모저모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원장부인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지혈했고 비장 절제 끝났습니다.”
“다요? 비장 절제하면 심장병 확률이 올라간다던데요?”
“비장 손상이 너무 커서 잘라내지 않으면 출혈이 계속될 상황이라서요.”
실망해서 묻는 원장부인의 말에 비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러자 원장부인이 질문 방향을 바꿔 물었다.
“잘 됐나요?”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능연이 했습니다. 아주 노련합니다. 잠시 지켜봤는데 다른 사람은 끼어들 생각도 못 하더라고요.”
“능연······, 능 선생이 그 매우 잘생긴 의사 말인가요? 잘, 잘하나요?”
“매우 잘합니다. 능 선생 동작도 깔끔하고, 서너 번 만에 수술을 끝내더라고요.”
비서가 처치실의 상황을 떠올리며 하는 말에 원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시계를 봤다. 처치를 시작한 지 얼마 흐르지도 않은 시각이었다.
“지금, 지금은요?”
“아직 수술 중입니다.”
원장부인의 질문에 비서가 쓸데없는 당연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원장부인 질문 자체가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내 기억엔 능연이 간 절제를 잘하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그리고 수부외과랑 관절 외과 수술도 잘한다고 했습니다.”
비서는 제가 말하고도 놀라서 휙 고개를 돌렸다.
“다시 가보게.”
원장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더 지목해서 처치실 안으로 함께 보냈다. 응급처치에 영향을 줄까 봐 그는 지금 처치실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비서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을 때, 처치실에서는 간 절제가 한창이었다. 응급 간 절제와 택일 간 절제는 개념이 달랐다.
일반 간 절제 수술은 시간이 길어서 두 시간에서 세 시간 하는 것도 정상이었고, 느린 의사는 네 시간 이상도 했다. 그러나 응급 간 절제는 보통 간에서 피를 흘리고 있어서 그렇게 길게 할 선택권이 없다.
간은 혈행이 좋은 곳이고 피가 나기 시작하면 의사가 천천히 묶을 시간이 없이 잘못하면 몇 분 만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때 일반 간 수술처럼 느릿느릿 혈관 찾고 어쩌고 하는 건 절대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한편 응급 간 절제는 최대한 빠르고 단호하고 정확하게 해야 환자가 살아서 수술실에서 나갈 수 있다.
대부분 의사는 간담췌외과 의사일지라도 응급 간 절제 케이스를 만나면 얼굴을 찌푸리고, 대다수 지방 병원은 포기를 선택한다.
능연은 그동안 응급 간 절제를 적지 않게 해왔고, 지금 주변에 사람이 가득하고 주시하는 눈빛이 많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로서는 가장 익숙한 광경이었다.
능연은 한 발짝, 한 발짝 간 절제를 해나갔다. 특별히 빠르지는 않았지만, 막힘도 없었다.
능연은 고수가 루미큐브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간을 들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사람들이 의식하기도 전에 간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수술대 구석에 있던 원장 비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능연의 수술 실력이 좋다고만 들었지,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자주 원장 대신 수술을 참관하는 비서라서 수술을 매끄럽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응급 간 절제 같은 이런 수술은 템포 있게 하는 게 정확한 모습이었다. 잠시 하다가, 쉬다가 혹은 속도를 냈다가 줄였다가. 그런데 능연처럼 균일한 속도로 하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호기심이 가슴 가득했지만, 비서는 아무런 말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문밖에 가족이 더 많이 몰려 있었다.
“능 선생이 응급 간 절제를 했습니다. 상황을 보니 꽤 성공적입니다.”
비서는 원장이 묻기 전에 우선 상황을 설명했고 가족들은 무슨 응급인지 간 절제인지 모르겠고 일단 울고 봤다.
“간을 잘랐대.”
“간을 자르면 앞으로 어떡한대요.”
“학진이는 괜찮은가요?”
질문하는 사람, 울부짖는 사람, 비서는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다시 들어가 보겠습니다.”
비서는 고개를 돌려 다시 응급처치실로 향했다. 차라리 수술을 보는 게 조용할 것 같았다.
사실 그때 응급실은 정말로 고요했다.
“양극 메스.”
손을 뻗었다가 다시 오므린 능연은 바로 곁에 있는 의사와 협조하며 손을 놀렸다.
그랜드마스터급 열 지혈술이 그때 능력을 완전히 발휘했다. 무혈 시야까지는 어려웠지만, 응급 지혈은 기가 찰 정도로 간단하게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