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SA 폭발 때문에 수술량이 급감했다.
병원 각 곳을 소독하느라 예정된 수술은 뒤로 밀렸고 응급센터 수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응급의학과는 다른 과와 협진해야 하는 진료과고 그러니 대부분 수술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소독, 청결 작업도 더욱 엄격하게 실시했다.
곽종군은 이제 막 모범이 된 응급센터에 MRSA가 나타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손 소독 중요성을 강조했고, 방호 용품을 대량 주문했다. 호흡기계, 병상 용품, 의료 폐기물 등은 전에 없이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원감과는 배운다는 핑계로 정예인원을 응급센터로 보냈는데 사실 세력을 조금이라도 찾아오고 싶어서였다.
원감과의 지도하에 응급센터 원감 관리는 한층 높아졌고, 의사들의 원성도 높아졌다.
“그래도 능 선생이 양반이었네.”
“그러니까, 능 선생은 중용이라도 지켰지. 사람을 몰아세우지 않고도 잘 해냈잖아. 원감레기들, 이건 뭐 옥에 티 잡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흠, 옥에 티는 능 선생이 잡는 거고. 걔들은 생트집이지.”
응급센터 의사들은 마음껏 원감과 의사 욕을 했다. 어차피 원감과 의사는 기분 대로 욕해도 아무런 손해가 없었다. 진단의학이나 영상의학이었다면 의사들이 조금 말을 곱게 했을 것이다.
능연은 지금 오히려 응급센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원감을 한 이유는 사실 본인이 필요해서였다. 능연은 손을 씻지 않거나 소독하지 않는 걸 완전히 못 견뎌 했다. 그런데 원감과에서 직접 나서서 관리하겠다니 시간과 에너지를 덜고 싶은 능연은 당연히 응했다.
그 전엔 직접 원감과에 사람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알아서 선임 주치의 급 원감과 의사가 온다니 능연은 상대의 작업에 관여할 생각조차 없었다.
수술이 없어서 따분한 능연은 차라리 휴게실로 가서 거위 사료와 책 몇 권을 끼고 분수대 옆에 앉아 거위 간식 주면서 책을 읽었다.
거위 사육 담당인 여원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말없이 능연을 따랐고, 한 손엔 체온계를 들고 책을 읽었다.
체온계를 본 향만원은 눈이 다 시퍼레져서 부리를 굳게 다물고 그 부근에서는 입도 열지 않았다.
사료만 던지면 악당 같은 거위가 뒤뚱뒤뚱 뛰었다. 늘 어른에게 휘둘리며 그런 통치력을 너무 갖고 싶었었던 아이들이 제일 신나 했다.
아이들이 모두 능연 곁에서 맴돌자 능연은 거위 사료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고, 더 많은 아이가 몰려들었다. 아가씨, 젊은 애기엄마 그리고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과 남성도.
거위 구경하는 사람은 거위 구경하고, 사람 구경하는 사람은 사람 구경하고 각자 즐기면서 분수 가엔 병원에서 보기 드물게 화기애애한 장면이 펼쳐졌다.
노인들도 자녀나 간병인의 손에 이끌려 분수 가로 갔다. 다들 장기 입원 환자라 평소에 병원 복도에서 어슬렁거리거나 병원 뒤 화원을 산책하면서 접난이나 에피프레넘을 구경했었다. 거위 항먄원이 분수에 나타난 후로 그곳을 좋아하는 노인도 많아졌다.
사실 그들은 사람 구경을 더 좋아했다. 걱정도 없고 병도 없는 보통 사람, 특히 아이들은 노인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오래 보면 질리니까.
개구쟁이 하나가 거위한테 너무 가까이 있다가 거위가 눈을 부릅뜨자 깜짝 놀라 덜덜 떨었다. 거위는 털 달린 공룡처럼 무시무시하게 한 발짝씩 아이에게 다가갔다.
“능 선생, 여기서 쉬고 있었네.”
금학진 부친이 느려 보여도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금 사장님.”
능연이 거리감이 느껴지는 공손한 말투로 인사했다.
“오늘은 많이 안 바빠?”
“당분간 일이 없습니다.”
술을 마셨는지, 금 사장 입에서 술 냄새가 났고 능연은 예민하게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있을 때 우리 애 좀 봐줄 수 있을까?”
금 사장은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능 선생, 한 이틀 쉰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능 선생만 좋다고 하면 매형한테 말해서 휴가 며칠 받아 주게. 내 아들 돌봐 주는 며칠은 의료 자문 해주는 비용으로 쳐줄 테니까.”
보아하니 출장 수술을 그도 아는 것 같았다. 게다가 조심스럽게 원장 나으리 이름도 꺼냈다.
전에 운화병원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웬만해서는 원장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원장을 거론하면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능연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출장 수술을 돈 때문에 가는 것도 아니었고, 레지던트인 그는 원장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수술 후 케어 때문이시죠? 제가 명확하게 오더 내렸습니다. 딱히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ICU 자체가 이미 특별 케어인 걸요.”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사료를 던지면서 말했다.
기술이 외과에 집중되어 있다는 걸 능연은 스스로 잘 알았다. 수술 예후가 좋은 것도 외과 수술이 기본이 되어서라는 것도. 그러나 정말로 약을 쓰고 어쩌고 하는 건 내과 범위였다.
“정말로 케어할 사람이 필요하면 내과의를 찾는 게 합리적입니다.”
금 사장이 뭔가 다시 말을 하려고 하자 능연이 아예 못을 박았다.
“나도 알아, 아네. 전에도 이야기했지 않나.”
금 사장은 조금 짜증이 났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비장이 잘리고, 간도 반 잘려서 지금 ICU에 있는데 그는 좀 전까지 술을 마시고 왔다. 짜증이 날 만도 했다.
그때 능연의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자 연문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능 선생, 손가락 네 개 잘린 아이가 병원으로 오고 있어.”
“금방 갑니다.”
종료 버튼을 누른 능연은 고개를 돌려 금 사장에게 수술하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금 사장이 대답하기도 전에 들고 있던 책을 여원에게 던졌다.
“수술실 갑니다. 이따 오세요.”
효율이 떨어져서 손가락 네 개를 하나씩 할 수는 없다.
잠시 머뭇거리던 금 사장도 역시 능연을 따라 응급센터로 향했다.
로비에 연문빈과 좌자전이 있었고 잠시 후 마연린과 여원도 달려왔다.
“무슨 상황인지 압니까?”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능연이 물었다.
“말썽꾸러기가 폭죽을 개조해서 놀다가 손가락이 날아갔대. 얼굴이랑 목에도 화상을 입었고. 보호자가 간장이랑 치약을 발랐다나 봐.”
연문빈이 전화로 들은 소식을 간단하게 정리했고, 능연 팀만 어안이 벙벙해졌을 뿐 아니라 곁에 있던 의사, 간호사도 걸음을 멈췄다.
“애만 문제가 아니구만. 보호자도 똑같아. 화상에 간장이라니? 감염 촉진제야 뭐야.”
“치약도 마찬가지지.”
“보통 하나만 하지 않냐? 둘 다 쓰는 집이라니, 대체 뭔 생각이래?”
“이중 보험인가 보지. 완벽한 감염에 대한.”
젊은 연문빈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말에 분통을 터트렸다.
“지금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화상에 간장 바르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그것도 못 하냐.”
“부모다 보니 그런 거 생각할 겨를 없었겠지. 급했을 테니까.”
좌자전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근데 무슨 폭죽이길래 한 번에 손가락 네 개를 날려?”
여원이 자기 앞에 얼굴만 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물었다.
“클 필요도 없어. 유리병에 흑화약을 넣은 거야. 병에 2, 30%만 채우면 돼.”
연문빈은 최대한 감정 없는 말투로 전화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애가 소리를 크게 듣고 싶다고 춘절에 쓰고 남은 폭죽 안에 화약을 넣었는데 불붙였다가 잘못된 거지, 뭐.”
연문빈은 목을 움츠리면서 말을 이었다.
“잘린 손가락을 보호자가 찾긴 했는데, 구급 요원 말 들어보니까 상태가 장난 아니래. 사진 보냈더라.”
연문빈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열어서 모두에게 보여줬다.
“수술실 준비하죠.”
능연은 사진을 보고도 별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그랜드마스터급 단지 이식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개조 폭죽이 아니라 더한 것에 잘린 손가락도 처리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손상이 심한 단지 이식은 제 기능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꼭 의료 기술에 달린 것은 아니었다.
능연이 한가해지면 다시 설득해보려고 따라왔던 금 사장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핸드폰에 피범벅에 된 사진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의사 몇 명이 심각한 얼굴로 능연 뒤에 선 걸 보고는 설득할 말을 잃었다.
“단지 환자 3분 후 도착합니다.”
접수대 간호사가 간단하게 보고하고는 서둘러 다른 전화를 받으러 사라졌다.
연문빈과 여원이 다급하게 구급차를 맞으러 가서 장갑을 낀 채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구급차가 금세 도착했고, 레지던트 하나가 뒤에서 밀고 나와 차 번호를 힐끔 보더니, 복부 경련 환자를 받아 갔다.
“변비 때문에 일어난 분변 경색일 거야.”
스트레처 카에 실려 가는 환자를 바라본 여원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좋은 생각 좀 하면 안 되냐?”
연문빈이 다시 앞으로 나가 자리 잡았다.
“네가 아니라 일반 외과에서 똥 꺼낼 건데 뭘.”
“응급의학과 선택한 게 운이 좋았던 거네? 왔다.”
“너희 꺼 아니다.”
턱을 치켜들고 연문빈이 하는 말에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레지던트가 앞으로 돌아 나와서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였다.
“차 번호 뒷자리 820, 급성 충수염 의심 환자야.”
“요즘 뭐냐. 충수염에 장 경색에, 폭죽까지. 지금 여름 아니냐? 여름은 더위 먹고, 감기, 썬번 이런 거잖아. 이런 건 다 어디 갔어.”
“응급 내과로 갔지. 뇌출혈, 뇌졸중도. 너도 조심해라, 응급실에서 돌연사하지 말고.”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레지던트가 연문빈의 다크써클을 힐끗 보며 말했다.
“난 돌연사해도 족발 위에서 할 거야.”
연문빈이 이를 악물며 강한 척하는 모습에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레지던트는 연문빈 코앞에 손을 휘휘 내저으며 무시했다.
“야, 무균 주의!”
여원의 말에 연문빈이 전방을 주시하며 한참 조용히 있었다.
곧 나타난 구급차도 단지 환자가 아니었다. 원래 운화 시에서 우수한 응급의학과이었던 운화병원은 응급센터로 승급한 후 스스로 찾아오는 환자도, 구급차로 오는 환자도 모두 늘었다.
아직 응급센터가 전면적으로 운용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그랬다. 곽종군이 구상하는 바에 따르면 120 관리권이 그에 손에 떨어지는 날엔 응급 환자 배분은 모두 운화병원 응급센터에서 결정할 것이고, 다른 병원 응급의학과는 자연스럽게 응급센터 아래가 된다. 그러면 거리가 가까운 급한 환자를 받거나 운화병원에 필요 없는 환자를 받거나, 아니면 자기네 진료과를 잘 발전시켜서 더 좋은 방법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곽종군의 생각일 뿐이다.
대규모 삼갑병원 응급의학과도 그런 권력을 얻으려면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인구 천만 넘는 운화 같은 시는 더욱 힘들다.
한편 운화병원 응급센터 실제 규모는 아직 크지 않았다. 지금 응급의학과 의사와 간호사는 이미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여기에 부담이 더 늘어나면 인원을 두 배로 늘려도 모자랄 것이다.
“야, 우리 구급차 차 번호 몇 번이야?”
“안 물어봤어?”
연문빈이 기다리다가 짜증을 내자 여원이 되물었다.
“네가 물어본 거 아니었어? 아 짜증 나.”
멈칫하던 연문빈은 핸드폰을 꺼내고 싶어도 장갑을 끼고 있어서 꺼낼 수가 없었다. 여원은 성질 급한 연문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단지 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2분 늦게 도착했고 뒷문을 열자 이미 다급할 대로 다급한 보호자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선생님’을 불러댔다.
“혈압하고 심박은요?”
제일 먼저 뛰쳐나간 여원이 손으로 보호자의 얼굴을 막고는 구급 요원에게 물었다.
“잘린 손가락은 다 찾았나요? 연 선생한테 주세요.”
의사들이 즉시 다급하게 움직이자, 보호자들도 말을 자르지 못하고 곁에서 중얼거렸다.
“선생님, 손가락 잘 붙일 수 있죠? 아직 어린애예요. 손가락이 잘못되면 인생 끝난다고요.”
“가족 몇 명 오셨습니까?”
데리고 가도 된다고 연문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여원이 냉랭한 표정으로 보호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둘이요.”
“한 분은 여기서 사인하시고, 한 분은 가서 수납하세요. 외상에 간장 바르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세요?”
“안 된다고요?”
보호자가 멍해졌다.
“안 됩니다. 간장 바르면 감염이 가속됩니다. 자, 한 분은 저랑 사인하러 가시고, 한 분은 어서 수납하세요.”
여원의 말이 점점 빨라지자 여자가 머뭇거리더니 남자를 툭 밀고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저기, 선생님. 먼저 일부만 내면 안 되나요?”
여원과 연문빈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앞으로 나갔다. 병원에서 오래 있었던 만큼 무슨 일인지 짐작 갔다.
“됩니다. 기초생활 수급이면 수납에 이야기하세요. 그린웨이 처리됩니다. 단지 이식 비용은 비싸지 않아요. 보험 있으면 더 낮아지고요. 수술하실 능 선생 실력이 뛰어납니다.”
“아니, 그게 아니에요. 치료비는 낼 수 있어요. 전 아이 고모랍니다. 동생이 이혼해서요. 그런데 돈을 혼자 낼 수는 없잖아요. 그 여자는 만날 애 뭐 사줘야 한다고 돈 돈 거리더니, 보세요 애를 어떻게 키워놨는지요. 이제 애 수술해야 하는데 그 여자한테도 돈 받아야지요. 안 그래요?”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은 여자는 동생 이혼할 때 이런저런 이야기까지 다 이야기했다.
서로 마주 보던 여원과 연문빈은 무심결에 고개를 숙였다. 아직 레지던트라 경험이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