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수술실에서 바쁘지도 않은 김에 원래 조수들이 해야 할 기계와 기구 검사를 한 바퀴 끝냈다.
“능 선생님은 참 열심이세요. 주치의들은 시트 깔기 싫어서 난리인데.”
일부러 순회 간호사로 들어온 유 간호사가 능연이 일하는 걸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돼요?”
“그럴 리가요. 우리 응급의학과에서도 수술할 때 시트 안 깔아도 되는 의사는 주 선생님뿐인 걸요.”
병원에 일 년 넘게 있었어도 다른 수술실은 잘 모르는 능연이 묻는 말에 유 간호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부주임님은 안 깔죠. 잡일은 하급 의사들이 다하니까. 곽 주임님이 수술한다고 해보세요, 다들 시트 깔려고 난리일걸요?”
유 간호사가 계속 웃으며 말했다. 간호사가 보기에 의사들의 생태계는 유치원에서 벌어지는 다툼 같았다. 특히 외과 의사들은 더 뻔했다. 성질 급한 외과의는 유치원에서 신체 건장한 아이처럼 툭하면 다른 아이를 괴롭힌다. 그리고 약한 아이들은 한동안 괴롭힘당하다 보면 점점 습관이 되어 고분고분하게 강한 아이 심부름하며 그 아이 곁을 맴돌게 된다.
능연은 지금 더할 나위 없이 강했고, 특히 최근에 원감 사고 이래 의료진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료진이나 환자가 아닌, 수술복을 입고 하얀 상자를 든 황무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전에 모델을 하고 조금 잘생긴 편인 황무사는 런웨이 걷듯이 에어 타이트 도어 옆에 서 있었다. 온종일 웃고 있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황무사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가 웃고 있으면 조금 더 잘생겨 보이긴 했다. 만약 황무사 외모에 점수를 먹인다면, 열심히 화장하고 치장하고 옷도 제대로 입은 상황이라면 적어도 7점은 된다. 그리고 미소를 유지하면 2점이 플러스 된다. 그러니 웃고 있는 황무사의 베스트 상태는 9점이라 병원에서 득을 보면 득을 보지 손해 볼 일은 없는, 창서 제약 젊은 직원 중 스타 사원이었다.
“능 선생님, 안녕하세요. 기구 좀 가지고 왔습니다. 써보고 싶은 거 있으면 써보세요.”
황무사는 하얀 상자를 앞에 랙에 올리고 뚜껑을 열었다.
“오늘은 단지 이식 수술입니다.”
능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단지 이식에는 소모품을 거의 쓰지 않아서 정형외과에서도 중시하지 않아 종종 민영 병원으로 보내지곤 하는 항목이었다.
“새로운 바늘도 있습니다. 수입 티타늄 바늘 써보실래요? 종류도 많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능 선생님, 그냥 한 번 써보세요.”
헤헤 웃는 황무사의 말에 대답도 하기 귀찮은 능연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황무사가 계속 설득하려고 했지만, 입도 열기 전에 유 간호사가 고함을 질렀다.
“무사 씨. 능 선생님이 필요 없다잖아요. 잔말 말고 어서 나가요.”
유 간호사가 눈을 부릅뜨자 멈칫하던 황무사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유 간호사를 바라봤다. 간호사들은 항상 너그럽게 황무사를 대한다. 9점짜리 남자를 너그럽게 대하는 건 기본적인 사회질서였고, 황무사도 거기에 익숙했다.
그러나 모든 일엔 비교 대상이 있는 법.
능연 앞에서 9점짜리 남자는 짜고 난 술지게미 같은 존재라 거들떠보려는 사람이 없었다. 유 간호사 역시 그랬고 눈을 흘기며 무섭게 나가라고 했다.
“나갑니다, 나가요.”
깜짝 놀란 황무사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 문가까지 갔다가 기회를 이대로 포기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능 선생님! 바늘 그냥 공짜로 쓰셔도 돼요. 병원 목록에 있는 거라, 티타늄은 다 공짜입니다.”
“잠시만요.”
막 안으로 들어오다가 그 말을 들은 여원이 황무사를 잡아 놓고는 능연 곁으로 달려가 받침대를 놓고,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치켜들어서 능연에게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요 그럼 바늘 꺼내 보세요.”
능연은 바늘을 검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짜?”
“네. 우리 대리상에서 프로모션 명목으로······.”
황무사가 다급하게 설명했다.
“이거 소독 좀 하라고 하세요. 이따 써보죠.”
“네.”
자주 쓰는 아이템을 고른 능연은 유 간호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유 간호사는 익숙한 듯 손짓해서 황무사를 데리고 나갔다.
병원 의료진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존재에 익숙했고, 수술실 안을 들락거리는 제약회사 직원이 많았다.
자주 쓰지 않은 소모품은 병원이나 의사가 전화하면 직원이 바로 가져오곤 했다.
지방 삼갑병원 아래급 병원에서는 따로 소모품 창고를 지을 수 없거나, 있어도 작은 편이라 제약회사 직원이 작은 가방에 자재를 넣고 다니면서 제공하는 방식을 썼다. 보통은 전날 전화하면 다음 날 직원이 직접 자재를 들고 오고 간호사가 소독해서 수술대에 올린다.
그러나 바늘 같은 저렴한 재료는 싼 건 백몇 위안이고 비싸 봐야 천 위안 정도라 보통 소모품 창고에 두고 쓴다. 제약회사 직원도 바늘 하나로 잘 움직이지 않고 말이다.
물론, 시트처럼 모든 일엔 예외가 있다.
어떻게든 능연과 친해지려고 애쓰는 제약회사 직원은 수술실에 바늘을 들고 오는 일이 아니라 그보다 더 작은 것도 능연의 얼굴만 볼 수 있으면 기꺼이 하려 들었다.
곧 환자가 수술실로 들어왔고, 소가복이 가장 먼저 일어나 각종 검사를 하고 마취를 진행했다. 연문빈, 여원 등은 시트 준비를 시작했다.
능연은 환자를 검사하면서 환자의 상세를 살폈다.
손가락 네 개 단지 이식은 원래 난도 높은 수술이었고, 특히 폭죽으로 다친 손가락에 복잡한 상황까지 겹쳤으니 봉합 난도가 더 올라간다.
어린 환자 손가락에 결함이 있고 동맥 결함도 있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능연은 상태를 살피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막 찍어온 X-ray를 펼쳤다.
잠시 지켜보던 능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꺼냈다.
“왕해양 주임님한테 전화하죠. 이건 선생님들이 못 합니다. 혈관이 너무 얇아요. 검지는 포기해야겠네요.”
검지가 너무 심하게 날아가서 뼈가 부서졌을 뿐 아니라 중간 피부, 근건도 대량 훼손되고 화상 입어서 이따 데브리망할 때 박리해야 할 수도 있었다.
연문빈과 마연린은 실망한 표정을 드러냈다. 두 사람이 능연 밑에서 가장 오래 일했고, 그러니까 단지 이식을 제일 오래 해서 오늘 동시 수술을 한다면 두 사람이 집도할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손가락 혈관은 원래 얇은데 아이 혈관은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에 폭죽에 날아간 복잡한 상황이니 연문빈과 마연린 모두 잘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실습생들도 불러오세요.”
지시를 내린 능연은 다시 X-ray를 읽었다.
“MRI는 안 찍었나요?”
“MRI 기계 소독 중이라.”
능연이 수술대를 등지고 묻는 말에 여원이 대답했다. MRSA 덕에 각 진료과 모두 피해를 보았다.
“네. X-ray로도 기본적인 건 보니까요. 왕해양 주임님은 언제 오신데요?”
능연이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3분.”
“그럼 기다리죠. 사인은 다 받았죠?”
“두 개 받았어. 아이 부모 이혼했대. 애 엄마는 지금 운화에 없고. 그래서 아빠랑 고모한테 받았어.”
여원이 세심하게 설명하는 걸 들은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자의 외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애, 겨우 8살, 9살인 거 같은데?”
연문빈이 시트를 들추고 환자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8살쯤 됐겠지. 개도 안 물어갈 나이지. 이런 짓 할 만도 하다. 전에 위생병원에 있을 때도 이 나이 애들이 제일 신기했지. 설사해서 똥 싸다가 제 똥 맛본 애도 있었다.”
“왜 먹어요?”
좌자전의 말에 여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애잖아. 똥 맛도 냄새처럼 구린지 궁금했나 보지.”
수술실 사람들이 모두 홀린 듯 이야기를 들었고, 여원은 거의 숨넘어갈 듯 웃었다.
“냄새야 당연히 구리죠. 냄새는 미각이 아니라 후각이고.”
“애들이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코로 맡을 때랑 먹었을 때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겠지. 두리안처럼 그런가 생각했을 수도 있고.”
지겨워서 위생병원을 떠났지만, 어쨌든 청춘을 바쳤던 곳인 만큼 좌자전은 갑자기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근데 똥 먹었다고 왜 병원까지?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요?”
“아, 걔가 나중에 따듯할 때 맛본다고 개똥 먹어 보려다가 개한테 물렸어.”
연문빈이 이상하다는 묻는 말에 좌자전이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다들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데 에어 타이트 도어가 치익하고 열리면서 왕해양 주임이 들어왔다.
“다 있었군.”
웃는 얼굴로 팔을 들고 있는 왕해양에게 간호사가 다가가 수술복을 입혔다.
“폭죽이 폭발했습니다. 8살 아이, 손가락 네 개 절단.”
좌자전이 냉큼 나가 상황 보고했고 왕해양은 능연처럼 우선 사진을 보고 손을 살폈다.
“검지 못 쓰겠네.”
왕해양의 판단도 능연이 내린 것과 같았고, 능연보다 훨씬 단호했다.
말썽꾸러기가 직접 만든 폭죽의 위력이 실로 커서 거의 손안에서 폭발했고 뼈, 근건, 혈관까지 큰 손상을 입었으며 그중에 검지 손상이 제일 심했다.
“시도는 해볼 수 있는데, 회복 수준이 문제입니다.”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회복 수준이 우량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식해도 거기까지였다. 물론 모양을 잡는 것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모르는 사람이 뚫어져라, 바라보지는 않을 테니.
“능연, 이건 이위기양 해야 될 수준인데 해볼래?”
잠시 더 세심하게 살피던 왕해양의 건의에 능연이 순간 솔깃했다.
손가락 이위기양(異位奇養)이란 손가락을 우선 신체 다른 부분에 이식했다가 손가락 외상이 다 나으면 다시 손에 이식하는 걸 말한다.
이식을 두 번이나 해야 하니, 한 번에 끝내는 것보다 분명 효과가 떨어진다. 그래도 한 번 이식으로 회복될 수 없는 손가락에 기회가 있는 것만 해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저는 할 줄 모릅니다.”
“응? 못한다고?”
잠시 생각하다가 하는 능연의 말에 왕해양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왕해양은 갑자기 신이 나서 ‘가르쳐줄게’, ‘가르쳐주게 해줘!’라고 외칠 뻔했다.
“네, 못 배웠습니다.”
그의 그랜드마스터급 단지 이식은 손가락 한정이었고, 능연 생각에 손가락뿐만 아니라 팔뚝, 종아리, 귀, 코 등 다른 부위도 가능한 이위기양은 단지 이식과 전혀 다른 전문 기술이었다.
“일반 정형외과나 수부외과 의사는 이런 거 안 배우지.”
왕해양이 껄껄 웃었다.
“하지만 나는 할 줄 알지. 그럼 오늘 이위기양 지표를 정하고, 현장 지도를 한 다음에 몇 주 뒤에 다시 이기(二期) 수술을 하는 게 어떻겠나?”
능연을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왕해양은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몰랐다.
그런 점이 운화병원 수부외과가 엘리트 진료과가 될 수 있는 재산이었다. 다른 병원이었다면 이위기양 수술 한 건으로 10년은 우려먹을 수 있다.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능연도 조금 흥분했다.
“그럼 가서 환자 보호자한테 알리고, 뜻이 어떤지 물어보죠. 일단 우리는 나머지 손가락 이식하고 있을 테니. 좌 선생님, 가서 물어보세요.”
“네.”
“비용 절감해 준다고 해보게. 30이든 40이든 곽 주임한테 이야기하면 분명 OK 할 걸세. 능연, 자네가 전화하게.”
좌자전이 바로 수술복을 벗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왕해양이 그를 붙잡았다.
“이위기양 수술비는 비싸거든. 그리고 손가락 기양하는 기간에 케어도 신경 써야 하고. 좌 선생, 잘 설명해야 해. 이거 안 하면 지금 상태로는 절지해야 한다고 말이야. 이식을 강행해도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리고 이위기양 쪽이 형태 보존도 좋아.”
좌자전은 머릿속에 내용을 기억하면서 이번엔 걸음도 좀 늦춰서 움직였다.
이런 내용으로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