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65화 (346/877)

능연은 두 시간 남짓 써서 회진을 한 바퀴 마쳤다.

병원에 MRSA가 발생해서 퇴원할 수 있는 환자는 모두 퇴원했고, 수술량도 줄여서 병실에 환자가 별로 많지 않았고 복도에 있던 추가 병상은 모두 치운 상태였다.

능 팀은 하루에 네다섯 건 환자를 줄였고 지금은 아직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이번 주가 지나면 능 팀 구역에도 빈 침대가 제법 나올 것 같았다. 추가 병상이 아니라 정규 병상으로 말이다.

세 병실을 도는 동안 능연은 빈 침대 두 개를 발견했다.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치료 팀엔 3인실도 4인실로 늘리고 심하면 5에서 6인실까지 늘릴 때가 있었다. 임시방편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만큼 병상이 빡빡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특히 단지 이식과 아킬레스건 수술할 때는 환자 입원 기간이 길어서 병상이 언제나 모자랐다.

그렇게 비어있는 침대를 보는 능연은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 병실에서 나왔을 때 ‘진심 어린 감사’ 보물상자를 받은 것에 더욱 놀랐다.

앞에 두 병실에서 두 개, 그리고 세 번째 병실에서 하나, 모두 세 개의 진심 어린 감사 보물상자를 받았다. 그러니까 병실 하나마다 상자 하나가 나온 셈이었다.

능연은 복도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보면 미어터지는 병실이 진심 어린 감사를 얻는 데 방해가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병실 공간이 얼마나 중요하냐는 문제가 아니라, 수술이 순조롭고 케어가 잘 되어 환자가 이상적으로 회복되는 상황에서는 병실 공간도 중요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병원도 승급이 필요한 것이고. 대중의 요구는 항상 늘어가니까 말이다.

능연은 고민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능연을 따라 걷던 좌자전의 걸음도 느려졌다. 빈 침대를 보며 안 그래도 마음이 그랬는데 능연이 넋이 나간 듯 보이자 곁에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능 선생. 환자가 퇴원한 건 좋은 일이잖아. 이제 또 수술 시작하면 바로 환자 생길 거야.”

“맞아. 우리 팀은 수술도 빨리하잖아. 채우려면 금방 채우지 뭐. MRSA 때문에 이런 거니까, 그것만 지나면 바로 수술하자고.”

“소개받고 아킬레스건 수술받으러 오는 사람도 많은데, 지금 미루고 있어. MRSA 지나면 바로 늘 거야.”

연문빈도 냉큼 한마디 했고, 전공이 아킬레스건 수술인 마연린도 그쪽은 계속 주시하고 있던 참에 한마디 했다.

“전엔 다들 수술량 너무 많다고 투덜댔잖아요.”

“님이 지금 시무룩해 보이니까 그런 거지요. 게다가 수술 많이 하면 우리도 연습할 기회 많아지는 건데 뭐. 수입도 늘고. 아무튼, 앞으로 수술 빈도 좀 늘리면 침대는 금방 찰 거야.”

능연이 흘깃 보면서 하는 말에 좌자전이 능숙하게 다정하고도 솔직한 말을 했다.

“당분간 추가 침대는 늘리지 않은 쪽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수술하고 싶다면······.”

“능 선생! 좌 선생님은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래. 쉬는 거 좋아. 응.”

깜짝 놀란 연문빈이 사색이 되어 고함쳤다. 팀원 중에 가장 지친 사람은 역시나 연문빈이었다.

수술할 때 다른 사람은 세 시에 일어나 사전 준비하면 되지만, 연문빈은 새벽 한 시에 일어나 시장에 들러서 족발을 고르고 세 시에 출근해야 한다. 다른 의사는 회진하고 차트 쓰고 수술하면 되지만 그는 자신의 족발팀을 관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틈을 내서 결과도 없는 맞선도 참여해야 한다.

헬스로 몸을 잘 키워오지 않았다면 진작 못 버텼을 것이다.

그에겐 MRSA가 좋은 기회가 됐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의문이라는 듯 좌자전 한 번, 연문빈 한 번 바라보면서 두 사람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응, 내가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졌네.”

상황을 보니 능연이 정말로 수술을 늘릴 생각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좌자전이 재빨리 웃음을 터트렸다. 억울한 마음은 꾹꾹 눌렀다. 늙었다고 인정하면 되지, 뭐. 어차피 능 팀에서 늙을 대로 늙은 것도 맞으니까.

“그럼 당분간 침대는 늘리지 않는 걸로.”

능연은 침대 추가 없는 상태에서 진심 어린 감사 비율이 높아진다면 확실히 침대 추가량을 늘렸다 줄였다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담낭 절제 수술을 배워야 하는 것도 있어서 수술량에 대해 간절함도 덜하니 이 틈에 침대를 좀 놀리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의사들은 다들 얼굴이 활짝 폈는데 세 실습생은 울적해 보였다. 이제 실습이 곧 끝나는데 병원 MRSA 문제는 실습이 끝나기 전에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새 병원으로 가게 되면 그 병원에서 단지 이식, 간 절제 같은 수술을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그들이 얼마나 기다려야 참여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능연은 간담췌외과에 있는 환자도 한 번 둘러보고 난 다음에야 ICU로 향했다.

일반 병실에 있는 환자에 비해 ICU 환자의 상태는 보통 더 복잡하고 병세는 심각한 편이었다. 내과 의사는 ICU에 보낼 환자 차트를 오후 내내 쓴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외과 의사는 조금 수월했다. 특히 아랫사람이 있는 외과의는 차트를 모두 아래에 던지고 입으로만 설명하고 방안을 확정하면 되니 편한 편이었다.

환자를 ICU로 보내면 그때부터 ICU 환자가 되어 ICU 의사가 케어하고 일반 외과의는 그저 한 번씩 둘러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나마도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가서 본다고 해도 ICU엔 ICU만의 방식이 있어서 말해도 듣지 않아서 소용도 없었다.

그러나 능연이 가면, 내키지 않더라도 고분고분 곁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기술의 가치였다. 능연이 전에 하던 단지 이식이나 아킬레스건 수술은 임상 의학에서 비교적 무시 받는 정형외과 수술이었지만, 이제 시작한 간 절제 수술은 실력으로 거물 능력자 대우를 받을 만한 수술이었다.

일반 외과와 간담췌외과 부주임 의사였다면 차라리 ICU 의사도 수술 후 회복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라도 할 텐데, 북경에서 온 초빙 의사도 날려버렸으니 능연 앞에서는 말조심, 행동 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ICU 의사의 권력으로 다른 의사의 진료 방안을 거절할 수 있지만, 거꾸로 매달려서 거물 능력자한테 두들겨 맞는 건 그들이 바라는 근무 환경이 절대로 아니었다.

금 사장은 초조하게 ICU 밖에서 기다렸다. 전화 한 통이면 ICU에 들어갈 수 있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들어가도 의사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괜히 그들의 대화를 방해할까 봐 제일 걱정이었다.

“능 선생, 어떤가?”

능연을 본 금 사장은 지푸라기 잡는 듯 다급하게 물었다.

“안정적이라 뭐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그럼 호전된 건가?”

“별다른 일이 없으면 ICU에 며칠 더 있다가 일반 병실로 가도 될 것 같습니다.”

능연의 담담한 대답에 금 사장이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질문 몇 개를 더 한 금 사장이 드디어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능 선생, 퇴근 시간이 되어가네. 같이 밥이라도······.”

“집에 가야 합니다.”

물어볼 건 이제 없지만, 어쩐지 이대로 능연을 보내기 아쉬워진 금 사장은 시계를 보더니 말했고 능연은 능숙하게 단칼에 거절했다.

“그럼 내가 모셔다드리지.”

능연의 눈빛을 본 금 사장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설득해서 겨우 능연을 자신의 아우디 Q7에 태운 금 사장은 가는 내내 공손하게 그를 대했고 하구 골목 앞에서 떠오른 듯 가볍게 물었다.

“맞다, 능 선생 운전할 줄 아나?”

“네.”

“그럼 이 차 두고 가겠네. 차가 커서 뭐 싣기도 좋아.”

금 사장은 건설 회사에서 자주 쓰는 방법을 썼다. 차 한 대 빌려주는 건 이득도 많고 돈도 많이 안 드는 데다가 회수하기도 편했다. 선물인 듯 아닌 듯 효과도 좋고.

그러나 능연은 전혀 흥미 없다는 듯 대답했다.

“됐습니다. 자리만 차지해요.”

차를 선물하지 못한 금 사장은 온갖 불안에 휩싸였다.

그건 직업병 때문이었다. 공사를 맡았는데 뭘 줘도 안 받고 뭘 보내도 돌려보내는 책임자를 만나면 공사 내내 간을 졸이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운화병원 원장 어르신의 처남인 금 사장은 사실 의사들이 최선을 다한다는 걸 잘 안다. 원장에게 잘 보일 기회는 많지 않으니, 이 일을 얼렁뚱땅할 의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다고 꼭 가장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건 아니다. 금 사장이 바라는 건 최고의 의사가 자기 아들을 치료하는 것이고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로 Q7을 선물해도 하나 아까울 게 없었다.

이럴 때는 가성비를 따질 게 아니라 본인 능력 되는 한 최고를 찾아야 마음이 놓인다.

금 사장은 Q7을 몰고 하구 주변을 빙빙 맴돌면서 다른 운화병원 의사들은 안 그러는데 하필 능 선생 성격이 남달라서 문제라고 생각했다.

주차장을 지나던 금 사장은 차를 세우고 전화를 꺼내 발신을 눌렀다.

처음에 생각한 방법이 안 통했지만, 그저 조금 기운 빠졌을 뿐이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인인 금 사장은 세상에 정말로 선물 거절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