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67화 (348/877)

급하게 할 수술이 없고 회진도 급하게 할 필요가 없어지자 능연은 시간 맞춰 출근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러니까 부주임급 이상인 의사들의 기본 방식이었다.

그가 느긋하게 씻고 나왔을 때, 아래층 요리사들은 벌써 음식을 한가득 차려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멍하니 넋이 나간 금 사장은 동글동글 통통한 능결죽 옆에 가서 섰다가 본인이 상대보다 머리통 하나쯤 작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궁금한 듯 조상이 혹시 외국에서 온 거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좀 드시죠.”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도 요리······사 데리고 왔는걸요.”

금 사장은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성원 식당 요리사를 바라봤다. 능결죽도 요리사를 향해 우호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요즘 요리사 데리고 다니는 게 유행인가 봅니다. 핸드폰 어플 같은 건 저도 잘 모르는데 어플 배달이 좋긴 하네요. 직접 만드는 것보다 편하고, 맛있고. 이벤트 같은 것도 수시로 해주고.”

“아까 요리사를 직접 부른 게 아니라고요?”

금 사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아침 하나 먹자고 요리사를 그렇게 많이 부릅니까. 그 돈 있으면 매일 한 명씩 부르겠네요. 아니지, 사흘에 한 번이라도 좋겠네요. 죽은 내가 끓이고 요리사더러 만두나 좀 쪄달라고 하면 며칠 먹을 수 있잖습니까.”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능결죽의 말을 들으며 금 사장의 표정이 점점 변했다.

특별한 취향이 있는 특별한 사람을 참 많이 만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요리사 12명을 불러 아침 먹는 이런 특별한 일은 검소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닌 것 같긴 했다.

“그러니까, 배달을 시켰는데 요리사가 12명이나 왔다는 말씀인가요? 얼마인데요?”

“30 얼마일걸요? 죽 1인분, 그리고 찐빵 몇 개가 비싸 봐야 얼마 비싸겠습니까. 더 비싸면 말이 안 되죠. 그렇지, 아들?”

능연을 본 능결죽이 손짓하며 아들을 불렀다.

“네, 죽이랑 찐빵 시켰어요.”

뒷이야기만 들은 능연은 부친의 말에 대답하고는 길게 말할 생각이 없는 듯 금 사장, 황무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말수가 적은 능연은 아침에는 말수가 더 적어진다.

그는 알아서 테이블로 가서 앉아 ‘먼저 먹겠습니다’하고 외치고 찐빵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능가는 거창한 식사 예절이 따로 없었다. 외국처럼 다 같이 손잡고 기도하지도 않고 중국인 전통대로 어른이 먼저 젓가락을 들어야 먹지도 않는다.

능가는 항상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었다. 능가 진료소는 예전엔 매우 바빠서, 능연 할아버지고 능연 부친이고 툭하면 밥 먹다가 불려가곤 했다.

환자가 부르는 이유는 다양했다. 수액을 다 맞아 간다거나, 바늘이 빠졌거나 혹은 시트나 베개를 바꾸고 싶거나, 머리통이 깨질 것 같거나, 정원에 고양이가 들어왔거나, 그럴 때마다 불러댔다.

작은 진료소 의사나 사장은 일의 경중이나 다급함을 가리지 않고 부르면 가는 게 일반적인 룰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점심이나 저녁때 사람이 많이 몰려서 다 같이 둘러앉아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작은 진료소 환자는 모두 구역 내 주민이었고, 노인 외에 성인들은 보통 출근 시간이 아닐 때 진료를 받았다. 그러니 점심 식사, 저녁 식사 시간이 환자가 가장 몰리는 시간이었다.

혼자 밥 먹는 게 익숙한 능연은 금 사장과 황무사를 보고도 부르지 않고 알아서 죽을 떠서 깨끗하게 씻은 손으로 찐빵을 잡고 먹었다.

“죽이 향긋하네.”

“숯불로 끓인 거라 그렇습니다. 숯불 화로를 들고 오는 동안 숯불이 흔들리니 죽도 흔들렸을 테고, 그럼 계속 저어주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거기에 가열도 균일하게 해주니 죽이 잘 끓여진 거죠.”

능결죽이 코를 벌름거리며 하는 말에 성원 요리사가 말했다. 그도 실력 있는 요리사인 만큼 멀리서 지켜봐도 상대의 요리방식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럼 주방에서 끓인 거보다 맛있겠네요?”

황무사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옛날에 음식을 메고 다니면서 팔던 걸 무시하면 안 됩니다. 평생 한 가지만 팔잖습니까. 만날 연구하지 않아도 그럴싸한 기술이 나와요.”

성원에서 온 주방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역시 사람이 직접 하는 게 최고고요. 특히 남쪽은 돌바닥이 많잖아요. 흔들흔들 걸으면서 음식이 잘 섞이는 거죠. 요즘은 자전거로 배달하니까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런 게 좀 약해요.”

능연은 그릇 바닥을 불면서 죽 한 그릇을 싹 비우고 다시 한 그릇 채웠다.

능결죽 씨는 망설이지 않고 죽을 퍼서 찐빵과 반찬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배를 내밀었다. 황무사는 냄새를 맡으며 테이블 옆으로 다가가 웃으면서 능결죽의 그릇을 채워주고는 그 김에 자기도 한 그릇 퍼다 앉았다.

“금 사장님도 오세요. 같이 들어요.”

황무사가 원장 처남을 향해 손짓했다. 딱히 관계를 맺을 순 없을 것 같지만, 적어도 좋은 인연은 맺어서 나쁠 건 없었다.

사람들은 정원 테이블에 둥글게 앉아 후르륵 쩝쩝 신나게 테이블 가득한 음식을 비웠다.

“오늘은 몇 시 출근?”

배불리 먹은 능결죽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편안하게 차를 마시며 물었다.

“책 다 읽은 다음에 가려고요.”

능연은 밤새 책을 읽느라 스태미너 포션을 마셨었다. 스태미너 포션을 점점 더 많이 얻을수록 활용 범위도 넓혀갔다.

“쉴 수 있을 땐 좀 쉬어둬. 점심 전에는 갈 거지?”

“네······.”

쉬랄 땐 언제고 한마디 더 붙이는 능결죽의 모습에 능연이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응. 그럼 됐다. 네 엄마랑 점심때 이탈리아 레스토랑 예약해 뒀거든. 그리고 인테리어 업자도 올 거고.”

“인테리어 하십니까?”

금 사장이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

“예.”

“진료소 인테리어는 상업 리모델링 아닙니까. 제가 그거 합니다. 원래 좀 큰 규모만 하지만, 능 선생 집 일이라면 제가 해야죠. 분명히 지금 찾은 회사보다 잘하고 빠르고 더 쌀 겁니다.”

말투까지 유창해져서 하는 금 사장의 말에 능결죽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금 사장은 눈썹을 치켜뜨며 능연을 바라봤다.

“지금 어디랑 이야기 중입니까?”

“보림 설계 사무소입니다.”

“보림이요? 운화 보림?”

능결죽의 대답에 금 사장 목소리가 한 옥타브는 올라갔다.

능결죽이 고개를 끄덕이자, 금 사장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보림 설계에서 작은 사무실 인테리어를 맡겠다고 한 것만으로 가격은 논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좀 어떤가요?”

“가스는 나왔나요?”

“푹 쉬세요.”

연문빈, 여원 등은 각자 실습생 하나를 데리고 회진을 했다.

외과 회진은 특별할 거 하나 없었다. 특히 레지던트들의 회진은 절개구를 살펴보고 약을 새로 발라주고 하면 환자 하나는 끝이다.

가장 신경 쓰는 건 다름 아닌 수술 후 환자가 가스를 배출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였다.

가스가 나온다는 건, 장이 움직인다는 것이고 수술 중 남은 기체도 배출된다는 것이다. 즉 수술 후 정상적으로 회복 중이란 얘기였다. 가스가 나오지 않으면 의사들은 장이 뒤틀렸나?, 장 점착이 생겼나? 수술할 때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을 건드렸었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게 된다.

다행히 능연 수술은 항상 예후가 좋아서 상처가 잘 안 붙거나 가스 배출이 없는 환자는 거의 드물어서 연문빈이나 여원 같은 약체가 담당하기 좋았다.

다른 수술팀이었다면 이런 수술량에 레지던트 둘은커녕 서너 명 더 투입해서 온종일 회진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

처음에 능연이 단독으로 팀을 맡을 때 병원에 반대하는 소리가 별로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치료팀엔 산더미 같은 일이 있고 대부분은 환자 목숨과 앞으로의 생활 퀄리티에 연관되어 있어서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제대로 컨트롤 못하는 게 정상이고, 제대로 컨트롤 하는 데다가 잘하기까지 하는 건 이미 평범한 의사가 아니다.

능연은 좌자전을 데리고 우선 간담췌외과를 한 바퀴 돈 다음 ICU로 향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금 사장이 냉큼 달려와 그를 맞았다. 처음엔 능연이 자기 아들을 24시간 케어해 주길 바랐었다. 원장 처남인 그는 의사 하나 따로 초빙해서 한두 달, 혹은 두세 달 드는 돈으로 아들의 건강한 몸을 바꾸는 건 타산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능연이 끝까지 맡으려 하지 않으니 할 수 없이 다른 의사를 찾긴 했어도, 금 사장은 여전히 매우 좋은 태도로 능연을 대하면서 이런저런 의견을 자주 물었다.

그가 그렇게 하니 다른 ICU 환자 보호자들도 질문을 많이 하게 됐다.

운화병원은 3급 회진 제도를 채택해서 평소 회진은 담당 레지던트가 했고, 치료팀 리더가 회진하는 빈도가 낮았다. 그래서 다른 레지던트보다 회진을 적게 하는 능연은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계속 호전되고 있습니다. 며칠만 있으면 일반 병실로 갈 수 있어요.”

금학진의 각 데이터를 본 능연은 낙관적인 답을 내놓았다. 응급의학과에 사고로 다친 젊은 환자들은 대부분 고질병 환자보다 빨리 회복되었고, 금학진은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매우 빨리 회복되었다.

다른 ICU 의사에게 그런 말을 듣지 못했던 금학진은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물론 왜 ICU 의사들이 자신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좋은 소식을 전했다가 나중에 그 좋은 소식이 나쁜 소식이 되는 위험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능연은 할 말 있으면 하는 스타일이라 간단하게 바로 답을 내놓았다.

금 사장이 멍해진 사이, 능연은 걸음을 돌려 엘리베이터에 올라 바로 수술 층으로 향했다.

입원 병동 수술 층은 응급센터에 있는 수술실 4개에 비해 면적이 매우 넓었다. 수술실이 10개 정도 많을 뿐만 아니라 자재실, 약 보관실, 혈액 창고, 소독 제품 센터 등도 있었다.

손 세척실만 해도 입원 병동 수술 층에 10개 넘게 있었다.

능연은 익숙한 듯 코너를 돌아 탈의실로 들어가 문 앞에 간호사에게 수술복을 받아 갈아입고 자기 옷은 락커에 넣었다.

운화병원 수술실 규칙으로는 락커는 모두 공용이었고 충분히 돌아가며 사용할 수 있었지만, 부주임 이상 의사는 의사들에게 해당 락커 열쇠를 주고 돌려받지 않음으로써 개인 락커를 묵인했다.

능연은 응급센터 수술 구역에 진작에 개인 락커가 있었고, 북경에서 온 초빙 교수 사고 뒷수습을 한 후 수술 구역에도 개인 락커가 생겼다.

능연은 개인 락커에 있던 새 속옷으로 갈아입고 좌자전과 합류했다.

“간담 수술?”

“담낭 응급은 다 남겨뒀대요. 일단 두 개 정도 하면서 손 풀죠.”

간담췌외과는 지금 능연이 가고 싶을 때 가서 놀 수 있는 능연의 뒷마당이 되었고, 간담췌외과 의사도 수술을 놓고 능연과 경쟁하지 않았다. 어차피 능연은 수술비, 약값도 받아 가지 않았고 자재 비용도 나눠가려고 하지 않아서 공짜로 일해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유일한 문제는 수술 사인 문제였는데, 능연이 집도한다고 하는데 사인을 망설일 의사는 하나도 없었다.

대다수 야망 없는 의사는 능연 같은 의사가 수술도 하고 돈도 나눠주니 그야말로 행복하고 기분 좋아했다. 그리고 야망 있는 의사는, 능연의 수술에 참여할 수 있는 걸 당연히 더욱 기꺼워했다.

능연이 아직 담낭 수술에 노련하지 않다고 해도, 해부 구조에 대한 남다른 처리만 봐도 수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좌자전이 능연을 따라 수술실에 들어갔더니 장안민이 벌써 환자 시트를 깔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능 선생.”

장안민은 꽃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고 능연은 우선 환자와 모니터를 보고 입을 열었다.

“벌써 마취했어요? 얼마나 됐어요?”

“이제 10분 됐어.”

“전화하시지.”

“님이 우리 병실에서 회진하시는 거 같아서요. 올 때 된 거 같아서 그냥 기다렸지요. 몇 분 있다가 안 오면 하려고 했어.”

장안민이 마지막에 덧붙이는 말에 능연은 별말 없이 몸을 돌려 사진을 바라봤다.

“뭐 알아둬야 할 거 있나요?”

“이번 담낭 수술은 특별할 게 없어. 환자 나이가 좀 많은 거 빼고 기본 상황 다 괜찮아. 62세야.”

장안민에게도 복강경 하 담낭 수술은 간단하기 짝이 없고, 누구나 백 번 이상하면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수술이라 그저 간단하게 몇 마디 설명할 뿐이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벽에 붙은 사진을 확인했다. 장안민의 말대로 표준적인 담낭 수술이었다.

“으음, 그런데 우리 과에 특별한 환자가 들어왔지.”

“오? 어떤 환자인데요?”

“거대 양성 간 종양이야.”

“벌써 받았어요?”

장안민이 눈썹을 치켜들며 하는 말에 능연이 역시나 흥미가 생긴 표정으로 물었다.

간 종양도 능연의 간 절제 스킬 커버 범위 안이었다. 당분간 간암 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결정 내린 지금, 거대 양성 간 종양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고급 수술이었다.

정말로 거대한 양성 종양이라면 난도가 간암에 뒤지지 않는다.

장안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CT 해 봤더니 16cm 길이 종양이 발견됐어. 우리 병원에서 발견된 양성 종양 중에도 드문 크기야.”

주임 하원정이 본인이 직접 수술을 할지 말지 아직 고려 중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안민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미 간담췌외과에서 밀려났고, 하원정의 기분을 살피느니 차라리 능연의 기분을 살피는 게 나았다. 적어도 능연은 출장 수술도 데리고 가 주니까.

“일단, 이 수술하고 끝나면 병실에 가보죠.”

“바로 간다고?”

“아니면요?”

좌자전이 끼어들어 묻는 말에 벌써 소독을 시작한 능연이 물었다. 좌자전은 서드 어시스던트라서 할 일이라곤 곁에서 서서 보는 것이 다여서, 수술실 다른 사람을 살피며 나지막이 말했다.

“능 선생이 바로 환자를 만나는 건 규칙에 안 맞아.”

“무슨 규칙이요?”

되묻는 능연의 모습에 좌자전이 멍해졌다. 그가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것 역시 패기였다.

“아니면 내가 가서 이야기해 볼게.”

좌자전은 싱긋 웃어 보이고 몇 걸음 물러나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능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모니터를 바라보며 열심히 담낭 절제 수술에 집중했다.

주치의 신분으로 레지던트인 능연의 조수를 하면서도 장안민은 달가워했다.

솔직히 능연의 담낭 절제 수술 수준은 평범했지만, 복강경 다루는 것과 해부 구조에 대한 이해는 장안민이 이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인체 해부 구조에 익숙하게 된다는 건 사람을 동호수가 없는 건물에 던져놓고 쓰레기통 하나만 보고 본인 현재 위치와 방향을 확정하면서 위층 아래층 다른 정보도 말하라는 것과 같았다.

다른 레지던트는커녕 주치의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부주임 혹은 주임 의사도 거기까지 익숙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능연은 가능했다.

그 점만으로 장안민은 감탄했고, 그 점만으로 능연이 어떤 복강 수술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결과도 훨씬 좋고.

일반적인 담낭 수술은 바로 장안민 같은 연차 낮은 주치의가 하고 그러다가 연차가 높아지면 담관을 하거나 간을 하거나 하게 되고, 여전히 담낭이나 하는 건 담낭을 전공으로 삼으려는 의사일 것이다.

같은 의사라면 수술을 잘하면서도 연습도 꾸준히 하는 능연 같은 의사가 가장 무섭다는 걸 안다. 어느 날 어느 강연 단상에 서서 누군가가 이삼 년 고생고생해서 쓴 논문을 개똥처럼 너덜너덜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안민은 간담췌외과 주임 하원정이 절대로 능연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아무리 장안민이 진료과를 배신해도 능연만 있으면 하원정이 스스로 골칫거리를 만들 일은 하지 않으리라고.

“이 정도면 됐습니다.”

능연은 잘라낸 담낭을 비닐백에 넣어 환자 배꼽에서 빼냈다.

“이따 가족들한테 보여줄게.”

장안민이 냉큼 트레이로 받으며 말했다. 완전하게 빼낸 담낭은 의사의 실력을 증명하기 좋았고, 장안민은 그 김에 집도의 능연 님에게 잘 보일 궁리를 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여 그러라고 한 다음 말을 이었다.

“그 거대 종양 차트 보내주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릴게요.”

“아, 아. 어.”

장안민은 마무리 봉합을 직접 하지 않고 수술 내내 할 일이 하나도 없던 조수에게 넘기고는 수술실 컴퓨터에 접속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어 거대 종양 환자 차트를 불러냈다.

운화병원은 환자 차트 관리가 엄한 편이고 담당 치료팀 의사만 열어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차트 관리 시스템도 의사들의 게으름을 이길 수 없었다. 장안민 같은 연차 낮은 주치의도 간담췌외과에서 벌써 10년은 지냈고 거의 모든 치료팀 아이디와 비밀번호 두어 개는 알고 있으니 열고 싶은 대로 열면 그만이었다.

하원정의 경력이 짧아 간담췌외과에서 위신이 부족하고 제대로 아랫사람을 관리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비뇨기과같이 관리가 엄격한 진료과는 주임이 보통 몇 가지 수술방식을 꽉 쥐고 있어서 그 수술방식으로 수술한 환자 차트 관리도 더욱 엄격하게 진행하곤 했다.

능연은 컴퓨터 앞에서 사진 보는 데만 집중했다.

환자 뺏고 뺏기는 일 같은 건, 그는 당연히······ 안다.

그러나 그는 환자를 뺏으면 안 된다는 규칙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각, 조퇴 금지.’ ‘점심 식사 때 계란은 한 개만.’ 같은 규칙은 항상 능연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대부분 능연이 일부러 깨뜨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알아서 깨기 때문이다.

장안민은 환자 담낭을 들고 빠르게 수술 구역을 나가 초조하게 기다리는 환자 가족 앞에 내밀었다.

“수술은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출혈량도 60cc가 안 됐고, 수혈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호자들은 뜨끈뜨끈한 담낭을 보고 싶지만 또 볼 엄두는 못 냈다.

“네 엄마, 어쩐지 만날 으르렁거리면서 옆집 개를 밟아 죽이겠다니 하더라니. 이것 보렴, 담이 이렇게나 크구나.”

환자 남편만 잠시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는 자식들을 향해 말했다.

“엄마는요? 이제 괜찮아요? 수술실에서 나왔나요?”

환자의 딸은 부친을 전혀 상대하지 않고 초조함에 가득해서 안쪽을 흘끔댔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런 보호자의 마음을 잘 아는 장안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나올 겁니다. 이따 간호사가 병실에서 자세히 설명할 거고요. 전에 말씀드린 건 다 기억하고 계시죠?”

“네.”

“됐습니다. 그럼 다들 돌아가세요. 수술도 순조로웠으니 이제 괜찮습니다.”

장안민은 빨리 능연에게 돌아가고 싶었는데, 환자 보호자의 모습을 보니 바로 가기도 좀 그랬다.

다행히 환자가 금방 밖으로 나왔다. 배꼽 꿰매는 것 정도는 모양이 그다지 안 예뻐서 그렇지 레지던트도 금방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간호사랑 같이 병실로 가세요. 신경 좀 쓰시고요.”

장안민은 한마디 더 하고는 다급하게 수술 구역으로 돌아갔다.

능연은 벌써 환자 자료와 사진을 다 읽었다. 담낭 제거술은 스스로 익힌 것이라 시스템 기준 ‘입문’ 수준을 막 통과했고 전문가급과는 아직 차이가 났다. 운화병원 연차 높은 레지던트 수준이었고, 복강 해부 같은 스킬이 있어서 조금 괜찮은 정도였다.

그러나 간 절제 방면에는 당당한 마스터급이라 운화병원에서는······ 운화병원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었다.

운화병원 간담췌외과 주임 하원정의 간 절제 스킬도 능연과 비교하면 고급 전문가급에 불과했다.

컴퓨터의 정보를 보면서 능연은 벌써 머릿속으로 거대 종양 절제를 상상하고 있었다.

“능 선생.”

“MRI는 왜 안 하셨어요?”

장안민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자 능연은 질문부터 던졌고, 장안민은 숨을 고르면서 대답했다.

“환자가 농촌 조합 보험밖에 없어서. MRI는 환자 부담금이 크잖아, 그래서 환자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다고 해서.”

“해야 합니다. 좌 선생님, 가족하고 이야기하고 오세요.”

능연이 망설임도 없이 하는 말에 이제 막 수술실로 다시 들어오던 좌자전이 잠시 멈칫하다가 대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보호자와 이야기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다. 보호자와 이야기 나눌 때 감정이 동요되는 일이 있긴 해도, 의사는 대화 주도권을 쥔 쪽이니 말이다. 보험이나 비용 같은 문제라면 의사가 강하게 설득하면 환자 측은 결국 동의하게 된다.

환자 치료라는 게 원래 간단하고 저렴한 작업이 아니다.

“아, 그리고 하 주임님이 원칙적으로는 이 환자 우리가 수술하는 거 동의하셨어.”

“네.”

좌전이 고개를 돌려 하는 말에 능연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원칙적이라는 게 뭔가요?”

장안민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환자를 간담췌외과에 남겨둘 것. 그리고 수술에 참여하고 싶으시대.”

“그러라고 하세요. 퍼스트 하시면 됩니다.”

좌자전은 능연을 힐끔 봤고, 능연은 남이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에 반감을 보일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 큰 간 종양이니 퍼스트 어시의 역할과 부담이 커서 좌자전이나 연문빈 같은 초짜 레지던트가 맡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장안민은 조금 아쉬웠지만,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원래 하 주임조차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그 정도 크기의 간 종양이라면, 정상급 의사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간 이식을 선택하는 게 정상이었다. 아무리 잘 된 간 이식이라도 해도 본인 간보다 좋을 리 없고, 제공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수술로 떼어내지 않는 건, 수술이 어렵고 환자 생존율이 낮기 때문이었다.

능연이 수술하게 해주면 장안민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지만, 하라는 말 없는데 스스로 나서기는 그랬다.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하원정과 좌자전이 나란히 있으니, 마흔 넘은 하원정은 젊고 기력 있는 모습이었고 같은 마흔 넘은 좌자전은 옆에 있는 사람 아버지 같이 늙었지만, 의욕은 넘쳐 보였다.

면담실에 들어온 보호자들은 두 사람을 보고는 흠칫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 주임님, 원장님.”

“하하, 앉으시죠. 일단 앉으세요. 이분은 좌 선생입니다. 좌 선생이 설명해 드릴 겁니다.”

하원정은 싱긋 웃으며 자리를 좌자전에게 내주었다.

아무래도 속으로 기분은 좋지 않았다. 능연이 집도하겠다는 건 어쩔 수 없었고, 퍼스트 어시 자리를 준다고 하니 나쁜 일도 아니었다. 사실 어차피 외부에서 의사를 초빙하고 자기가 지켜보면서 진행해야 할 수술이었다.

하원정처럼 거대 간 종양 수술 경험이 별로 없고 자신감도 없는 의사는 직접 수술했다가 환자는 수술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본인은 체면이 엉망이 될까 두려웠다.

그 방면 전문가를 초빙해서 대타 수술을 하면 달라진다. 하원정이 직접 한다고 해도 능력자가 곁에서 지켜보다가 잘 못 된 곳이 있으면 지적할 것이고 정 안 되면 능력자가 직접 나서면 된다.

이런 출장 수술은 의사들이 학비를 내고 과외 선생을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과외 선생이 하원정에게 직접 집도할 기회를 줄지 안 줄지는 몰라도, 어쨌든 상의할 기회는 있다.

지금은 능연이 바로 집도 자리를 가져가고 하원정이 조수를 맡았다. 운화병원 간담췌외과 주임인 하원정으로서는 조금 걸리는 일이었다.

능연의 나이가 너무 어리고 경력이 너무 없는 게 큰 원인이었다. 그리고 하원정은 좌자전이 더 못마땅했다.

능연이 직접 와서 이야기했다면 그나마 본인도 나서서 보호자를 같이 상대했겠지만, 좌자전이 왔으니 본인이 그럴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다.

환자 보호자가 열 몇 명이나 몰려오고, 그중 몇 명은 상대하기 쉽지 않아 보였지만, 하원정은 전혀 망설임 없이 좌자전을 던져넣었다.

사인할 가족은 약한 모습을 보이고 같이 온 친척들이 강하게 나오는 건 초짜 의사들이 자주 겪는 일이다.

하원정은 곁에서 좌자전이 망신당하는 걸 보고 싶기도 하다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좌자전은 눈앞에 몰려 있는 가족들을 보며 머릿속으로 갖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이런 환자는 사실 그가 제일 익숙한 환자였다.

마을 병원에 오는 대다수 환자와 보호자는 마을에서 경제 조건이 가장 안 좋은 사람이기 마련이었다. 조금만 돈이 있고 능력이 되면 다들 현이나 시 병원으로 갈 테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외딴 산골에서 온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중간에 끼어있는 건장한 나이 많은 남자처럼 말이다.

그 외에 시끌벅적 누런 이를 드러낸 사람들도 좌자전이 익숙한 유형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마을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들일 거고 병원에서 골치 아파할 잠재 요인을 가졌을 것이다.

좌자전도 처음엔 그런 사람 때문에 골치가 썩었지만, 지금은 친밀감도 들었다.

좌자전은 속으로 웃으면서 마을 위생병원에서 자주 보이던 표정을 지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앞으로 한 발짝 나가 목소리를 높여 고함쳤다.

“다들 조용히 하세요! 직계 가족만 남고 나머지는 다 나가세요. 직계가 뭔지는 아시죠?”

의자 앞에 몰려서 까치발을 들고 귀에 담배를 꽂고 손에 든 스테인리스 공을 만지작거리던 사람들은 순간 좌자전의 모습에 놀라 멈칫했다.

마을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라도 병원은 두려워하기 마련이었다. 좌자전이 목소리까지 크니, 목소리가 큰 만큼 당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되어 다들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좌자전은 고개를 치켜들고 말을 이었다.

“배우자, 부모, 자식은 직계 가족입니다. 배우자, 부모, 자식 아닌 분은 모두 어서 나가세요.”

그 말에 나가려고 발을 떼던 두어 명이 다른 사람이 움직이지 않자 걸음을 다시 멈췄다.

“나는 환자 친정 사람이요. 환자가 내 여동생이라고. 나는 여기 있어야겠어.”

무리 속에서 가죽점퍼, 구두를 신은 농촌 교사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가 앞으로 나섰고, 좌자전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고개를 흔들었다.

“안 됩니다. 형제자매는 직계가 아니에요.”

“왜 안 됩니까! 제 동생이라고요!”

“치료 안 할 겁니까? 그럼 환자 데리고 돌아가세요!”

눈앞의 상황에 너무 익숙한 좌자전은 마을 위생병원에서 쓰던 방법으로 대응했다.

하원정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애써 참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운화병원은 마을 위생병원이 아니고, 규칙대로라면 이미 받은 환자는 쉽게 트랜스 보낼 수도 없었다. 게다가 CT도 찍고 전체 검사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원정은 좌자전의 이 방법이 적당하진 않지만, 매우 효과적일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본인이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하원정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환자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치료하러 병원에 온 사람이 그러면 환자를 데리고 가겠다는 말이 쉽게 나올 리가 없었다.

“여기서 치료할 생각이면, 직계 가족만 남고 다들 나가세요.”

좌자전은 그들이 상의할 시간도 주지 않고 명령조로 말했고, 환자 남편이 드디어 상황 파악한 듯 주변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혔다.

“다들 일단 나갑시다. 내가 선생님하고 잘 이야기할 테니, 우리는 나중에 이야기하자고요.”

“삼촌, 얼렁뚱땅 넘어가면 안 돼요!”

“요즘 병원이 얼마나 속이 시커먼데.”

“돈 달란 소리 함부로 하면 다 밝혀 버릴 거야!”

사람들은 한마디씩 협박을 남기고서야 내키지 않는 듯 밖으로 나갔다.

좌자전은 문이 닫힐 때까지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고, 사인을 받을 때 만일을 대비해서 두 사람 사인을 받는 꼼꼼함까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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