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정은 오후에 간담췌외과와 응급의학과 협진을 소집했다.
협진 통지를 보낼 때, 하원정은 응급의학과라는 글자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침묵했다.
삼갑병원에서 응급의학과는 의미 없는 진료과로 유명했다. 더럽고, 힘들고, 괴로운 건 둘째치고 책임감은 크고 돈은 적게 벌고 수시로 두들겨 맞기까지 했다.
진료과 과 주임이 된 이래, 하원정은 응급의학과를 그다지 상대하지도 않았었다. 곽종군을 만나도 서로 알아서 거리를 유지하며 눈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전에는 응급의학과에서 우리한테 협진 요청을 했는데, 이제 우리가 그쪽으로 요청할 줄은 몰랐네.”
“누가 먼저 요청하든 어떻습니까.”
심복 몇 앞에서 하원정이 허탈한 듯 입을 열었고, 심복 중 리더가 껄껄 웃으며 설득했다.
“16cm 대형 종양을 만나는 것도 요새는 쉬운 일이 아니야.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지, 그렇게까지 키우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어.”
“환자도 적은데 굳이 이 수술방식에 연연할 필요 있을까요?”
“간담췌외과 정상급 수술이니까 그렇지. 간 이식 몇 개랑 바꾸지도 않는다고.”
하원정은 벽에 걸린 환자의 MRI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대답했다.
사진만 봐도 간을 둘러싼 거대 종양의 범위와 힘이 느껴졌다.
혈액 순환이 잘 되는 간에는 놀라울 정도의 크기의 종양이 종종 생긴다. 크기가 10cm를 넘어 버린 종양은 수술하기 정말 힘들어진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우선 좌자전과 여원이 들어왔고 능연은 그다음에 들어왔다.
“MRI 나왔군요?”
안으로 들어온 능연은 바로 고개를 돌려 뷰라이트에 걸린 MRI를 발견했다. 하원정은 표정 조절하고는 껄껄 웃으며 인사했다.
“능 선생, 왔어?”
“하 주임님, 안녕하세요.”
능연은 사회가 기대하는 미소를 잠시 내보이고는 바로 MRI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1분, 2분, 10분.
회의실의 의사들이 슬슬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됐습니다. 그럼 수술 방향을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능연이 갑자기 뒤를 돌았고, 좌자전이 눈을 찡긋찡긋하는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의견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같이 토론해보죠.”
그렇게 말해놓고 바로 자신의 수술 방안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1분, 2분, 10분.
간담췌외과 의사들의 눈이 풀리고 몸이 흔들렸다.
PPT도 없이 해부만으로 수술을 설명하니 거의 수면제와 같은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의견 있으신가요?”
능연은 고개를 숙여 모두를 둘러봤고 하원정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직계 부하들을 바라봤다. 너무 수준 없어 보일 테니, 질문하기는 해야 했다.
그러나 하원정의 직계 부하들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질문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자기 부하가 그렇게까지 약체일 줄은 몰랐던 하원정의 미간이 더욱 깊어졌다.
“없으면 이 방안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능연은 재빨리 결정을 내렸고, 굳은 표정이던 하원정이 끝내 하하 웃었다.
“능 선생, MRI를 보자마자 수술 스텝을 생각해내다니, 역시 대단해.”
“네.”
별문제 아니었다는 듯 대답하는 능연의 모습에 하원정은 말문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