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 선생, 능 선생!”
관비비가 빠른 걸음으로 능연을 따르며 얼굴에 진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심지어 일부러 미소를 지을 것도 없이 미소가 저절로 피었다.
능연을 볼 때와 집에서 구해온 맞선 상대를 볼 때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관비비는 양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머리 가득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를 바라봤다.
“무슨 일?”
능연이 걸음을 멈추고 관비비에게 물었다.
“겨······.”
머릿속으로 환상하던 내용을 저도 모르게 내뱉을 뻔했던 관비비는 다행히 빠른 반응으로 말을 돌렸다.
“겨우 따라잡았네. 이따 수술할 때 우리도 데리고 들어가면 안 돼? 그 거대 종양 수술 말이야.”
관비비가 손짓하자 뒤따르던 항학명과 정군상이 재빨리 다가왔다. 능연 밑에서 있는 동안 세 실습생도 제법 가까워졌다.
“아, 수술에 들어가고 싶어?”
“응.”
“당연하지.”
“네!”
관비비는 혼인 서약에라도 대답하는 듯 눈을 빛내며 가장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이따 종양 들어 올리는 거만 하면 돼.”
집도의고, 그것도 다른 의사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는 집도의인 능연은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렸고 세 실습생은 흥분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종양 들어 올리라는 게 간 종양을 들고 있으란 말이지?”
그래도 생각이 좀 더 깊은 항학명이 물었다.
“맞아. 수술할 때 종양을 계속 들고 있을 사람이 필요해. 종양 위치가 바뀌어서 수술에 영향을 주면 안 되니까. 힘들긴 해도 어렵진 않아.”
능연은 세 사람이 이해했으리라 생각하고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
복도에 남은 관비비, 항학명, 정상군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서서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종양이 지름이 16cm나 된다던데.”
“17cm 일 가능성도 있지.”
“16cm라고 해도 그렇지. 너희들 16cm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 얘 얼굴 만해.”
항학명이 관비비 얼굴을 손으로 그리며 설명했다.
“야! 징그럽게.”
“게다가 둥글기도 하지.”
항학명은 관비비가 짜증을 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래도 조금 다른 생각을 품었었다면, 지금은 완전히 포기했다.
그의 현재 최대 꿈은 운화에 남는 것이고 다른 건은 다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항학명!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너랑 말 안 한다?”
항학명은 그저 껄껄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관비비에게 마음이 없으니 그가 어떻게 나오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미소 지은 채 듣고 있던 정군상은 관비비가 머리를 까딱거리는 걸 보면서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정군상은 관비비의 머리를 들어 올려 보기라고 할 듯 양손을 치켜들고 둥그렇게 만들었다.
“정군상!”
관비비는 짜증도 나고 웃기기도 해서 마음껏 성질을 부렸다. 어차피 남신이 없으니 상관이 없었다.
정군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대 종양 수술이 얼마나 걸리는지 너희들 아니?”
“얼마나 걸리는데?”
“짧으면 네다섯 시간, 긴 거는······ 어이없지. 열 시간 스무 시간도 걸려.”
정군상이 다시 손을 들어 보였다.
“상상해봐. 우리가 얘 머리만 한 커다란 종양을 들고 최소 네다섯 시간 서 있어야 한다고. 잘못하면 열 몇 시간. 그것도 꿈쩍도 못 하고.”
순간 관비비가 멍해졌다.
“지금 고개 흔드는 건 쉽지? 노래방에서 술 취한 사람 머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상상해보렴.”
“큰일 났다! 5시간 서 있으면 종아리도 팅팅 붓겠다.”
“이제 후회해도 늦었어. 어쩐지, 수술하고 싶냐고 묻더라니. 그것도 모르고 멍청하게 좋다고 했으니.”
“그래도 난 네, 라고 대답하고 싶었어.”
정군상이 앓는 소리를 해도 관비비는 아까 달콤했던 때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셋이 번갈아 하면 그래도 수월할 거야!”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한 항학명이 입을 열었다. 사실 번복할 기회를 준다고 해도 그는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거대 간 종양 수술이라니! 얼마나 드문 기회란 말인가.
1번 수술실은 운화병원에서 가장 큰 수술실이고 수용 인원도 가장 많은 특대형 수술실이었다.
운화병원에서 손에 꼽히게 진행하는 초대형 수술, 간 이식, 신장 이식 같은 수술은 모두 1번 수술실에서 진행했다.
일반 수술은 1번 수술실 사용허가도 떨어지지 않았다. 하원정이라고 해도 1번 수술실에서 수술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난도가 있는 간 절제 수술은 1번 수술실 사용 자격이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땐 하원정도 예약하느라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익숙한 수술실에서 수술하는 게 더 즐거웠다.
1번 수술실도 그저 면적이 좀 넓고, 설비가 많고, 의사가 좀 더 많이 참관할 수 있을 뿐이었다.
“사람······ 뭐 이렇게 많아.”
예상은 했지만, 수술실에 들어온 하원정은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놀랐다.
참관 온 의사들은 모두 착실하게 수술복을 입고 규정된 구역 안에 서 있었다.
하원정은 간담췌외과 의사 외에도 일반 외과 의사, 응급의학과 의사와 의교과······ 의사는 왜 여기 있는지 생각했다.
잠시 얼굴을 찌푸렸던 하원정은 긴말 없이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복을 입고 시트 소독하러 갔다.
퍼스트 어시는 퍼스트 어시답게 굴어야 했다. 특히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주임 행세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정말 주임 행세하려면 퍼스트 어시를 맡지 말았어야 했다.
갑자기 능연의 요구에 응한 것이 후회되었다. 멀쩡한 거대 간 종양 수술인데 본인이 하지 못했더라도 굳이 퍼스트 어시스던트 하느라 허리를 굽힐 건 없지 않았나 말이다.
시트를 깔고 있는데 능연이 손을 치켜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수술실에 있던 반 이상 의사들이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봤다.
하원정은 눈앞 간호사 소몽설이 손까지 떤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원정은 저도 모르게 소몽설이 보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능연이 가슴 쪽으로 치켜든 양손의 가지런한 손톱이 반짝였고, 가늘고 긴 손가락에 관절이 선명했다.
그리고 능연의 얼굴을 바라본 하원정은 무영등이 위치를 잘못 비추고 있는 줄 알았다.
의교과 직원이 들고 있던 소형 캠코더를 조용히 치켜들었고, 능연은 못 본 듯 모두에게 인사하는 느낌으로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트를 깔 생각은 없다는 듯 뷰라이트 앞에 서서 사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하원정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수술한다고 해도 수술 전 소중한 시간을 시트 까는 데 낭비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수술하는 게 아니라 퍼스트 어시이니 능연처럼 침착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퍼스트 따위, 하지 말걸.’
하원정은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시작하죠.”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스린 능연이 수술대 앞에 와서 섰다. 세컨드 어시, 서드 어시 연문빈, 그리고 세 실습생 모두 제 자리에 섰다.
능연은 단숨에 커다란 절개구를 열었다.
“환자 종양이 거대하고 위치도 높고 깊습니다. 제2 간문을 침범했고요. 그래서 수술하는 동안 대량 출혈이 일어날 수 있으니 다들 주의하세요.”
“네.”
하원정을 비롯한 조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수술이 시작되자 하원정도 차츰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량 출혈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말고요. 바로 처리하면 됩니다.”
“네.”
하원정은 조금 의외라는 듯 능연을 바라봤다. 수술대에서 능연이 이렇게 리더쉽이 있을 줄 몰랐었다.
능연은 고개를 숙인 채 세심하게 절개구를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종양이 침범한 주변 조직을 설명했다.
17cm에 가까운 16cm짜리 간 종양은 간 부근에만 차지한 것이 아니라 간, 횡경막근, 골반까지 침범해서 절제하려면 우선 주변 조직을 정리해야 했다.
그야말로 실력을 제대로 검증하는 수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대한 종양이 모두의 눈앞에 드러났다.
“간 초점성(焦點性) 결절(結節)”
간에 자란 소 등심처럼 같은 덩어리를 바라보며, 하원정은 갑자기 퍼스트 어시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같은 종양 절제라고 해도 난도는 확연히 달랐다.
가장 간단한 체외 종기는 존엄도 없이 단번에 짜내서 사라진다. 그러나 체내 양성 종양은 그것보다 복잡하다. 문제는 주로 위치와 크기였다.
최악의 위치는 단연 머리에 난 것이며, 뇌 내 양성 종양은 치명적이고 제거하기에도 위험이 가득하다. 특히 길고 깊게 생긴 종양이라면 치료할 의미가 아예 없다.
그러나 위치보다 더 중요한 건 역시 크기였다.
특히 지름이 10cm 넘는 종양은 인체에 무수한 문제를 일으킨다. 종양 주변 동정맥 혈관에 일으키는 위험 요인은 말할 것도 없고.
관비비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기분으로 자기 머리통만 한 종양 덩어리를 들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엄지만 한 혈관이 보였고, 얇은 혈관벽으로 안에 흐르는 혈액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아차 실수로 손이 미끄러지면, 거대한 종양 덩어리가 큰 혈관을 터트릴 것이고, 환자는 몇천 cc의 피를 흘릴 수도 있다는 걸 관비비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 긴장감에 말도 못 하고 욕도 못 하고 손이 저리고 아파서 움직일 엄두는 더욱 못 냈다.
“초등학교 때 공부 안 해서 벌서는 기분이네.”
관비비 옆에 끼어있는 정군상이 힘껏 까치발로 서서 나지막이 말했다. 종양이 너무 커서 둘이 힘을 합해서 들어야 했다.
자리가 좁아서, 작은 종양이었다면 집도의가 둘을 시키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상황이었다.
“야, 힘들어 죽겠어. 힘 좀 써.”
“엄청 쓰고 있거든. 너나 제대로 들어. 실수하면 큰일 나.”
정군상도 기분이 좋진 않았다. 매너 있어 보이려고 더 안 좋은 자리를 선택했었는데, 지금은 후회가 됐다. 관비비 자리가 능연과 더 가깝고 저 잘 보이고 그렇게 힘든 자세도 아니었다.
정군상은 한 손만 겨우 뻗은 상태였고 다리까지 까치발 든 상태라 매우 힘든 자세였다. 그러나 관비비는 알아주지도 않았다.
그녀로서는 자기 자리도 마찬가지로 힘들어서, 정군상이 더 괴롭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정군상은 속으로 끙 앓았다. 병원에서 신사다운 모습을 보이는 건 대가가 필요하다는 수업 한 번 한 셈이었다. 그 대가로 정군상은 지금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냥 벌서는 것만으로 힘들어 죽겠는데, 자세까지 구부정하게 있는 데다가 어떻게든 수술을 조금이라도 보려고 하니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제대로 들어. 너희들이 실수하면 환자 죽는다.”
틈이 난 김에 관비비와 정군상을 힐끔 본 하원정이 눈치를 줬다.
정군상은 다급하게 네 하고 대답했고, 관비비는 콧소리를 냈다.
“너무 미끄러워서 잡고 있기 어려워요.”
“항학명, 관비비 대신해.”
관비비의 말에 능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아, 아냐. 내가 들 수 있어. 난 그저······.”
“버틸 필요 없어.”
능연은 관비비의 말을 자르고 하원정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제 좌 간문 차단합니다. 이어서 간 중앙 정맥 절단하고요.”
“오케이. 환자 바이탈은 정상이야.”
모니터를 힐끔 본 하원정이 집도의에게 보고했다. 그렇게 돌아볼 여유가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젊은 조수였다면, 틈이 없거나 덜덜 떠느라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볼 여유가 없다.
하원정이 확인했으니, 능연은 모니터를 확인할 에너지와 시간을 아끼기로 했다. 그게 수술에도 더 좋고.
능연은 묵묵히 제1 간문을 처리했고, 수술 가운을 걸친 항학명이 관비비를 대신했다.
“나 버틸 수 있어.”
“능 선생한테 얘기해.”
관비비가 내키지 않는 듯 중얼거리자 항막명이 낮게 말하고는 말을 이었다.
“등 돌리면서 천천히 자리 바꿔.”
관비비는 지금 능연을 방해할 용기는 없었다. 현장에 수많은 진료과 의사가 있었고, 이런 작은 일로 문제를 일으킨다면 얼마나 마이너스가 될지 모른다. 그리고 능연이 애교가 통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능연을 높게 평가하기도 하지만, 관비비가 기술을 발휘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관비비는 어쩔 수 없이 항학명과 등을 맞대고 조금씩 자리를 바꿨다.
단번에 수술 가운과 장갑을 벗고 수술대에서 내려온 관비비는 무거운 종양을 들 필요가 없어지니 온몸이 편안했다. 다리도 자유로워졌고. 그러나 마음은 텅 빈 것 같았다.
어렵게 쟁취한, 아니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 간 종양 실습 기회가 이렇게 사라졌다.
관비비는 항학명 같은 아이는 수술을 보기 위해서라면 다리가 부러져도 버티리라 확신했다.
“저기요.”
“알겠습니다.”
순회 간호사가 관비비를 향해 턱을 치켜들었고, 관비비는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 참관 구역으로 갔다.
왼쪽에 일반 외과 부주임 둘, 오른쪽은 비뇨기과 부주임이었고 다들 고분고분하게 붉은 선 밖에서 수술을 보고 있어서 관비비도 착하게 고개만 뻗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능연을 바라볼 때, 관비비는 언짢은 마음으로 항학명을 바라봤다.
항학명이 종양을 드는 바람에 옆에 있는 정군상과의 거리가 더 좁아졌다. 관비비보다 덩치가 훨씬 큰 항학명은 몸을 비틀고 설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자리에서 집도의의 모든 동작을 볼 수 있고, 퍼스트 어시의 동작도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 같은 자리였다.
외과 수술이란 보고, 배우고 하는 거란 말이 있다. 대부분 작은 수술은 세 번만 참여하면 직접 해볼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지금 병원은 규칙이 엄하고 수술할 환자가 부족해서 그렇지, 초짜 의사들이 수술할 수 없는 건 못해서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항학명은 목을 길게 빼고 능연을 힐끔 바라봤다.
같은 학교를 같이 졸업한 능연은 지금 운화병원 간담췌외과 주임의 시중을 받으며 가볍게 메스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제 제2 간문 합니다.”
능연은 조수에게 간을 아래로 당기게 하고 간막면에서 제2 간문을 드러낸 다음 상하 대정맥 (caval vein)을 박리하기 시작했다.
간 수술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간의 혈액 순환이 풍부하다는 것이었다. 많고 굵은 혈관을 아무렇게나 잘라낼 수도 없고, 잘라낼 때마다 따로 묶어야만 대량 출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골치 아픈 것이 간문 처리였다.
간담췌외과에서도 간문을 다루려면 적어도 부주임 이상은 되어야 하고, 이렇게 두 간문 시스템을 침범한 거대한 종양은 평범한 주임도 감히 나서지 못한다.
하원정도 심사숙고하던 중에 능연에게 집도권을 빼앗긴 것이다. 그러나 하원정은 정말 자신이 없었다. 그는 지금 더욱 유심히 능연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능연은 정맥 한 가닥을 박리하더니 또 하나를 박리하고 계속해서 내려가면서 오른쪽 간 정맥 끝부분을 박리했다.
‘응? 제2 간문 벌써 박리했어?’
지켜보던 하원정은 갑자기 정신을 차렸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능연을 바라봤다.
“땀.”
능연은 살짝 피로를 느끼며 고개를 들었고 소몽설이 냉큼 거즈를 들고 달려가 능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계속하죠.”
아주 잠시 쉰 능연은 다시 박리 작업에 몰입했다. 그에게도 어려운 수술이었다. 그러나 딱 적당한 수술이기도 했다.
평범한 간 절제 수술보다 특별히 많이 생각하고 자세히 생각해야 했다. 그래도 수술 자체는 그가 가진 기술보다 아래였고, 능연이 진지하게 하기만 하면 성취감은 적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막힌 부분도 없었다.
능연은 원래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하는 사람이었다. 마스터급 간 절제 스킬에 완벽한 준비 작업까지 더하니, 거대 간 종양은 그렇게까지 큰 부담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생긴 게 소 등심처럼 생겼다고 해도, 그 때문에 더 온화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종양이 서서히 떨어져 나왔고, 마지막에 항막명과 정군상이 로켓 모양의 거대한 종양을 트레이 위에 담았다.
“무겁다.”
지쳐 죽을 것 같은 항학명이 멍하니 웃으며 말했다.
“11킬로야.”
연문빈도 어깨가 쑤실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스윽 보더니 숫자를 읊었다.
항학명은 웃어 보이고는 다시 정군상과 함께 종양을 저울 위로 들어 올렸다.
“11.40 킬로! 무겁더라니! 연 선생님 그래도 정확하시네요.”
“너 아까 트레이 무게 안 뺐다.”
혀를 끌끌 차며 감탄하는 항학명의 모습에 연문빈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저울을 0으로 돌리는 걸 까먹은 항학명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찰칵찰칵.
의교과 간사가 흥분해서 붉어진 얼굴로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댔다.
“우리 병원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절제한 것 중에 가장 큰 종양입니다.”
간사도 몇 년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이렇게 큰 사건은 기록해야 했다.
이렇게 큰 수술은 마무리까지 직접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능연은 여전히 수술대에서 손을 놀렸다.
의교과 간사는 종양을 한 바퀴 둘러가며 찍고는 마지막엔 능연을 포착해서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
능연은 후광을 업은 듯이 태양처럼 빛나고 목성처럼 쿨하고 별빛처럼 냉담하게 멋졌다.
다섯 시간이나 이어진 수술이 드디어 끝났다.
수술에 참여한 세컨드, 서드 어시스던트 모두 한 번씩 바꿨고, 참관 의사는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집도의 능연과 퍼스트는 끝까지 수술대에서 내려가지 않고 버텨냈다.
다섯 시간짜리 외과 수술은 힘들긴 하지만, 끝냈을 때 그 쑤시고 아리는 짜릿함으로 의사 생활을 버티는 것도 있다.
하원정은 길고 긴 한숨을 내쉬고는 웃는 얼굴로 소가복을 바라봤다.
“가복아, 수술 중 출혈량이 얼마였냐?”
능연이 자주 쓰는 마취의라서, 하원정은 고작 레지던트인 소가복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360cc입니다.”
소가복은 능연과 하원정보다 더 흥분한 모습으로 수치를 불렀다.
오늘 메인 마취의는 다름 아닌 소가복이었다. 이렇게 큰 수술은 원래대로라면 마취과 부주임이나 주치의가 하고 소가복은 마취 어시 자리를 얻기만 해도 큰 복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능연은 소가복하고 팀을 꾸리는 데 익숙해서 마취과 주치의나 부주임이라고 해도 내키지 않아 했다.
덕분에 삼 년 정도 일찍 주치의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 소가복은 짜릿함을 만끽했다. 경험도 대폭 늘었다.
“지름 16, 10킬로 넘는 종양 제거에 출혈 360에 수혈도 하지 않았다니. 능 선생 축하해.”
하원정은 마음속 파동을 누르며 능연을 추켜세웠다. 오늘의 거대 간 종양 제거를 능연이 해서 천만다행이지, 직접 했다가는 십중팔구는 망했으리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많은 의사 앞에서 망한 수술을 하는 건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젊고 경험이 부족한 능연이 이렇게 큰 부담을 짊어지고 이 수술을 해낸 것에 조금 감탄했다.
겨우 조금.
분식집 고기덮밥에 들어간 고기만큼 조금.
“간, 격막 골반에 동시 침범한 종양을 단번에 해내다니, 능 선생 이제 일반 외과 밥도 먹겠어.”
일반 외과에서 온 부주임이 칭찬인 듯 독설인 듯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이 수술은 확실히 일반 외과와 부인과에서 협진으로 같이할 수 있는 수술이긴 했다.
능연이 중간에 문제를 일으켰거나, 아니면 아예 큰 문제를 일으켜서 일반 외과 혹은 부인과 의사가 핀치히터로 나갈 수 있었다면 오늘 수술에 할 말이 매우 많았으리라.
그런데 능연이 단숨에 해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지름 16cm 종양 절제 성공했다며. 능 선생 축하하네!”
문을 열고 들어온 의교과 뇌 주임이 흠흠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를 선두로 사람들도 따라 박수를 쳤다.
능연은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으며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끼고 싶지 않은 하원정은 고개를 돌리고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1번 수술실에 있던 의사들도 오후에 초원에 풀어져 배불리 풀을 뜯은 소 떼처럼 느릿느릿 흩어졌다.
진작에 수술복을 벗고 있던 항학명은 능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뇌 주임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병원에서 인사권에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원장 밑에 의교과 주임의 권력이 가장 앞에 있었다.
평소에 항학명 같은 하찮은 실습생은 사적으로 의교과 주임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사무실로 간다고 해도 중간에 가로막힐 것이다.
항학명은 뇌 주임이 돌아서는 틈을 타 결정을 내리고 빠른 속도로 뛰어나갔다.
“뇌 주임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 실습생입니다. 운화대학 졸업한 항학명이라고 합니다. 2분만 시간 주실 수 있습니까?”
“2분 주지.”
뇌 주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걸음을 멈췄다.
“감사합니다!”
항학명은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얼마나 상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정말로 이뤄지니 긴장해서 미칠 것 같아서 일단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뇌 주임님, 저는 능연 선생을 따라 실습생 기간을 한참 보냈습니다. 반년 동안 저는 많은 것을 배웠으며 간 절제 수술에 참여하고, 복강경 담낭 수술, 단지 이식 수술에도 참여했습니다.”
“운화병원에 남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면, 올해는 정원이 없네.”
뇌 주임은 항학명의 말을 듣자마자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항학명이 길게 말하기 전에 그의 말을 잘랐다.
“저는 같은 실습생에 비해서······.”
“능연을 제외하고 말이지?”
잠시 머뭇거리던 항학명이 다시 말을 이었고 뇌 주임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항학명은 갑자기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지 모르게 됐다.
“올해 정원은 정말 다 찼네. 나한테 이야기해도 소용없어. 알겠나?”
항학명의 표정을 본 뇌 주임은 한마디 더 해주었다.
“식구들한테 여기저기 물어보라고 해보게. 자넨 아직 어리니 기술을 잘 쌓고.”
뇌 주임이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항학명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눈빛을 반짝이며 뇌 주임을 바라봤다.
“저희 가족은······. 뇌 주임님, 저는 정말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성공하길 바라네.”
뇌 주임은 항학명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자리를 떠났다.
“뇌 주임님!”
기회를 이렇게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항학명이 바로 뒤를 쫓았다. 그러자 뒤를 돌아본 뇌 주임이 힘을 주어 말했다.
“우리 병원은 대학원생 이상 받는다는 원칙이라네. 까다로운 진료과 주임은 기준을 박사로 올렸어. 본과생인 자네가 파격적 대우를 원한다면 그만한 실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정당한 이유에 항학명은 순간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떻게든 경력보다 능력이 중요하다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본과생인 그가 무슨 능력으로 석사, 박사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