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70화 (351/877)

그리고 이틀 동안 항학명은 시간을 내서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실습 기간이 곧 끝나니,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표준화 훈련을 받을 곳은 골라야 했다.

운화 대학 간판도 제법 쓸 만해서, 지방 병원이라면 적어도 필기시험은 보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운화는, 운화에 남고 싶은 의사가 너무 많았다.

삼갑병원부터 시작한 항학명은 모든 삼갑병원 면접에 잘리고 황망함에 빠졌다.

삼갑병원이 아니라면 운화에 남는 게 의미가 있을까?

“너는 어쩔 셈이냐?”

“안 되면 대학원 가지 뭐. 너는?”

병원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을 때, 항학명이 정군상에 물었고 정군상은 내려놓은 듯 대답했다.

“구 병원에 가려고. 적어도 운화에 남을 수 있잖아.”

“그것도 좋지. 그럼 사인해.”

“정 안 되면 해야지. 위약금 8만 위안이야.”

“그것도 어쩔 수 없지.”

정군상의 말에 항학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더 갈등하던 항학명은 결국 논평구 병원으로 향했다. 요즘 본과생으로서 큰 도시 구병원도 절충안이었다.

모든 절차를 밟은 항학명은 본인이 어디로 배치됐는지 전달받았다.

-논평구 병원 팔채향 분원

논평구 팔채향 분원은 논평구 병원 중에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자리였다.

의사 5명, 간호사 9명인 정원이 한 번도 찬 적이 없는 곳이었다. 이곳으로 배정된 의사와 간호사는 유배라도 온 듯이 어떻게든 도시로 돌아가려고 애쓰거나 포기하고 은퇴를 기다렸다.

사실상 유배된 것도 맞다.

팔채향은 논평구뿐만 아니라 운화 전체에서도 가장 외딴 마을이었다.

논평구는 그래도 운화에서 괜찮은 구였다.

현지 공업 발전 상황은 좋은 편이었고, 오래된 국가 기업도 많아서 구 병원은 매해 각 사업체 건강검진만으로도 병원 운영을 유지했다. 평소에 작은 증상 환자를 받고, 수액을 놓거나 현지 주민의 임시 치료나 임종 관리 같은 거로도 탄탄하게 유지되었다.

의사들의 수입은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할 건 다 할 수 있고 일도 한가해서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철밥통인 셈이었다.

그러나 팔채향은 다르다. 지도 위에 논평구 모양이 올챙이라면, 팔채향은 올챙이 꼬리였다.

운화를 커다란 올챙이라고 봐도 팔채향은 그 꼬리에 있다.

이 머나먼 분원은 교통도 불편한데 일은 많았다.

작은 병에 걸린 현지인은 죽을 것 같은 병이 아니면 기본적으로 구 병원 팔채향 분원으로 향했다. 그들 눈에 구 병원의 분원은 대도시 병원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물론, 팔채향 분원은 다른 마을 병원보다 훌륭하기도 했다.

유배 오듯 발령 난 의사라고 해도 어쨌든 운화 시에서 온 의사고, 그곳의 생활이 싫다고 해도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했다.

그리고 분원 설비도 괜찮은 편이었다.

의사들도 약값이나 자잿값을 나눠 받을 수 있었다. 가련할 정도로 적은 금액이라고 해도 말이다.

“우리 분원에 지금 의사가 셋 있습니다. 왕 선생 아내가 이혼한다고 난리라 지금 운화로 돌아가 있고요. 그래서 지금은 의사 둘이 있고요 약 값, 자잿값은 누가 진료했든 5:5로 나눕니다. 좋죠? 적은 돈이 아니거든요. 약값만 따지면 구 병원보다 더 나아요.”

현재 분원에서 유일한 의사인 증흥등은 항학명에게 감추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최대한 좋은 점을 늘어놓았다.

정원 하나 3층짜리 작은 건물인 병원 일을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증흥등은 항학명이 도망갈까 봐 정말로 걱정이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난 것도 아니고.

분원은 진정한 발령처도 아니라서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의사는 바로 돌아가지 못해도 어떻게든 돌아가려고 애를 쓴다.

대부분 의사는 정말로 팔채향에서 근무하기 싫으면 수입이 좀 적어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증흥등 본인도 몰래 운화로 돌아가 개인적으로 병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뒷배가 없어서 결국 다시 쫓겨 왔지만 말이다.

그와 동병상련으로 포기하고 살던 왕 선생이 이제 일을 안 해도 좋으니 결혼 생활은 유지하겠다고 운화로 돌아간다고 하고 있었다. 혼자 세 사람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증흥등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논평구 팔채향 분원은 어찌 됐든 마을 진료소가 아니라 병원이라 가끔 응급 수술도 해야 해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도 피울 수 없었다.

항학명은 고개를 숙여 먼지가 가득 쌓인 신발을 내려다보다가 억지로 웃음 지어 보였다. 도저히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었다.

운화병원에서 일 년 넘게 있으면서 병원에서 떨어지는 약값이 얼마 안 된다는 걸 잘 알게 되었다. 작은 수술에 쓰는 자재는 더욱 적고. 운화병원이라고 해도 약, 자재에서 떨어지는 돈은 일반 의사는 4, 5천 위안이면 중간 수준이었으니 구 병원은 더욱 작으리라.

그래서 증흥등이 구 병원보다 많이 번다고 말해도 조금도 끌리지 않았다.

구 병원엔 건강검진 수입으로 보너스를 주기나 하지, 마을 병원은 뭐가 있단 말인가.

있는 건 진흙뿐이었다.

“너무 그렇게 의기소침하지 말아요. 요즘 시골 생활엔 시골 생활의 장점이 있어요. 일단 먹는 게 건강하잖아요. 안 그래? 도시에서 먹는 게 다 어디서 올 거 같아요? 다 여기서 기르는 거 아닙니까? 더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죠. 시장 열리면 돼지, 닭, 오리 파는 농민도 와서 지폐 몇 장만 들고 가도 리어카 몇 대 가득 실을 음식을 산다고.”

증흥등은 자신의 유일한 원군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는 담담한 항학명의 얼굴에 거의 열 살 연상인 증흥등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놀 것도 있다고. 인터넷도 얼마나 빠른데. 게임 하든 영화를 보든 다 문제없어요. 맞다, 컴퓨터 가지고 왔어요? 괜찮아, 사무실에 있어. 아무거나 가지고 가도 돼요. 관리실에 사인만 하면 돼. 여기 떠날 때 완전하게 돌려놓기만 하면 태클 걸 사람 아무도 없어. 마을에 집도 크고. 의사들 숙소도 넓고, 방도 따로 쓰고. 운화에서 그런 집을 어떻게 구해. 산책하기도 좋아, 팔채향은 팔봉산에 연결되어 있어서 운화에서 휴가 때 일부러 운전해서 놀러도 오는 곳이라고.”

“증 선생님. 저는 어릴 때 산에서 자랐습니다.”

“아······. 아아, 그럼 더 좋지. 익숙하잖아. 응응.”

항학명이 못 견디겠다는 듯 말을 자르자 증흥등은 이제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 허허 웃었다.

다들 발령 나서 온 사람이라 원해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근처 소개나 해줄게요.”

증흥등은 이제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팔채향에 올 만한 의사라면 대충 짐작이 갔다. 항학명은 억지로 웃어 보이고는 팔을 으쓱하고 고개를 숙이고 뒤를 따랐다.

팔채향 분원은 1급 병원 기준으로 지어지긴 했다. 침대 20개, 정원 5명인 의사 중엔 원래 영상의학과 의사도 포함되어 있었고, 간호사도 구 병원에서 정식 트레이닝한 간호사라 주사, 드레싱뿐만 아니라 응급 수술에도 도움이 됐다. 설비도 제법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들이 계속해서 나가고 들어오니, 좋은 병원은 될 수 없었다.

“항 선생. 여기가 사무실이야.”

재빨리 마음을 다잡은 증흥등이 다시 항학명을 위해 세심한 큰 형처럼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항학명은 거절하려야 거절할 수 없어져 어쩔 수 없이 대야에 물을 담아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그때 증흥등의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은 증흥등이 몇 마디 ‘응응’ 대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항 선생. 응급이 생겼네요. 팔 부러진 채로 산에서 내려오고 있다네. 응급처치 배웠어?”

증흥등이 심각해진 표정으로 서랍에서 하얀 가운을 꺼내 항학명에 건네며 물었다.

“네. 팔 골절 할 줄 압니다.”

항학명도 순간 정신을 집중했다. 운화병원 능 팀에서 자주 연문빈 조수 노릇 하며 레지던트가 할 일도 제법 했었다.

팔 골절도 등급이 나뉘는데 간단한 건 항학명도 여러 번 했었다.

많이는 못 했고, 실력도 평범해서 운화병원이었다면 담당 선생이 지켜보는 가운데서야 직접 할 수 있었지만, 팔채향 같은 곳이다 보니 직접 할 기회도 있었다. 환자를 운화병원으로 바로 보내느니 현지에서 치료하는 게 더 나으니 말이다.

항학명은 순간 전의를 불태우며 얼굴까지 붉혔다.

두 시간 뒤, 항학명은 실리콘 장갑을 가지고 놀면서 풍선처럼 불었다.

“아직인가요?”

“곧 올 거야. 오토바이로 산에서 내려오는 거라 느리네. 환자가 아파서 죽으려고 한대. 이따 마음 놓고 해. 내가 서포트 해줄게.”

증흥등이 항학명에게 담배 하나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 삼십 분 후, 항학명은 드디어 환자를 만났다.

“콜레스 골절(Colles 골절: 손목 골절)입니다. 할 수 있어요.”

잠시 검사한 항학명은 바로 증상을 얘기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할래요?”

증흥등도 항학명의 실력을 보고 싶었다.

콜레스 골절은 골절 중에 가장 흔한 유형이었고, 분원 같은 병원에서 쉽게 만나는 증상이었다. 항학명이 못하면 자기가 나중에 나서면 될 일이었다.

항학명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충수염. 할 수 있어? 그래. 그럼 해요.”

“발목 골절. 할 수 있다고? 그래, 해.”

“고환 절제하는 것도 다 봤었다고? 그래, 그럼 같이하자. 어차피 큰 병원 갈 시간도 없어. 이야, 근데 요즘 운화대학 졸업생은 이렇게 쩌냐?”

일주일 동안 항학명을 지켜본 증흥등은 갈수록 놀라워했다.

“운화대에 정말 쩌는 놈 하나 있긴 한데, 아쉽게도 저는 아닙니다.”

항학명이 그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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