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항학명은 시간을 내서 운화로 돌아갔다.
운화병원에 있던 때와 달리 하루를 20분 단위로 살 필요가 없는 팔채향 생활을 한 달 하는 동안 항학명의 일하는 시간도 정상으로 회복됐고, 수면 시간도, 배변도 모두 정상으로 회복됐다.
시외버스에서 내리면서 항학명은 문득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488미터 높이 운안 빌딩을 올려다봤다.
통유리 건물인 운안 빌딩은 10년 전에 지어졌으며 그때는 중국에 광(光) 오염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 랜드마크처럼 지어진 이 건물은 거대한 유리봉처럼 어느 각도에서 봐도 번쩍번쩍거렸다.
항학명은 어깨에 배낭을 메고 버스에 타고 흔들흔들 하구에 도착했다.
증흥등에게는 그럴싸하게 이야기했지만, 실습생인 그가 원하는 주치의를 초빙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서 바로 운화병원으로 가지 않았다.
하루 수술 세 건에 2천 위안은 출장 수술이라고 칠 수도 없는 비용이었다. 사실 진정한 출장 수술도 아니었다. 비행기도 타지 않고, 고속전철도 없고, 증흥등과 항학명은 교통비를 낼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일하겠다는 주치의는 버스를 타고 왕복하거나, 직접 차를 몰고 가거나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걸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팔채향 자체에 문제가 생기면 도와줄 주임급 의사가 없으니 수술대에서 문제가 생기면 출장 수술 온 주치의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그것 하나로도 대다수 의사는 갈 엄두를 못 내리라.
삼갑병원 주치의는 뒤에서 누가 코치하는 걸 싫어하지만, 수술에 문제가 생기면 다들 도와줄 고수를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항학명은 조건에 맞는 주치의를 찾을 자신이 없었다. 운화병원에서 버틴 것도 능연이 배경이 된 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능 팀 초짜 의사 몇으로 다른 진료과의 수술실까지 차지하고 수술할 수 있었던 건, 보통 능력이 아니었다.
항학명은 버스에서 내려 어깨에 멘 가방을 으쓱하면서 자신감을 조금 채웠다.
산에서 잡은 멧돼지 허벅다리에 털도 뽑지 않는 산닭 두 마리도 있었다.
그가 세심하게 고른 선물이었다. 항학명이 아는 바로는, 일반적인 값나가는 선물로는 능연을 전혀 자극할 수 없었다.
“애송이, 누굴 찾아?”
하구 진료소에서 볕을 쬐던 노부인 하나가 물었다. 그는 힐끔 항학명을 바라보고는 바로 골목 사람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능연 선생 좀 만나러 왔습니다.”
“환자? 무슨 병인데?”
“볼 일이 있어서요.”
“아, 볼 일? 그럼 천천히 기다려.”
노부인이 껄껄 웃으며 느긋하게 굴었다.
항학명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작은 정원 입구에 꽤 고전적인 목재 복도가 있는 걸 발견했다. 복도 안에 나무 팻말로 이름들이 쓰여 있었다.
‘처치실’, ‘응급실’, ‘초음파& 심전도.’,‘치료실’
“규모가 꽤 있네.”
“막 리모델링 했거든. 능가가 돈을 좀 벌었어.”
혼잣말하듯 칭찬하는 항학명의 말에 노부인이 혀를 끌끌 찼다.
“리모델링이요?”
“에틱스틱 수술인가 뭔가를 한대.”
“에스테틱 수술이요. 흉을 적게 지게 하는 수술이에요.”
바로 알아들은 항학명이 설명했다.
“멍청한 사람 돈 뜯는 게 불법은 아니니까.”
“능 선생 진료소에서 돈을 왜 뜯겠어요.”
“네 놈이 뭘 알아?”
“그냥 해본 소리예요.”
노부인이 눈을 치켜뜨자 어린 시절 골목에서 물건 팔던 노부인을 떠올린 항학명이 고개를 흔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하구 진료소에 정원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중간에 있던 돌들은 조금 정리되었다.
아래층 진료실은 옆으로 옮겨가 있었다.
원래 작은 방과 화장실이던 곳은 지금 새로운 작은 건물이 되었고, 맞은 편 작은 건물은 헐어서 지금은 중국풍 작은 건물로 다시 지어져 있었다.
항학명은 머리를 내밀고 한 바퀴 둘러보다가 초음파 기계와 수술 침대, 그리고 소독실과 세면대를 발견했다.
그는 팔채향 분원과 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팔채향 분원엔 역사 유적 문제로 초음파 기계가 없었다.
항학명은 안에서 한 바퀴 돌다가 작은 처치실에 있는 능연을 발견했다.
능연은 중년 아주머니 봉합을 하면서 곁에 있는 중년 의사에게 봉합에 관한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항학명은 부러움에 눈에서 피가 다 흐를 것 같았다.
팔채향에 가게 되면 기술을 더는 늘릴 수 없을까 봐 그게 항상 제일 걱정이었다.
“능 선생.”
항학명은 나지막이 인사하며 능연을 불렀다.
“운화에 온 김에 시간이 있어서······.”
“아, 시간 있으면 수술을 하지 그랬어.”
능연이 환자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팔채향 분원에선 마음대로 수술을 할 수 없어.”
“아, 난 네가 수술 좋아하는 줄 알았지.”
능연의 말에 항학명은 눈물을 또르르 흘릴 뻔했다. 당연히 수술을 좋아하지, 그것도 아주 아주!
항학명이 수술실에서 쫓겨나온 건 처음이 아니었다.
실습생은 수술실의 거즈 같은 존재였다. 없으면 안 되지만 공급량이 너무 많아지면 집도의가 언짢아하고 그러면 쫓겨났다가 다시 필요해지면 조수에게 불려들어가고, 수술실에 다시 사람이 많아지면 간호사에게 또 등 떠밀려 나온다.
환자에게 쫓겨나는 건······ 사실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이다.
회진 돌 때, 사람이 많이 둘러 서 있는 걸 싫어하는 환자는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 별말 없이 넘기지만 성질 있고 행동력 있고 힘이 센 사람은 두어 마디로 욕하면서 실습생을 쫓아낸다.
항학명은 중년 아주머니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그의 위력을 느끼고 묵묵히 처치실에서 나왔다.
그래도 아예 나가지는 못하고 실습생 때처럼 문 앞에 서서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봉합을 여기까지 하면 해부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전달력 있는 능연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흉터 조직 문제는 매우 복잡해요. 단순히 표피, 진피, 피하조직 같은 해부 문제만 본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피지선, 땀샘, 입모근 심지어 피부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거까지 어떻게 해.”
묘 선생이 다소 미심쩍은 듯 말했다. 병원을 떠나 에스테틱 시술을 하면서 밥 벌어먹어 온 그는 능연이 헛소리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면 지금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해낼 수 있으면 그랜드마스터급이라는 거겠죠.”
“그랜드마스터급?”
“아, 완벽급이라고요.”
“그야 완벽하겠지. 허허.”
묘 선생이 웃음을 터트렸다.
“음, 아무튼, 이화적 검사를 하면 봉합에 도움이 됩니다. 적어도 의사들이 어떻게 조작해야 할지 방향은 잡아 줄 테니까요.”
“환자가 동의할 리 없지.”
“그렇죠.”
“이럴 땐 외국 무료 의료 부럽더라. 의사들은 돈 때문에 이것저것 상의할 것 없이 하고 싶은 검사 마음껏 하고 말이야.”
이제 먹고 살길이 하나뿐이라, 파고 또 파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없는 묘 선생이 혀를 끌끌 찼다.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듣던 항학명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았다.
“됐습니다.”
“내가 드레싱 하지.”
재빨리 봉합을 마친 능연이 가위로 실을 자르자 묘 선생이 냉큼 말했다.
“네. 그러세요. 환자분, 물 묻히지 말고, 힘주지 마세요. 그러면 금방 나을 겁니다.”
“흉 질까?”
능연이 일어서며 환자에게 당부하자 환자가 물었고, 능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묘 선생이 빠르게 대답했다.
“흉은 환자분 체질 문제도 있어서 단순히 봉합 문제가 아니랍니다.”
매일 하는 말이라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서 눈감고도 읊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말에 환자가 조금 멍해진 사이 능연은 어느새 밖으로 나갔다.
“아까 수술하고 싶다고 했어? 그런데 도움이라니?”
능연이 문가에 서 있는 항학명을 향해 물었다.
“아, 그게. 나 논평구 병원에서 일하거든. 팔채향 분원에 발령받았어. 의사가 둘밖에 없어······. 그래서 고민해 봤는데, 능 선생이 두 사람 정도 정기적으로 우리 분원에서 수술할 의사 보내주면 어떨까 해서.”
“논평구 병원 분원이라며? 논평구 병원에서 사람 보내 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능연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따지면 그런데, 구병원에도 수술할 줄 아는 의사는 적고, 또 분원에 왔다가 발 묶일까 봐 잘 안 오려고 해.”
거기까지 설명한 항학명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또 하나, 구 병원에서 분원에서 수술하는 건 정상적인 작업 루트라 돈이 안 되잖아. 다른 병원 의사라면 출장 수술로 칠 수 있는데 말이야.”
처음으로 출장 수술 의사를 구하는 항학명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능연으로서는 의대 동기든 실습생이든 아니면 어느 현 병원 주임이든 큰 차이가 없었다.
“수술할 조건은 돼? 침대랑 간호사는 얼마나 되고? 수술 설비는?”
“침대 20개, 자격증 있는 간호사 5명. 설비는 개복, 복강경, X-ray는 있고, 자재는······. 제약회사에 가지고 오라고 하면 안 될까?”
항학명은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아는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하구 진료소의 진료 의사 웅 선생이 마침 지나는 척 곁을 지나다가 끼어들었다.
“그것도 자재를 많이 써야 가져다주는 거지.”
“바늘도 가지고 오던데요.”
“그야 누구한테 가져다주는 건지가 중요한 거고. 난 새벽 3시에 치약 하나 들고 주임 찾아가는 제약회사 직원도 봤지만, 자네가 그게 가능해?”
웅 선생은 초짜 실습생 항학명에게 가차 없이 말하고는 능연을 바라봤다.
“작은 사장, 우리 진료소 리모델링도 해서 뭘 하든 돈 벌 텐데 뭐하러 시골까지 가서 출장 수술하려고.”
“능 선생이 고생할 필요 있나요. 물론, 능 선생이 오면 좋지만 다른 의사도 좋아. 수술만 할 수 있으면 돼.”
항학명은 하루에 수술 세 건에 2천 위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한 건에 600위안인데 능연은 지금 그 열 배는 받는 가격에 조수비와 경비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능연은 별 상관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특별한 케이스 있으면 나 불러도 돼. 아니면 운화병원에 보내거나. 침대 20개면 적은 편은 아니네. 효율 있게 운용하면 주치의 두 명이 쓸 정도는 되겠네.”
“지금 내줄 수 있는 건 10개야.”
항학명이 냉큼 설명을 덧붙였다. 능연이 20개를 다 써버리면 나중에 침대가 없을까 걱정이었다.
“10개? 오케이. 원하는 사람 있어?”
그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 능연이 흥미 있음을 눈치챌 수 있는 말투로 능연이 항학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침대 10개라면 능연은 이틀 정도면 해치울 양이었다. 복강경 수술만 한다면, 한 시간에 한 건, 하루면 다 채울 수 있다.
팔채향 같은 작은 병원에 침대 10개가 다 찬다면 언제 비울 수 있을지 하늘만이 알리라.
거기다 간호 수준도 있어서, 능연이 팔채향 분원에 출장 수술 가는 건 별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가고 싶어 하는 의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장안민 선생님 어떨까 해서.”
생각해 둔 사람이 있던 항학명이 바로 이름을 말했다.
“간담췌외과인데?”
“님이 허락만 하면 내가 바로 가서 말해 볼게.”
항학명은 이리저리 생각해도 가장 적당한 후보라고 생각하며 조금 긴장한 듯 말했다. 능 팀 다른 의사보다 장안민이 기술도 더 두루두루 갖췄고, 경험과 경력도 더 많아서 문제 생길 일이 적었다.
그리고 장안민은 돈이 많이 궁하니까 능연 팀 아닌 다른 의사보다 말 꺼내기도 쉬울 것이고 말이다.
항학명은 지금 기술은 두루두루 갖추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고작 2천 위안 때문에도 주말에 차로 6시간 왕복하고 8시간 일할 생각이 있는 그런 의사가 필요했다.
솔직히 장안민이 그런 처지긴 해도 능연이 뒤에서 밀어줘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전화해서 물어볼게.”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바로 핸드폰을 꺼냈고, 항학명은 더욱 긴장하면서 또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봤다. 능연이 전화해준다면, 그가 찾아가는 것에 비해 완전히 효과가 다르리라.
몇 발짝 떨어져서 통화를 마친 능연이 다시 돌아왔다.
“나중에 기회 되면 해보겠대. 네가 직접 연락해 봐.”
“이렇게 쉽게?”
오히려 항학명이 놀라 멍해졌다.
“이게 계파라는 거지.”
웅선생이 허무한 듯 한마디 내뱉었고, 능연과 항학명이 그를 바라봤다.
“의사들 계파, 모르나?”
되묻는 웅 선생의 말에 능연과 항학명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늙은이가 뭘 알겠냐. 맞다, 연아. 병원 리모델링도 했는데 이제 나 봉급 올려줄 때 되지 않았냐고 아버지한테 말씀드려라.”
설명하려던 웅 선생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쓴웃음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