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도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온종일 끓인 1킬로 넘는 산닭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사태살 덩어리, 돼지 반 마리 그리고 커다란 돼지 꼬리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연자 누나 또 다이어트 해요?”
“그런 것 같구나. 밥 세 그릇 먹겠다고 하더라.”
눈썹을 꿈틀거리며 묻는 능연의 말에 능결죽이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 됐어요?”
능연 역시 비장한 표정이었다. 능결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로 리모델링된 주방을 가리켰다. 스테인리스 싱크대 위에 3구 인덕션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마누라가 집에서 기다려서 일찍 가야 하니 나는 밥은 됐네.”
“웅 선생님, 연자가 축하하자고 한 건데 이따 어디 갔냐고 물으면 어떻게 감당하라고요.”
“아니 그냥, 마누라 때문에 갔다고 하면 되지.”
“연자 다이어트 끝나고 첫 끼인데?”
“본인이 말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이어트 중이면 고기 많이 먹고 밥은 안 먹겠죠. 다이어트 끝난 지 오래됐으면 밥 세 그릇 먹겠다고 미리 선포할 리도 없고.”
능결죽의 말에 논리와 이치가 있었다.
다이어트 중인 여자는 무서운 존재이며, 다이어트 중인 연자는 더욱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가장 무시무시한 건, 다이어트에 실패한 연자고.
웅 선생은 아무런 말 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난 채소로 주게. 담낭 절제해서 고기 못 먹으니까.”
“채소 있어요. 다들 웅 선생 웅담 없는 거 아니까, 강조하지 마세요. 우리 진료소에서 한약을 짓는 것도 아니고 누가 웅 선생 담낭 노린다고.”
능결죽은 자기 농담에 자기가 신나서 웃었고 웅 선생은 망연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썰렁하기는.”
“냉채는 됐어요.(*썰렁하다와 냉채의 냉이 같은 발음)”
환자 수액을 바꿔주고 주방으로 들어오던 연자가 피곤해 보는 표정으로 테이블 가득한 고기를 바라보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 정도면 됐죠. 닭탕은 다 됐나요? 밥은요? 수육은 필요 없을까. 생선이 없네······.”
하구 진료소 사람은 모두 숨을 죽이고 눈빛을 교환했다.
연자 다이어트한 거 맞네!
실패했네요!
연자 무섭다······.
마지막 눈빛은 웅 선생의 눈빛이었다.
능연은 묵묵히 이유도 모를 축하 파티에 참여해서, 연자가 다이어트 실패할 때마다 꺼내는 전용 그릇을 내오는 모습을 바라봤다. 지름이 사람 경골(脛骨)을 넘고 깊이가 어린아이 다리뼈를 넘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이었다. 위에 ‘수연’이라는 이름도 적혀있었다.
바로 연자의 이름이었다.
한 냄비 지은 쌀밥을 넣어도 그릇에 빈 공간이 많이 남았다.
연자는 말없이 닭탕을 뜨고 소고기와 돼지머리 고기, 그리고 돼지고기를 집었다.
“잘 먹었습니다. 저는 병원에 갑니다.”
재빨리 제 그릇의 밥을 비운 능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늦었는데 어딜 가.”
능결죽이 동맹군을 찾듯이 팔을 뻗었지만, 능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수술 있어서 가서 수술해야 해요.”
말을 마친 능연은 바로 차고로 가서 제타를 타고 신속하게 집을 떠났다.
세차한 제타는 드르렁드르렁 엔진 소리를 냈고 언덕을 내려갈 때도 시끄러운 소리는 여전했다.
능연은 느린 속도에도 방심하지 않고 양손으로 핸들을 쥐고 진지하게 운전했다.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이라 능연이 좋아하는 통근 시간은 아니었다. 차라리 새벽 3시에 일어나 병원으로 가는 게 훨씬 나았다.
그때 뒤에서 삐용삐용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공간을 내주려고 좌우를 살폈지만, 공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앞차는 구급차 소리를 못 들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장병 환자입니다. 앞에 좀 비켜주세요!”
구급차 조수석에서 누군가 고함쳤고 능연은 미간을 좁히면서 앞차가 움직이는 틈을 타서 다급하게 핸들을 꺾어 공간을 비워냈다.
앞으로 조금 이동하던 구급차가 다시 멈췄다. 그때 구급차 뒷문이 열리고 보호자가 내리자 안에서 심폐소생 하는 구급 요원이 보였다.
구급 요원은 딱 봐도 이미 헐떡거리며 지쳐있었다.
능연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앞차가 움직이는 틈을 타서 자기 차를 길가 화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제타 수리는 싸고 간단해서 차가 긁힌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차에서 내린 능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 앞에 있는 구급차를 따라잡아 단숨에 차 안으로 들어갔다.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닥터 능연입니다. 제가 CPR 할게요.”
구급 요원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사람 목숨이 걸린 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동작을 멈췄을 참이라 능연의 말을 듣자마자 다급하게 자리를 내주었다.
능연은 1초도 허비하지 않고 바로 이어서 환자의 흉부를 힘껏 압박했다.
그때 뒤에 있던 운전자와 동승자들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는 저마다 클락션을 눌렀고, 열정적인 사람은 아예 차에서 내려 환자 보호자처럼 앞으로 달려가며 고함쳤다.
구급차가 드디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잠시 후 교통경찰도 달려와 교통 지휘를 했다.
“바로 운화병원으로 갑시다. 응급의학과에 전화해서 환자 맞을 준비 하라고 해주세요. 환자 상태도 보고해주고요.”
심폐소생 중인 능연의 말에도 리듬감이 넘쳤다.
얼마나 심폐소생이 이어졌는지 몰라도, 지금 속도로 병원에 도착하면 환자는 장시간 심폐소생을 받은 셈이 된다. 그런 환자는 운화병원으로 보내야 그래도 생존율이 조금 높아지리라 생각했다.
심폐소생 하는 능연의 동작을 본 구급 요원은 그가 전문가임을 바로 알아차렸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뒤에서 차 몇 대가 클락션을 눌렀고, 뒷문을 열어 둔 채로 운행하는 구급차도 몇 번 눌렀다. 서서히 차도에 통로가 생겼고, 구급차는 막힌 구간을 겨우 벗어났다.
뒤에 차도는 금세 다시 막혔다.
잠시 후, 파도가 덮친 바다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상태로 되돌아갔다.
구급차가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전용 통로로 들어가서 막 멈추자마자 건장한 남자가 뒷문을 젖히고 짐승처럼 환자를 빼앗아 능연에 이어서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그가 하얀 가운을 입어서 다행이지, 환자 보호자는 가스통을 치켜들 뻔했다.
지칠 대로 지친 능연이 차에서 뛰어 내렸다.
“전기충격 두 번 하고 에피네프린도 주입하세요. 기도는 개방했고, 복부 부품 현상 있습니다. 심장 내과로 보내요.”
같이 온 구급 요원도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을 파악한 연문빈이 이어서 할 사람을 부르자 왜소한 여원이 민첩하게 스트레처 카 위로 올라가 연문빈 대신 흉부를 압박했다.
연문빈은 스트레처 카를 밀며 재빨리 움직였고 능연도 따라가면서 오더 내린 후에 걸음을 멈췄다.
연문빈 들이 모두 이제 심폐소생에 매우 노련해서 더 깊게 지도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온 환자 보호자는 아직 놀란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모습으로 능연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운화병원 의사들이 우리 감옥 수감자보다 더 건장하네요.”
능연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키가 작고 옹골찬 남자에게서 블루칼라 느낌이 났다.
“사법국 사람입니다. 제1 교도소에서 일합니다. 간수라고들 하죠. 저는 금풍입니다. 환자는 금확, 제 동생이고요.”
능연은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몰라 고개만 끄덕였다.
계속 물어볼 틈을 찾고 있던 구급 요원은 이제 곧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간수는 심장병에 쉽게 걸린다면서요? 교도소 일이 쉽진 않죠?”
“맞습니다. 6개월 전에 호남 주방장이 들어왔거든요. 맛있긴 한데, 맵고 기름져서 6개월 만에 질리더라고요. 제 동생, 작년에 검사받을 때 안 그래도 지방간 있었는데 이렇게 됐네요.”
금풍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구급 요원은 조금 멍해졌다.
“화날 일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요.”
“간수지 수감자 아빠도 아닌데 화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제 동생이 이번에 잘못되면 내가 조카한테 아빠가 되어 주어야겠지만요.”
“병원에 오기 전에 응급처치가 잘 되어서 희망적입니다.”
금풍이 흐려진 표정으로 하는 말에 능연이 간단하게 위로하고는 바로 응급실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응급센터 당직 의사 중에 주 선생만 주치의였고 나머지는 레지던트뿐이었다. 하필 저녁 식사 시간 후에 응급 환자가 많은 편이라 응급센터는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능연은 훈련의 한 놈을 잡아끌고 봉합을 시작했다.
능연이 휴식을 즐기는 방식 중 하나였다. 간단하고 쉬운 봉합을 하면서 통증도 해결해주고 환자의 요구에 따라 흉터 크기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능연을 본 주 선생은 더욱 날아갈 듯이 기뻤다.
“능연아, 너 퇴근한 거 아니냐? 왜 다시 왔대?”
주 선생은 능연에게 다가가 환자 옆에 서며 나도 일하는 중이라는 모양새를 취했다.
“연자 누님이 다이어트 실패했거든요.”
“뭐라고?”
다친 청년을 데브리망하며 대답하는 능연의 말에 주 선생이 알아듣지 못해 되물었다.
“그렇다고요.”
“그렇다고가 뭔데?”
“그럴 때 저는 보통 피해 있거든요.”
“그으래.”
물어도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으리라 판단한 주 선생이 입을 다물었다. 물론, 묻기도 귀찮았다.
하지만 데브리망 중이던 젊은 환자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두 사람을 주시하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 저 머리를 부딪쳤나 봐요.”
“응? 왜요? 무슨 느낌인가요?”
데브리망을 마친 능연은 환자 머리 검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머리 쪽은 복잡해서 뇌진탕 같은 증세일 때는 환자 본인 설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팔뚝 전체를 소독할 때도 아프다는 소리 하나 하지 않던 젊은이가 지금은 목소리도 덜덜 떨고 있었다.
“아까 두 분이 나누는 말씀, 뭐가 빠진 것처럼 들리더라고요. 귀가 이상해진 걸까요? 아니면 머리가 잘 못 된 걸까요? 미드에서 이런 거 본 거 같기도 하고요.”
“말이 빠진 거 같다고요? 일단 들리는 거면 그럼 귀가 이상해진 건 아닐 텐데요?”
뭔가 떠오르는 듯 입을 실룩이던 주 선생이 억지로 입을 다물었다.
“주 선생님?”
“아니, 일부러 단어 빼고 말하면 환자분이 망가지는 거 아닐까 해서.”
“뭐라고요?”
“뭐라고요?”
능연과 환자 모두 고개를 돌렸다.
“농담이야. 흠흠. 환자분, 아까 그냥 업계 농담한 거고요. 환자분은 문제없습니다. 청력, 이해력 정상일 겁니다.”
“제가 말을 못 알아듣고 있는데, 정상이라니요. 업계 청력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주 선생이 웃으며 하는 말에 젊은이가 표정까지 변해서 두려운 듯 물었다. 이번엔 주 선생이 멍해져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금 전에 제가 뭐라고 했는지, 못 알아들으시겠어요?”
“아, 알아들었어요. 농담 한 번 한 거죠. 당신들이 메스를 들고 있는 게 아니면 나도 당신들 망가질 때까지 가지고 놀았을 텐데 말이죠.”
주 선생은 그제야 한숨 돌리고는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드레싱한 젊은 환자를 돌려보낸 후 주 선생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요즘 어린애들 간도 크다. 의사도 가지고 노네.”
“뭐라고요?”
“응?”
능연이 되묻는 모습에 주 선생이 또 놀라서 능연을 바라봤다. 그러자 능연이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었고, 주 선생은 멍청하게 그를 바라봤다.
“다음 환자 모셔 오세요.”
능연이 태연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보며 주 선생은 자기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