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U에 간 능연은 얼마 전 들어온 금확의 상황을 묻고는 오더를 내렸다.
ICU 쪼랩 주치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쓴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병원이었다면 ICU 전체가 온 힘을 다해서라도 응급의학과 ‘세력の 대침입’을 막았으리라. 그러나 국내는, 진료과 사이에 거리감은 있다고 해도 능력 있는 의사라면 까치발만 들어도 넘을 수 있는 거리였다.
대다수 의사는 제 몸이나 지키자는 태도를 보이며 다른 의사의 작업을 간섭하지 않고, 필요할 때가 되면 알아서 손을 쓴다.
운화병원 내부에서 ICU, 간담췌외과 혹은 소화기 외과 같은 작은 진료과는 전형적인 약체 진료과고 일반 외과, 정형외과 혹은 응급의학과 같은 대형 진료과와 비교하면 이만저만 약한 게 아니었다.
의사란 실력이 좋으면 명예, 타이틀은 따라온다. 물론, 대부분 개뿔 소용 하나 없지만, 힘을 모을 때는 꽤 쓸만해 진다.
가장 중요한 건, 그런 타이틀을 가진 의사가 그걸 어떻게 쓰냐 하는 것이다.
수부 외과 금서 주임은 부처과 의사라서 본인이 권력을 그다지 휘두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변 의사가 권력을 휘두르는 걸 의도적으로 누르는 편이다.
곽종군은 전혀 극단적으로 다른 유형이고. 그는 휘두를 권력이 없어도 맹렬한 불벼락력으로 온 세상을 불태울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능연은 지금 타이틀이나 명예 같은 것도 없고 행정권도 거의 없지만, 할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성격이라 보통 의사는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었다.
오늘 들어온 금확도 ICU 쪼랩 주치의는 얼마든지 능연의 건의를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서 환자가 무사히 ICU에서 나갈 수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능연이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ICU 의사들은 모두 이것 하나는 잘 알았다. 사망 토론을 하게 되면 능연이 그들 체면을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
반대로 능연 오더대로 했다가 환자가 사망에 이르면 ICU 의사라도 사망 토론 때 능연 체면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능연이 살려낸 장시간 심폐소생 환자는 이미 여럿 있었고, 그 과정을 모두 지켜 봐온 ICU 의사들은 정말로 능연과 버티기 싸움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20분 후, ICU 회진을 마친 능연이 밖으로 나가자 진작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금확 가족과 동료가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연문빈은 경계하며 앞으로 나서서 양팔을 펜스처럼 벌려 대부분 간수인 보호자들을 2 미터 밖으로 제어했다.
“환자 상태 괜찮은 편입니다. 오늘 위기를 넘기면, 생존율도 높아지고요.”
그런 모습에 익숙한 능연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금확 부모와 처가 멍한 듯 듣다가 머리를 쥐어 짜서 질문을 잔뜩 던졌다.
그러자 이번엔 좌자전이 앞으로 나섰다. 검고 주름진, 반쯤 깐 졸임 달걀 같은 얼굴은 환자들의 신뢰감을 가볍게 얻어냈다.
양측이 묻고 대답하면서 좌자전은 금세 환자 보호자들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다 기본적인 질문이라는 걸 확인한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배낭을 멘 금풍이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 없이 능연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전방에 CCTV가 없는 걸 확인한 금풍이 재빨리 능연을 따라잡았다.
“능 선생님, 안녕하세요.”
“금 선생님. 뭐, 더 하실 말이라도?”
능연은 의외도 아니라는 듯 그를 대했다. 초짜 의사가 대답하는 질문에 만족하지 않는 보호자는 매우 많았다. 어차피 같은 대답이라도 그들은 상급 의사를 통해 듣고 싶어 했다.
“아니요.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수감자가 저민 마늘 가져다드리겠다고요. 정말 맛있습니다. 맞다, 여쭤보는 걸 깜빡했네요. 마늘 드시나요?”
“먹긴 하는데,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능 선생님! 마늘이라고 무시하시면 안 됩니다. 이거 정말 우리 교도소 명물입니다. 먹어본 사람은 다 맛있대요. 만날 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고작 저민 마늘이지만, 이게 쉬운 게 아니랍니다. 과정이 복잡해요. 생각해보세요, 마늘 벗기고 잘라서 저미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요. 누가 이런 걸 십 년을 하루 같이 매일매일 하겠습니다. 다 교도소라서 가능한 거예요. 그죠?”
“의사들은 선물을 못 받습니다. 특히 이런 귀한 건요.”
듣고 보니 금풍의 말에 반박할 말이 없어서 능연은 그냥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금풍이 다리를 내리치며 말을 계속했다.
“이게 제가 드리려는 말씀이었습니다. 귀한 게 아닙니다. 귀한 게 아니라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도 매일 먹는 거 아니겠습니까. 수감자가 일한 건 다 돈으로 줍니다. 그냥 부려먹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일당이 좀 적긴 하지요. 그래도 어차피 비싸게 팔 만한 것도 아니라서요. 마늘장아찌는 많이 만들지도 못해서 우리끼리 먹는 것도 모자랍니다.”
“마늘장아찌를 안 먹어서요.”
“드셔보시면 압니다. 능 선생님, 이거 마늘장아찌라고 무시할 게 아니라니까요. 조미료로 들어간 고추, 고춧가루 다 하나하나 우리가 고른 겁니다. 게다가 우리 교도소 마늘장아찌는 전해 내려오는 비법이 있어요. 대를 이어 내려오는 거라니까요. 요리사가 출옥할 때 되면 제자를 길러놓고 나가야 해서, 몇십 년 동안 끊어진 적 없는 비법입니다.”
금풍은 자부심을 느끼는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교도소 밖에 대단한 요리사도 우리처럼 맛있게 못 만듭니다. 이건 미쉐린이 와도 못 이겨요.”
큰소리치는 금풍의 모습에 큰소리칠 이유가 있겠지 싶어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대대로 물려주기가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죠?!”
동의를 얻은 금풍은 더욱 신이 났다.
“그러니까요. 마늘장아찌 담는 게 더럽고 힘들고 고된 일이랍니다. 온종일 마늘 까고, 마늘 깔 때도 힘들고 괴롭고. 저미는 것도 쉽지 않다니까요. 종일 하다 보면 온몸에 냄새도 나고요. 밖에서야 일 년에 한 번 담그는 것도 대단하죠. 대를 잇는 건 더 힘들고요.”
금풍은 화제를 바꾸면서 웃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1대는 쉽죠. 그냥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2대를 찾아 물려주는 건 힘들지요. 3대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 교도소는 벌써 8대까지 이어 왔답니다. 밖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요.”
능연이 알아들은 것 같자, 금풍은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몇 근밖에 안 가지고 왔어요. 일단 맛이나 보세요. 정말 얼마 하지도 않는다니까요? 그냥 특산품이에요. 사무실로 가져다 놓을까요?”
능연은 잠시 머뭇거렸다. 들어보면 정말 맛있는 마늘 같긴 한데, 선물 받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자 마늘 선물에 도가 튼 금풍이 딱 보고 왜 능연이 망설이는지 알아차리고 웃었다.
“제 실수네요. 선생님 걱정 마시고 일 보세요. 이따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금풍은 능연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껄껄 웃으며 돌아갔다.
능연은 조금 아쉬운 듯 그와 그가 등에 멘 배낭이 멀어지는 걸 바라봤지만, 더는 신경 쓰지 않고 바로 간담췌외과로 향했다.
장안민을 통해 한동안 담낭염, 담낭 결석 환자를 간담췌외과에 모아두고는 시간 날 때마다 가서 수술했다.
그와 같은 시각, 신속하게 커뮤니케이션을 마친 금풍과 좌자전이 CCTV가 없는 계단에 서서 들키면 안 되는 거래를 시작했다.
“8병 있습니다.”
“네.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드려야죠. 앞으로 혹시 제1 교도소에 올 일 있으면 제 이름 대세요. 아, 아니 제 뜻은······.”
“예, 압니다.”
좌자전이 금풍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해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사실 우리 교도소엔 선생님처럼 나이 많은 수감자를 받지도 않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가세요.”
손에 든 마늘장아찌가 다 무거워진 기분으로 좌자전이 다시 금풍의 어깨를 툭툭 쳤다.
‘불륜 잡았을 때 메스를 안 휘둘러서 다행이지. 이 마늘장아찌 내가 담글 뻔했네.’
간담췌외과 수술실 밖에서 능연은 세면대 앞 거울을 앞에 두고 열심히 손을 씻고 있었다.
양손을 번갈아 씻으면서 손가락은 수도꼭지 쪽으로 향하고 팔뚝을 아래로 삼각형 모양을 만들었고, 그 자세를 유지하느라 몸을 앞으로 구부린 능연의 근육 라인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구석에 선 간호사와 의사들은 진지한 눈으로 그 장면을 지켜봤다.
운화병원 수술실에서 수술 전 준비하는 능연의 모습은 ‘복지’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데도 저렇게 쓸 만한지 보고 싶네.”
“와, 욕심도 많다. 난 이걸로 충분해. 라인이 딱 좋잖아. 연문빈처럼 굵은 팔뚝은 어우, 징그러워.”
“맞아, 연문빈은 못생겼지.”
“능 선생님 보고 있는데 연 선생 이야기 안 하면 안 돼? 기분 나빠지잖아. 와, 능 선생님 거울 보신다. 멋지다.”
“능 선생은 아침에 일어나서 비몽사몽 거울 보다가 자기 잘생김에 놀라서 잠이 깨겠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밖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능연은 열심히 제 할 일을 했다.
세면대 앞에 거울을 바라보며 능연은 머릿속으로 시스템을 불러냈다.
“시스템, 나 지금 담낭 절제술 몇 등이지?”
-현재 운화 시 2,380등입니다. 앞으로 3회에서 10회 담낭 제거 수술하면 하나 올라갑니다.
시스템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을 내놓았고 능연은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였다.
운화 시엔 삼갑병원이 20개 정도 있고 갑급, 을급 병원은 더 많았다.
삼갑병원만 따진다면, 2,380이란 순위는 삼갑병원 하나당 평균 100명의 의사가 능연보다 담낭 제거 수술 수준이 높다는 말이었다.
담낭 절제술이 그렇게 어려운 수술이 아닌 걸 고려하면, 갑급이나 을급에도 적지 않게 능력자 의사가 있으리라.
그러면 운화병원만 해도 능연보다 잘하는 의사가 50명은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계산해보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우선, 간담췌외과 주임 하원정에 부주임급 의사 몇 명, 그리고 연차 높은 주치의라면 담낭 절제술은 능연보다 높을 것이다. 일반 외과 주임, 부주임 그리고 연차 높은 주치의도 대부분 간단하게 담낭을 제거할 것이고.
외과에 진료과가 나뉘어있어도 의사 기술까지 나뉜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보면 소화기 외과 의사, 흉부외과 의사, 그리고 신경외과 의사라도 담낭 절제는 괜찮은 수준일 테고, 능연을 쉽게 넘어서리라.
성립처럼 간이식도 가능한 간담췌외과라면 담낭 절제 고수를 한 트럭 끌어내는 것도 아무런 문제 없을 테고, 육군병원처럼 간담췌외과가 따로 없는 병원에도 일반 외과 고수가 더 많이 있을 수도 있다.
능연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세척실에 있는 간호사와 의사는 능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입을 삐죽이는 것만 보고도 마음이 둥둥 떠올랐다.
“능연이 입을 삐죽이는데?”
“기분 나쁜 일 있나?”
“거울 깨끗하게 안 닦은 거 아니에요?”
“자기 얼굴 불만이라 그런 거 아닐까? 연예인들은 그렇다던데.”
“쳇, 연예인 따위.”
“하하하.”
“하아, 우리 능 선생님이 그럴 줄 몰랐네.”
“수술할 때 조심해, 능 선생 기분 건드리지 말고.”
“그럴 리가요.”
“말도 안 돼요.”
“야식 뭐 먹지? 능 선생님 배고프실 텐데. 저녁에 수술 세 건이나 있어.”
“단백질 풍부한 거 먹여야지. 에너지도 높은 거로.”
대화 주제는 매우 빠르게 넘어갔다.
능연은 손을 10분이나 씻고서야 수술실로 들어갔다.
벌써 안에서 준비하던 여원은 소독된 수술복을 들고 발로 받침대를 끌어당겨 밟고 올라갔다.
여원은 양손으로 목깃 양쪽을 잡고 수술복을 열어 능연이 양손을 소매에 넣은 후에 받침대에서 내려왔고 간호사가 뒤에서 능연의 수술복 매듭을 조였다.
곁에서 지켜보는 장안민은 부러움에 눈이 다 멀 지경이었다.
그 모든 과정은, 발판을 밟고 올라가는 부분을 제외하고 부주임 이상이나 받을 수 있는 대우였다.
가끔 눈치 빠른 훈련의나 레지던트를 밑에 두는 주치의들도 그런 대우를 받지만, 그런 조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임들에게 뺏기고 만다.
의사 생활 시작한 지 10년 된 장안민은 더욱 그런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어떨 때는 스스로 간호사 곁으로 다가가서 줄 좀 묶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더할 나위 없이 적극적으로 장갑을 당겨주는 간호사를 보며 장안민은 논평구 병원 팔채향 분원 수술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팔채향은 멀기는 했다.
수술실 수준도 떨어지고.
수술 기구도 손에 잘 익지 않고.
그러나 수술실에서 존경받는 기분엔 취할 수밖에 없었다.
장안민은 달콤한 팔채향 수술실 공기를 맡기라도 한 듯 깊게 숨을 들이켰다.
“장 선생님.”
간호사가 장안민을 부르면서 받침대를 능연 앞에 내려놓았다. 담낭 수술할 때 능연은 수술대를 올리는 걸 좋아해서 장안민도 받침대를 써야만 했다. 여원은 두 개를 놓아도 부족했지만, 오늘은 여원이 수술에 참여하지 않는다.
“위치 조절하세요.”
능연은 한마디하고는 바로 수술을 시작했고 장안민도 대답하고는 다시 집중했다. 능연 어시스던트를 하는 것도 이제 익숙해졌다.
특히 담낭 절제술은 능연은 빠르지도 않고 기술도 노련하지 않았다.
이 수술에 더 익숙한 장안민은 대단한 기술 조공술까지 투척하지 못해도 적어도 능연을 편안하게 할 정도로 시중드는 건 가능했다.
“오늘 순조로운데?”
장안민은 수술할 때 조용히 있는 걸 힘들어했다. 사실상 수술실이 조용한 걸 좋아하는 외과의는 드물었다. 능연은 그저 가볍게 대꾸하고는 계속 모니터를 주시하며 손을 놀렸다.
지금 실력으로는 정신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원래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능 선생, 점점 잘한다.”
여원이 곁에서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자주 하니까 잘할 수밖에.”
“옳은 말씀이네요. 내일 아침에도 담낭 제거 수술해야겠어요.”
“내일 아침?”
능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그렇게 말하자 장안민이 확인하듯 물었다.
“3시에 하죠. 원래 6시에 수술 있는 거 맞죠?”
“맞아. 간 절제, 그리고 아킬레스건 보건술.”
“좋아요. 그럼 3시부터 6시까지 담낭 수술 세 건 넣어요. 아킬레스건 끝나고도 담낭 계속 하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능연은 입을 다물고 열심히 수술에 집중했다. 그러자 장안민이 의아한 듯 물었다.
“내일, 안 자?”
능연은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스태미너 포션이 충분해서, 잠을 안 자도 전혀 문제없었다.
그때 시스템에서 퀘스트가 튀어나왔다.
- 퀘스트: 담낭 절제술
- 퀘스트 내용: 담낭 수술 여러 번 완성할 것
- 퀘스트 보상: 퀘스트 기간 내에 담낭 절제술로 얻는 ‘진심 어린 감사’ 보물상자 X 2
“더블 이벤트라.”
재빨리 시스템 퀘스트를 해석한 능연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사실 매우 예민했고, 특히 요즘 젊은 사람은 모두 인터넷을 잘 사용해서 수술이 끝나면 며칠 뒤에 침대에서 내려와야 수술이 잘 된 건지, 출혈량은 얼마나 되어야 정상인지 다들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다.
더 중요한 건 환자 본인의 상태는 환자가 예민하게 느낀다. 큰 수술이면 몰라도 담낭 제거 같은 작은 수술은 수술을 마친 환자 본인은 그냥 자신의 몸이 좋아졌구나, 할 뿐 진심 어린 감사를 할지 말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그 밖에도 유명세가 가져다주는 플러스 요인도 무시할 수 없었다.
능연이 한 수술만 봐도 아킬레스건 수술은 유위신 수술을 했었다는 이유로 ‘진심 어린 감사’ 비율이 가장 높은 유형이었다. 게다가 결과도 좋아서 멀리 수술받으러 온 환자들의 믿음에 보답하기도 했고.
그에 비하면, 같은 그랜드마스터급이고 회복도 매우 좋은 단지 이식은 ‘진심 어린 감사’ 비율이 낮아서 관절경 수술 다음 정도였다.
오로지 보물상자만 바란다면, 능연에게 담낭 수술은 사실 의미가 없었다.
그가 한 담낭 수술로 얻은 ‘진심 어린 감사’ 보물상자 비율은 명백히 평균 이하였다. 더블 이벤트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효과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능연은 그래도 ‘진심 어린 감사’ 보물상자를 얻긴 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담낭 제거 수술 기교라면 능연의 수준도 평범한 병원 주치의 정도는 되고, 운화병원 간담췌외과 주임들 평균 수준보다는 조금 떨어진다.
그러나 수술 기교는 일부분이다. 대다수 병원 주치의가 매번 수술할 때마다 최고 수준을 낼 리도 없다. 최고 수준은커녕 평균도 잘 안 된다. 그러니까 평균이지.
외과의에게는 수술도 그냥 일이다. 병원 일을 학교에 비교한다면 수술은 그저 쪽지 시험 정도일 뿐이다. 좋은 쪽으로 이야기하면, 자주 수술하는 의사는 고3 학생처럼 쪽지 시험을 자주 보면서 실력을 쌓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술 중에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몽롱하고, 수술 중에 병든 어머니를 떠올릴 수도, 따돌림받는 아들, 반항기인 딸, 바람피운 마누라, 바람 상대인 장 씨, 얼마 전에 생긴 애인, 자기 둘째 애인을 건드리는 정형외과 부주임을 떠올릴 수도 있다.
능연은 그런 의사들보다 자기가 더 잘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진심 어린 감사’를 목표로 삼아 노력한다면 더 좋게 발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능연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술이 거의 끝나갈 때쯤 말을 꺼냈다.
“오늘 저녁에 수술 전 협진 한 번 하죠. 수술 끝나고요.”
“오늘 저녁에 수술 세 건인데?”
장안민이 놀라서 물었다. 정말 날 죽일 셈이니? 나 이제 막 팔채향에서 돌아왔는데?
능연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늘 수술 보충 토론도 하고요.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도 토론하고. 장 선생님 오늘 밤 수술 끝나고 보충 토론이랑 내일 아침 수술 전 토론에 참석하시고, 연 선생님이나 참석하고 싶은 분들은 자율 참석하고요. 그거 끝나면 장 선생님은 가서 주무세요. 내일 새벽 3시부터 6시 수술은 여원 선생님하고 할게요. 6시 이후 수술은 예정대로 하고요.”
능 팀은 지금 인원이 충분한 편이라, 능연 같은 집도의만 있으면 수술 시간은 충분히 돌아갔다. 물론 담낭 제거 같은 수술은 복강경을 들 조수 하나만 있으면 되어서 간 절제 혹은 단지 이식 수술보다 필요한 인원이 훨씬 적어서 가능했다.
여원 등 일찍 일어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표정에 변화조차 없었다.
조금 수면이 부족하긴 해도 의사들에겐 일상적인 일이었다.
내일 수술 끝나고 또 잠을 보충할 테니, 완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대부분 국내 의사는 그렇게 살아간다.
능연의 생존 모드가 좀 더 특별해서 그렇지.
지금 담낭 수술은 겨우 입문 수준인 능연은 수술 전 분석이 조금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리라 생각했고, 스태미너 포션을 하나 마시기로 했다.
새벽 3시, 능연은 수술을 시작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수술 속도를 올렸고,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한 것도 있어서 예정보다 수술 세 건을 더 빨리 끝냈다.
“한 시간 비네.”
시계가 5시를 가리키는 걸 보며 능연은 망설였다. 지금 수술실에서 나가면 잠시 후 다시 돌아와야 했다.
“이따 간 절제, 그다음이 아킬레스건 수술?”
“응, 맞아.”
능연이 재차 확인하자 막 족발을 다 졸인 연문빈이 노트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그럼 협진 하나 더 넣죠.”
시계를 본 능연이 결정을 내렸다.
“협진이라면, 모든 이에게 발언권 있는 거란 말씀?”
아침이라 육체와 사고가 모두 잘 돌아갈 때였고, 연문빈의 머리는 평소보다 맑았다.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우리도 의견이나 생각을 말해도 돼?”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제 코를 가리켰다. 그전까지만 해도 수술 전 진단은 모두 능연 혼자 진행했었다.
보통 능연이 혼자 사진을 보고, 각종 리포트를 읽고, 담당 의사에게 질문한 후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었고 다른 레지던트는 명령만 들으면 됐다.
그러니 명령을 듣는 방식에서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연문빈으로서는 거대한 변화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네? 협진이라면 우리도 말해도 되는 거잖아?”
곁에서 졸고 있던 좌자전도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협진이 바로 그런 거죠. 음, 여러분의 성장에도 도움 될걸요?”
“고마워, 능 선생!!”
연문빈은 근육을 불끈 세웠고 좌자전은 더욱 뭐라 설명할 수 없이 감격했다.
‘나, 컸구나.’
“능 선생. 내가 논문을 봤는데, 이건 내부 아크형 절개구가 외부 절개구보다 합병증이 적대. 특히 비장근(腓腸筋) 손상은 더 그렇고.”
“아킬레스건 커버 구역 혈액 공급 상황은 현재로서 아직 꽤 복잡해. 새로운 과제로 삼을 가치 있을 거 같아.”
“수술 후 기능 회복도 고려해야 하고.”
회의실에서 연문빈, 여원 그리고 좌자전이 격렬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능연은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은 고개를 저으면서 가끔 한두 마디씩 평가 내렸지만, 그들에게는 큰 동력이 되었다.
이제 막 아킬레스건을 접촉한 지 일 년쯤 된 레지던트에게 이런 기회는 천금을 줘도 바꾸지 않을 기회였고, 그동안의 고생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국내 정상급 아킬레스건 보건술 전문가와 함께 방안을 토론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란 말인가.
게다가 능연이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었다.
곧 있을 수술에 자신들도 공헌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세 사람은 저도 모르게 흥분이 됐다.
그들은 능연을 따라 수술을 오래 해왔지만, 레지던트는 레지던트일 뿐, 어느 각도에서 봐도 레지던트는 아직 배움 단계에 있는 존재였다.
병원이 아닌 다른 직장에서도 이제 막 시작한 신인은 이런 자리에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능연을 따라 일 년 연속 고강도 트레이닝을 했기 때문에 세 사람 모두 토론할 본전이 생긴 것이다.
능연 역시 그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못 해도 백 번 넘는 같은 수술을 해 온 조수들이었고, 다른 병원이었다면 사실 노련한 축에 드는 수술 의사였다.
그런 그들이 조수 입장에서 꺼낸 문제들은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 몰라도, 능연이 수술 방안을 더 완벽하게 보충할 수 있도록 측면에서 돕는 역할을 했다.
능연은 지금 수준에서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건 나쁠 것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수술하죠.”
벽에 걸린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능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 레지던트도 활짝 웃으면서 따라 일어났다.
결론을 내지 못해서 협진이 용두사미로 끝난 감도 있지만, 세 사람은 즐겁기만 했다.
능연 성격으로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능연은커녕 운화병원 다른 주치의들도 레지던트에게 이런 기회를 주는 의사가 많지 않다. 이런 팀 협진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팀에서 수백 수천 번 한 주력 수술을 뭘 더 토론할 게 있단 말인가. 주력 수술이 아닌 수술? 그렇다면 누군가의 새로운 개인 수술 방안이라는 말인데, 풋내기들이랑 토론할 이유는 더 없다.
세 레지던트는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수술대에 올라 하나같이 진지한 얼굴로 대화조차 잡담이 아닌 병세에 관한 내용을 나누었고 간호사들은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
한 방에 네 외과 의사, 그중 남자가 넷인데 간호사와 대화조차 하지 않다니, 명백하게 잘못된 분위기였다.
순회 간호사는 무심결에 수술실 카메라에 불이 들어와 있는지 확인했다.
“오늘 환자 뭐 하는 사람이에요?”
순회 간호사가 의문이라는 듯 연문빈에게 나지막이 물었고 ‘태도가 좋으면 돈이 생긴다’라는 말을 믿는 연문빈은 평소에도 태도가 좋기로 유명한데, 간호사가 방해하니 더욱 족발 꽃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폐기물 판매한다던데요. 상자 옮기다가 아킬레스건 끊어졌대요. 며칠 미루다가 온 바람에 수술이 어렵네요. 게다가 빨리 회복되길 원해서, 아킬레스건 강도에 대한 요구도 높고요. 병은 고쳤는데 실직하면 안 되잖아요. 그렇죠?”
“요즘 폐기물 판매 돈 많이 버나 봐요?”
“그만큼 일을 해야겠죠.”
“집이 빵빵해요?”
“폐기물 창고도 없는데 뭐가 빵빵하겠어요. 힘들게 돈 버는 사람이에요.”
질문을 던져도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순회 간호사는 순간 짜증이 나서 연문빈을 흘겨봤다.
“아무리 힘들어도 의사만큼 힘들겠어요?”
“그건 그러네요······.”
“의사보다 많이 벌잖아요.”
순간 연문빈이 안색이 변해서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의사는 돈 버는 방법이 다양하잖아요.”
“능 선생님은 그렇겠죠.”
순회 간호사가 생긋 웃고는 능연이 잘 보이는 자리에 가려고 빙 둘러서 스크럽 간호사 옆에 섰다. 연문빈은 반박할 말이 뱃속 가득했지만, 자기가 폐기물 파는 사람보다 많이 번다는 생각에 생각을 바꾸고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 혈관 봉합하세요.”
능연은 기운차게 축-능 아킬레스건 보건술을 하고 있었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는 보통 회복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그냥 단순히 아킬레스건 봉합을 원한다면 다들 일반적인 최소 절제술을 선택하니까 말이다.
아킬레스건 수술을 한 시간 넘게 느긋하게 하던 능연이 연문빈에게 마무리 봉합을 넘겼다.
일 년 전과 비하면 연문빈의 기술도 노련해졌고, 일반적인 다리 봉합은 기본적으로 흉이 크게 보이지 않게 잘 봉합했다.
“끝입니다. 좌 선생님, 환자 데리고 나가세요.”
능연은 장갑을 벗고 기지개를 켜고는 간 절제 수술을 계속하자고 말했다.
“준비하러 갈게.”
여원이 다급하게 받침대에서 내려가 응급센터 수술실에서 간담췌외과 수술실로 향했다. 응급센터 수술실은 수술 층에 있는 게 아니라서, 수술실을 바꾸려면 좀 걸어가야 했다.
수술 전 준비를 천천히 하면 10에서 20분은 걸리니, 능연은 서두르지 않았다. 여원은 세심한 사람이라, 수술 실력은 조금 떨어져도 시트 깔고, 소독하고, 환자 체크하는 일은 문제없이 잘했다.
응급센터 건물에 있는 틈을 타, 능연은 쉴 겸 회진도 하려고 일부러 병실 구역으로 향했다.
새벽 3시에 스태미너 포션을 마시고 네 시간 정도가 흘렀다. 담낭 수술 세 건 하고 개방식 아킬레스건 수술 하나, 중간에 수술 전 협진도 했으니 기본적으로 능연은 다른 외과의가 하루에 할 업무를 다 한 셈이었다.
응급센터 병실에 마연린이 혼자 회진을 돌고 있었다.
실습생들은 모두 졸업해서 조수조차 없었고, 제일 중요한 건 마연린의 소속은 여전히 정형외과라서 사람을 달라고 할 처지도 못 된다는 것이었다.
오늘 임시로 생긴 업무도 그랬다. 정형외과 동료들이 난리가 나지 않도록 마연린은 정형외과 당직 업무도 해야 했다. 수술을 안 하고 차트를 쓸 일이 없는 건 별거 아니고, 정형외과엔 일도 많고 할 사람도 많아서 사람이 모자랄 일은 없는데, 야간 당직은 다들 싫어했다.
마연린은 고개를 푹 숙였다. 능연 팀으로 오고 싶었지만, 정형외과에서 응급의학과로 간다? 병원을 잘 아는 사람이 들으면 다들 머리에 총 맞았다고 생각할 일이었다.
정형외과는 부자 진료과라 주치의들도 떵떵거리고 지내는 과였다. 응급의학과는 전형적인 힘들고 가난한 진료과라서 부주임도 제 살길은 제가 찾아야 하는 그런 과고.
마연린은 지금 동료보다 많이 벌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그래도 정형외과 수술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능연 밑에 있을 때도 정형외과 수술을 배웠고.
“얼마나 진행했어요?”
능연이 뒤에서 빠른 걸음으로 나타나자 마연린이 깜짝 놀라 생각에서 깨어났다.
“아, 지금 막 시작했어. 실습생도 없고······.”
“문제긴 하네요. 몇 명 불러 달라고 할게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좌자전이 보낸 침대 넘버를 핸드폰으로 확인했다.
“어제 수술한 사람 몇 명 확인하고 저랑 간담췌외과 회진 가요.”
“그럼 장 선생님한테 연락할게.”
마연린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러운 듯 능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다른 진료과 회진을 가다니. 실력 외에 유언비어에 태연한 영혼도 필요했다. 아니면 병원 내의 암묵적 관행에 시달려 괴로워하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능연은 그런 유언비어 속에서 자랐고 그룹 내 암묵적 관행은 무시해온 사람이었다.
그런 재능은 마연린이 물구나무를 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능연은 뒷짐 진 채 병실 하나하나 다니며 환자를 체크했다.
치료팀의 리더라서 3급 회진 제도에 따라 주에 한 번만 회진하면 됐다. 회진할 때도 세밀한 건 따질 것 없고, 담당 의사와 주치의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만 짚으면 됐고.
병원 실태로 보면 치료 팀 의사는 주로 ‘괜찮습니까? 푹 쉬시고요, 문제 생기면 의사 부르세요.’라고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환자와 보호자는 그런 치료팀 리더를 만나면 다른 의사보다 더 믿고 더 너그럽게 대한다. ‘진심 어린 감사’가 가져다주는 보물상자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담낭 수술이 아닌 ‘진심 어린 감사’는 더블 이벤트가 아니지만, 능연은 벌써 상자 7개를 얻었다. 시간만 있으면 계속 회진하고 싶을 정도였다.
“능 선생.”
장안민과 이름 모르는 의사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나타났다.
“장 선생님, 오셨어요. 일부러 여기 올 필요 없는데, 수술은 수술 층에서 합니다.”
“능 선생, 소개할 사람이 있어.”
능연이 미소 지으며 하는 말에 장안민이 체면을 무릅쓰고 그의 말을 자르고 입을 열었다.
“우리 병원 소화기 외과 추충인 주치의야. 전에 내가 밑에 있었지.”
중후해 보이는 추충인이 조금 초조해 보이는 모습으로 능연을 향해 웃었다.
“능 선생 수술을 몇 번 봤어. 그래서 부탁이 있어서······.”
“무슨 일이십니까?”
능연은 표정도 변하지 않고 물었다. 부탁이야 그에게 익숙한 일이었고, 당연하기까지 했다.
“오늘 위 정맥류상종창 수술이 있었거든. 개복할 때 환자 간경화 출혈이 발생했어. 거즈로 지혈했는데 효과가 안 좋아서······.”
추충인의 표정이 무기력했다. 간 수술은 복잡하기로 유명했고, 그는 지금 심지어 출혈 원인도 파악하지 못했고 간을 건들 엄두도 내지 못해서 원군을 구하러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술 중에 문제가 생겼으니 일반 합동 진료와 달라서 추충인은 허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능 선생, 우리 병원 간 수술 권위자잖아. 우리 수술실에 가서 상황 좀 봐주면 안 될까?”
추충인은 안절부절못했다.
다른 사람 뒤처리는 의사들이 제일 꺼리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뒤처리해줄 의사를 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성격이 안 좋은 의사를 만나 심한 소리를 듣는 건 양반이고, 성격이 더러운 의사를 만나면 수술대에 서서 뒤처리하는 내내 욕을 퍼부어대도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걸 못 견디거나, 뒤처리할 의사를 구하지 못하면 환자는 수술대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집도의는 갖가지 책임을 견뎌야 하고, 수술 중에 실수했다가 상급 의사 혹은 환자 보호자 혹은 법원 바닥에 깔아뭉개진다.
뒤처리를 거절한 의사는 기껏해야 바닥에 깔아뭉개진 의사의 원망을 듣는 정도?
뒤처리는 의사의 의무는 아니니까 말이다.
지금처럼 원인 불명인 간경화 출혈은 운화병원 의사 십중팔구는 거절할 것이다.
하원정이라고 해도 몇 번이고 고민한 후에야 할까 말까였다.
예전이라면 추충인도 별 도리 없이 하원정을 찾아가 고민할 시간을 줬을 것이다. 설사 그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친다고 하더라도 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능연이 있고, 추충인은 바로 그를 찾아왔다.
능연이 하원정보다 간 절제를 잘한다는 건 운화병원 의사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물론 공개되지 않은 비밀이지만. 능연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하원정 체면을 부수는 것이지만, 추충인은 그런 걸 고려할 처지가 아니었다. 병원 밖에서 전문가를 불러오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말이다.
능연은 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장안민을 바라봤다.
“간 출혈 확실합니까? 소화기관 출혈 아니고요?”
간 출혈은 능연이 터득한 기술로 커버 가능한 범위였지만, 소화기관 출혈은 완전히 다르다.
“간 출혈 확실해. 소화기관은 문제없어.”
“응혈 기능도 일을 안 해. 수술 전 판단에 착오가 생겼어.”
“문맥성 고혈압인가요?”
위 정맥류상종창이라면 문정맥 고압은 십중팔구 있으리라 싶은 능연이 다시 물었다.
“응, 문맥성 고혈압이야.”
추충인이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강 수술에서 이런 환자는 극도로 위험이 높았다.
추충인도 면목 없는 듯 목소리가 작아졌다.
“우리 유 주임님도 오셨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능 선생한테 온 거야.”
장안민은 추충인을 힐끔 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추충인은 주치의라 이런 어려운 수술을 집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수술하다가 안 돼서 상급 의사를 부르고, 그러다가 실패해서 능연을 불렀을 수도 있다. 물론, 유 부주임이 집도하다가 추충인에게 뒤집어씌운 것일 수도 있다.
다른 병원 다른 진료과 사정은 다 복잡했다. 장안민은 운화병원에 10년 있었어도 간담췌외과를 알 뿐이지, 소화기과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추충인이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어 능연을 바라본 장안민은 능연이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능연이 입을 열었다.
“가시죠. 간 수술 잠시 미뤘습니다. 여 선생한테 말해뒀으니까, 이따 장 선생님이 한 번 가서 확인해주세요.”
“아, 응.”
장안민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추충인은 흥분해서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다음에 마오타이 쏠게. 내가 아끼는 20년 산이야.”
“추 선생은 우리 병원 마오타이 왕이야. 술도 많이 가지고 있고, 술 평가도 실력급이지. 진짜 인지 가짜인지 뚜껑을 안 열고도 안다니까.”
“왕은 무슨. 진짜 마오타이 왕은 고맹이지. 가짜 술만 마시면 바로 토하잖아. 그런 체질은 정말 끝내주지.”
겸손하게 말하는 추충인의 말에 장안민의 웃음을 터트리고는 능연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고맹은 제약회사 직원이야. 곽 주임님하고도 꽤 친해. 비리비리하게 생겨서 술도 잘 못 마셔. 아무리 잘 만든 가짜 술도 바로 토해내거든. 주량은 형편없지만 말이야.”
“맞아, 그래서 아까워서 술을 안 먹이지. 비싼 술을 먹여도 몇 잔 못 먹고 쓰러져버리거든.”
추충인과 장안민은 능연 양쪽에서 수술 문제가 벌써 해결된 듯 껄껄 웃어댔다.
사실 두 사람은 능연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수술 중 출혈은 외과 수술에서 원래 금기시하는데 간 출혈은 복부 출혈 중에 가장 정상급 난제였다.
운화병원 간담췌외과 의사라고 해도 간 수술은 부주임급 기술 분계선이었다. 간 수술할 줄 아는데 아직 부주임이 아닌 의사는 배경 있는 누구에게 단단히 찍혔거나 감성 지수가 문제였고, 간 수술할 줄 모르는 데 벌써 부주임이 된 의사는 배경이 탄탄하거나 감성 지수가 문제였다.
물론, 능연 같은 레지던트는 예외 중에 특 예외이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능연의 뒷모습을 보며 추충인은 저도 모르게 능연이 파격 대우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올라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레지던트가 다른 과로 갔다면 다들 미쳐버렸으리라.
“전화해서 지금 상황이 어떤지 물어보시죠. 출혈량은 어떤지. 환자 상태 아직도 불안정한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능연은 신발을 갈아 신고 수술복을 꺼내면서 추충인에게 지시했고, 추충인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눌렀다.
“능 선생, 여기 있어. 스피커로 틀 테니까 설명해. 환자 지금 상태 어때? 출혈량은?”
“20,000cc입니다. 유리병이 꽉 찼어요. 상태는 괜찮은 편입니다.”
전화 너머 상대의 목소리는 평온한 편이었는데, 석션 소리, 거즈 달라고 고함치는 소리, 그리고 헐떡헐떡 조작하는 소리로 보아 수술실 안은 평온하지 못한 듯했다.
“옷 갈아입고 바로 가겠습니다.”
구구절절 말하는 법이 없는 능연은 한마디를 남기고 자기 슬리퍼를 끌고 속옷을 가지러 갔다.
촉박한 수술이라 목욕까지 할 시간은 분명 없겠지만, 399위안짜리 새 속옷 갈아입을 시간은 있었다.
능연은 스태미너 포션도 한 병 더 마셨다.
응급 간 절제 수술은 에너지가 충만해야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능연은 세척실로 가서 물로 손가락에서 팔꿈치까지 깨끗하게 헹구고 솔을 요오드 용액에 적셔서 3분 동안 손, 팔뚝을 닦고 마지막에 깔끔히 닦은 후 거즈로 요오드를 두 번 바르고 마무리했다.
시간 절약하기 위한 과정이었고, 정상이라면 수술 전에 10분은 걸릴 걸 요오드로 대신했다. 그러나 비누와 맑은 물에 비해 3분 요오드 세척은 살균 능력이 조금 떨어지고 손에도 좋지 않았다.
능연을 찾으러 나온 간호사는 요오드를 바르는 능연을 애타는 듯 바라봤지만, 뭐라고 말은 하지 못하고 감동으로 눈을 글썽였다.
“능 선생님, 너무 열심이세요.”
“능 선생님은 팔뚝도 잘 생겼어.”
옆 수술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소화기 외과 수술실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술실에서 고함치는 소리는 옆 방에는 잘 들리니까 말이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던 추충인은 능연을 보고 다급하게 달려가 수술실 문을 밟아 열고 능연에게 수술 가운을 입혀주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능 선생, 이분이 유 주임님. 유 주임님도 원군으로 오셨······.”
“누가 집도합니까?”
능연은 인사 나눌 생각 없이 바로 핵심 질문을 던졌다.
수술대 옆에 서 있는 유사현은 소화기 외과 선임 부주임이었다. 소화기 외과 주임을 일반 외과 시절부터 따르던 직계라 집도의 자리를 운운하는 사람이 한동안 없었던 유 주임은 순간 멍해졌다.
집도할 수 없다면 조수로는 의미 없다는 생각에 능연 역시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자네가 집도하게.”
유사현은 손에 든 포셉과 거즈를 내던졌다.
“능 선생, 우리 유 주임님이 지금 기분이 안 좋으셔서 그래. 개복하자마자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얼굴이 시뻘게져 변명하듯 하는 추충인의 말에 능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저 집도의 자리만 필요했다.
소화기 외과 부주임 어쩌고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포셉을 던진 유사현은 자기가 생각해도 미안해졌다. 나이가 새파란 능연이 체면을 깎아도 너무 깎으며 직설적으로 말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지만.
행동을 되짚어본 유사현은 후회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능연 같은 능력자에게 찍힐 일은 최대한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이번에 밉보이면 다음에 다시 일이 생겼을 때 와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심하게 생각하면 어느 위원회에 투서라도 한다면 부주임 앞날이 어두워진다.
유사현은 미간을 단단히 좁히고 수술대를 바라봤다. 능연이 수술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의사가 의사를 제일 잘 안다고, 수술이 잘 되면 집도의 성질이 아무리 더러워도 그냥 신경질 좀 부리고 티를 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수술이 잘 안 되면, 유사현은 평생 기억에 남으리라. 그리고 또 하나, 자기가 성질을 부린 것 때문에 환자가 수술대에서 죽게 된다면, 그것도 유사현으로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 된다.
유사현은 추충인에게 눈짓했고, 몰래 한숨을 내쉰 추충인은 순순히 그의 전서구가 되었다.
“능 선생, 어때? 내가 어시할까?”
“필요 없습니다. 찾았습니다.”
능연의 손이 깊숙하게 환자 뱃속으로 들어가자 주변 의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추충인은 더욱 놀라 저도 모르게 그렇게 빨리 찾았냐고 물었다.
능연은 대답하지 않고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한 다음, 시스템을 불러 보라색 약물을 꺼내 홀짝 마셨다.
- 스킬 포션(소): 모든 기능 +1, 10초 유지.
작은 스킬 포션은 능연이 자아 발전 퀘스트를 완성한 후 얻은 보물상자에서 나온 것이다.
전에 받았던 두 시간짜리 스킬 포션과 비교하면 10초짜리 스킬 포션은 계륵이란 느낌이 들었다.
대다수 수술에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지만, 10초 안에 그 골든타임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게 오래 수술해온 결과 능연은 골든타임이란 대부분 의의로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능연은 지금까지 이 보라색 포션을 사용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는 그 포션은 그냥 레전드급 기술을 잠시 체험해보라고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번 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본인의 생각을 부인했다.
그는 이미 레전드급 기술을 체험했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10초로 뭘 체험할 수 있단 말인가. 레전드급을 체험하기엔 두 시간도 부족했었다!
그러나 지금 능연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결론을 얻었다.
10초는 판단을 돕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라고.
포션을 마신 능연은 마스터급 간 절제술에서 그랜드마스터급으로 올라갔고, 그랜드마스터급이었던 맨손 지혈과 열 지혈은 레전드급으로 올라갔다.
능연은 1초 만에 자신의 판단을 확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간 절제 해야 합니다.”
“어?”
“아?”
“아!”
소화기 외과 의사들이 무편집 동영상 음향효과를 냈다.
능연은 설명할 생각도 없었다. 환자가 피를 흘리고 있는데 상황 분명히 설명한 다음에는 동의라도 구하란 말인가?
그런데 어떻게 곁에 있는 소화기 외과 의사들을 이해시키고 동의를 받는단 말인가.
심지어 그들은 간 절제 기술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데.
소화기 외과 부주임이라고 해도 특별한 경험은 없고 간 수술을 집도해 본 적도 없었다. 일반 외과 시절에 간 수술 어시는 했을지 몰라도 거기까지였다.
능연은 더할 나위 없이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말을 꺼내면서 어느새 거즈를 꺼내기 시작했고, 말이 끝났을 땐 벌써 간 주변의 거즈 압박을 풀고 순식간에 간을 환자 복부에서 꺼냈다.
복부 검사할 때 출혈이 발견되어서 출혈 포인트를 찾으려고 환자의 복부는 이미 캐리어만큼 벌어져 있었고 간으로 들어가는 혈관도 벌써 차단되어 있었다.
능연은 대담하게 왼손을 간 아래쪽에 넣고 메스를 잡아 한 손으로 그으면서 손을 쳐들고 메스를 던졌다. 그리고 양손에 힘을 주어 그랜드마스터급 간 절제 스킬을 사용해 환자의 간을 거칠게 불활성 박리했다.
수술실은 새벽 4시의 영안실처럼 고요해졌다.
“이, 이게······.”
유 주임도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놀라움을 뭐라고 해야 할까? 귀신 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도와주러 온 의사가 환자의 간을 꺼내 메스를 대더니 반으로 쪼갰다? 이걸 누가 믿을까?
마오타이 몇 병을 마셔도 이런 허풍은 떨지 못하리라.
능연은 신속하게 간을 내려놓고 시간을 다퉈 혈관 결찰을 하고 담관 결찰도 한 다음, 떼어낸 간을 스테인리스 트레이에 넣었다.
아이 주먹만 한 간이 툭 하고 트레이에 떨어지는 소리에 수술실에 있는 모두 덜덜 떨었다.
10초, 30초, 1분 후, 유 주임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냥, 잘라?”
“일반 간 절제는 한 시간 반 걸리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능연 역시 심사숙고 후에 내린 결론이었다. 10초였지만, 능력 있는 의사의 10초는 쓰레기 의사의 평생보다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이게······.”
유 주임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 역시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 간 절제 수술은 안정된 메스, 빠른 손이 중요한 건 알고 있었다. 전설에 나오는 고수는 개복부터 간 절제까지 3분, 4분이면 된다고 한다.
능연은 지금 개복 과정을 줄였고, 간 혈관 차단 시간도 줄어서 바로 복부를 볼 수 있는 상황에 사전에 생각하고 분석할 시간이 있긴 했다. 그래도 몇 초라니, 빨라도 너무 빨랐다.
10초짜리 스킬 포션의 효력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능연의 속도는 어느새 느려졌다.
그러나 마스터급 간 절제 스킬이 있는 능연으로서 절제 부분이 가장 판단력과 실제 조작이 필요한 부분이라 그 부분을 끝내고 나면 나머지는 눈감고도 할 수 있는 부분에 불과했다.
능연은 묵묵히 제 할 일을 끝내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 거즈 지혈할 겁니다. 이따 수술 끝나면 ICU로 보내세요. 환자 나이가 많아서, 살 수 있을지, 본인에게 달렸습니다. 나머지는 선생님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유 주임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도의 자리로 돌아가서 고개를 숙여보니 간에 여전히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복강 내 고인 피는 모두 사라졌다. 그건 출혈이 잡혔다는 뜻이었다.
능연이 수술복과 장갑을 벗는 걸 바라보면서도 유 주임은 입술만 뻥끗댈 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환자가 수술대에서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능 선생, 고마워.”
추충인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부주임인 유사현은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은지 몰라도 추충인은 달랐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잠시 생각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ICU에 보낸 다음 저도 알려주세요.”
“아, 그래.”
추충인은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환자를 ICU에 보내고 나면 기껏해야 한 번 살펴볼 뿐이지, ICU 의사에게 오더 내리는 ‘몹쓸’ 버릇은 없었다.
그러나 능연은 실력이 좋으니 몹쓸 버릇도 옳은 버릇이겠지.
추충인은 얼굴 근육을 움직여 능연을 향해 만복을 바라는 표정을 지었다.
“능 선생. 며칠 뒤에 신선한, 아니 오래된 마오타이 가지고 갈게. 맛 좀 봐.”
추충인은 그렇게 말하며 능연을 배웅했고, 속으로 그 마오타이는 유 주임 이름으로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안민은 서둘러 능연을 따라 수술실에서 나왔고, 복도에 도착한 후에 민망한 듯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소화기 외과는 지들끼리 쿵짝이 맞아서 그래. 유 주임님이 나이도 많고, 진료과에서 호령하던 습관이 있어서 그렇지 나쁜 분은 아니야. 그냥 사람들 앞에서 폼 잡고······.”
“잠시만요!”
조금 전 수술을 세세히 되짚어보던 능연은 옆에서 주절대는 장안민이 시끄럽단 생각에 손을 휘둘러 그의 말을 막았다.
“아까 뭐라고 하셨죠?”
2분 후에 능연이 묻는 말에 장안민은 능연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물었다.
“수술실에서 혹시······언짢았어?”
“아니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본 능연이 대답했다. 스킬 포션을 사용할 수 있었던 수술이라 즐겁기까지 했다.
10초 만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경험이란 의사에게 흔한 경험은 아니니까.
장안민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고, 찬찬히 능연의 표정을 살펴봐도 정말 수술실 분위기에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능연은 여전히 흥미진진한 표정이었고, 시계를 내려다보더니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여 선생한테 전화하고 가서 수술해요.”
“아, 그래.”
장안민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여원에게 전화해 환자를 다시 수술실로 보내라고 했다.
“맞다. 오후에 담낭 절제할 환자 더 모아주세요. 오늘 장전 상태 괜찮은 거 같아요.“
몇 분 전에 스태미너 포션을 마신 능연은 정말로 기운이 넘친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담낭 절제만 하고 담관에 문제 있는 케이스는 안 하겠습니다.”
예정된 담낭 제거 수술을 모두 끝내고, 장안민이 새로 찾아온 수술 4건을 유심히 살핀 후 능연은 과감하게 한 건은 포기했다.
장안민은 당연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한꺼번에 담낭 수술을 4건이나 구하는 건 그로서도 많은 사람과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은 건 둘째치고 구하는 대로 얻어지는 것이 놀라운 점이었다.
이건 말하자면 환자 뺏기였다.
예전 같았으면 간담췌외과에서 난리가 날 화약통이고 화약통의 도화선이기도 했다. 아니, 예전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다른 의사 환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달라고 해도 줄 리도 없고.
그러나 능연을 위해 환자를 구하는 장안민은 거의 거절당한 경우가 없었다. 언짢아하는 의사도 있겠지만, 장안민은 개의치 않았다.
순조롭고 또 조금 제멋대로인 것 같은 이런 방식에 장안민은 기분이 째졌다. 호랑이를 등에 업은 여우가 된 기분처럼 말이다.
기분 째지는 김에 장안민은 핸드폰을 꺼내 능연의 수술 장면 동영장을 또 틀었다. 30초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다.
앞부분은 능연이 복강 내 상황을 관찰하는 모습이었고 곧이어 능연이 한마디 하고는 간을 들고 떼어내고 돌려 넣고 꿰매는 장면이 나왔다.
원래는 제대로 된 응급 간 절제 수술 과정을 찍을 생각이었다. 일반 부주임이 응급 간 절제 수술하는 데 10분 정도 걸리고 2, 30분 걸리는 경우도 있다. 정상 간 절제보다 응급 간 절제는 당연히 터프하게 진행되고 예후도 떨어진다. 유일한 장점은 바로 환자를 살릴 확률이 비교적 크다는 것이다.
간담췌외과 초급 주치의인 장안민이 집도할 기회가 가장 많은 간 수술이 바로 응급 간 절제 수술이었다. 대다수 주치의급 의사는 그렇게 간 수술 인생을 시작한다. 야밤에 조용한 병원에 간담췌외과 의사라곤 초짜 주치의밖에 없을 때 응급의학과에서 갑자기 응급 협진 전화가 오면서.
그러나 장안민은 자기가 초 단위 짜리 응급 간 절제를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능 선생. 님이 아까 하신 간 절제 수술, 내가 동영상 찍어 뒀어.”
“아까요?”
“아니, 조금 전 수술 말고. 소화기 외과 구원 수술.”
“아.”
“저기, 다른 사람 보여줘도 돼?”
장안민은 못 견디겠다는 듯, 조심스럽게 오래 참고 있던 질문을 했다.
수술 과정이 너무 특수해서, 장안민의 능력으로는 이게 정상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조차 없었다. 정상 수술이 아니라면 소송하니 마니, 할 수도 있고, 환자를 살려냈으면 그만인데 뒤늦게 동영상이 돌았다가 문제가 될까 걱정이었다.
능연 역시 장안민이 묻는 의도를 알아차렸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응급 간 절제 수술이라서 다른 사람이 봐도 문제없습니다.”
“아아, 알았어. 그런데 간담췌외과 단톡방에 올려도 돼?”
“네.”
장안민이 입술을 핥으며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능연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능연은 인간관계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차피 모든 이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없고.
“담낭 절제 수술 환자 수술 준비하고요, 시간 결정되면 침대 번호 말씀해주세요.”
“응. 어? 환자 보러 가게?”
말을 마친 능연은 밖으로 나갔고, 알았다고 대답하던 장안민이 갑자기 놀란 듯이 물었다. 대다수 외과의는 수술 전에 환자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능연은 더욱 그랬다.
능연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담낭 절제 수술은 아직 입문급이라, 고려할 게 많아서요. 검사 좀 하려고요.”
“아이고, 능 선생 겸손하기는, 님은 이제 나랑 비슷한 수준이세요.”
“그러니까 입문급밖에 안 되는 거죠.”
능연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연문빈은 능연이 방에서 나가길 기다렸다가 장안민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걸었다.
“능 선생은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라서요.”
“응.”
장안민 역시 능연이 나간 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믿어져? 능 선생이 좀 전에 내 담낭 절제 수술 수준이 자기랑 비슷하다고 인정했어!”
“음······.”
연문빈이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내 담낭 능 선생이랑 비슷하다!!”
장안민은 실실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는 웃는 와중에 능연의 10초 간 절제 수술 동영상을 간담췌외과 단톡방에 뿌렸다. 대다수 중늙은이 단톡방이 그렇듯이 음성메시지와 희한한 공유가 많은 단톡방이었다.(*역주: 중국은 언어 입력 방식이 까다롭고 느려서 입력보다 음성메시지를 통해 톡을 주고받습니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은 더욱 그러겠죠.)
그래서 장안민이 동영상을 보냈을 때 처음엔 바로 보는 사람이 몇 없었다.
-능 선생이 좀 전에 10초 만에 간 절제 수술을 마쳤습니다.
장안민이 메시지를 보내자 잡담을 나누던 단톡방이 순간 고요해졌다.
-어디서?
-소화기 외과 지원 수술하러 갔었습니다.
하원정이 묻는 말에 동영상은 능연만 찍혀서 다른 상황을 알 수 없단 생각에 장안민이 설명을 덧붙였다. 유 주임을 감쌀 생각도 없었다.
“지원? 사전에 준비한 게 아니고?”
하원정은 이번엔 음성메시지로 바로 보냈다.
-네, 사전에 준비한 수술이 아닙니다. 소화기 외과에서 간 출혈 환자가 발생해서요.
장안민은 여전히 텍스트로 입력했고, 막 전송을 누른 다음 문득 동영상을 보낸 건 문제없을지 몰라도 내용엔 문제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소화기 외과 지원 수술인데 하원정도 아니고 간담췌외과도 아닌 능연을 찾아갔다. 하원정이 단톡방에서 그런 동영상을 보고 싶을 리가 없다.
“아깐 왜 웃으신 거예요?”
갑자기 연문빈이 묻는 말에 장안민의 입가가 실룩였다.
“할 일이 없을 땐 팔채향에 많이 가야 할 거 같아.”
“왜요? 아는 사람 생겼어요?”
연문빈이 실실 웃으면서 하는 말에 장안민은 뚫어져라, 그를 바라보다가 말 없는 단톡방을 힐끔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돈이지 뭐. 한 번에 2천 위안, 너한텐 별거 아닌지 몰라도 나한텐 별거라서.”
“돈 벌어 보시면 알 거예요. 사실 돈은 의미 없어요.”
장안민이 연문빈을 흘겨봤다.
“걱정거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의사들이 철밥통 같아도 자칫하면 일자리 잃어버린다고. 요즘 봐라, 돈 봉투 받았다가 짤리고, 약값 받았다가 짤리고, 상사한테 모함당해서 짤리고.”
“누가 상사한테 모함당해서 짤려요?”
“누가 있다.”
장안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항학명의 번호를 찾기 시작했고 연문빈은 하나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제 말 믿으세요. 어느 정도 돈 벌면, 나머지는 그냥 숫자에 불과해져요. 의미가 없다니까요. 돈 때문에 바동거리지 말고 릴렉스 하세요.”
이야기하는 사이 연문빈의 핸드폰이 울렸고, 미소 지은 채 전화를 받던 연문빈의 얼굴에 바로 미소가 사라졌다.
“족발이 동났다고? 장난해? 어서 창고 가서 가지고 와! 점심 피크시간 놓치면 너 잘릴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