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색 복도는 넓고 깔끔했다.
양쪽 나무색 문도 모두 깨끗하게 닦여 있고, 문마다 좌우에 손바닥만 한 알콜겔과 에피프레넘이나 접난이 걸려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무리가 위풍당당하게 복도 정 중앙을 걸었다.
나무 문 앞에 도착할 때마다 의사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이름과 침대 번호를 대조하면 능연이 의사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능 선생님 회진하시네.”
“능 선생님, 일찍 일어나신다”
“능 선생님 벌써 팀을 이끌다니 대단해.”
“하아, 우린 왜 간담췌외과지.”
간호사와 의사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고개를 내밀고 속닥댔지만, 주치의 이상 의사는 그렇게 자유롭지 못했다.
“장안민 저 새끼가.”
“장안민 욕 해봐야 뭐해.”
주치의 하나가 하원정 곁에서 눈을 부릅뜨자, 하원정 본인도 못마땅했지만 그저 껄껄 웃었다.
주치의도 역시 하하 따라 웃으면서 속으로 주임인 댁도 능연 욕 못하는데 쪼랩 주치의가 머리에 총 맞았다고 능연 욕을 하겠냐고 생각했다. 주위에 능연 스파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원정은 콧방귀를 뀌고는 안 보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하며 사무실로 돌아갔고 그 자리에 있던 의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지 말라고 한마디 하면 될걸.”
아까 목소리를 냈던 주치의가 변명하듯 말을 꺼냈다. 주어 없는 말이었지만 하 주임 얘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뭐 하러 그래.”
하나밖에 없는 부주임이 별 감정동요 없는 모습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하원정이 주임 된 다음에 부주임이 됐는데, 주치의 때는 몰라도 부주임이 되고 나니 주임이 되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하원정보다 고작 대여섯 살 어려서 하원정이 은퇴하기를 기다리려면 20년은 기다려야 했다.
그는 다른 같은 처지 이인자처럼 일인자가 스카우트 되거나 잘리거나, 혹은 암에 걸리길 희망을 품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어제 하 주임님이 능연한테 한마디 하지 않았어요? 다들 느낌 없으세요?”
초짜 주치의 하나가 헛기침하며 말을 꺼냈다.
“무슨 느낌?”
“왕따 당하는 느낌이요.”
“누구한테?”
“다요!”
“다······?”
부주임은 무의식중에 다른 의사들을 바라봤다.
“진단의학과에 보낸 리포트도 제일 늦게 돌아왔어요.”
“맞아, 맞아. 우리 팀 실습생이 보낸 리스트도 되돌아왔더라고. 네가 뭘 아냐고 했던데? 그런데 그럴 만도 하지 않아? 실습생이 차트도 안 외우고 가져다줬으니 돌아와도 당연하지.”
주치의 하나가 하는 말에 곁에 있던 주치의가 바보 보듯 바라봤다.
“영상의학과에서 사진 찍는데 자꾸 새치기당하는 것도 정상이냐?”
“우리도 자주 새치기하잖아.”
“수술팀 간호사들도 계속 째려보더라고. 수술복도 직접 입어야 해.”
막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도 전과는 달라졌음을 느낀 걸 말했다.
“수술복은 둘째치고 간단한 것도 안 도와주더라. 훈련의 시켜서 했다니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짚이는 게 있었다.
“대의를 잃으면 내 편을 잃게 되는 법이지.”
갑자기 한마디 내던진 부주임은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며 휙 돌아섰고 주치의 몇 명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자리를 떴다.
간담췌외과 병실에서 능연은 전과 변함없이 환자 신체검사를 하고 수술 후 검사를 하면서 가끔 경추가 안 좋은 환자가 있으면 마사지도 해주었다.
“담낭 수술 전, 후 검사는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음, 이 환자 CT 꺼내 보세요.”
능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뒤에 있던 여원이 노트북을 펼치고 달려 나왔다. 147.5cm 여원이 노트북을 살짝 치켜들면 능연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모니터를 볼 수 있어서 매우 편했다.
의사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걸 보면 안 그래도 바짝 집중하는 환자와 보호자는 능연이 침대에 환자를 눕히고 촉진에 사진 판독에 검사도 해주니 당연히 감동받았다.
환자 7명 수술 후 검사를 마친 능연은 초급 보물상자 두 개를 얻었다. 입문급 실력으로 보물상자를 두 개나 받은 건 의학 외의 요소가 차지한 부분이 크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퀘스트 진행 중이라 상자를 두 배로 받는다. 즉, 환자 7명이 보물상자 4개를 내놓은 셈이었다. 이건 능연이 마스터급 간 절제 수술을 하고 얻은 보물상자보다 비율이 높았다.
“이제 별일 없네요. 오늘 밤에 하루 더 관찰하고 내일은 퇴원해도 되겠어요.”
CT를 확인한 능연이 장안민에게 지시 내렸다.
능연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간담췌외과 회진을 순조롭게 마쳤다. 하원정도 보고 못 본 척하는데 나설 의사는 더욱 없었다.
금풍은 응급센터 사무실 밖에서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능연을 보고는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도소 마늘장아찌 대장을 기억하는 능연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나 금풍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능연 밑의 의사들이 의국으로 돌아가는 걸 본 다음 능연을 따라갔다.
“능 선생, 제 동생 상황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감사드려요.”
“천만에요.”
“마늘장아찌 좀 더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장식품 하나도 가지고 왔는데 한 번 보시겠어요?”
능연이 대화할 의지가 없는 걸 본 금풍은 바로 용건을 이야기하면서 커다란 스테인리스 판을 하나 꺼냈다. 네모난 스테인리스 판은 방탄 갑옷처럼 금풍 옷 안에 붙어 있었다.
능연은 금풍이 꺼내서 보여주는 그 판에 세밀한 그림이 있는 걸 발견했다.
“다 칼로 파서 그린 겁니다. 제가 특별히 고른 그림입니다. 앞면은 편작이 채환공을 만나는 사진이고요, 뒷면은 괄사 치료하는 모습입니다.”
“이게······.”
“이것도 수감자 작품이에요. 보통 일이 아니죠. 십자수니 뭐니 보다 시간은 걸리지만, 훨씬 예쁘죠.”
확실히 스테인리스 판에 조각된 화면은 질감도 그렇고 꽤 특색 있었다.
“제 마음입니다. 능 선생님 가지고 가셔서 벽에 걸어도 되고, 장식품으로 놓아도 되고요.”
금풍은 그렇게 말하면서 능연 앞에 들고 흔들었다.
“마음은 받겠습니다. 물건은 가지고 가세요.”
능연은 오랜 시간 해왔던 인사말을 단호하게 금풍을 향해 말하곤 문밖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바닥에 마늘장아찌는 그대로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능연은 핸드폰을 꺼내 좌자전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에 당직하는 사람들 소가 식당 가겠냐고 물어봐 주세요. 교도소 마늘장아찌에 고기 곁들여서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