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83화 (364/877)

차를 배불리 마신 능연은 밤에 병실 구역으로 돌아와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회진을 돌았다.

밤에 회진하는 의사는 드물었다. 능연 역시 내일 수술 예정인 담낭 환자만 살짝 보려고 간 것이다.

야간 진료과에는 보통 당직 의사 몇뿐이고 그중에 규모가 큰 진료과나 주치의 이상 일선 의사가 있었다.

간담췌외과는 레지던트와 훈련의 한 명밖에 없었고, 고개를 숙이고 차트 입력하다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능 선생님 왔어요.”

“지금?”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에 레지던트가 멍하니 대답했다.

“내일 수술할 환자 검사하러 오셨대요. 어서요.”

“잠시만 자료 좀 보고.”

간호사가 재촉하자 레지던트는 재빨리 전자 차트를 꺼내 해당 환자의 자료를 훑고는 서둘러서 병실로 날아갔다.

능연은 조용히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 자료와 담당 의사 없이 검사해 봐야 의미도 없고 효율도 낮았다.

허둥지둥 달려오는 레지던트의 모습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회진입니다.”

능연은 정해진 인사말을 하면서 순서대로 환자 검사를 진행했다.

환자 검사 역시 정해진 대로였다. 전문가급 신체 진찰 스킬로 담낭 절제 관련 검사하는 건 여유 만만한 일이었다.

특별히 괴상한 자세나 체위 없이 간단하게 차근차근 검사해 나가면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했다.

환자의 바이탈 수치를 종합해서 환자 간, 심장 상태를 판단하고, 환자 신체 구조를 추측했다. 세상에 같은 나뭇잎은 없듯이 똑같은 사람도 없다.

장기에서 혈관, 사람마다 대강 비슷한 거 같아도 크게 달랐다.

평소엔 상관없지만, 수술할 때는 혈관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 혈관이 없거나, 혈관이 없어야 할 자리에서 피가 터지면 정말 죽을 맛이었다.

담낭 수술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담낭 동맥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혹은 좀 더 넓은 범위로 말하자면, 담낭 삼각 구역을 분간해 내는 것.

담낭 수술에서 담낭 삼각 구역을 제대로 보고, 총담관, 담낭관을 분간해 내고 헤모클립 (hemoclip)으로 담낭 동맥을 절단해내면 대부분 문제는 해결된다.

그 점에서 복부 해부 기술 170회를 가진 능연은 매우 유리했다.

그리고 그 유리함을 더 올리려고 수술 전 검사도 하는 것이다.

같이 따라온 레지던트와 훈련의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능연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걸 바라봤다.

“이게 다예요? 잠 안 와서 온 거 아냐?”

훈련의가 투덜거리는 말에 레지던트가 멍하던 정신이 퍼뜩 들어서 휙 주변을 둘러보고는 죽일 듯이 훈련의를 노려봤다.

“너 일이 너무 없어서 근질근질하냐?”

훈련의가 좌우로 천천히 고개를 흔드는데 뒤에 있는 간호사 두 명이 자기 사진을 찍는 걸 발견했다.

“저, 저는······.”

훈련의는 입이 다 굳은 느낌이었다.

뒤를 바짝 따르던 간호사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요. 쓰리아웃 제도니까.”

24인치 모니터에 붉은 간이 아래쪽에, 노란 담관이 위에 보였다.

스틱으로 간을 들어 올리니 부은 왕밤색에 다래 같은 모양인 담낭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담낭 삼각 구역이었다. 노련한 의사는 담낭 삼각구역을 찾아내면 수술 절반이 성공한 셈이다. 정상인의 담낭 삼각 구역은 찾기 쉬웠고, 그래서 담낭 수술을 간단한 수술로 보는 것이다.

간담췌외과 의사뿐만 아니라 일반 외과나 혹은 다른 진료과 외과 의사도 기본적으로 담낭 수술이 가능하다.

훈련의라고 해도 충수염 수술을 해본 사람은 운이 좋으면 담낭 수술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쉬운 건 쉬운 거고, 잘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담관을 얼마나 남겨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따지는 게 많았고, 점착 부위 처리는 예후에 영향을 주는 더욱 중요한 요인이었다.

능연은 당연히 일반 외과 의사 수준의 담낭 제거 수술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수술은 언제나 엄숙하고 고요했다.

상대적으로 어시를 맡은 의사는 그게 장안민이든 연문빈이든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복강경 수술은 너무 지루해서, 수다라도 떨지 않으면 답답해서 차라리 내가 수술대 위로 올라갈까 싶어진다.

능연은 수술을 끝내자마자 바로 휴식 없이 다음 수술을 준비했다.

지금은 출장 수술 갈 일이 많아서 운화병원에 있을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러니 하루에 수술량을 늘려서 수술량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힘들게 모은 일주일 치 담낭 수술을 시간이 없어서 전부 해내지 못하면 너무 아까우니 말이다.

“이게 오늘 열 번째 수술이다.”

연문빈은 스쿼트 백 개 한 것보다 더 허리가 아프다고 생각하면서 부르르 떨었다.

“다음 수술은 좌 선생님 차례야.”

“네. 가서 쉬세요.”

“저기, 능 선생. 님은 안 쉬세요?”

연문빈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능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에너지가 어째서 그렇게 넘치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술 사이에 자잖아요.”

수술을 연달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중간에 비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완벽한 타이밍이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라, 가끔 수술실에 도착했을 때 준비가 덜 끝났으면 능연은 바닥에 누워 잠시 자면서 에너지를 조금 회복하곤 했다.

스태미너 포션은 차고 넘치지만, 그래도 아낄 수 있을 땐 아껴야 했다.

의사가 수술실에 쓰러져서 자는 일은 흔한 일이고 연문빈도 수술실에서 잔 적이 있다. 그래서 그는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작 몇 분으로? 그걸론 안 되지.”

어차피 해명할 수도 없고 해명할 필요도 없어서, 능연은 그냥 입을 삐죽이고 넘겼다.

연문빈도 그저 부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능 선생. 사람이 잠은 자야지.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난다.”

“맞아요······.”

곁에 있던 스크럽 간호사가 큰소리로 동의했다. 그러자 순회 간호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요. 능 선생님 이제 수술 더 하시면 안 돼요. 마취과에도 작년에 과로사한 사람 있어요.”

“퉤퉤퉤! 헛소리하지마! 능 선생님은 잘생겨서 안 죽어!”

스크럽 간호사가 버럭 화를 냈다.

말다툼하는 두 간호사를 바라보며 연문빈은 정말이지 능연을 신경 써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관심 둬 주는 사람이 넘치니 말이다.

고개를 들어 능연을 다시 바라보니 무영등이 비추는 능연의 뺨에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

“클립 집으세요.”

능연의 말에 연문빈이 환상 속에서 돌아왔다.

“아, 응 벌써 박리했구나. 능 선생, 전보다 빨라진 거 같아.”

“네. 아마 거의 전문가급?”

능연은 자기 상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문득 자기가 얼마나 담낭 수술을 더 해야 전문가급에 들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눈앞에 시스템 제시어가 나타났다.

- 퀘스트: 자아 발전

- 퀘스트 내용: 담낭 절제술을 전문가급으로 올려라

- 퀘스트 보상: 신체 진찰 (마스터급)

능연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했다.

퀘스트가 튀어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마스터급 신체 진찰 스킬은 대단한 것이었다. 높은 수준의 신체 진찰 능력은 진단을 내릴 때 큰 무기가 된다.

“정신 집중해서 마지막 수술합시다. 그러고 퇴근하세요.”

정신이 퍼뜩 들어온 능연이 연문빈에게 말했다.

“아, 좋아!”

연문빈도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고는 웃는 얼굴로 간호사 두 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따 차로 돌아갈 건데, 방향 맞으면 데려다줄게요.”

“자리 남아요?”

“응, BMW 5 시리즈라 괜찮아요. 뒷좌석이 넓어.”

“그럼 저랑 저 남자친구, 둘이요!”

“그럼 저는 남문 광장이요. 남편이 거기까지는 데리러 올 거예요.”

간호사 두 사람의 말에 연문빈이 멈칫했다.

“저기······. 다들 남친, 남편이 있는 거예요?”

“네. 2년 됐는데요.”

순회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로만 태우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스크럽 간호사의 말에 연문빈이 멍청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가는 평생 솔로를 뒤에 태울 일이 없어지리라.

뭐, 지금도 없지만, 그래도 사람은 기대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능연은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수술은 순조롭고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담낭을 배꼽으로 끌어낸 다음, 환자의 상태를 살핀 능연은 마무리 작업을 연문빈에게 넘겼다.

연문빈이 수술을 끝내길 기다리면서 간호사 둘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능연은 새로 손을 씻고 스태미너 포션 한 병 마시고 다른 수술실로 향했다.

저녁 당직 어시스던트는 좌자전이었다. 마흔이 넘었지만, 레지던트는 레지던트라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나이 생각해서 낮 근무로 모두 바꿔버리면 다른 레지던트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좌자전 본인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여자친구도 없고, 밤에 당직을 서라고 하면 서면 될 일이었다.

두 사람은 새벽 2시까지 밤샘 수술을 했다. 능연이 스태미너 포션을 하나 더 마셔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두 사람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일 터졌네.”

좌자전의 머리가 벨소리와 함께 재빨리 돌아갔다. 그는 전화 받으려고 하는 능연을 저지했다.

“일단 내가 상황 파악 좀 하고. 여보세요?”

잠시 후, 좌자전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스피커로 돌렸다.

-구급차, 10분 후 도착. 응급의학과 모든 인원 구급차 대기할 것. 대형 교통사고, 최소 7명 중상!

좌자전은 핸드폰을 끊고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이게 무슨 뜻인지 알지?”

“10 분만에 담낭 수술해야 한다고요?”

능연의 대답에 좌자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지금 님이 응급의학과에 유일한 이선 의사야. 오늘 구급처치는 다 님이 지휘해야 해.”

“정신 집중해서 이 수술 끝냅니다. 이제 6분.”

능연은 고개를 들어 벽걸이 시계를 보며 간호사를 향해 말했다. 구급차 맞으러 갈 시간까지 계산한 시간이었다.

“이제 6분.”

간호사가 바로 그의 말을 반복했다. 수술실에 있는 간호사는 모두 경험 있는 간호사였고 모두 정신 집중하니 수술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순회 간호사는 수술실 전화를 들어 응급의학과에 연락해 정중한 말투로 용건을 꺼냈다.

“능 선생님 지금 저희 과에 계셔요. 담낭 수술 중이거든요. 네. 맞아요.”

전화를 끊은 순회 간호사는 이어서 능연에게 보고했다.

“오늘 응급의학과 당직은 레지던트 셋, 훈련의 둘이랍니다. 이선 선생님은 집으로 가셨다가 지금 오는 중이래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고요. 헐, 이 녀석 담이 참 크네요.”

“담이 이렇게 됐는데, 이제야 병원에 오다니. 젊어서 에너지가 불끈불끈한 가보네.”

“얼마나 불끈불끈하는데? 응?”

“능 선생님도 계신데······.”

스크럽 간호사까지 끼어 한마디씩 하자 간호사가 평소와는 달리 얼굴까지 붉히며 말끝을 흐렸다.

좌자전은 잠시 기다리다가 재미있는 화제가 더는 이어지지 않자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장안민 선생 불러서 하라고 하는 게 어떨까? 응급실에 이선 선생이 없다는데 우리가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좌자전은 마음속으로 역시 능연이 응급처치를 주도하길 바라고 있었다. 능연은 응급센터에서 응급 구조 작업에 제일 관심이 없었기에, 좌자전은 능연이 몇 번만 이런 대형 응급 사고를 처리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능연이 응급처치에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바꾸는 데 유리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능연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단 수술을 마치겠다고 했다.

“장 선샌님도 바로 오지는 못 해요. 음, 그럼 간담췌외과 당직 선생 부르죠.”

좌자전이 가장 부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바로 간담췌외과 당직 의사였다. 그러나 본인이 담낭 수술을 이어서 하지도 못하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화가 풀리지 않는 듯 투덜댔다.

“이선이 집에 가도 된다고 집에 가는 건 둘째치고, 한 시간 반은 너무한 거 아니야.”

운화병원 운영 방식 중, 이선이 되면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다시 말하면 진료과에서 일선 명단에서 이선 명단으로 넘어가면 다들 버텨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이선 의사도 당직은 서야 하지만, 시간도 비교적 자유로웠고 제제도 별로 없었다.

일선 의사가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나 있어야 이선 의사를 부르러 가서, 이선 의사는 대부분 날이 샐 때까지 잠을 잔다.

응급센터 설립 후 이선 의사는 매달 다섯 번 당직을 섰고, 돌아가면서 서기 때문에 이선 의사마다 당직설 일이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없어서 이미 부담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좌자전은 복강경을 들고 못 참겠다는 듯 계속 투덜댔다.

“누구길래 한 시간 반이나 걸린대.”

“조 선생이라던데요?”

수술실에 있는 간호사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을 잘 모른다. 응급의학과엔 자기 수술실이 있어서 수술 층에서 수술할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좌자전이 갑자기 크게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왜왜왜, 왜요.”

좌자전의 표정을 본 간호사가 궁금한 듯 물었다.

“왜왜왜는 뭐. 마누라가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침대에서 내려오는 데만 30분 걸린다고요?”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스크럽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하는 말에 좌자전이 실실 웃었다.

“옷 입고 목욕하는 시간은 빼야죠.”

“응?”

좌자전은 요즘은 이렇게 엄격한가 싶어서 의문이 들었다.

“헤모클립 준비하세요.”

능연은 사람들의 수다를 전혀 못 들은 것처럼 지시했다.

“이렇게 빨라?”

좌자전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정신 집중해서 하니까 빠르네요.”

능연은 시간을 재면서 하니까 오히려 더 순조로운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니 담낭 수술을 한 후로 이러한 긴박함이 부족했었다고 생각했다.

매일 가능한 한 수술을 많이 하려고는 했지만, 본인 실력을 고려한 능연은 수술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담낭 수술할 때 평균 속도보다 더 느리게 해왔었다.

미룰 수 있는 담낭 수술 환자보다 응급 교통사고 환자를 당연히 우선시해야 했지만, 환자를 간담췌외과 레지던트한테 넘기느니 자기가 직접 수술하는 게 할 수만 있다면 더 나으리라 생각했다.

“끝났습니다. 나머지는 좌 선생님, 맡길게요.”

“어, 그래. 알았어. 내가 할게.”

능연은 5분 만에 담낭을 꺼냈고, 나머지 과정을 좌자전이 다급하게 이어받았다.

솔직히 지금보다 놀라운 능연의 수술을 많이 봐왔지만, 능연이 담낭 수술을 입문급에서 전문가급으로 끌어올리는 걸 보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응급센터로 갈게요. 문제 생기면 간담췌외과로 연락하세요.”

능연은 수술 장갑을 벗고 나가면서 지시를 남겼다.

그때 시스템에서 알람이 울렸다.

- 퀘스트 완성: 자아 발전

- 퀘스트 내용: 담낭 절제술을 전문가급으로 올려라

- 퀘스트 보상: 신체 진찰 (마스터급)

“응? 내 담낭 절제 전문가급 됐어?”

능연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신체 진찰은 마스터급으로 올랐고? 바로 쓸 수 있고?”

-그렇습니다.

이런 때 신체 진찰 능력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능연의 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