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센터 로비에 의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모여 있었다.
경험을 따지면 운화병원 응급센터 레지던트들도 꽤 경험이 있는 편이었다.
의대를 5년 다녔는지 10년 다녔는지는 둘째치고, 졸업하고 실습생, 훈련의, 레지‘견(犬)’트 생활만 3, 4년에서 5, 6년한 의사들이었다.
다른 업계였다면 졸업하고 4, 5년 일한 직장인은 스스로도 ‘조금 성과가 있는 단계’라고 표현할 것이고 그중 대다수는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의료계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업계였고 차가 박살 난 사고라면 벤틀리든 제타든 폐차해야 하면 폐차하고, 수리해야 하면 수리하지만, 환자는 반드시 구해 내야 했다.
평범한 교통사고나 응급상황은 응급센터 레지던트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지금 가장 연차 높은 레지던트인 정배는 레지던트 생활 4년 차였고, 위중한 환자를 만나면 환자 바이탈을 안정시키고 해당 진료과로 트랜스 시키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한꺼번에 구급차가 세 대나 몰려서 환자 넷이 들어온 건 그들의 처리 능력 범위를 조금 넘어선 일이었다.
사실 환자가 차라리 더 많으면 아예 곽 주임을 부르면 문제가 빠르게 해결된다. 환자가 적으면 걱정할 것 없이 마음 놓고 처리하면 되고.
응급 환자 4명 중 빈사 하나, 위중 하나, 그리고 중상 두 명은 지금 응급센터로서는 부담이 크긴 해도 감당해야 하는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주임을 부를 수는 없었다.
저녁 시간 병원 주임은 매우 예리한 보검 같아서 자칫하면 피를 부를 수도 있다. 곽종군 같은 응급센터 주임 어르신이 처치실에 왔는데 환자 수나 상태가 자기가 불려 나올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본인을 부른 사람을 잡아먹어 버릴 것이다.
주임 어르신은 둘째치고 정배는 지금 삼선 의사도 부를 엄두를 못 냈다. 부주임 의사가 개도 아니고, 주치의 주제에 이 밤에 가정이 있는 부주임 의사를 처리할 수 없을 만큼 긴급한 상황도 아닌데 부를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도 그런 상황을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 하루 8시간, 주 5일 혹은 대체 휴일, 연차 같은 건 병원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병원에서 24시간 일하라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일 의사는 능연 하나뿐이었다.
능연이 처치실에 나타나자, 조금 당황하고 있던 레지던트들이 순간 침착해졌다.
능연은 단독으로 팀을 이끌고 있으니 이론상으로는 삼선 의사였다.
이제 그가 나타났으니, 인력 자원, 기술 자원만 늘어난 게 아니라 책임 자원도 는 것이다. 지금 응급센터의 최고 책임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능연이 되었다.
“능 선생.”
얼굴이 진한 정배가 재빨리 능연 곁으로 다가가 인사했다.
“님이 지휘하셔. 우린 네 말 들을게.”
능연이 나타나기 전까지 정배가 처치실의 최고 책임자였다. 선임 레지던트인 정배는 밤에 흉통 환자 하나만 나타나도 허둥지둥 난리가 날 텐데, 한꺼번에 환자 넷이라니, 뭐 못할 것도 없지만 든든한 빽 하나 있으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상황은요?”
능연은 책임을 미루는 사람이 아니었다.
능연과 자주 접촉하는 건 아닌 정배는 능연이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이자 마음을 놓고 서둘러 상황을 보고했다.
“환자 넷, 한 사람은 혼수상태에 복부 개방성 외상, 하나는 위중한데 아직 의식은 있고, 출혈 많음. 또 하나는 다리 골절, 그 외에 외상 많음. 제일 가벼운 상처가 어깨 골절이야.”
“정형외과, 일반 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에 연락하세요.”
“협진 요청했어.”
“네, 그럼 이따 임무 분배할게요. 다들 준비하고 계세요.”
능연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루페, 마스크를 쓰고 장갑도 이중으로 꼈다.
처치실 안에서 능연을 주시하던 레지던트들은 능연의 모습에 다들 따라 하기 시작했다.
“장갑 이중으로 끼세요.”
능연은 순서대로 사람들의 옷차림을 점검하고 레지던트 하나 앞에서 한마디 했다.
“이중으로 끼면 불편한데.”
“감염 5항목 테스트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환자가 HIV 보균자인지, 간염 환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에이, 그런 우연이 있으려고.”
“장갑 하나 더 가져다주세요.”
레지던트는 내키지 않는 듯 작은 소리로 꿍얼댔지만, 능연은 실랑이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당직 담당 간호사 유 간호사가 재빨리 실리콘 장갑을 들고 와 레지던트를 노려보며 건넸다.
“선생님 생각해서잖아요. 끼세요.”
“조 선생님은 안 이러시는데.”
체면이 구겨졌다는 생각에 레지던트가 계속 꿍얼댔지만, 이번엔 아무도 상대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레지던트는 머뭇거리다가 두 번째 장갑을 꼈다.
병원은 다른 직장과 달리, 상급 의사는 분명한 실력 우위가 있으므로 상하 계급이 엄격했다.
돌발 응급 환자가 있을 때 장갑을 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이중 장갑을 끼는 것은 더욱 정확한 행동이었다. 그 레지던트도 그 문제로 더는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30초 후 도착합니다.”
접수 간호사가 마지막 전화를 받은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울 준비를 했다.
밤 시간 응급센터는 낮과 달라서, 내 자리 네 자리가 없었다. 일 없으면 자는 거고, 일 있을 땐 과 직책 구분 없이 나서야 했다.
능연은 맨 앞으로 나가서 수술실에서처럼 팔짱 끼고 기다렸다.
보통 수술보다 응급 수술은 ‘급’하다. 시간도 급하고 준비도 급하다.
같은 간 절제 수술이라고 해도 간담췌외과에서 할 땐 수술 전 검사를 하루 이틀, 심지어 사나흘도 한다. 기초 질환이 많은 환자는 내과 협진까지 해서 혈압, 혈당, 간 수치 같은 바이탈을 조절한 다음에 수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응급의학과에서는 간 파열 환자가 생겼을 때 본인이 못하면 간담췌외과 혹은 일반 외과 의사를 불러 메스를 넘긴다. 그럴 때는 혈당이니, 간 수치니 따질 여유가 없다.
구급차가 도착하자 두 사람이 재빨리 달려가 환자를 끌고 내렸다.
능연은 구급 요원의 데이터 보고를 들으며 재빨리 신체 진찰을 시작했다.
마스터급 신체 진찰이 큰 작용을 발휘했다.
“비장 파열, 간 파열, 출혈성 쇼크 의심. 바로 수술실로 보내서 수액 놓고 CT 찍으세요.”
능연은 첫 번째 환자 상황을 바로 판단 내렸다.
“간담췌외과? 아님 일반 외과?”
“제가 합니다.”
정배가 묻는 말에 능연이 대답했다.
구급차 불빛을 보며 어디로 트랜스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만 하던 정배는 그 말에 멈칫했다가 능연이 간 절제로 진작에 간담췌외과를 제거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 응. 내가 비장 절제 어시할게. 간은 안 돼.”
정배가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지금은 수술을 뺏을 때가 아니었다. 특히 간 절제는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라서 정배가 어시를 했다가는 사망 토론 때 끌려 나와 목매달릴 수도 있다.
“네. 좌자전 선생이 수술 층에서 마무리 봉합 중입니다. 사람 시켜 선생님한테 연락하세요.”
“네.”
정배는 바로 대답한 다음, 능연이 다른 지시를 내리기 전에 알아서 각 검사를 배정했다.
그때 두 번째 환자가 들어왔고 능연은 신속하게 장갑을 갈아끼고 앞으로 달려가 신체 진찰을 했다.
“비장 파열, 고환 파열. 비뇨기과 협진 요청하시고 수술실로.”
능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비장, 고환은 제가 합니다. 정 선생님 여기 붙어서 바이탈 안정시키세요.”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은 사타구니가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가 문득 능연이 중환자 두 명을 다 맡겠다고 했다는 걸 깨달았다.
뒤이어 도착한 경상 환자를 당직 레지던트에게 맡긴 다음, 능연은 바로 수술실로 돌아가 수술 준비를 했다.
협진 온 일반 외과 의사도 손을 씻고 와 그를 도왔다.
운화병원 응급의학과는 원래 능력 있는 편이라 비장 절제 같은 수술은 응급의학과 자체 수술실에서 진행했었다. 일반 외과 수술이 많아서 예정된 수술도 다 소화하기 버거워서 비장 같은 수술은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운화병원 일반 외과는 지금 환자도 보험 유형에 따라 받았다. 큰 병 아닌 환자가 시 보험을 가지고 오면 외래에서는 그 환자를 받지 않았다.
초짜 의사는 그런 상황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운화병원에서 일하는 일반 외과 초짜 의사들은 비장 절제 하려면 응급의학과를 기웃거렸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1,000cc 출혈이 있었대. 혈압 90, 심박 110.”
일반 외과 의사가 들어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던 마취과 의사는 능연이 들어오는 모습에 그제야 데이터를 보고했다.
“비장, 간 모두 파열되었습니다. 배를 열면 출혈량이 분명 더 늘 겁니다.”
능연은 여전히 자신감에 넘친 말투로 말했다.
지금은 복강 내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데 오늘 막 얻은 마스터급 신체 진찰까지 합하니, 응급 환자를 대할 때 능연의 판단은 거의 90% 이상 정확했다.
“왼쪽 간 파열일 겁니다.”
능연은 배를 열기도 전에 파열 위치를 짚었고, 일반 외과 초짜 의사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마취의는 그 옆에서 비웃듯 초짜 의사를 바라봤다.
“메스.”
능연은 펜도 없이 바로 메스로 절개구를 열었다.
“모스키토.”
“거즈.”
“석션.”
능연은 일단 수술을 시작하면 초집중 상태로 임했다.
능연은 누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지, 쓸데없는 말을 거는 사람이 있는지, 혹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자기 앞에 쓰러지는지 신경 쓸 필요 없는 지금 같은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았다.
자기 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상태 말이다.
“혈압이 너무 떨어지면 안 됩니다. 나중에 재출혈이 생길 수 있어요.”
“비장 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췌장 건드리면 안 돼요.”
능연은 수술하면서 어시와 마취의에게 코치했다. 야간 당직 응급은 항상 이런 상태였다. 일반 외과에서 온 레지던트는 보통 연차가 낮고 마취의 역시 마찬가지로 경험이 부족해서 세심한 디테일은 캐치하지 못한다.
일반 집도의라면 멘탈이 붕괴될 만한 상황이지만, 장악하고 있는 디테일이 너무너무 많은 능연은 태연했다. 게다가 집도의로서 디테일뿐만 아니라 어시의 디테일도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능연은 조수의 동작이 잘못되거나 하면 바로 알아차리고 코치했다.
조수 입장에서 누군가 지도하고 코치해주냐 아니냐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능연의 그 간단한 두어 마디에 바로 처리가 순조로워진 일반 외과 레지던트는 떨리는 느낌도 줄어서 저절로 감탄하는 소리가 나왔다.
“능 선생, 비장 정말 잘 자르네. 육군병원에서 본 시범 수술 느낌이야.”
아부는 외과 의사의 필수 스킬이다. 연차 낮은 레지던트는 아직 아부에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어색했다.
능연은 못 들은 듯이 그저 ‘음’ 하고 대답했다.
본인의 기술 순위를 잘 아는 능연은 초짜 의사의 감탄이 필요 없었다.
마스터급 비장 절제술은 전국 범위로도 정상급 실력이었다. 아무래도 비장은 의사들이 자주 접할 기회가 있어서 마스터급 간 절제술보다 조금 낮긴 해도 말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지, 그래도 전국 138이다.
“비장은 이 정도로 하고 간 절제 준비하겠습니다.”
능연은 재빨리 움직이면서 몇 번 만에 환자의 비장을 떼어냈다. 준비가 충분한 일반 수술과 달리 응급 수술은 빨리하면 할수록 착오율을 낮출 수 있다.
빨리할수록 출혈이 적고, 응급 의사가 다른 문제를 처리할 시간이 길어져 자연스럽게 생존율도 높아진다.
3분 만에 능연은 간을 노출시켰고, 좌자전도 헐레벌떡 달려와 손을 씻고 장갑을 낀 다음 어시로 들어왔다.
간 절제는 표준적인 대형 수술이라 조수가 두 명, 세 명이라도 많은 것이 아니다.
간 절제를 접해본 적이 없는 일반 외과 레지던트는 자연스럽게 퍼스트에서 세컨드로 내려가 석션 조각상이 되어 능연과 좌자전의 손놀림을 구경했다.
능연을 도와 실을 건네는 좌자전은 연차 낮은 레지던트의 시선을 만끽하면서 온몸 가득한 에너지를 느꼈다.
“여기 좌 선생님이 마무리하세요.”
능연은 익숙한 간 절제 수술을 10분 만에 주요 부분을 끝냈다. 좌자전이 수술 스킬이 부족하긴 해도 마무리 정도는 문제없었다.
“일반 외과 선생님, 저랑 옆 수술실 갑니다.”
능연의 부름에 일반 외과 레지던트가 헐레벌떡 뒤를 따랐다.
“비장 수술 하나 더 있댔나? 이번엔 췌장 안 건드릴게.”
“아까 췌장 건드렸어요?”
“아, 아, 완전히 건든 건 아니고.”
“살짝 건든 건 괜찮습니다.”
“아, 그럼 살짝일 거야······.”
“다음엔 조심하세요.”
능연이 고개를 돌려 레지던트를 힐끔 봤다.
“어······. 조심할게. 정말 조심할게.”
레지던트는 심장 박동까지 빨라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 환자는 비장 파열 말고 고환 파열도 있어요. 비장은 출혈 때문에 바로 자를 거고, 고환은 상황 보고 남길 수 있으면 하나는 남길 겁니다.”
레지던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술실로 달려들어 갔다.
정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출혈량이 1,500 넘었어.”
정배는 허둥지둥대고 있었다. 4년째 레지던트 생활을 해왔지만, 홀로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올해부터였고 비장 파열 환자는 아직 안정적으로 하지 못했다.
능연은 한마디도 없이 다가가 우선 눈으로 잠시 관찰하다가 환자 복강에 손을 넣고 맨손으로 비장꼭지를 잡아 비틀었다.
“배 좀 더 열어요.”
“여기서 더?”
정배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수술 후 회복을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시간 없어요. 제 생각엔 환자도 시간을 아껴서 고환을 하나라도 살리는 걸 더 바랄 거 같은데요.”
능연이 환자 아래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살릴 수 있어요?”
오늘 수술대 간호사인 소몽설이 궁금한 듯 바라봤다.
“운에 달렸죠.”
능연은 대답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비장을 처리했다.
그때 능연의 핸드폰이 울렸고 능연은 전화를 받아 달라고 고함쳤다. 당연히 직접 만질 수 없으니 말이다.
소몽설은 팔짝 뛰어오를 정도로 신이 나서 다급하게 다가가 능연의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내 능연의 귀에 대주었다.
“여보세요. 네, 받으세요. 다른 사람 안 불러도 돼요. 제가 할게요.”
말을 마친 능연은 소몽설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소몽설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능연은 계속 수술을 진행했고 비장 절제가 끝난 후에야 고개를 들어 일반 외과 레지던트와 정배를 바라봤다.
“또 사고 났답니다. 환자 셋, 중상 둘, 경상 하나. 몇 분 뒤에 도착.”
“다른 의사······ 안 불러도 돼?”
정배가 자신 없이 묻는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몇 분이면 끝나요. 환자 고환 상태부터 보고 남길 수 있으면 새로 온 환자는 일단 상태를 안정시킨 다음······.”
능연은 이야기하면서 비장 부분 마무리를 정배에게 넘기고 환자의 고환을 살폈다.
잠시 후, 능연이 판단을 내렸다.
“답이 없네요. 자릅시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두 번째 무리의 차 사고 환자가 시간에 맞춰 운화병원 응급센터로 실려 왔다.
능연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새 장갑을 끼고 있는데 차에서 같이 내린 환자 보호자가 좌자전에게 달려들어 고함쳤다.
마흔 넘은 중년 여자가 산발이 된 모습은 밤에 보기에 조금 섬뜩했다. 그러나 표정이 더욱 섬뜩했다.
피부가 귤처럼 거친 좌자전은 능연에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환자에게 말을 걸었다.
“보호자 분,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이제 병원에 왔잖습니까. 일단 한쪽으로 물러나세요. 환자 치료에 방해됩니다. 의사들이 처리할 시간을 주셔야죠.”
그 말에 환자 보호자가 순순히 옆으로 비켜났고, 능연이 팔을 치켜든 채 앞으로 나갔다.
“왼팔, 왼 다리 모두 골절. 출혈은 많지 않고, 혈압도 안정적입니다.”
능연은 신속하게 신체 진찰하고는 검사할 항목을 오더 내렸다.
“정형외과 협진 요청하고요, 그쪽으로 넘기세요. 환자는 수술실로 먼저 보내고요.”
간호사 두 명이 환자를 수술실로 밀고 갔고, 검사할 리스트를 받은 훈련의가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사라졌다.
그런 그의 모습에 좌자전이 따라가 설명을 덧붙였다.
“정형외과에서 받지 않을 수도 있어. 데리고 가려면 가고, 아니면 우리가 하겠다고 해. 알았어?”
“왜 선택하라고 하는 건데요?”
올해 새로 들어온 훈련의가 답답한 질문을 했다.
“원래 선택권이 그쪽에 있으니까. 정형외과에서 안 받겠다고 하는데 환자를 정형외과로 밀어 넣을 거냐?”
좌자전이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운화병원 같은 대형 삼갑병원은 일반 삼갑병원이나 더 등급 낮은 병원과 생태 모드가 완전히 반대였다.
일반 삼갑병원이나 약체 병원 진료과는 항상 환자를 뺏고 살아서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진료과에 일이 없다. 대형 삼갑병원은 환자가 너무 많아서 전문 진료과에서는 항상 응급 환자를 미루고 미룬다. 게다가 병상도 현실 문제라 병상이 차면 환자를 못 받으니 말이다.
눈앞의 응급 환자도 정형외과에서 받을지 안 받을지 모르니, 좌자전이 일부러 한마디 코치해준 것이다. 훈련의는 살짝 당황해서 더듬더듬 물었다.
“혹시 그쪽에서······.”
“됐어, 일단 가. 가서 말 잘하면 돼.”
“저 말주변 없는데요.”
좌자전이 재촉하며 하는 말에 훈련의는 더욱 난감해했다.
“이런 것도 알려줘야 하냐?”
좌자전은 말은 그렇게 해도 묘하게 기뻐져서 훈련의의 어깨를 두드리며 계속했다.
“정 모르겠으면, 아이고 선생님 요즘 살 빠지셨네요. 허리가 날씬해지셨어요, 해. 알았어?”
“아, 네. 알겠습니다.”
그길로 달리기 시작한 훈련의는 몇 발짝 가다가 바로 뒤를 돌았다.
“그런데요, 제가 처음 보는 선생님이면 뭐라고 해요?”
“야! 너 훈련의잖아. 말이 좋아서 훈련의지, 훈련생 아니냐? 너 지금까지 만난 정형외과 의사 다 기억해?”
“아! 네! 알겠습니다! 이제 알겠어요!”
순간 큰 깨달음을 얻은 훈련의가 기뻐하며 고함쳤다.
그는 몇 발짝 뛰다가 다시 뒤돌아 뭔가 말하고 싶은 얼굴로 좌자전을 바라봤고, 좌자전이 손을 흔들었다.
“가! 환자 기다리게 할 거야?”
“네네.”
1년 차 훈련의가 그제야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해마다 수준이 떨어지네요. 우리 때만 해도 손발 빠른 게 기본이었는데, 요즘 애들은 하나같이 다 멍청해서는······.”
경험자 말투로 내뱉는 정배의 말에 좌자전이 바보 보는 눈빛으로 정배를 바라봤다.
“나이? 능 선생 올해 훈련의일 텐데.”
정배가 격렬히 기침을 했다.
“보호자 분도 이리 오세요. 검사 좀 할게요.”
환자 보호자를 본 능연이 얼굴을 찌푸리며 부르자, 여자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사고 났을 때 전 뒷좌석에 있었어요. 우선 제 동생이랑 올케 봐주세요. 저는 다 찰과상이라 아프지도 않아요.”
“일단 검사하고요.”
“전 괜찮아요.”
능연이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여자는 다시 한번 거절하고는 수술실 쪽을 바라봤다.
“선생님, 제 동생 살릴 수 있죠? 약 아껴 쓰시면 안 돼요. 저희 운화 살아서 병원비는 낼 수 있어요.”
“좌 선생님, 이분 초음파 해보세요.”
“이왕 오신 거 검사해서 나쁠 거 없잖습니까. 자자, 가시죠.”
능연의 부름에 냉큼 달려간 좌자전은 여자를 설득했고, 중년 여자는 어쩔 수 없이 검사 침대에 누웠다.
배에 겔을 바르고 초음파 기계를 대던 좌자전의 얼굴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복강 내 출혈.”
좌자전이 여자의 어깨를 누르며 못 일어나게 막았다.
“복강 출혈이 있어요. 아시겠어요? 배 안에 피가 난다고요. 움직이지 마세요.”
좌자전은 바로 능연을 불렀다.
“수술실로 보내요.”
능연은 아까 맨눈으로 환자 보호자가 이상한 걸 알아챘다. 전문 용어로 말하면 시진(視診)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초음파로 확진한 것이다.
“저기, 누구 불러와야 하는 거 아니야?”
정배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부닥쳤을 때 간을 다친 거 같아요. 일단 열어 보고 다른 부위 손상 있는지 확인부터 하고요.”
능연의 자신감은 완벽한 지혈 스킬에서 나온 것이다.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과 열 지혈을 장악한 상황에서 일반 외상 출혈은 모두 그의 컨트롤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러니 무슨 문제가 생긴 다음 소환술을 써도 늦지 않았다.
“내가 능 선생하고 갈게. 넌 다음 환자 처리해.”
좌자전은 정배에게 말을 남기고 재빨리 능연을 따라 수술실로 들어가서 손 씻고 장갑을 꼈다.
그리고 수술실에 들어갔더니 능연은 벌써 환자의 배를 열어 놓았다.
“음, 간 손상. 조금만 자르면 되겠어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메스를 들었다.
“간 끝단 절제?”
능연 곁에 선 좌자전은 피가 고인 환자 복강을 내려다보며 부르르 떨었다.
이런 작은 면적 간 절제는 좌자전이 별로 못 본 수술이었다.
“규칙 절제 말고 손상 부분만 자를 겁니다.”
능연은 바로 고개를 숙여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전에 했던 응급 간 절제보다 이번 환자 출혈 속도는 매우 느린 편이어서 능연은 바로 잘라내는 데 급급하지 않고 우선 천천히 간문을 박리하고 혈류를 막은 후 세밀하게 간을 절제했다.
이런 방법이 간을 직접 자르는 것보다 출혈량이 많아서 수술 전 과정에 1500cc에서 2000cc 까지 모두 정상 범위였다.
그러나 출혈량이 많은 게 거칠게 간을 자르는 것보다 예후엔 좋았다.
“충실한 하루네요.”
수술을 순조롭게 끝낸 능연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하룻밤에 간 절제 두 건에 비장, 고환까지 제거했으니 충실한 느낌이 절로 들었다.
“님이 좋으면 됐다. 야식 먹을래?”
가장 흥분된 부분이 지나자, 좌자전은 몸이 다 흔들리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장 검사 좀 하세요. 문제없으면 일반 외과 안 불러도 됩니다.”
능연은 곁에 있는 간호사 두 명을 바라보며 야식 뭐 먹겠냐고 물었다.
“다 좋아요.”
“능 선생님이 고르세요.”
“흠, 병원 앞에 24시간 야식집 있죠? 전 루주(*간으로 졸이는 각종 음식. 채소, 두부, 고기, 완자 등등을 간에 졸인다.) 먹을게요. 간볶음 하고요.”
잠시 생각하던 능연이 하는 말에 고개를 숙인 채 환자의 장을 만지는 좌자전이 대답했다
“그럼 나도 루주. 창자 많이 넣어 달라고 해야겠다. 거기 창자 맛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