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85화 (366/877)

새벽 3시, 능연 팀 의사들이 하나씩 병원에 출근했고 응급센터도 점점 떠들썩해졌다.

배달 기사가 운화병원 응급센터 로비로 들어가 접수대 앞에 섰다.

“배달시키신 분?”

“능 선생님이 시키셨어요. 안으로 가져다주세요.”

접수 간호사가 바쁘게 메모하면서 손으로 안을 가리키자 배달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피로한 두 눈을 문지르며 간호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처치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방으로 들어가자 누가 ‘창자’라고 고함쳤다. 배달 기사는 새벽 3시의 맑지 않은 머리를 급회전하며 농담하듯 입을 열었다.

“창자 시키신 분?”

배달 기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커튼 하나를 열었고, 침대에 엎드려 있던 남자 그리고 곁에 서 있던 여원이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배달 기사는 환자의 엉덩이와 의사 손 사이에 창자를 보고 그 자리에 굳었다.

“아 X발!”

“처음 보면 놀라긴 하지.”

배달 기사가 울부짖는 소리에 침대에 엎드려 있던 남자가 입을 삐죽였다. 소독을 마치고 창자를 다시 밀어 넣은 여원도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집에 가서 좀 쉬시다가 늦지 않게 항문 외과나 일반 외과 가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트랜스 해주면 안 되나요?”

“일반 외과 의사 불러서 협진할 순 있는데 그러려면 아침까지 기다리셔야 해요.”

응급이 아닌 환자 때문에 새벽에 다른 과 의사를 부를 순 없었다. 그러자 남자가 흥 콧방귀를 뀌었다.

“전에 간 적 있는데 수술 얘기만 하더라고요.”

“네.”

여원은 긴말하지 않았다. 많은 병은 사실 완벽한 해결 방안이 없고 그저 장단점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뿐이었다.

그들의 대화에 배달 기사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뒷걸음질 쳤다.

“환자세요?”

“저, 저는 배달왔습니다.”

장갑을 벗은 여원이 몸을 돌려 물었다.

“아, 루주랑 간볶음?”

“네······. 능 선생님이 시킨 겁니다.”

여원은 눈이 번쩍였고 배달 기사는 무심결에 손에 든 음식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여기 두고 가세요. 제가 받을게요.”

이제 출근했지만, 아침을 못 먹어서 허기가 진 여원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 배달 기사는 루주와 간볶음의 재료를 떠올리고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새벽 3시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키가 가슴에도 못 미치는 여자가 사람 창자를 가지고 놀다가 자기 손에 들린 창자를 보며 웃고 있었다.

대체 여긴 어디? 호러 영화가 따로 없네.

“아, 오······ 오지······.”

“이리 내놔요.”

점점 다가가는 여원의 모습에 배달 기사는 저절로 뒷걸음치며 입술을 덜덜 떨었다.

“어어······.”

배달 기사는 바로 음식을 내려놓고 다시는 새벽에 배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비틀비틀 밖으로 달려나갔다.

여원은 입맛을 다시며 포장 음식을 바라보다가 안쪽의 휴게실로 들어가 음식을 펼치면서 사람을 불렀고, 능 팀 의사와 당직 의사가 금세 한자리에 모였다.

“이쪽은 루주, 간볶음. 이쪽은 양고기 탕, 양고기 국수 같은 거예요.”

여원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설명하고는 루주를 담아 소창부터 집어서 유심히 보다가 입에 집어 넣었다.

“아까 환자 하나 창자가 똥꼬에서 나왔어.”

“집어 넣었어?”

연문빈이 양고기 탕을 들고 홀짝홀짝 마시면서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우린 항문 외과도 없는데. 일반 치질도 아닌 거 같더라고.”

그의 말에 다들 솔깃한 듯 귀를 기울였다.

“변비나 치질이 아니라면 놀다가 그랬겠지.”

“허허, 요즘 사람들은 참 잘도 노는군.”

“남자야? 여자야?”

“남자. 젊던데?”

여원의 말에 얼굴을 마주 보며 헤헤 웃던 간호사들이 고개를 들다가 마침 들어오는 능연을 보고는 바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음을 거뒀다.

“배달 왔네요.”

배고프던 능연이 배를 툭툭 두드렸다.

“능 선생님, 루주랑 간볶음 여기요.”

소몽설이 가장 먼저 일어나 음식을 펼쳐 능연에게 내밀고는 예쁜 나무젓가락과 숟가락을 옆에 놓았다.

“이거 한 번도 안 쓴 새거예요.”

“아······. 고마워요. 씻어서 돌려줄게요.”

비슷한 일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라, 능연은 자기 젓가락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몽설은 기분 좋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연문빈은 그 활짝 핀 웃음을 보며 소몽설이 만개한 백합처럼 순백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몽설 씨. 여기 고기 좀 남았는데 드실래요?”

“됐어요!”

연문민이 일부러 소몽설 곁에 다가가 물었지만, 소몽설은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하고는 바로 걸음을 옮겨 간호사 사이로 들어갔다.

꿈을 품고 새벽 3시에 출근해서 열정을 내뿜던 연문빈도 사실은 거절 당하는데 익숙해서 묵묵히 자리에 앉아 와구와구 고기를 씹었다.

정배가 일부러 연문빈 옆으로 가서 앉고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전엔 몰랐는데 너네 팀, 응급의학과 지원군 같은 느낌이다. 에휴, 너희가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밤 환자들을 아예 너희한테 넘기고 나 아예 당직을 안 섰을 텐데.”

“꿈도 크시네요. 일반 환자는 어차피 선생님들이 하셔야죠. 저희는 능 선생 지시로 움직이는데.”

연문빈이 힐끔 바라보며 하는 말에 정배가 안 그래도 진한 눈썹을 꿈틀대면서 웃었다.

“에이, 이러지 말자. 그냥 손 푼다고 생각하고 도와주면 안 돼?”

“그럼 바꿀까요?”

연문빈이 수없이 족발을 팔아온 자의 미소를 지으며 묻자 잠시 고민하던 정배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됐다. 너희 팀 일하다가 죽을지도 몰라.”

“허허, 능 선생이 산 음식 먹고 일은 하기 싫으시다? 뭐예요, 우리가 호굽니까?”

“야야야, 조용히 좀 해라.”

정배가 머쓱한 듯 고개를 들자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능연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응급인가 보네.”

정배가 음식을 내려놓고 다급하게 밖으로 달렸다. 나가보니 역시나 구급차가 오고 있다고 했다.

머지않아 구급차 두 대가 빠른 속도로 들어왔고 안에 있던 의사들도 서둘러 음식을 비우고 달려나왔다.

“뭔데 이번엔?”

“출혈 많아?”

“심해?”

다들 몰려나와서 묻는 말에 정배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안 물어봤어. 이제 막 들어왔다.”

“자, 그럼 열어 볼까요?”

연문빈이 앞장서서 앞으로 나갔다.

아침 8시, 응급센터 의사들이 하나씩 출근했다.

곽 주임과 비슷하게 도착한 도 주임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웃는 얼굴로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

“요즘 잠을 잘 자는 편이야. 이제 몸이 늙어서 정말 밤 근무는 못 하겠더라고. 새벽에 오는 전화가 제일 무서워. 놀라서 심장이 다 뛴다니까.”

“이제 전화 안 오니까 마누라가 방으로 들여보내 줘?”

동료 앞에선 편하게 구는 곽종군이라 첫마디에 아픈 곳을 찔렀다.

“흥, 마누라 깰까 봐 그러는 거지,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아? 방에서 자고 싶으면 가면 된다고.”

“그러니까 아직 못 들어간 게로군.”

“휴우, 30년 동안 전화가 울렸잖나. 한 달 안 울렸다고 그게 바로 되나. 능연이가 참 잘하고 있으니까, 계속 그렇게 하라고 전해.”

“음. 이번 달에 팀에 보너스를 좀 줄까 해. 돈이 궁하지야 않겠지만, 아랫사람은 챙겨야지. 많이 줄 필요도 없어. 다 똑같이 2천 위안씩. 훈련의도.”

“좋지. 난 찬성일세.”

“그럼 과 회의할 때 제안하겠네.”

과 주임의 권력이 크다지만, 그래도 여러 문제에서 다른 치료팀 책임자와 협의할 필요는 있었다. 아니면 왕따가 되니까 말이다.

진료과 보너스는 정해져 있는데 능연 치료팀에게 보너스를 주면 다른 진료과는 그만큼 줄어드니, 많지 않아도 사전에 말은 해야 했다.

마침 도 주임이 화제를 열었으니 곽종군은 그 김에 결론을 지었다. 도 주임 천성이 이런들 저런들 어떠리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성격이 강한 곽종군과 이렇게 오래 가깝게 지내지도 못 했을 것이다.

“능연 팀이 매일 서너 시에 출근하니 반 당직인 셈이잖아. 그러니 잘 이야기하면 다들 이해할 걸세.”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도 주임이 껄껄 웃으며 하는 말에 곽종군이 헛웃음을 지었다.

“님이야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도 않을걸.”

“응?”

“능연이 어디 처치실 일을 해야 말이지. 간 절제, 담낭, 비장, 아니면 단지 이식, 탕 봉합이라 당직 의사들이 해야 할 데브리망이나 아이 설사 진료 이런 건 다 해야 한다고.”

“남는 사람은 도와주면 되지 않나?”

말을 마치자마자 도 주임은 바로 본인이 헛소리했음을 깨달았다. 상급 의사가 하급 의사를 도와줄 리가, 자기 일이나 떠밀지 않으면 다행이게.

사실상 대다수 진료과에서 일선 의사가 당직 이선 의사를 깨우면 잘 생각하고 해야 한다. 깨울 필요 없는데 깨웠다고 생각하면 이선 의사는 바로 벼락을 칠 테고, 혼난 초짜 의사는 인생에 회의를 느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잘 자니 됐지. 하하하. 능연이 병원에 있으면 편한 건 결국 우리 이선, 삼선이야. 한 주에 전화 한 통만 덜 받아도 한 달은 더 오래 살걸.”

“그렇지. 늙으니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고.”

도 주임이 느끼는 바가 있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급실엔 주임과 부주임이 나서야 할 일이 있기 마련이고, 대부분은 대량 출혈 그다음이 급성 복통이었다. 능연이 대량 출혈은 잡고 있고, 운화병원 안에서도 정상급 수준인데 병원에 살다시피 하니 다른 의사들이 달려와야 할 일이 당연히 줄었다. 급성 복통 중에 간, 담, 비장 거기에 충수염도 능연이 처리 가능하고 능연이 못 하는 건 응급센터 다른 상급 의사가 나타나도 어차피 트랜스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밖에 응급실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것이 흉통과 뇌 헤르니아인데 그건 원래 전화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심폐소생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절묘한 기술을 가진 능연과 능연 팀은 지금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심폐소생팀이었다.

“맞다. 간호사들도 보너스 줘야지.”

“응. 찬성일세.”

순조롭게 배팅이 진행되자, 곽종군은 바로 칩을 올렸고 도 주임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기로 한 걸세. 응급센터로 승급해서 일은 많아졌는데 인원은 그만큼 늘리지 못했잖아. 능연이는 또 툭하면 병상을 꽉 채우고 말이야. 하하하.”

홀가분해진 곽종군은 껄껄 웃었고 도 주임은 웃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 같은 주임급 의사야 진료과가 잘 되면 보너스니 인센티브니 받을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아래 의사에게 어떻게 나눠줄지는 오묘한 문제였다. 부주임이 주택 대출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짠돌이 주임도 있고, 레지던트가 다른 과 부주임보다 더 많이 벌게 하는 통 큰 주임도 있었다.

10년 전이라면 도 주임도 그런 일로 신경을 썼겠지만, 지금은 많이 내려놓았다.

어차피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침대······혹은 소파에서 자는 게 인생이다. 죽기 살기로 아옹다옹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돈을 벌어 포근한 이태리 수입 소파로 바꿔 봐야 쫓겨나서 70위안짜리 군용침대에서 자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응급센터로 들어선 곽종군은 사람들의 눈빛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 착각인가, 요즘 곽 주임님 고개 끄덕이는 모습이 전이랑 다른 거 같은데.”

“능 선생님이랑 비슷하다는 거지?”

뒤에 있던 간호사들이 작은 목소리로 속닥댔다.

“정말 능 선생 따라 하시는 건가?”

“에이, 무슨. 저기 조낙의 선생 좀 봐. 저게 더 비슷하지.”

간호사들이 웃으며 속닥거리는 모습에 안으로 들어서는 조낙의는 더 부지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 선생! 이리 와 봐.”

“저요?”

곽종군이 갑자기 사무실에서 고개를 내밀고 부르는 소리에 주 선생이 제 코를 가리키고는 머뭇머뭇 다가갔다.

“좋은 일이다!”

그런 주 선생을 향해 한 번 눈을 부릅뜬 곽종군이 말을 이었다.

“제약회사 몇 군데 불러다가 능연이 참가할 적당한 학회 없는지 물어봐.”

“어떤? 학회요?”

주 선생이 멍해졌다가 물었다.

“얼굴 내밀 만한 거. 능 선생 요즘 얼마나 열심히 하냐. 그런데 병원에 틀어박혀서 너희들 당직이나 대신 서줘야겠나? 소문을 널리 널리 퍼트려야지. 능연이 잘하는 아이템으로 골라 봐. 간 절제 괜찮을 거 같군. 수준도 높고. 단지 이식은 됐어. 현미경 수술은 힘들기나 하지.”

“아, 네.”

주 선생은 바로 곽종군이 능연에게 유명세를 만들어 주려는 의도를 파악했다. 부럽기도 했지만, 부러워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알리는 데 병원과 진료과가 돕는다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그럴 자격이 되어야 한다. 자격도 없이 나갔다가 망신만 살 테니.

게다가 주 선생은 유명해진다고 좋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돈 더 벌고, 더 많은 존경이야 받겠지만, 환자가 더 많아지고 스트레스도 더 커지고······.

“전화해 보겠습니다.”

더 있다가는 일이 더 많아질까 두려운 주 선생은 망을 뚫고 도망치는 물고기처럼 바로 꼬리를 흔들면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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