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89화 (370/877)

월말이 된 운화는 매우 무더웠다.

운화병원 정문 앞에 다시 ‘아태지역 간담췌 연구 학회 경축’이라는 붉은 플래카드가 걸렸고 지나가던 환자와 보호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동시에 가까운 곳에 있는 힐튼 호텔 전자 모니터에 같은 문구가 나타났다.

호텔 안에 홍보 포스터와 책자가 널렸고, 우승기와 색색 깃발이 펄럭였다.

고맹은 수트를 입고 이틀 술을 안 마신 얼굴을 어제 술 먹고 토한 것처럼 창백하게 하고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접대할 사람들을 일일이 접대했다.

“혼란 속의 질서네, 혼란 속의 질서.”

고맹의 파트너인 당수철이 나이만 많지 고맹보다 침착하지는 않은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고맹이 언짢은 듯 휙 그를 흘겨봤다.

“주식 좀 그만하고 일 좀 하세요. 기술 조정 어쩌고 만날 그런 소리만 하고. 누가 그런 말 듣는다고요.”

“왜 안 들어. 주식으로 돈 제일 많이 벌었을 때 운화에서 빌라 하나 사서 계약금 냈는데.”

그런 이야기 할 생각이 없는 고맹이 한숨을 내쉬었다.

“뒤쪽으로 가보세요. 가서 업체 사람들 지켜보면서 스피커랑 모니터 조절 잘해주시고요. 이건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된다고요. 테이블에 물병이 많은지 적은지 이런 거랑 달라요.”

“그래, 내가 가볼게.”

당수철도 학회장에 더 있기 싫었다. 오가는 사람은 많고 의사들은 제약회사 직원 앞에서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젊을 땐 몰라도 나이가 드니 썩 내키지 않았다.

무릎 꿇고 버는 돈은 그게 문제였다. 나이 들수록 관절이 시려 무릎 꿇기가 힘들어지니 말이다. 그러나 서서 돈 버는 사람도 별로 부럽지 않고, 누워서 돈 버는 사람은 조금 부러웠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응급의학과 좌자전이 맞은편에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운화병원에서 제법 시간을 보낸 좌자전은 살이 올랐고 주름이 줄었지만 더 깊어졌다.

“자자, 나는 간다.”

당수철은 힘껏 고개를 저으며, 폭락한 주식처럼 다급하게 사라졌다.

“좌 선생님 오셨어요? 능 선생님은 준비됐나요?”

고맹이 앞으로 나서 인사하며 물었다.

“수술실에 있습니다. 시간 확정되면 바로 마취 시작할 겁니다. 시간 계산 잘하세요. 마취 시작하면 능 선생은 이쪽 기다리지 않을 테니까.”

“네, 압니다.”

고맹은 사실 아직 능연의 성격을 잘 모르지만, 의사들이 시범 수술 중계에 협조하기 위해 도덕 문제로 손가락질당할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리라는 건 잘 알았다.

시범 수술은 의학 쇼이기도 하고 개인 쇼이기도 했다.

의학 쇼를 하려고 시범 수술을 개최하지만, 애초에 기본을 따지자면 모두 개인 쇼를 위해서였다.

요즘 세상에 의학 쇼에서 드러난 의학 전문가가 점점 많아지지만, 개인이 쇼를 잘못해서 지적받는 의사도 점점 많아졌다.

수술실은 사실 매우 규범적인 곳이었다. 옷 입는 것부터 소독까지, 대부분 스텝이 다 정해져 있고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제한된 규칙에서 규칙적인 방식으로 규칙적인 수술을 완성하는 것이 시범 수술의 표준적인 재현 방식이었다.

그리고 능연에게 가장 익숙한 환경이기도 했다.

능연은 느긋하게 손을 씻으며 머릿속으로 전체 수술 과정을 되짚었다.

수술방식마다 표준이 있고 같은 수술을 백번 이상한 의사는 수술방식을 잊어버리거나 하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날 환자의 수술방식을 어떻게 변형할까는 매우 조심스럽게 따져야 할 일이었다.

우선 개복 전, 그보다 절개 전에 의사들은 병소 상황을 알 수 없고 염증 병변이 어떤 뒷 일을 유발할지 모른다. 그런 것은 모두 의사의 임기응변 능력에 달렸다.

또 현대 의학은 각종 영상 검사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외과의가 충분히 이해하고 그 안에 있는 정보를 읽어 낼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말이 쉽지, 정말로 수술을 할 때 외과의가 실제로 조작해야 하는 항목은 지극히 어렵고, 완벽하게 하려면 얼마나 더 어려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좋은 스승이 없이 외과의 혼자 연마하려면 그게 뭐든 몇 년에서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가장 간단한 충수염 위치도 상급 의사가 곁에서 지도해주지 않으면 찾기 쉽지 않다. 간 내 담관결석 같은 것도 교과서에 나와 있는 위치에 있으리란 법이 없었다.

이런 경험에 기대야 하는 것들은 배우기도 해야 하고 수술 전에 예습도 해야 한다.

열었다가 바로 닫고 포기하는 건 환자의 병세 변화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외과의 준비 부족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평범한 수술도 요즘은 수술 전 협진을 하는 능연으로서 오늘 시범 수술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능연은 곧 대입 고시를 보는 학생처럼 일주일 전부터 복습하고 사흘 전부터는 예상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환자의 간은 어떤지, 염증은 또 어떤지, 그리고 얼마나 견뎌낼지, 이런 건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능연으로서는 규칙 안에 있는 도전이 오히려 동력이 되었다.

“능 선생님, 이어마이크 끼셔도 돼요.”

오늘 순회 간호사인 소몽설이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능연에게 알렸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다시 씻고 스팀 박스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 닦고 수술실로 돌아왔다.

“카메라 연결됨.”

오늘 퍼스트 어시를 맡은 장안민이 말했다.

시범 수술에서 자주 보는 참관 방식 하나는 골관절 & 운동 의학 센터처럼 수술실 안에 참관실이 있어 현장에서 참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흔한 방식이 수술과 관중을 분리하는 방식이고, 어떤 수술은 혹시 나중에 중대 실수가 발생했을 때 즉시 적절히 대응하고자 일부러 시간을 지연시켰다.

물론 중계 방식이 관중이 더 많아서 그런 방식을 채택하는 이유가 컸다.

운화병원은 아직 참관실 있는 수술실이 없고, 중계 장비마저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곽종군이 제약회사에 리워드도 줄 겸 이미 이번 풀세트 장비를 구매하려고 결정 내렸다.

“이어마이크 씌워드릴게요.”

소몽설이 까치발을 하고 능연에게 다가가 가볍게 그의 향기를 들이마시고는 이어마이크를 능연 머리에 씌웠다.

“음. 준비됐나요?”

능연이 오늘 마취의인 소가복에게 묻는 말에 소가복은 긴장해서 말도 나오지 않아서 얼른 손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직책이 아직 레지던트인 소가복에게 이런 시범 수술은 아직은 큰 시험이었다.

직접 모니터를 살핀 능연은 고개를 숙여 환자를 보고는 수술 시작을 선언했다.

“간 내 담관 절제 시작합니다.”

한 마디만 남기고 능연은 바로 미리 그어 놓은 선을 따라 메스로 배를 열었다.

고화질 카메라 촬영 화면이 호텔로 중계됐다.

힐튼 회의실에 우르르 앉은 의사들은 나지막이 잡담을 나누면서 모니터를 힐끔댔다.

관중으로서는 이번 시범 수술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다른 성에서 온 의사들은 그동안 그들이 참여해온 여느 학술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다리까지 꼬고 수다를 떨었다.

상대적으로 성 안의 의사들은 조금 더 진지했다.

과거 6개월 동안 능연은 출장 수술만 세 자릿수를 했고, 현장에 있는 의사들은 실제로 보고, 실제로 참여했던 사람이라 성격이 너무 튀는 사람만 아니면 다른 성에서 온 의사처럼 그렇게까지 편하게 굴지는 않았다.

“힘 좀 더 줘요. 그쪽 간이 좀 더 큽니다.”

능연의 목소리가 한참 만에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순간 사람들이 모두 집중했다.

“간을 벌써 꺼냈습니까?”

“빠른 편이네요.”

“요즘 젊은 의사들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다니까. 수술을 속도로 따지다니 말입니다. 빠르면 뭐 하냐고요.”

현장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말이 거침없었고, 회의실에 남아 일하던 여원이 반박하려고 일어서자마자 좌자전이 끌어앉혔다.

“네가 말로 하는 것보다 능 선생이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야.”

좌자전은 모니터를 가리키면서 여원을 바라봤다.

“마음 놓고 보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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