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96화 (377/877)

“안녕하세요. 저는 한우입니다. 이 사람이 제 42번째 남친입니다!”

“에이, 이렇게 잘생긴 오빠가 내 남친이면 정말 좋겠네요.”

“음, 남친이 고개를 돌리지 않네요. 그래도 멋져요.”

왼발이 삐어 병원에 온 한우는 능연을 발견한 후, 망설임도 없이 동영상을 여러 개 찍어 댄 다음 그중에 제일 잘 나온 세 개를 골라 틱톡과 웨이보에 올렸다.

그의 게시물 중 제일 인기 많은 것은 ‘내 남자친구 시리즈’였고, 경찰, 군인, 파일럿 등등 직업인 남자가 있고 길에서 대담하게 꼬신 수많은 오빠가 있었다.

“이렇게 잘생긴 남친인데, 많이 찍어둬야지. 나중에 누구 좋은 일 시킬지 모르겠네.”

한우는 툴툴거리며 웨이보에 올리고도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특히 살짝 부은 자기 발목을 찍은 다음 능연에게 렌즈를 댔다.

자주 그런 컨텐츠로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지만, 눈앞에 의사가 그녀가 만나 본 남자 중 가장 탐나고 잘생겼다. 미소도 잘생겼고 일하는 느낌도 잘생겼고.

한우가 못 견디고 또 핸드폰을 열어 치켜들었을 때, 웨이보 게시물 알람이 순식간에 몇백 개 온 걸 보고는 한우는 어느 인기 사용자가 자기 게시물을 퍼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흥분했다.

얼른 열어서 보니 새 게시물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메시지였다.

“이것들 평소에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왔대. 전에는 소통하자고 그렇게 해도 힘들더니.”

한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서둘러 능연의 동영상을 하나 찍어서 본인과 가장 친한 웨이보 작가 ‘부지런한 즈냐오춘’도 태그해서 올렸다.

한우의 웨이보 리포스팅과 댓글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껍데기 필요 없다고 누가 그래. 보기 좋은 껍데기는 관심받는다고.”

오늘이 그의 웨이보 역사상 가장 관심받는 날이라고 한우는 미친 듯이 웨이보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다리 삐셨나요?”

쭈글쭈글한 피딴(*삭힌 오리알)이 한우 앞에 나타났다.

깜짝 놀란 한우가 휙 고개를 들자마자 그의 등 뒤에 잘생긴 의사가 보였다.

“남······.”

자연스럽게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려던 한우는 상대의 눈을 보자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는 좌 선생이고, 이분은 능 선생님입니다.”

그런 아가씨를 많이 봐 온 좌자전은 눈에 초점이 살짝 흐려진 한우의 모습을 보고 망상을 좋아하는 스타일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어느 발 다쳤나요?”

능연이 앞으로 나와 묻자, 곁에 간호사도 나타났다.

한우는 멍하니 두 의사, 간호사를 바라보다가 조금 뜨끔해서 작은 목소리로 왼발이라고 대답했다.

“다리 들 수 있어요? 한 번 내밀어 보세요.”

능연이 계속해서 지시를 내렸고 간호사는 옆에서 능연이 바로 손만 넣으면 낄 수 있게 장갑을 펼쳤다.

그런 대접은 부주임도 받기 어려웠다.

“저기, 전 다리 삔 거예요, 부러진 게 아니라.”

병원에 몇 번 와본 경험이 있는 한우는 상대가 착각한 것 같다는 생각에 나지막이 덧붙였다. 능연은 의아한 듯 한우를 힐끔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번 볼게요.”

이어서 능연은 장갑을 끼고 한우의 발목을 잡고 촉진을 시작했다.

한우는 조금 아팠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삔 겁니다. 심각하지 않아요.”

촉진을 마친 능연은 한우의 발을 잡고 살며시 돌려보고는 내려놓았다.

“골절 아니에요?”

“아닙니다.”

“마음이 안 놓이면 X-ray 찍어 봐도 됩니다.”

능연의 말에 곁에 있던 좌자전도 한마디 했다. 한우는 ‘아’하고 대답하며 가타부타 말 없이 핸드폰을 다시 치켜들었다.

“능 선생님. 저랑 같이 동영상 찍으실래요? 틱톡이요. 요즘 인기 많은 거 아시죠?”

능연이 거절하기도 전에 좌자전이 이미 앞으로 나섰다.

“의사는 치료하는 사람이지 찍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찍지 마세요.”

“하나만요, 하나만.”

한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의료진이 환자의 핸드폰을 뺏을 수는 없고, 간호사 두 명이 다가가 불만스러운 듯 한우를 바라봤다.

“좌 선생님, 어드바이스 내리세요.”

능연은 찍어도 된다, 안 된다, 실랑이할 필요 없이 휙 몸을 돌려 노련한 동작으로 한우의 카메라를 피했다.

칸막이에서 나온 능연은 시스템 퀘스트를 불러내고는 ‘인정’ 수량이 서서히 늘어나는 걸 확인했다.

인정이 늘어난다는 건 인정하는 사람 수가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조금 전 환자는 보호자도 없고 치료할 때 지켜보는 사람도 몇 없었는데 인정이 갑자기 어디서 늘어난 건지, 능연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능 선생님. 잠시만요. 동영상 하나만 찍어요.”

뒤에서 한우가 콩콩 뛰며 나타났다.

좌자전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환자가 가겠다는데 말릴 수가 없었다. 설사 맨발로 뛰더라도 말이다.

“아까 동영상 벌써 찍었죠?”

정신을 차린 능연이 묻는 말에 한우는 살짝 얼굴색이 변해서 양쪽을 힐끔대다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냥 몇 개 찍은 거예요.”

“인터넷에 올렸어요?”

“네.”

“어디에 올렸어요? 볼 수 있을까요?”

“네네. 웨이보하고 틱톡이요. 보여드릴게요.”

한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핸드폰을 열었고 웨이보 댓글이 벌써 네 자릿수가 된 걸 보았다. 리포스팅 수는 다섯 자릿수를 넘어서 최고 리포스팅 수라고 할 수 있었다.

틱톡을 열어보니, 댓글과 좋아요는 더욱 많았고 한우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둘러 능연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핸드폰을 바라보던 능연이 시스템 알람을 다시 확인했다. 인정 뒤에 따르는 숫자가 벌써 112로 변해 있었고, 환자 하나하나 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수치였다.

“동영상 몇 개 더 찍어도 됩니다. 그런데 한 발로 뛰면 안 돼요. 다 같이 위험합니다. 여기 휠체어 가져다드리세요.”

능연이 곁에 있던 간호사에게 지시하자 간호사는 언짢아도 휠체어를 가지러 갔다.

한우는 신이 나서 작은 얼굴을 태양처럼 빛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잘 찍을게요!”

그리고 얼굴을 깎고 눈을 키우고 다리를 늘리는 수정 기능을 켜서 우선 자기 얼굴부터 찍고 카메라를 돌려 능연을 찍었다.

그때 간호사 몇 명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에워쌌다.

“얼굴 수정 기능이 왜 필요해요.”

“능 선생님한테 그런 거 쓰는 거 낭비에요.”

“수정 기능이 뭐가 최고 비율인지 알겠어요?”

간호사들이 웅성거리며 하는 말에 한우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수정 기능을 끄고 일반 기능으로 능연을 찍었다.

역시나 화면이 더 아름다워졌다.

한우가 동영상을 찍어 틱톡과 웨이보에 올리는 사이 다른 간호사들도 몰래 핸드폰을 꺼내 같이 찍기 시작했다.

능연은 말없이 일하며 ‘인정’ 수치가 늘어나는 걸 확인했다.

골절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코피가 멈추지 않는 환자가 응급실에 왔다가 다시 나갔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환자가 응급실에 왔다가 다시 나갔다.

대부분 응급실에 오는 환자는 작은 병이며 심지어 외래가 귀찮다고 응급실에 수액 맞으러 와서 약 처방 받아서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 환자는 연차 낮은 레지던트도 어렵지 않게 처리하는 일상적인 업무였다.

능연으로서는 이런 환자를 처치하는 건 휴식이나 마찬가지였다. 1급이나 2급 중환자가 없는 상황에서 그가 오늘 응급실에서 만난 대다수 환자는 단지 이식보다 조금 심한 정도였다.

그랜드마스터급 단지 이식으로 그 계열 수술은 손쉽게 할 수 있는 데다가, 단지 이식은 생명의 위험은 없어서 코피가 멈추지 않는 환자보다 위험성이 낮으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인정’ 수가 올라가는 걸 신경 쓰던 능연도 금세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해서 자기가 할 일을 했다.

환자 하나를 치료할 때마다 수백 개의 ‘인정’이 올라가는 걸 확인한 능연은 인정 개수 늘어나는 걸 세세히 따지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인정 개수 총 만 개는 3, 40 케이스, 어쩌면 30 케이스만 처리해도 퀘스트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퀘스트 상황으로 봐서 이번 중급 보물상자는 그래도 쉽게 얻는 편인 것 같았다.

“능, 능 선생님. 라이브 보고 있는 사람들한테 한마디 해주지 않으실래요?”

한우가 조심스럽게 휠체어를 밀고 뒤에서 나타났다. 어느새 휠체어를 제법 익숙하게 조종하고 있었다. 그 말에 복통 환자 약 처방을 내리던 능연이 멍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또 라이브를?”

“영상을 너무 많이 올려서 그런가 업로드 제한 떴더라고요. 라이브 해보라고 제안하는 시청자가 있어서 했죠. 꽤 재미있는데요? 벌써 천 명 들어왔고 반은 아직 남아 있어요.”

한우가 머쓱한 듯이 하는 말에 곁에 있던 좌자전이 흥흥댔다.

“능 선생인데 당연하죠. 능 선생더러 립스틱 팔라고 해보세요. 완판도 시킬걸요?”

한우가 멍해졌다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 장면에 좌자전이 후회하며 물었다.

“라이브 벌써 시작했나요?”

“네.”

한우는 인터넷에서는 대범한 사람이지만, 나이 많은 좌자전 앞에서는 아무래도 어딘가 자신 없어 보였다.

“조금 전 발언은 능 선생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좌자전은 헛기침 몇 번 하고 얼른 한우의 핸드폰 카메라를 향해 말했고 한우는 억지로 웃어 보이고는 표정이 드러나서 좌자전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계속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바라봤다. 그러자 뭔가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좌자전이 라이브 보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물었다.

“별말 다 하죠, 뭐. 지금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댓글을 다 읽을 수도 없어요.”

“그래요?”

좌자전은 한우의 핸드폰을 보려고 뒤로 한 바퀴 핑 돌았다. 능연을 찍고 있어서 핸드폰 방향을 틀지 머뭇거리는 사이 좌자전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역시 라이브하는 동안 댓글이 터져서 온갖 색깔의 글자가 화면에 가득했다.

그중에 눈에 두드러지는 글이 있었다.

-피딴 보고 싶지 않아! 잘생긴 의사 보여줘요!

좌자전은 피를 뿜을 뻔했다.

“요즘 젊은이들, 말 참 함부로 하네.”

좌자전의 언짢아 죽으려고 하는 모습에 한우가 다급하게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좌자전은 얼굴색이 변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한우의 핸드폰을 내려다봤는데 또 글이 우르르 올라왔다.

-병원엔 늙은이가 많네요.

화가 난 좌자전은 얼굴까지 퍼레져서 속으로 ‘나 올해 마흔둘이고, 마흔둘은 UN에서 인정한 청년이거든!’하고 외쳤다.

한우는 이제 좌자전의 기분을 알 바가 아니었고, 최대한 좋은 각도를 찾아 능연을 찍어서 시청자를 기쁘게 해주느라 바빴다. 곧 시청자 수 2천을 돌파할 것 같았는데 한우가 아는 바로는 상당히 괜찮은 성적이었다.

좌자전은 언짢아서 눈썹을 찡그리다가 잠시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응급실에서 라이브 방송하는 건 규칙에 어긋납니다. 종료하세요.”

“능 선생님만 찍어도 안 돼요?”

“안 됩니다. 응급실 환자 프라이버시 문제입니다. 응급실에 들어왔는데 핸드폰에 찍히면 좋겠어요?”

일리 있는 좌자전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한우가 나지막이 물었다.

“이 환자 하는 것만 다 하면 안 돼요?”

“다리에 못 박힌 게 뭐 볼 거 있다고요.”

“찍게 해주세요.”

“안 됩니다.”

한우가 애교를 부려도 좌자전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라이브를 찍으면 안 된다는 걸 떠올린 이상 이제 계속 찍게 둘 수는 없었다.

한우는 아쉽지만 핸드폰을 내려놓았고, 화면을 좌자전에게 확인시켰다. 좌자전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는데 시커메진 액정에 글자는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나쁜 피딴 쉑히!

-피딴 못 됐다

-못생겨서 그래요

-냉장고에 있는 피딴 다 버릴 거야

좌자전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참······.”

그와 동시에 능연은 ‘딩’ 하는 알람을 들었다.

- 퀘스트 완성: 살짝 유명세가 있는, 만인의 인정

- 퀘스트 목표: 10000/10000

- 퀘스트 내용: 중급 보물상자

‘만 명인데 이렇게 빨리 달성했어?’

능연은 무의식중에 자세를 바로 했다.

의사가 동작을 멈춘 걸 본 보호자는 다급해졌다.

“선생님, 얘 다리······. 다리 괜찮나요?”

“아, 다리는 괜찮습니다. 흉터 남길까요?”

능연은 작은 가위로 서걱서걱 상처 주변에 마지막 남은 살들을 깨끗이 정리하고는 봉합을 시작했다.

“흉터 안 남게 하려면 얼마나 드나요?”

능연이 묻는 말에 가족들은 잠시 혼란스러워하다가 떠보듯 물었다. 그 바람에 능연도 멍해졌다.

“돈은 같습니다. 흉터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문제죠.”

좌자전은 얼른 해명했다.

“아이고, 그럼 당연히 흉터 안 남게 하죠.”

“이건 합법적인 문신이거든요. 학교 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잖습니까.”

보호자가 웃으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환자를 힐끔 보고 말했다. 보호자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엎드려 있던 중학생이 바로 울트라맨을 새겨 달라고 고함쳤다.

순간 좌자전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요즘 학생들 뭐지······.

“타투이스트도 아니고, 이니셜 정도는 몰라도. 좋아하는 여자애 없어? 이니셜로 하지?”

“그럼 N 새겨 줘요!”

“꿰매는 거야.”

아이가 흥분해서 하는 말을 고쳐준 좌자전이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그럼 N?”

“그러죠.”

능연이 자유자재로 손을 놀렸다.

“이 녀석! 이 나이에 벌써!”

“떨지 마세요, 금방 꿰맵니다.”

중학생 보호자가 씩씩대며 고함쳤지만, 능연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곁에 있는 좌자전에게 아이 다리를 누르게 했다.

“마취됐어요? 혹시 아픈가요?”

“아니요.”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아버지 얼굴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엎드려 있었다.

봉합이 끝나고 능연이 드레싱을 간호사에게 넘기고 일어났을 때 환자 아버지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중학생 아이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고개를 들고는 속으로 역시 우리 아빠는 깨어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 이제 결혼 지참금 모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그때 환자 아버지가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어떻게 그 N을 보여줄 건지 궁금하구나. 양말 안 신고 신발 벗어서 보여줄 건지, 아니면 신발 벗고 양말 벗으면서 발 냄새랑 같이 보여줄 건지 말이다.”

못에 발을 찔린 중학생은 매우 강인했다.

발에 피를 흘릴 때도 울지 않았고, 마취 주사를 놓을 때도 울지 않았고, 스테인리스 트레이로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을 때도 울지 않았다.

보호자가 아들을 때릴 때 어깨로 막다가 멍이 든 좌자전은 울고 싶었다.

“이거 산재 아냐?”

좌자전은 다리를 쩔뚝거리며 돌아가는 아들과 그의 아버지를 멀리서 배웅했다.

“선생님, 로션 좀 바르세요. 피부 거친 것 좀 봐요.”

곁에 있던 간호사가 정말 싫다는 듯 거친 좌자전의 어깨를 내려다봤다.

“거칠어야 만질 때 느낌 있지.”

“선생님은 빨리 느끼는데 상대는 느낌 없을까 봐 문제죠.”

응급실 간호사는 ‘동급 최강’의 표준이었다. 좌자전이 나이는 많긴 해도, 위생병원에 있으면서 아부는 배워도 야한 얘기는 술자리에서 할까, 그것도 본인이 앞장서서 하는 것도 아니라서, 매일매일 이야기하면서 단련해서 미국인이 영어 배우듯 자연스럽게 술술 내뱉는 간호사, 의사와 비교할 수 없었다.

능연은 바로 다른 환자를 찾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그는 응급센터에서 삼선 의사, 그러니까 부주임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어서 위급한 환자 때문에 손이 모자라지 않는 이상 나서서 일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치료팀 리더와 마찬가지로 그가 환자를 보겠다면 처치실에서는 일을 그에게 주어야 하고, 환자 볼 생각이 없을 땐 등 떠밀려서 처리할 필요가 없었다.

능연은 이제 막 달성한 퀘스트 리스트를 펼쳐서 갓 획득한 중급 보물상자를 꺼내 손을 휘둘러서 열었다.

푸른 빛을 띤 인체가 떠오르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가상 인간(마스터급). 남은 시간: 4시간

능연은 옆에 있는 설명을 읽었다.

- 실제 인체 기관을 모방해 합성한 가상 인물은 모방할 대상을 선택하여 의학 참고와 실전 연습을 할 수 있음.

- 특징: 보고 만질 수 있음.

능연은 저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가상 인간’은 이제 별로 새롭지 않았다. 미국은 80년대에 이미 1대 가상 인간을 만들어 냈으며 그 뒤로 2대, 3대까지 나왔다. AR 기술이 생긴 후 제일 먼저 가상 인간에 사용되었다.

해부용 시체가 지극히 부족한 연대에 의학을 배우는 사람의 수와 퀄리티 모두 그로 인해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AR 기술은 아직 가상 ‘인간’을 모방해낼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고, 그저 조금 더 나은 교육용 모형일 뿐이었다.

능연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푸른 빛을 띠는 인체를 무의식적으로 만져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다시 손을 들었을 때, 능연의 손에도 푸른 빛이 감돌았다.

“좌 선생님, 어깨 좀 볼게요.”

능연은 좌자전에게 다가가 푸른 빛이 감도는 손으로 좌자전의 어깨를 만졌고, 곁에 있던 가상 인물이 순간 좌자전으로 변했다.

옷을 입지 않고 피부가 쭈글쭈글한 게, 조금 혐오스러웠다.

“다른 거로 바꿀 수 있어?”

능연이 얼른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옅은 푸른색 ‘가상 인물’ 좌자전은 바로 색이 진해지면서 다시 푸른 빛이 감도는 모습으로 변했고 옆에 ‘가상 인간 (마스터급). 남은 시간: 3시간 59분’이라는 제시어도 나타났다.

“그러니까, 가상 인간을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거지? 3시간 59분 동안은.”

이번엔 시스템에게 바로 질문했다.

-그렇습니다.

“가상 인간은 그 본인이랑 똑같아?”

-마스터급에선 그렇습니다.

“그럼 가상 인간으로 모의 수술할 수 있어? 수술 중에 닥치는 상황도 다 같은 거야?”

-같은 생리 반응이 나타납니다.

“알겠어. 이번 보상은 꽤 좋은데?”

능연은 부주임의 태도로 시스템을 칭찬했고 시스템은 푸른 빛을 띠는 가상 인간을 말없이 거둬들였다.

모의 수술을 할 수 있고 똑같이 생리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상태를 모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더욱 중요한 건, 이 모의를 통해 능연은 환자 체내 상황을 직접 볼 수 있고 모의 수술을 거듭함으로써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고를 줄이고,충분히 연습한다는 것은, 의사로서는 목표에 달성하는 과정을 모두 생략할 수 있는 것이다.

능연이 자신의 속도로 알뜰하게 사용할 때 4시간이면 모의 수술을 8번 할 수 있겠다고 계산했다. 어쩌면 더 많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모의 수술 한 번이나 두 번만 해도 수술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 조금 복잡한 경우를 만나면 어쩌면 몇 번 더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4시간 가상 인간으로 기본적으로 두 목숨은 구할 수 있다.

잠시 흥분됐던 능연의 마음이 다시 평온해졌다.

“물 좀 주세요.”

목이 말라진 능연의 말에 20년 동안 차 따르는 연습을 해온 좌자전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보다 20년은 젊은 간호사 두 명이 앞다퉈 물을 들고 왔다.

“뜨거워요, 선생님.”

“레몬을 넣어서 조금 실 거예요.”

능연은 노련하게 두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둘 다 조금씩 마시고 고개를 끄덕여줌으로써 모두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한우가 조심스럽게 능연에게 다가갔다.

“능 선생님, 아까 제 시청자 중에 병원에 오겠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치료받고 싶대요.”

“무슨 병인데요?”

“어, 안 물었는데요. 물었어야 하나요?”

“왜 나한테 오는데요.”

“그건······. 제가 동영상 올렸더니 치료받으러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급한 거 아니면 일반 외래 진료 받으면 됩니다.”

그때 좌자전이 짚이는 게 있는 듯 한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 꾀병 아니겠죠?”

“그, 그건 저도 모르죠.”

한우가 뜨끔해서 하는 말에 좌자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능 선생, 능 선생은 가서 쉬어. 응급실 일은 우리한테 넘기고.”

“쉴 생각 없습니다.”

“그으래, 그렇겠지.”

좌전이 제 머리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수술실 갈래? 간 절제라도 하던지. 응급실 일은 우리한테 넘기고.”

“오늘 계획이 응급실에 있는 겁니다. 이제 그럴 필요 없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계획은 계획이니까요. 수술실에 간 절제 환자도 없고요.”

능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스템이 또 튀어나왔다.

- 퀘스트: 통증 해소

- 퀘스트 목표: 환자 300명 통증 해소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상자

능연의 눈꺼풀이 튀었다. 비록 많은 수술, 많은 케이스를 해왔지만 300명이란 숫자는 여전히 큰 숫자였다.

“시간 다시 배정하죠. 저 오늘 처치실에서 당직 서겠습니다.”

말을 마친 능연은 물컵을 집어 들고 유유히 마셨다.

“능 선생······. 진짜 능 선생님이다!”

일부러 병원을 찾은 환자는 대략 15, 16살로 보였고, 하얀 나이키 겉옷을 입고 운화병원 응급센터 처치실에 앉아 멍청하게 손을 내밀고 혈압을 재면서 능연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능 선생님이 진료해 주세요.”

환자는 의사와 간호사들 앞에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환자 맞은편에 앉은 선임 레지던트 정배가 씨익 웃더니 조금 더 잘생긴 쪽 얼굴로 뒤를 돌았다.

“사람들이 모두 나 진하게 생겼다고 좋아하는데, 그냥 아쉬운 대로 나는 어때?”

“70년대 흔한 얼굴이 뭐 볼 거 있다고.”

어린 환자가 정배를 힐끔 보더니 가차 없이 대답했다.

“뭐?”

정배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진하게 생긴 게 그의 캐릭터인데 말이다. 게다가 왜 70년대야?

어린 환자는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혈압을 재는 찍찍이 테이프를 단숨에 뜯어 버리고는 능연 쪽으로 달려갔다.

“능 선생님. 저 치료 해주시면 안 돼요?”

그는 바로 한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쪽도 말 좀 해줘요.”

“응? 그쪽이 내 방송 보는 ‘크레이지 월드 크러쉬’예요?”

한우는 자기 시청자가 이렇게 어릴 줄 몰라서 물었고, 16세 소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누군데요? 난 ‘공항 앞에서 닭 먹는 거 구경’인데요?”

“아? 아······.”

아까 병원으로 오겠다고 말한 사람이 눈앞의 소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멍해졌다. 게다가 닉네임만 들어봐도 크레이지 어쩌고보다 훨씬 미친 것 같았다.

“제가 할게요.”

능연은 다른 사람처럼 생각이 많지 않았고, 그는 ‘공항 앞에서 닭 먹는 거 구경’을 향해 앉으라고 눈짓했다.

“이름이 뭡니까?”

“그냥 닉네임 불러주세요. 네티즌들은 다 샤오찌라고 불러요. 공항 할 때 찌도 되고 닭 할 때 찌도 되고요.”(*공항=찌츠앙, 닭=찌)

소녀는 매우 뿌듯한 듯 한마디 덧붙였다.

“다 ‘찌’인데 같은 ‘찌’가 아니죠. 꽤 센스 있죠?”

“이어서 부르면 더 듣기 좋았을 텐데.”(*샤오찌찌=남자 성기를 가리키는 말)

곁에 있던 간호사가 하는 말에 소녀가 콧방귀를 뀌었다.

“저렴하기는.”

소녀보다 다섯 살 많은 간호사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접수는 했어요? 접수증은요?”

“싫어요.”

능연이 묻는 말에 샤오찌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흔들었다.

“닉네임으로는 진료 못 받아요.”

간호사가 웃으면서 접수증을 꺼내 보더니 흠흠 거리며 머뭇대며 물었다.

“이름이 유취화?”

소녀의 얼굴이 바로 붉어져서 툴툴거렸다.

“엄마가 지은 이름이에요. 촌스럽게 이게 뭐예요.”

“개명하면 되잖아요.”

한우가 동정하듯 말했다.

“그, 그게······. 엄마가 날 낳다가 돌아가셨어요. 바보 같은 이름이지만 남겨 두죠, 뭐. 어차피 평소엔 닉네임 쓰니까.”

의사와 간호사 모두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고, 소녀가 갑자기 꺄르륵 웃었다.

“어른들은 참. 이 이야기만 하면 다들 얼굴색이 변해서는. 능 선생님, 맥 짚어 주세요.”

소녀가 당당하게 팔을 내밀었다.

“맥 짚을지 몰라요.”

“그럼 혈압 재 줘요.”

“그래요.”

고개를 흔들던 능연이 소녀를 자리에 앉히고 혈압계 찍찍이를 감은 후 다시 물었다.

“증상은요?”

“선천성 심장병······. 아, 아니 심계항진이요.”

소녀는 새하얘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선천성 심장병이 있어서 병원에 올 일이 잦았고 덕분에 응급실이 매우 익숙한데, 라이브에서 잘생긴 의사를 보고 바로 뛰어온 것이다. 그런데 증상이 아닌 병명을 말해놓고 그걸로 한 소리 들을까 봐 마음이 불편했다.

“선천성 심장병 병력 환자, 심계항진으로 진찰받으러 옴.”

능연은 힐끔 소녀를 바라보고는 옆에서 차트를 펼치고 기록하는 좌저전에게 말했다.

“맞아요, 맞아! 앞으로 그렇게 말할게요.”

혈압을 잰 능연은 간단히 신체 진찰도 하고 소녀가 평소에 먹는 약을 묻고 어드바이스 두어 마디 하고는 문진을 마쳤다.

소녀도 개의치 않는 듯 한우를 붙잡고 셀카 몇 장 찍고 구석에 숨어 연예인 분장실에 숨어든 팬처럼 능연을 몰래 훔쳐봤다.

능연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여자가 훔쳐보는 것쯤은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환자가 나타나는 대로 진찰하면서 레지던트 혹은 초급 주치의가 할 일을 했다.

순식간에 환자 네다섯 명을 진찰했는데, ‘통증 해소’ 퀘스트 진도는 겨우 3/300이었다.

능연은 이번 ‘통증 해소’ 퀘스트가 약 처방을 내리거나 봉합을 하거나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통증이 해소되어야만 퀘스트가 완성된 것으로 본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유취화 학생 같은 꾀병 혹은 손가락 화상 같은 작은 문제라야 빠르게 해결할 수 있고 퀘스트 진도를 뺄 수 있는 것이다.

능연은 이번에도 급할 것 없이 느긋한 모습으로 별 생각하지 않았다.

수술방식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조금 전에 막 얻은 ‘가상 인간’ 스킬도 아직 쓰지 않았으니 말이다. 여기서 중급 보물상자가 나와 봐야······ 좋긴 하다.

“저기······.”

핸드폰을 쥔 한우가 다가가 능연을 향해 웃어 보였다.

“이쪽은 ‘크레이지 월드 크러시’고요, 제 시청자예요. 환자를 여럿 데리고 왔네요. 선생님한테 치료받고 싶대요.”

“능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왕유라고 해요. 닉네임을 너무 막 지었네요.”

‘크레이지 월드 크러시’는 서른 넘은 엘리트 여성으로 수트 차림에 미소 짓고 있는 것이 이마에 어디 어디 매니저라는 명함이 붙은 것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능연은 상대가 건넨 차트를 받아들고 고개 숙여 보면서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요즘 계속 목이 좀 아파요. 그리고 코가 막히고. 감기약 먹으니까 조금 괜찮아졌는데, 잘 안 낫네요. 선생님 저희 사진 찍어요.”

왕유는 딱 봐도 진찰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지금의 그는 전문직 여성이라기보다 전문 사생팬 같았다.

“편도선 좀 볼게요.”

능연은 혀 누르개를 하나 꺼내 왕유의 목을 살피고 간호사를 시켜 체온을 챘다.

“감기 맞네요.”

“그죠, 그죠? 저 정말 병났다니까요. 선생님 아무 약이나 주세요.”

“집에 감기약 있습니까?”

“종합 감기약, 코 감기약, 그리고 해열제······.”

“음, 그럼 약 처방은 됐습니다. 종합 감기약 드세요.”

능연은 어드바이스를 수기로 노트에 써서 좌자전에게 넘겼다.

“환자분, 따라오세요.”

좌자전이 아쉬워하는 왕유를 얼른 옆으로 데리고 나갔고, 왕유는 고분고분 한우와 유수화 옆에 앉았다.

왕유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QQ를 열어서 맹렬한 속도로 메시지를 입력했다.

-능 선생님 폼 하나도 안 잡아.

-엄청 잘 생겼어. 사진보다 십만 배, 동영상보다 만 배는 잘 생김.

-능 선생님이 내 혀랑 입술 만졌어!

왕유가 단숨에 일고여덟 마디 입력했고, 뒤이어 단톡방이 터져버린 화산처럼 난리가 났다.

-말도 안 돼.

-왜 동영상이 사진보다 10배 잘생긴 건데?

-능 선생은 내 거야!

-나 운화병원 갈 거야. 말리지 마, 아무도 날 말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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