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97화 (378/877)

줄곧 바쁘던 운화병원 응급센터는 밤 10가 되어서야 서서히 조용해졌다.

그 시간엔 딱히 할 일이 없이 버티던 환자도 사라졌고, 작은 상처, 통증으로는 귀찮아서 병원을 오지 않으니 환자가 대폭 줄었다.

병원 전체로도 소아과와 산부인과를 제외하고는 다들 수월해졌다. 훈련의와 초짜 레지던트들은 그때를 틈타 못 끝낸 차트를 채웠고 주치의는 아무도 모르는 구석에 숨어 잠을 보충하고 간호사들은 뜨겁게 떠들던 수다 모드를 핸드폰 모드로 둘리며 역시 핸드폰 보는 게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능연이나 젊은 사람들 앞에서 틱톡 하는 게 쑥스러운 좌자전은 따분한 듯 에피프레넘 잎을 만지작거렸다.

밤 10시의 에피프렘넘도 지친 듯 나뭇잎을 말고 아무리 건드려도 펼치지 않았다.

“너도 힘든가 보구나.”

좌자전이 손가락을 놓자 당겨졌던 에피프레넘 잎이 튕겨 나갔다.

나이 많은 에피프레넘은 탄력을 잃은 모습으로 몇 번 흔들리더니 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무슨 생각 해요?”

당직인 우 간호사가 좌자전의 눈 밑 살을 잠시 보다가 놀리듯 다시 입을 열었다.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눈 밑 살이 더 심해진 거 같네요.”

“티 나요? 에휴. 일주일에 한 번씩 당직 서니까, 처음엔 그래도 버틸 만했는데 지금은 점점 힘드네.”

“능 선생한테 얘기해요. 지금은 사람도 많은데, 잘하면 당직 좀 줄여줄지도 모르잖아요.”

우 간호사가 편하게 말을 건넸다. 나이가 좌자전과 비슷한 그는 이제 어린 간호사하고는 거의 대화가 통하지 않았고, 이야기 통하는 의사도 별로 없었다.

“그럴 순 없지. 내가 당직 덜 서면 그만큼 다른 사람이 더 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래요.”

좌자전이 따듯한 물을 마시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레지던트였고, 레지던트가 할 일은 해야 했다. 바닥 일을 오래 해 온 좌자전은 자기가 특별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늙고 피곤한 게 다른 사람 잘못도 아니고 말이다.

우 간호사 역시 그냥 해본 말이라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의사는 낫지. 적어도 희망은 있잖아요. 우리 간호사들은, 수간호사가 되지 않는 한 당직을 피할 수 없으니까 말이에요.”

“좋은 남편한테 시집가는 방법도 있지.”

“그건 그러네. 내 남편이 은행장이면 나도 당직 안 서도 될 텐데 말이죠.”

은행장 남편은 지금 운화병원 간호사들 사이에 가장 핫한 뉴스였다. 남편이 은행장으로 승진한 덕에 흉부외과 모 간호사는 바로 고된 야간 당직과 작별하고 낮 근무만 서기 시작했다. 일을 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현실에 사람들은 화가 났다.

좌자전은 그저 웃기만 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그런 면에서 또 달랐다. 아내가 은행장이라서 일 년에 몇천 혹은 억에 달하는 병원 대출 결정권이 있다고 해도 서야 할 당직은 서야 했다. 물론, 아내가 있다는 전제하에.

“좌 선생님, 환자 왔어요.”

간호사가 달려와 알렸다.

“어, 능 선생 불러올게.”

“아이고, 삼선을 부르겠다고요?”

“능 선생이 환자 오면 불러달랬어요. 오늘 환자 좀 많이 보고 싶다네?”

좌자전은 능연이 앞에 있든 아니든 공손한 태도였다.

“그 말을 믿어요? 그냥 해보는 말일 수도 있잖아요.”

“능 선생 몰라요?”

그 말에 우 간호사가 웃었다.

“됐어요. 어서 가서 불러와야겠다.”

좌자전이 손을 흔들면서 바로 움직이자 알리러 온 간호사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냉큼 그 뒤를 따랐다.

“선생님! 제가 갈게요. 선생님은 쉬세요.”

“안 돼, 안 돼. 상급 의사가 일하는데 쉬는 하급 의사가 어디 있어.”

좌자전은 ‘내가 네 기회를 뺏는 게 아니라 내가 손바닥 비비는 데 익숙해서 그래.’라는 걸 똑똑히 표현하며 재빨리 움직였다.

잠시 후, 능연이 휴게실에서 나왔다.

“한우 일행은 갔어요?”

좌우를 살피던 능연이 묻자 우 간호사가 눈웃음을 지었다.

“다 돌아갔어요. 계속 여기 둘 수는 없잖아. 능 선생님도 좀 쉬시지, 이런 작은 병 때문에 뭐하러 직접 오세요.”

“오늘은 많이 잤어요.”

확실히 두 시간이나 잤고 스태미너 포션까지 마셔서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우 간호사는 그가 정말로 충분히 잤다고 여기고 긴말 없이 능연의 뒤를 따랐다.

좌자전 역시 서둘러 따라가 시중을 들었다.

저녁에 재수 없이 넘어진 환자가 스스로 택시를 불러서 왔고, 조금 더러운 모습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고개를 들다가 능연, 좌자전, 우 간호사 조합을 본 환자는 저절로 멍해졌다.

“저 심각한가요?”

“10cm 외상이라 꿰매기만 하면 됩니다.”

능연은 그의 손을 떼어내 소독해주면서 대답했다.

“10cm······? 8cm 정도 될 줄 알았는데.”

손으로 10cm를 가늠해본 환자가 조금 멍한 듯 중얼거렸다.

“그럼 넘어질 때 돌하고 상의했어야죠.”

“계단이에요.”

우 간호사가 웃음을 터트리며 하는 말에 환자도 웃으며 대답하다가 아파서 아야아야 고함쳤다.

능연은 감장 봉합과 피내 봉합으로 환자 상처를 꿰매고 유합 기간 내에 조심하면 흉이 너무 깊게 남지는 않을 거라고 설명했다.

몇 분 만에 봉합을 끝낸 능연은 드레싱이나 약 처방, 주사 같은 나머지 일은 좌자전에게 넘기고 처치실에서 나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증 해소’ 퀘스트는 11/300이 되었고, 완성까지 오래 걸리겠다는 생각에 능연도 느긋해졌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하루에 퀘스트를 1/30 완성한 것도 크게 느린 건 아니었다. 중급 보물상자에서 받는 물건은 상당히 유용해서 그랜드마스터급 작은 스킬이거나 마스터급 큰 스킬이라 평범한 의사가 열심히 연습해서 얻는 것보다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게다가 퀘스트 완성을 일상생활로 보면, 하자마자 바로 ‘통증 해소’되는 봉합과 사나흘 되어야 퇴원하는 ‘담낭 절제술’은 큰 차이가 없었다.

능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서히 응급 유형을 따지지 않고 하룻밤 응급의학과에 앉아서 오는 사람 안 막는 태도로 혼자 1/3 정도 되는 환자를 맡으며 응급실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

요즘 삼갑병원 야간 응급실은 항상 인원이 부족한 상태라, 능연이 있어 주니 초짜 훈련의마저 좋아서 죽으려고 했다.

정상인은 잠을 자야 하니까 말이다.

능연은 심지어 환자가 있고, 환자를 뺏을 필요도 없고, 주변이 조용해서 너무너무 편안한 야간 응급실을 즐기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는 한달음에 새벽 4시까지 일하며 환자를 20명 넘게 치료하고는 그제야 잠시 쉬었다.

처치실엔 이제 환자가 없었다.

“겨우 쉴 수 있겠네.”

좌자전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의자에 일어나기도 싫다는 듯 널브러졌다.

그보다 어린 주 선생, 심지어 선임 주치의 정배도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잠들어 있는데 여전히 연차 낮은 레지던트라 조수 하나 구하기 힘든 42세 좌자전만 깨어 있었다.

“됐어요. 가서 주무세요. 이제 오는 환자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죠.”

능연은 몸을 좀 움직이다가 목욕이나 하고 병원 밖에 먹을 거나 찾으러 가야겠다고 결정 내렸다. 스태미너 포션 효과가 아직 다 가시지 않아서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었다.

좌자전은 버텨 보려고 했지만, 몸이 도저히 말을 안 들어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부끄러운 마음으로 휴게실로 향했다.

능연은 준비를 끝내고 운화병원 밖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하구와 비슷해서 운화병원 주변에도 상가 같은 골목이 있었고 안에 작은 마트, 식당이 있고 새벽 5시면 여는 음식점도 있었다.

능연은 깔끔해 보이는 가게를 골라 자리 잡고 순두부와 요우타오를 시키고 느릿느릿 먹기 시작했다.

순두부 맛은 평범하고 조금 새콤했는데 식욕을 돋웠고 짧고 굵은 요우타오는 겉은 바삭하고 씹어보니 속은 부드러웠다.

능연은 휴식할 겸 즐기듯 식사하며 15분 걸려 아침 식사를 마쳤다.

핸드폰을 보니 새벽 6시 01분이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웅웅 대더니 메시지가 들어왔다. 열어보니 팔채향 항학명이 보낸 것이었다.

-우리 마을 수자원 국장 부인 왼손 검지가 잘려서 지금 운화병원 가는 길이야. 부탁인데 능 선생이 직접 맡아주면 고맙겠어. 나도 가고 있어. 항학명

-수술실에서 기다릴게. 얼마나 걸려?

이제 돌아가려던 참이라 능연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

-1시간 반 정도?

핸드폰 너머에서 급히 메시지를 넣던 항학명이 길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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