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팔채향 분원 길가에 세우고 걸어가던 심덕관은 안에서 들리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었다.
“작은 병원이라 재미있네. 사는 냄새 나는데?”
“이렇게 고함치는 게 사는 냄새야?”
그와 동행한 외사촌 조장이 웃으며 하는 말에 심덕관은 언짢은 얼굴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어머니 수술을 할 능연이라는 의사가 이상한 사람일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버지가 구청장 명의로 벌써 능연을 만나고 왔지만, 심덕관은 아버지 판단을 잘 믿지 않았다.
일반인은 공직자 앞에서 아무래도 꾸미게 될 것이고, 그게 오래되면 공직자들은 일반인은 다 그런 줄 알고 가치관마저 달라진다.
심덕관이 기억하기로는 아버지 전 비서가 바로 그런 부류였다. 아침 하나 먹겠다고 구청 차를 타고 신호등 위반을 했었다.
스물 몇 살에 원사에게 추앙받는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심덕관도 모르지만, 어쩐지 정상인이 아닐 것 같았다.
팔채향 분원 안에서 들리는 비정상적인 고함에 심덕관은 더 심란해졌다.
어머니가 이미 상해에서 돌아왔는데 다시 축 원사를 찾아가 수술받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외사촌 조장이 좀 더 쿨한 모습으로 실실 웃었다.
“병원에서 고함치는 사람 있는 게 뭐. 장례식장에서 춤추는 사람도 봤는데.”
“미친 거 아냐? 장례식장에서 춤을?”
“남편 보내며 췄대.”
조장은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어서 가볍게 화제를 바꿨다. 심덕관은 조금 편안해진 표정으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으며 분원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의사와 환자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조장이 앞으로 나서서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의사를 잡고 물었다.
“환자 마누라가 난리를 부리고 있어요. 돈이 없는 거 같네요.”
“돈이 없어요?”
심덕관과 조장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쪽을 바라봤다.
“뭔 이유인지 모르겠어요. 어찌 됐든 계속 고함치네요.”
나이 들어 보이는 의사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의 옷차림을 보고는 긴 말 하기 싫다는 듯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두 사람도 까치발을 하고 앞을 바라봤다.
“능연이다.”
키가 더 큰 조장이 안에 모습을 보고 말했다.
“어떻게 알아? 능연을 본 적 있어?”
“아니, 그런데 고모부가 능연 잘생겼다고 했잖아.”
“잘생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형도 보면 알아.”
웃음을 터트리는 심덕관의 말에 조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심덕관은 까치발을 해도 보이지 않자, 앞으로 몇 걸음 더 나가서 다시 까치발을 들었다. 그때 마침 능연이 몸을 돌리자 여원이 먼저 보여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꼬맹이가 있네.”
환자가 신음하고 보호자가 고함치고 관중들은 몰려 수다를 떨고. 몇백 개의 발바닥이 바닥을 구르고 몇백 개의 방직물이 서로 마찰하고.
심덕관을 발견한 여원이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자 멀리서 심덕관이 켕기는 듯 미소 지었고, 여원은 무표정한 모습을 보였다.
“능연 안 보이는데?”
“다시 잘 봐봐.”
조장이 입을 삐죽였다.
심덕관이 다시 까치발을 들었을 때 능연이 이미 뒤를 돌아 있었고 그제야 바로 알아본 심덕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그렇지?”
“응.”
심덕관은 낮게 대답하면서 눈으로 능연의 동작을 쫓았다. 능연은 그때 환자 상처 봉합을 하고 있었다.
환자의 다친 부위가 어깨라 옷의 어깨 윗부분은 모두 잘랐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환자의 온몸이 얼룩덜룩하고 먼지에, 진흙에, 흐른 피까지 뒤엉겨서 보고 있기도 괴로웠다.
능연은 마스크를 끼고 미간을 단단히 좁힌 채 동작만은 일사불란하게 리듬감 있게 움직였다.
상처를 헤집고, 닦고······. 능연이 지금 하는 일은 청결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능연을 잠시 더 바라보던 심덕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의사 같네.”
“내가 저 얼굴이면 술집에서 살 텐데 말이야.”
외사촌 조장은 성격도 좋고 세상 돌아가는 일도 잘 아는데, 외부를 관찰하는 능력이 조금 떨어졌다.
심덕관은 말없이 웃기만 하면서 능연이 봉합을 끝내고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 지켜보다가 사람들이 모두 흩어진 후에야 앞으로 나갔다.
“능 선생님.”
“잠시만요! 순서 지켜요!”
심덕관이 인사하고 나서는데 계속 고함치던 여자가 목소리까지 다 쉬었는데 여전히 강경한 태도로 고함쳤다.
“이렇게 꿰매면 단가요? 우리 애 아빠 출근도 해야 해요. 어깨 고장 나면 안 된다고요!”
“어깨 괜찮습니다.”
능연은 한마디 하고는 심덕관을 향해 사회가 기대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원이 냉큼 달려가 중간을 가로막고 여자를 바라봤다.
“남편분은 이제 붕대 감으면 됩니다. 가세요, 저랑 가서 접수해요.”
“제 남편 아니에요. 접수도 안 해요. 일단 낫는지 보고요.”
여자의 말에 너무 많은 정보가 있어서, 의사들이 다들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질린 능연은 그런 말은 더욱 듣고 싶지 않아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로 치료실에서 나왔다. 봉합도 끝냈고, 약도 처방했고. 이제 상대가 돈을 내든 내지 않든, 난리를 부리든 부리지 않는 나머지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심덕관과 조장은 능연을 얼른 따라갔고, 두 사람 역시 치료실에서 조금 멀어진 후에야 다시 인사를 건넸다.
능연은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수술 예정된 환자 아들입니다.”
“조로 씨 아드님?”
능연이 며칠 동안 할 수술은 단 한 건뿐이라 바로 누군지 알아챘다.
심덕관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 돌렸다.
“증상이 다시 시작됐나요?”
“아······. 무릎 붓기가 더 심해지고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전혀 걷지 못하고요.”
“아.”
그 정도면 안정적인 상태였다.
“능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초조하기만 한 심덕관은 태연한 능연의 모습에 다급히 입을 열었다. 능연은 대답 없이 계속 앞으로 걸었다.
“저기, 능 선생님.”
능연이 걸음을 서둘렀다.
심덕관은 아예 뛰기 시작했고 여원 1.5배의 짧은 다리로 재빨리 능연을 뒤쫓았다.
“능 선생님, 저랑 운화 한 번 다녀오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머니가 요즘 진통제를 먹으면서 버티세요. 일찍 수술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요.”
“상황이 그런데, 다른 의사를 찾을 생각은 안 하십니까? 활액막염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운화병원에 많은데요.”
환자 이야기에 능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걸음을 멈췄다.
활액막염 수술은 정형외과 수술 중 가장 간단한 수술이어서 능연은 자기가 일부러 운화로 돌아가야 할 필요를 못 느꼈다.
“환자가 차는 탈 수 있죠? 여기로 모시고 와도 됩니다.”
능연은 절충안을 내놓았다. 팔채향 수술 조건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활액막염 수술 정도는 충분했다.
조로의 이종 조카 조장이 못 견디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떻게 환자한테 왕복 몇 시간이나 걸리는 길을 오라고 합니까. 울퉁불퉁한 길에 얼마나 고생스럽겠습니까”
홍 주임이 흡연 구역에서 연기를 헤치고 스르륵 나타났다.
“헬기로 바로 보내시면 되지요.”
그러자 단번에 기세가 눌린 조장이 혼자 꿍얼거렸다.
“의사가 한 번 움직이는 게 편하잖아.”
“의사도 의사 일이 있으니까요. 능연, 자네 며칠 동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언니! 언니!”
“동생아!!”
등 뒤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홍 주임의 목소리를 완전히 눌러버렸다.
다들 뒤로 돌아보니 좀 전까지 고함치던 여자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여원이 벌써 심폐소생 전반부를 시작했다.
“심정지! 제세동기!”
여원은 크게 고함치며 여자를 바로 눕히고 흉부 압박을 시작했고 능연은 바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