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황색 헬리콥터가 큰바람을 일으키며 입원 병동 꼭대기에 내려와 사람을 내려주고는 그대로 꼬리를 떨치며 사라졌다.
혹시나 다른 헬리콥터가 있을까 봐 미리 알아보려 전화했을 뿐인데, 전화를 받고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시중들러 나온 의교과 간부 두 명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맞이했다.
“전칠 씨, 온 김에 건강검진 하시겠습니까?”
전칠이 그냥 들른 것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모처럼의 기회라는 생각에 의교과 간부는 한 번 붙잡아 보았다.
다른 곳이면 붙잡아 음식 대접하겠지만,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건 건강검진뿐인데 그나마도 검사 항목이 까다롭고 복잡하면 다들 도망가려고 한다.
전칠은 여전히 동정하는 눈빛으로 일하는 실력도 그저 그렇고 생긴 것도 평범한 의교과 간부를 바라보다가 공손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선생님들 다 바쁘실 텐데, 가서 책 읽으세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우린 승진 평가 스트레스가 별로 없습니다.”
진지하게 말하며 따라 웃는 초짜 간부의 모습에 전칠은 이해한다는 듯 미소 지어 보이고는 계속 앞으로 걸었다.
초짜 간부는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르다가 전칠의 고용인에게 가로막혔다.
“아가씨가 이만 가서 볼일 보고 책이나 읽으시라잖아요.”
샤넬로 휘감은 중년 여 집사의 기세가 몹시 등등했다.
의교과 간부 둘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대규모 인원이 그들을 앞서 지나갔다.
제복과 수트를 입고 소형 카트를 미는 그들의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이 아무리 봐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능연은 특수 병동에서 입원 병동 수술 층까지 몇 분 만에 도착했다.
입원 병동 수술 층은 각 진료과가 공동으로 사용하며 면적이 넓은데 출입 관리가 엄격했다.
능연은 재빨리 다가가 문 앞의 간호사에게 깨끗한 수술복을 받아서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나올 때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전칠과 마주쳤다.
온몸에 금색 옷을 입은 전칠이 능연을 보자 신이 나서 손을 흔들었다.
“외식 배달 유니폼 같죠?”
“아,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면 그렇게 안 보일 거예요. 수술복은 초록색이나 파란색밖에 없어요.”
“알아요. 수술에선 다들 초록이나 파란색을 쓰더라고요.”
“네. 피 색깔 때문이에요. 여자 탈의실은 오른쪽입니다.”
능연이 가르치는 방향을 본 전칠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잠시 머뭇거리며 물었다.
“내 슬리퍼 신어도 돼요?”
“됩니다.”
“역시 되는구나! 집에서 일하는 이 씨 아저씨한테 물어보긴 했는데, 운화병원 규정은 다를까 봐 걱정하더라고요.”
전칠은 대답하면서 커다란 칠기 찬합을 능연에게 내밀었다.
“먼저 열지 말아요.”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칠은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려 탈의실로 향했다. 능연이 수술 층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자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수술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엘리베이터 쪽에 서 있던 중년 간호사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능연과 전칠을 바라보며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심지어 두 사람이 정말 데이트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정상적으로 누가 수술 층 작은 식당에서 데이트를 한단 말인가. 적어도 두 사람 모두 의사인 것도 아닌데 데이트 약속을 수술 층 식당에서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전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코디네이터가 신경 써서 골라준 옷마저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부 바꿔 입었다.
예쁜 옷을 입을 기회는 너무 많았다. 오히려 능연과 함께 수술 층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이 더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킬리만자로에서 함께 점심을 먹은 엄마, 아빠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수술 층 작은 식당엔 의사와 간호사가 쉴 새 없이 오갔다.
수술이 늦어져 식사시간을 놓치면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수술이 빨리 끝나도 다음 수술을 하다가 굶어 죽기 전에 미리 밥을 먹는다.
운화병원 수술, 회진과 회의는 종종 꽉 차 있어서 다들 무슨 일 있으면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 진작에 익숙해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매일 아침부터 새벽까지, 작은 식당엔 항상 누군가 밥을 먹고 있었다.
오늘 식당을 찾은 의료진은 그 익숙한 식당에서 특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능연이 병원 사람이 아닌 여자와 같이 밥을 먹고 있어!
게다가 두 사람은 기름기 가득한 허벅지 고기를 메인 요리로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유명해진 지 몇 년 된 동파 허벅지살은 지금은 여러 가지 조리 방법이 있고 모두 정통이라고 부르지만, 어느 버전이든 모두 커다란 허벅지살을 시뻘겋고 기름지게 요리하는데, 능연과 전칠 사이에 그런 요리가 있는 건 아무리 봐도 조화롭지 못했다.
그러나 전칠은 개의치 않았고, 능연은 더욱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전칠은 폴짝폴짝 신이 나 있었고 뿌듯한 듯 능연에게 음식을 소개했다.
“이거 주문호 사부님한테 직접 배운 거예요. 훼이궈로우, 동파육, 홍소육 이런 걸 제일 잘하시고 매우 유명하답니다. 전엔 국영 식당에서 중요한 연회를 자주 담당했어요. 음, 뭐 얼마나 중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칠 씨가 만들었다고요?”
능연이 매우 놀라며 묻자 전칠이 뿌듯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 사부님은 아주 조금, 정말 조금 도와주셨어요. 이건 큰불에서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병원 식당은 그게 안 되니까, 다른 호텔 주방을 빌려서 만들었죠. 그리고 헬기로 가지고 온 거라 온도가 딱 알맞을 거예요. 먹어 봐요.”
“그럼 같이 먹어요.”
능연은 깨끗하게 빛나는 메스를 가지고 와 수월하게 허벅지 고기를 갈랐다.
“역시 메스!”
“응. 이거 10호 메스에요. 흔하게 볼 수 있죠. 피부도 자르고 조직도 자르고. 와, 껍질 맛있네요.”
“그죠, 그죠? 허벅지 껍질이 제일 맛있는 거예요.”
“응, 나도 허벅지 껍질 좋아해요.”
취향이 일치한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작은 식당 안에서 족발을 뜯던 의사들은 묵묵히 족발을 내려놓고 메스를 꺼냈다. 메스 없는 외과의도 있냐?
굵은 3호 메스 손잡이에 날카롭고 큰 24호 메스 날을 끼우고 핑거그립으로 메스를 잡고 족발 껍질을 벗기고, 아킬레스건을 끊어내고, 뼈를 분리하고, 근육을 잘게 다지고······.
수술용 핀셋으로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우아하게 입에 집어넣었더니, 맛이······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연문빈 족발은 발전이 없네.”
“오레오도 고추냉이 맛이 나오는데 연문빈 족발은 늘 같은 맛이라 진짜 좀 질린다.”
“오레오에 고추냉이 맛이 있다고?”
“응.”
“왜? 갈라서 오징어라도 넣으라고?”
“왜 너는 못생겼고 능연은 잘생겼냐? 세상에 왜가 어디 있다고.”
“자, 거울이나 봐라. 난 수술하러 간다.”
“응, 나도 가야 해.”
재활을 시작한 이청홍은 하루하루 좋아졌다.
스물 몇이라는 나이에 운동선수 체질이라 정상인보다 회복력이 몇 배나 좋았다.
그의 운동능력이 얼마나 회복될지, 그게 유일한 문제였다.
그의 구단 인터넷 사이트에는 누군가 그의 상태를 매일 기록하고 추측하는 관련 게시물을 올려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운화병원으로 문병 오는 팬들도 많아졌다.
“청홍아, 거봐. 팬들은 아직 너한테 관심이 많다니까. 다들 너 보러 왔잖아. 전에 유위신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도박하는 심리로 오는 거겠죠.”
안색이 안 좋은 이청홍을 위로하는 매니저의 말에 이청홍은 침대에 누워서 콧방귀를 뀌었다.
“아이고, 말을 왜 그렇게 해. 다들 걱정이 되니까 네 병세를 추측하고 그러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신경도 안 쓸걸?”
“경마하는 사람들도 경주마한테 신경 써요. 안 그래요? 그리고 봤잖아요, 절반 이상이 제가 국대에서 쫓겨날 거라고 걸고 있다고요.”
열심히 위로하는 매니저의 말에 이청홍이 입을 삐죽였다.
“국대가 이기지도 못하는데, 나가면 나가는 거지.”
이청홍의 심각한 눈빛을 느낀 매니저가 뜨끔한 듯 농담이라고 덧붙였다.
“농담인 거 알아요. 이제 제 병세를 가지고 농담도 하시네요?”
“아니, 내 말은······.”
“저도 농담입니다.”
이청홍이 매니저의 해명을 자르고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을 획 돌렸다.
이청홍 같은 운동선수를 너무 잘 아는 매니저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부터 최소 몇만 미터 운동량으로 움직여서 평소에 뭘 해도 수월하게 해내다가 갑자기 다쳐서 수술하고 침대에 누워있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 가는 것도 불편하니, 기분이 좋아질 리가 없었다.
기분이 안 좋으니 화풀이 상대가 필요하고, 그럴 때 가장 가까이 있고 화를 풀기도 좋은 상대가 바로 매니저였다.
“능 선생님 찾아볼게. 언제 퇴원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고.”
매니저는 자리를 피하고 싶은 듯 말했고 알았다고 대답하던 이청홍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물어볼 필요 없어요. 안 좋아도 어쩔 수 없죠. 물어본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일단 가볼게.”
매니저는 모르는 척 바보처럼 웃어 보였다. 지금은 저기압 지대에서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는 몇 발짝 만에 병실을 벗어나 다급하게 의국으로 향했다. 도망치려고 나오긴 했어도 어쨌든 물을 건 물어야 했다.
이청홍은 지금 그의 밑에 가장 전망 있는 선수였고, 얼마나 회복될지, 얼마나 걸릴지, 매니저로서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