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반에 배농관 넣고 닫으세요.”
두 번이나 확인하고 출혈과 스며 나오는 혈액이 없다는 걸 확신한 능연이 산과 여의사에게 지시했다.
집도의가 모든 일을 할 리도 없고, 적어도 능연은 자기 팀에서 가능한 한 하급 의사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었다. 폐복하고 배농관 넣는 연습도 안 한 의사라면 정말로 하늘에서 시스템이 떨어지길 기대하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산과 여의사는 적극적으로 대답하면서 바로 바쁘게 손을 놀렸다.
곁으로 빠진 능연은 팔짱을 끼고 잠시 쉬다가 마취대 곁에 있는 기기의 수치가 기본적으로 정상임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응급실로 가겠습니다. 무슨 문제 생기면 부르러 오세요. 방 주임님, 환자 약 처방이나 어드바이스는 직접 하실 거죠?”
“내가 할게.”
방평죽은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약 처방이야 방평죽 같은 주임 의사가 더욱 익숙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능연은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었고 방평죽도 공식화된 미소를 지었다.
어시스던트를 맡았던 하급 의사와 둘러서서 참관했던 자기 진료과와 다른 진료과 의사들 앞에서 방평죽은 그저 일반적인 진료과 합동 진료를 한 것 마냥 모든 감정을 감추었다.
능연은 고개를 돌려 수술실 문을 밟아 열었다.
딩.
시스템에서 제시어가 튀어나왔다.
- 퀘스트 완성: 동료의 감탄
- 퀘스트 보상: 초급 보물 상자
제시어는 연속으로 네 번 튀어나오면서 능연에게 초급 보물 상자 네 개를 안겨주었다.
능연은 서둘러 상자를 열지 않고 뒤를 돌아 수술실 의사들을 바라봤다.
수술대 곁에 있는 방평죽 등 의사들의 표정은 엄숙하고 진지했다. 참관 의사들의 표정은 진지하고 엄숙했다. 그중에 누가 보물 상자를 내놓은 건지 알아내기가 정말 힘들었다.
능연은 산과는 정말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배농관을 삽입하던 여의사가 곁눈으로 능연이 고개를 흔드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문득 당황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뭘 빼먹었나? 능 선생 기준이 너무 높은 거 아냐? 아이고, 배농 표준을 잘 연습해둘걸.
능연이 신경 쓰지 않고 수술실을 나서는 그때 좌자전은 겨우 면담과 사인을 마치고 이제 들어가 보고를 하려던 참이었다.
“능 선생?”
좌자전은 걱정스러운 듯 걸음을 멈췄다. 이렇게 빨리 나오다니, 정말로 수술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생각이 든 좌자전은 그대로 능연을 끌고 가려고 생각했다.
임산부는 일반 환자보다 더욱 특수하고 보호자도 감정상 부음을 받아들이기 더 힘들어한다. 좌자전은 능연이 공격당할까 걱정스러웠다.
의사 가족이라고 해도 이럴 때 침착함을 유지하는 건 매우 어려운 법이었다.
사람은 극도로 실망하고 분노한 상황에서는 예상하기 힘든 반응을 하기 마련이다.
홍 주임은 더욱 긴장했다. 형님과 항상 사이좋게 지내왔고 조카도 어릴 때부터 지켜봐 왔다. 결혼하고 아이 낳을 때까지 진심으로 즐거워했던 홍 주임은 대량 출혈 소식을 듣자마자 진료과끼리의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바로 능연을 떠올렸다.
그런데 지금은······.
“능 선생, 수술······ 어떻게 됐나?”
홍 주임은 뭐라고 물어야 할지조차 몰랐다.
운화병원에 그렇게 오래 머무르는 동안 봐온 의사 중에 가장 훌륭하게 지혈하는 사람은 바로 능연이었고, 이성적인 각도에서 봐도 능연이 살릴 수 없는 대량 출혈 환자는 살길이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이성적일 수는 없었다.
홍 주임은 기대와 고뇌로 눈빛이 변했다.
“수술은 순조롭게 끝났고, 지금 닫는 중입니다.”
사람들의 불안한 감정을 잘 아는 능연은 한마디 하고는 바로 덧붙였다.
“수술 중 출혈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3,000cc를 넘어서 자궁 B-린치 봉합을 했습니다. 앞으로 출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능 선생, 환자는 살았지? 그지?”
능연의 말뜻을 알아들은 좌자전이 냉큼 물었다.
“네. 살았습니다.”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답답해하던 환자 보호자들이 환호를 터트렸고, 홍 주임도 순간 편안해졌다.
산모가 살았다는 건 가족들에게 충분히 좋은 소식이었다.
환자 부모는 우선 안심한 다음 후유증 같은 문제를 떠올린 건지 여전히 걱정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무슨 질문을 하기 전에 좌자전이 이미 능연을 한쪽으로 끌고 갔다.
좌자전은 금세 능연 대신 앞으로 나섰다.
“상황이 예상보다 좋았습니다. 적시에 지혈하지 못했다면 환자 목숨이 없었을 겁니다. 지금은 능 선생이 B-린치 봉합술을 써서 환자 자궁도 보존해서 임신 기회를 살렸습니다. 이 기술이 아니었다면, 자궁 절제해야 했습니다.”
말하는 순서를 바꾸자 환자 보호자가 받아들이기도 훨씬 쉬워졌다.
좌자전이 세세히 설명하는 사이 보호자의 얼굴색도 점점 좋아졌다. 사실상, 이 수술 자체가 원래 다행스러운 수술이었다.
대량 출혈이 일어난 산모는 원래 고도 위험 환자고, 버티지 못하는 환자가 너무나 많았다. 오늘 같은 상황만 해도 산모는 벌써 위급 통지서를 여러 통 받았다.
“능 선생, 고맙네.”
홍 주임은 누렇게 뜬 손가락으로 능연의 손을 잡고 힘껏 위아래로 흔들었다. 능연은 내키지 않았지만, 손이 잡혀서 어쩔 수가 없었다.
어렵게 손을 빼낸 능연은 주머니에서 알콜겔을 꺼내 자기가 조금 바르고 홍 주임에게도 건넸다. 멈칫하던 홍 주임은 능연의 체면을 생각해서 알콜겔을 짜내서 손에 발랐다.
능연은 손을 문질렀고 홍 주임도 손을 문질렀다.
능연에게 익숙하고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알콜겔 바르는 것도 시원하니 상쾌하구만. 음, 우리 과도 이거 좀 사야겠어.”
홍 주임은 어쩐지 어색한 것 같아서 머리를 쥐어짜 한마디 했다. 그러자 능연이 홍 주임 손을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비누도 사라고 덧붙였다.
“이건 착색된 걸세. 담배를 하도 자주 피워서 니코틴이 착색됐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제 손을 바라본 홍 주임이 안색이 살짝 변해서 대답했다. 그리고는 콜록거리면서 기침을 하고는 바로 화제를 바꿨다.
“능 선생, 저녁에 시간 괜찮으면 같이 식사하게.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
곁에 있던 가족들도 얼른 다가가 초대하는 뜻을 내비쳤고 능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능 선생은 밖에서 밥 먹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몇 시간이면 됩니다. 술 안 마셔도 되고. 감사 인사하고 싶어서 그래요.”
좌자전이 곁에서 하는 말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홍 주임 형수가 공손한 말투로 끼어들었다. 능연은 그래도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병원에서 안 나갈 생각입니다.”
“그래도 식사는 해야죠.”
“산후 출혈 문제는 재발할 우려도 있어요. 방 주임님에게 병원에 있겠다고 말씀도 드렸어요.”
능연은 어쩔 수 없이 설명을 덧붙였다. 산후 출혈은 원래 갑자기 오고, 아이를 낳은 지 몇 시간 후에 산모에게 갑자기 출혈이 생기는 경우가 흔했다. 오늘 환자는 마취에서 깨어날 때까지 안전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족은 순간 하고 싶던 말이 모두 막혀버렸다.
“감사합니다. 능 선생님 감사합니다.”
환자의 어머니, 그러니까 홍 주임의 형수가 갑자기 목이 멘 듯 눈물도 훔치면서 말했다.
“그럼 능 선생님 뭐 좋아하세요? 가서 사 올게요.”
“이건 진짜 별것도 아니라네. 그냥 동료끼리 식사 나눠 먹는 거라고 생각하게.”
홍 주임은 손짓까지 하며 능연을 설득했고 그 손짓을 본 능연이 갑자기 마음이 동했다.
“그럼 훈제 오리로 하죠. 아니면 오리구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