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428화 (409/877)

다음 날 척양붕은 이른 시간에 공항으로 갔고 서 선생을 마중해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겨우 9시였다.

“아침 비행기는 시간 절약되고 좋군요.”

척양붕이 하품을 하면서 화제를 찾아 말을 건넸고, 서은은 대답을 한 건지 아닌지 모를 작은 목소리로 ‘음’하고 대답했다.

척양붕은 못 말린다는 듯 룸미러를 바라봤다.

서 선생은 매우 총명하게 생겼고, 안경을 낀 힘이 들어간 눈빛으로 뭘 보든 매우 진지하게 바라봤다. 입고 있는 수트는 깔끔하게 각 잡혀 다려져 있어서, 고등학교 입학 통지서에 굉장히 어울릴만한 이미지였다.

일 년에 반은 광산에서 보내는 척붕양은 깔끔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서은은 말수가 너무 적어서 어쩐지 대하기 껄끄러웠다.

“비행기는 괜찮으셨죠? 이 시간엔 그렇게 기류가 심하지 않겠죠. 요즘은 밤에 비행기를 타는 게 두렵더라고요.”

척붕양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자유로워 보였다.

서 선생은 묵묵히 안전벨트를 점검한 후 가볍게 ‘음’하고 대답했다.

“보통 이 시간에 비행기를 많이 안 타지요. 비즈니스석은 그래도 괜찮지만 우리 국내 비행기는 의자도 불편하고 서비스도 별로 없고. 그래도 가격이 싸서 대충 타기엔 괜찮죠. 두세 시간이면 도착하기도 하고.”

“음.”

“저 앞이 운화병원입니다. 시 중심 병원이고 면적은 그렇게 안 큽니다. 이 빌딩 뒤에 또 빌딩이 있지요. 옆에 낮은 건물도 사실 운화병원 건물인데 직원 숙소로 지었다가 지금은 다시 뭘 하려고 해도 여의치 않아서 그냥 뒀다고 하더라고요.”

척붕양은 또 하품을 하고는 말도 더 빨라졌다.

그는 지난밤 잠을 잘못 잤다. 아버지가 수술하고 ICU에 들어가기도 했고 친척, 친구, 동업자, 옛친구, 동료, 부하가 얼마나 많이 찾아 왔는지 모른다. 척붕양은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또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하필이면 북경에서 온 서 선생이 이렇게 일찍 왔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직접 마중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를 홀대할 수가 없었다.

대가를 모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척양붕은 지금 확실히 깨달았다. 아버지가 간암에 걸린 다음 얼마나 여기저기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돈은 얼마든지 있지만, 이럴 때는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아버지를 사립 병원으로 보낸 이유도 사립 병원엔 연줄이 통해서였고 돈을 바로 의료 시스템으로 아웃풋 할 수 있어서였다. 다른 병원이라면 병상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세 다리는 건너야 하니 척붕양이라도 못 견딜 일이었다.

척붕양 수준으로는 서은 같은 등급 의사는 더욱 모시기 어려웠다.

간담췌외과는 전국의 대가가 모두 원사이지만 집에 광산이 있는 척붕양이 여기저기 부탁하면 출장 수술 의사로는 쉽게 초빙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버지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수술하려는 의사가 없었다. 그런데 수술이 아니면 그중 누구든 단순히 진찰받자고 부르기는 힘들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보다 레벨이 한 단계 낮은 의사라도 큰 병원 주임이든 작은 병원 대들보든 마찬가지로 척붕양이 원한다고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과 의사는 모두 수술을 원하지, 수술이 아닌 이상 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서 선생이 척붕양이 찾을 수 있는 비교적 열정적인 대가였고 가끔 통화하고, 메시지 보내는 정도로는 꽤 쓸만했다.

그런 그가 천리길을 달려 운화로 오겠다니, 척붕양은 몹시 피곤했지만 그래도 버티고 공항으로 마중 갈 수밖에 없었다.

돈을 준대도 상대는 별로 내키지 않을 테고, 척붕양 생각엔 자기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존중이라고 여겼다.

“일단 응급의학과로 갑시다.”

서 선생이 갑자기 한마디 하자 척붕양이 허둥지둥 정신을 차리며 알았다고 대꾸했다.

잠시 후, 청붕양의 벤츠 S450이 응급센터 건물 앞에 섰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로비에서 어렴풋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생각에 척붕양이 눈썹을 치켜떴다. 그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는데, 서 선생은 이미 그를 지나쳐 응급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능 선생 계신가요?”

서은은 너스스테이션 간호사를 통하지 않고 바로 처치실을 꺾어 들어가 옆에 복도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 물었다.

복도 맨 앞에 있는 첫 방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제2 접수처라고 불리는 곳으로, 사무실에 있는 의사들은 주로 내과 의사였다.

서은의 물음에 안에 있던 의사가 고개를 들었고 하얀 가운을 보더니 자세히 묻지도 않고 안쪽을 가리켰다.

“병실 구역에서 회진할 겁니다.”

“병실 구역으로 가보죠.”

사무실에서 나온 서은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척붕양을 향해 말했다.

“차라리 ICU로 가시죠. 능 선생은 매일 ICU에 갑니다.”

척붕양은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웃음 지어 보이고는 그렇게 말했다. 상태를 평가해 달라고 할 생각으로 서은을 부른 거라 그가 능연과 접촉하는 걸 바라지 않는 게 당연했다.

광산을 평가할 때도 평가원이 먼저 광산 주인을 만나거나 하면 아무래도 평가에 변화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병실 구역이 더 가깝습니다.”

“능 선생이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서 회진이 지체되면 그것도 안 좋고요.”

척붕양은 광산에서 직원을 속여넘길 때보다 열심히 언변을 발휘했다. 잠시 고민하던 서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그럼 우선 환자를 보죠.”

서은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들어 응급센터 구조를 살피고는 묻지도 않고 계단 입구를 찾아서 걸어 올라가 중간 회랑을 지나 바로 입원 병동으로 들어갔다.

“서 선생님 운화병원에 오신 적 있습니까?”

“처음입니다. 국내 병원 구조는 다 비슷합니다.”

척붕양은 몹시 의아한 듯 물었고, 척붕양이 왜 그렇게 묻는지 잘 아는 서은은 속 시원하게 대답했다.

“귀찮지는 않겠군요. 광산도 이렇게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럼 직원이 어느 광산에서 오더라도······ 아닙니다. 갱도는 너무 복잡하고······ 하아, 참 일하기 어렵네.”

척붕양이 슬쩍 서은을 바라봤더니 서은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또 침묵 모드로 들어간 것이다.

어차피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척붕양도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리고 서은을 따라 구불구불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

꽥.

꽥꽥꽥.

건물 아래 큰 거위가 주권을 선언하면서 큰 소리로 울며 어린아이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아이들 역시 농가 체험 가서 아르바이트하는 듯 꽥꽥 소리 지르며 웃었다.

병원에서 산과를 제외하고 좀처럼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사실상 산과 역시 긴장감과 울음이 더 많았고 웃음도 지금처럼 통쾌하진 않았다.

어린아이나 고작 큰 거위 한 마리 때문에 병원에서 순진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서은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건물 아래 큰 거위를 바라보며 잠시 서 있었다.

“능 선생이 기르는 거위라더라고요. 향만원이라고 합니다.”

“이름 좋네요.”

며칠 병원에서 머물렀던 척붕양 역시 일부러 거위 구경하러 간 적 있었고, 소개를 들은 서은이 거위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표정을 보던 척붕양은 곧 능연을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의사들은 다 학교에서 선생님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지는 건가. 실력이 좋을수록 머리가 이상한 거 같은데.’

서은은 척붕양의 상태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변함없이 건물 아래 거위를 바라봤다.

하염없이 보고 있는데 드디어 장난꾸러기 하나가 너무 지나치게 장난치다가 거위에게 뒷다리를 물려 비틀렸다.

아이는 산이 떠내려가 가라 울었고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이를 끌어내는 사람, 거위를 보호하는 사람, 모두 환자나 보호자처럼 보였다.

“물면 됐네.”

“예?”

서은이 길고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고 못 알아들은 척붕양이 되물었다.

“문다는 건 거위가 정상이라는 거니까요.”

서은은 또다시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운화 공기도 좋군요.”

“바닷가 도시잖습니까. 아니지, 우린 건물 안에 있는걸요. 에어컨 공기고요······.”

척붕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은은 성큼성큼 앞으로 향했고 척붕양은 다급하게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광산을 누비던 걸음으로 서은을 따르던 척붕양은 문득 서글퍼졌다.

‘돈 벌 때도 윗사람 뒤를 쫓았는데, 지금은 돈을 쓰면서도 의사 뒤꽁무니를 쫓아야 한다니······.’

그러나 생각은 생각이고, 척붕양은 평소보다 더 빨리 달리면서, 윗사람 접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싹싹하게 굴었다.

“오늘 시간이 이르니 이따 할 일 없으면 바닷가에 가보지요. 해산물도 맛보고요. 운화 해산물도 특색이 있답니다.”

“음.”

“서 선생 오늘 묵으실 호텔 근처에 술집 거리가 있습니다. 제법 떠들썩해요.”

“음.”

“서 선생은 조용한 걸 좋아하시죠······.”

서은은 말없이 척붕양을 바라봤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서은과 척붕양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사람들이 ICU 앞에 뿔뿔이 서서 사냥 준비하는 대머리독수리처럼 서성이고 있었다.

“누가 능 선생인가요?”

서은은 더욱 불타는 눈빛으로 큰 거위 입처럼 손을 벌려 척붕양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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