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눈을 뜬 척옥천은 숨을 조금 깊게 들이쉬다가 통증에 입을 벌렸다.
“시발.”
척옥천은 욕을 하지 않은 지 3, 4년이 되었다. 특히 70세 생일 이후로는 풍수지리사의 말을 듣고 88세까지 살겠다고 다투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고 화도 내지 않으며 몸을 다스려왔다.
문제는 너무 아프다는 것이고, ICU 안은 더 괴로웠다.
“붕아.”
“아버지.”
척옥천이 입가를 덜덜 떨면서 부르는 소리에 척양붕이 냉큼 안으로 들어갔다.
운화병원 특수 병동 병실은 편안한 편이었다. 안에 커다란 침대가 있는 것 말고도 응접실 면적도 제법 컸다. 회의실 구조에 소파도 있고 TV, 차 테이블도 갖췄다.
척붕양은 밖에 간이 침대를 놓고 응접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붕아.”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척옥천이 다시 부르자 척붕양이 침대 곁으로 가 호출벨을 누르고는 곁에 있는 사촌 동생에게 의사를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아프다. 젠장 맞게 아파.”
어릴 때 고생을 많이 했지만, 요즘 와서는 고생할 일이 정말이지 없었는데 지금은 아파서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선생님 금방 오실 겁니다. 와서 진통제 놓으면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척붕양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얼마나 강한 사람이란 말인가. 3층 별장에서 떨어져도 병원에 가지 않고 버텼던 사람이다.
“음. ICU엔 가기 싫다.”
“네네. 문제없으면 안 가도 됩니다.”
“응급처치 필요 없다.”
척옥천이 고개를 흔들며 웅얼거렸다. 척붕양은 아버지의 말뜻을 알 것 같았다. 다시 ICU로 들어갈 바에는 차라리 응급처치를 받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세히 생각하기도 싫고 그렇게 하라고 대답하기도 싫었다.
척옥천도 고집 피울 사이도 없이 다시 잠에 빠졌다.
의사가 곧 밖에서 들왔고 대충 살핀 다음 진통제를 처방하고 자리를 떠났다.
오후에 척옥천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가족들은 그래도 마음 놓지 못하고 바로 서은을 다시 불렀다.
의사들의 바쁜 생활로 따지면, 서은이 이번에 운화에 와서 며칠이나 머무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배움을 얻으며 성장한 의사인 서은은 지성이면 감천을 믿는 사람이었다. 배움을 위해서 개인 시간도 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스승으로 모시고, 시간을 내 자기를 지도해달라고 한단 말인가.
그래서 서은은 운화병원 응급실에 며칠이나 머물렀고, 직접 나설 기회가 없어도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척옥천 진찰하는 건 원래 서은의 ‘본업’이었고, 척붕양이 부탁하니 서은도 거절하지 않고 병실로 향해 사진과 검사 결과를 살폈다. 운화병원 의사보다 훨씬 진지한 모습이었다.
“문제없습니다. 능 선생도 그렇게 말했잖습니까. 회복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예방성 화학 치료도 했고, 문제없을 겁니다. 몸 상태가 조금만 더 좋아지면 퇴원할 수 있습니다.”
서은은 새로운 내용을 생각하기도 귀찮아서 능연이 했던 말을 통역했다. 기본적으로 중중 통역 상태였다.
그런데도 척가 사람들은 진지하게 들었다.
그러자 서은은 몇 마디 더 설명해주고는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 능 선생을 찾아 수술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른 의사는 이 수술 못 했습니다.”
“동과 병원 의사도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아주 잘하는 의사라면서.”
척붕양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서은이 껄껄 웃었다.
“스포츠의학 맹삼 말이죠? 능 선생이 간 절제를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을 겁니다.”
광산 주인 생활을 오래 한 척붕양의 마음에 빨간불이 바로 들어왔고, 얼굴에 순박한 광산 공인처럼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헷갈리네요. 능 선생이 간 절제 수술을 얼마나 잘했다는 건가요?”
서은은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배움을 구하기 위해서 준비해 두었던 말을 입에 올렸다.
“아버님 상황이 매우 안 좋았습니다. 정상적으로 간 절제를 했다면 분명히 돌아가셨을 겁니다. 같은 환자를 저한테 보냈어도 저는 분명히 안 받았을 겁니다.”
서은은 이야기하면 할수록 눈을 빛냈다.
“능 선생은 아버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새로운 수술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앞으로 별문제만 없으면 어르신은 몇 년은 잘사실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척옥천이 병상에서 나지막이 웃음을 지었다.
“칠십삼, 팔십사.”
73세를 넘길 수 있으면 84세까지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척붕양은 서은의 말에서 숨은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곁에 있는 친척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은, 동과 병원에서 저희를 운화병원에 보내면 안 되는 거였다는 말씀인가요?”
“황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죠.”
“선생님 말씀은······.”
“네.”
그런 말도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면, 척붕양은 진작에 광산에서 공인에게 속아서 안에 매장됐으리라.
침대에 누운 척옥천도 이번엔 그 말뜻을 알아듣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병실 안에 말을 꺼내기 어려운 침묵이 흘렸다.
척가 가족은 광산 구역에 있는 것처럼 눈빛을 교환했다. 잠시 후 서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능 선생을 모시고 북경에 갈 생각입니다. 다른 환자 수술을 하려고요. 출장 수술 말입니다.”
“문제없습니다. 저희가 영천에 모시지요.”
“그럼 좋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척붕양의 모습에 서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게 그가 바라는 것이었다.
북경 영천은 척가에서 친구 접대하는 데 쓰는 곳이었다. 대외적으로 영업하지는 않지만 서비스가 매우 좋은 곳으로 일반 호텔에 없는 특성이 있어서 능연에게 잘 어울리면서 깊은 인상을 남기리라 서은은 생각했다.
서은은 능연의 좋은 인상이 필요했다. 북경 6병원이든, 북경 자체든 말이다.
“그럼 환자분 푹 쉬도록 해주세요. 저는 먼저 갑니다.”
목표를 이룬 서은은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아래로 내려간 서은은 출장 수술 건을 매듭지으려고 능연을 찾았다.
이제 남아 있는 다른 병원 의사는 없었다. 서은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
‘이 정도 인내심으로 정상급 기술을 배우겠다고?’
“능 선생은요?”
“처치실이요.”
“고맙소.”
예의를 갖춰 곁에 있던 간호사에게 물은 서은은 대답을 얻어 내고는 느릿느릿 처치실로 향했다.
막 처치실로 들어간 서은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
처치실에 방 안 가득 검은 셔츠, 검은 바지, 검은 구두를 신은 젊은이가 가득했다.
소리를 들은 모든 이도 휙 고개를 돌려 사람 피부를 뚫을 것 같은 눈빛으로 서은을 바라봤다.
능연은 방 가운데에서 검은 셔츠, 검은 바지, 검은 구두 차림 젊은이의 팔뚝을 받치고 있었다.
능연은 살짝 고개를 들어 서은을 보고는 바로 환자의 엄지와 그 아래 손바닥 부분을 누르며 다른 손으로 환자의 검지, 중지, 무명지를 누르면서 서서히 잡아당겼다.
콜리스 골절 치료는 대부분 수법 복위를 채택한다. 의사들이 손으로 환자 골절 부위를 정상 체위까지 당기는 방법이었다.
검은 옷 청년은 아직 정신이 있는지 서은을 위아래로 살폈고 서은은 그를 마주 보지 못하고 뜨끔해서 고개를 숙였다. 외과 의사의 손이 얼마나 중요하냔 말이다. 싸움에서 이긴다고 해도 억울해서 울게 될 일인데.
서은이 고개를 숙이는 걸 본 검은 옷 청년은 재미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려 능연의 손놀림을 지켜봤다.
“능 선생님 시간 있으시면 구경하러 오세요. 꽤 재미있을 겁니다.”
“아.”
“안 됩니다! 능 선생, 안 돼요! 이런 일에 끼어들면 안 돼요!”
서은이 용기를 모두 쥐어짜 큰소리를 질렀고, 검은 옷 청년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연극 보러 오는 게 왜요?”
“여, 연극? 무슨 연극이요? 아니 그쪽은 왜 다친 거요?”
단숨에 우다다 내뱉는 서은의 말에 검은 옷 청년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연기하다가 넘어져서요.”
“어쩔 수 없었죠.”
“무대가 너무 미끄러웠어.”
“이번에 가면 연습실 좀 재정비하자고.”
검은 옷 청년들은 친구를 병원에 보내면서 반나절 학교에서 벗어난 학생들처럼 찬란하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서은은 어안이 벙벙한 듯 그들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