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439화 (420/877)

맹삼은 얼굴을 구기고 호텔로 돌아와 억지로 잠을 자려고 노력했지만, 어떻게 해도 잠이 들지 않았다.

북경으로 온 지 며칠인데 아직 능연을 만나지도 못했고 사과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계획에서 완전히 어긋난 일이었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가 잘못한 게 없었다.

능연은 응급실에서 일을 하거나 아니면 수술 준비, 수술 진행, 수술 결과 검사······ 곁에 늘 누군가 함께 있을 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기도 쉽지 않았다.

능연이 응급의학과에 있을 때도 조수가 곁에 있는데 수술실에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맹삼은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누군가 알아볼까 걱정이었다. 6 병원에서 참관 의사를 막진 않았지만, 능연에 대해 묻고 다닌다면 분명 경계할 것이다.

맹삼은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진 것 같았다. 혹은 이미 다 빠진 게 맞았다. 하나도 쓰지 못했는데 말이다. 맹삼은 도무지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더 버티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 호텔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기운 넘치던 능연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빈치 수면법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럴 리가, 잘생긴 사람한테나 효과 있으면 모를까. 거의 잠들려고 하던 참이라 맹삼의 머릿속이 의식의 흐름대로 흘렀다.

드르렁.

맹삼은 깜짝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꿈에 능연이 콜리스 골절 치료를 하면서 복위할 때 철컥 소리를 냈고, 척추 추나 마사지를 하면서 철컥 소리를 냈고, 목을 움직이면서 철컥 소리를 내는 바람에 맹삼은 자기 목에서 다 철컥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개꿈이야.”

맹삼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시간이 벌써 아침 7시였다. 즉, 꼬박 하루를 잠들었던 것이다.

그는 무심결에 머리를 눌렀다. 전에 주치의 시절에 이런 식으로 일을 자주 했었다. 수술 때문에 30시간 이상 일하고 돌아가 꼬박 하루 잠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극도로 지쳐있을 때였다.

요 며칠 당연히 그런 강도로 일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대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맨발로 바닥에 내려와 대충 세수를 하고 어제 입었던 옷을 갈아입고 바로 6 병원으로 달려갔다. 가는 내내 차가 막힌 것도 그렇고, 6 병원 입원 병실에 도착해보니 정상 출근 시간 9시가 훨씬 지나있어서 몰려든 환자만 봐도 짜증이 일었다.

순간 짜증스럽게 병원을 바라보던 맹삼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앞에 익숙한 그림자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맹삼은 그의 정면을 보지 않아도 상대가 상해시 골관절 센터 & 스포츠 의학 센터의 축 원사임을 알아봤다.

국내 스포츠의학 분야의 대가인 그분을 맹삼은 여러 번 만났었다. 축 원사 때문에 앞길이 막힌 적도 있고. 축 원사만 아니었다면 국내 스포츠의학 분야에서 자신의 위치가 훨씬 높으리라 맹삼은 자신했다.

물론 축 원사는 이제 나이가 들어 직접 수술은 말할 것도 없고 지도 수술조차 횟수가 줄었다. 그러나 유위신이 그 당시 아킬레스건 파열됐을 때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이 바로 축 원사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고, 축 원사는 새로운 수술 방식을 개발했고 능연을 발탁해서 수술하게 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수준이었다.

그에 비해서, 맹삼은 바로 다음 순위에 놓인 스포츠의학 전문가였지만 중간에서 잘리는 것이 너무 당연했다. 고객군은 다 같았고, 스포츠의학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백 위안하는 치료비를 낼 수 있을 것이고 몇 다리 건너서라도 어떻게든 축 원사와 연줄이 닿을 것이다.

가끔 맹삼은 밤에 축 원사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대로 영면에 들거나 혹은 무슨무슨 이유로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오늘 축 원사 일행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걸 본 맹삼의 뇌리에 지난 밤 악몽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목을 철컥 꺾던 능연의 모습 말이다.

맹삼은 힘껏 고개를 내저으며 정말로 악몽이 이뤄지지 않기를 바랐다.

생각은 생각이고, 맹삼도 오늘은 반드시 일을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뒤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왕안지가 직접 나서서 축 원사 일행을 맞이했다. 축동익도 자주 북경을 찾아서 왕안지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지금도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양손을 꼭 마주 쥐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친밀하게 굴었다.

“우리 능 선생이 여기 와서 왕 원장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하니 마침 나도 회의에 참석한 김에 와 봤지. 인사나 할 겸 말일세. 하하하.”

70 넘은 축동익은 여전히 기력이 짱짱했다.

왕안지도 호응하며 하하 웃었다.

“능 선생이 우리를 보살펴 주고 있지요. 솔직히 능 선생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젊은 서전이 이런 성과를 거두리라 믿지 않았다니까요. 물론, 만나서도 안 믿었지요. 너무 잘생겼잖아요. 하하하.”

“음. 우리 능 선생은 정말 잘생긴 게 오히려 의학적으로 흠이 될 수 있지.”

축동익은 더욱 호탕하게 웃었고, 서은도 곁에서 공손하게 서서 눈으로 능연을 힐끔거렸다.

그는 매우 지조 있는 사람이라서, 같은 시기에 한 사람에게만 아부했다. 게다가 축 원사가 대단하긴 해도 스포츠의학이 전공이라 서은이 추구하는 방향과 달랐다.

그러나 능연이 부럽기는 했다. 잘생기고 실력이 좋은 건 둘째치고 축동익 같은 사람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북경 스타일을 잘 알 수 있었고, 능연 같은 타지 의사는 출장 수술은 둘째치고 학술 교류로 와도 잘못하면 배척당할 수 있었다.

능연이 창서성에서 자주 출장 수술을 하는 건 운화병원이 받쳐주는 데다가 본인 기술이 좋아서 순조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북경에서는 운화병원 이름은 통하지 않았다. 북경 의사들에게 운화병원이나 성립이나 무신 시 1 병원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6 병원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라면 서은과 그의 스승 왕안지가 어떻게든 잘 돌볼 수 있겠지만, 6 병원 밖에서 능연이 만나는 의사가 그렇게 공손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바로 그런 때에 축동익이 온 것이다. 게다가 능연이 부른 게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이런 보살핌은 아무래도 너무 부러웠다.

“능연, 자네 오늘도 간암 수술할 텐가?”

“오늘 벌써 두 건 했습니다. 오후에 한 건 더 예정되어 있고요.”

“오늘 새벽입니다. 거의 어제라고 볼 수 있지요.”

왕안지가 웃으며 한마디 보충했다.

막 방으로 들어오던 맹삼은 부르르 떨었다. 두 건 더 해? 이게 무슨 속도야

축 원사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건 다 순조로웠나?”

“네.”

“그렇다면······ 흠, 내가 친구 하나를 불러서 수술을 같이 보고 싶은데 괜찮겠나?”

축동익이 바로 능연에게 물었고 능연은 안 될 게 뭐 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시간은 오후 3시입니다.”

“알았네.”

축 원사가 웃으며 대답하는 말에 현장에 있는 다른 의사들이 웅성거렸다. 원사가 소개하는 친구라니, 분명히 대단한 사람이리라.

왕안지는 계속 축동익 곁을 따르다가 엘리베이터에 탄 다음에야 지나가는 말인 듯 물었다.

“원사님, 어느 분을 모셔오실 건지요? 제가 알아 둬야 준비하기도 좋고요.”

“어제 회의할 때 지질 연구소 두 원사를 만났는데, 원발성 간암이라고 진단됐는데 수술하기 싫다고 하더군. 그래서 불러서 수술을 한 번 보여줄 생각이라네.”

축 원사가 담담히 대답했다.

환자를 불러다 수술을 보게 한다? 이런 방식은 왕안지처럼 의사 생활을 오래 한 의사에게도 드문 일이었다.

국내 의사는 보호자와 자세한 병세 이야기를 나누는 걸 선호하지, 환자가 놀라 죽을까 두려워서 본인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다. 수술 장면, 특히 환자 본인이 직접 겪게 될 수술 장면을 환자에게 보인다? 그건 더 안 될 말이었다.

왕안지는 난처함에 눈썹을 찌푸렸다.

“두 원사님 본인이 원발성 간암이라고요? 확진했습니까? 그런데 수술 보는 게 적합할까요?”

“두가랑 나는 나이가 비슷하다네. 그쪽이 두 살 많던가? 성격은 나보다 더 고집스러워서 수술을 보게 해준다고 하지 않으면 수술을 포기할 걸세.”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의료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한테 피투성이 수술 장면을 보게 한다니, 겁에 질릴 겁니다. 그리고 본인이 수술대에 누워있는 장면이라도 상상하게 된다면, 아이고 저라도 못 견딜 거 같은데요.”

정말로 환자가 수술을 보지 않기를 바라는 왕안지의 말이 길어졌다. 수술 봐서 좋을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자칫했다간 큰 골치가 될 수도 있었다.

솔직히 왕안지는 지금 능연이 부러웠다. 의사가 이름을 알리려면 전적이 필요했다. 어떤 수술을 몇 건 한 것도 전적이고, 누구누구 수술을 한 것도 전적이었다.

두 원사의 수술을 손에 넣고 싶긴 했다. 두 원사 수술을 6 병원에서 한다면 어떻게든 그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축동익은 능연이 그 수술을 하길 바라는 게 분명했고, 왕안지의 적극성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왕안지의 그런 마음을 잘 아는 축동익도 강요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일단 만나보고 이야기하세.”

“네. 그러지요.”

왕안지도 슬며시 웃었다. 그는 직접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원사라는 건 혹할 만한 타이틀이지만, 경화 6 병원과 지질 연구소는 그다지 교류도 없었다. 왕안지는 오후에 회의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병원을 나섰다.

오후에 축동익은 과연 두 원사를 데리고 병원으로 왔다.

왕안지는 전화를 통해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필이면 오후에 학회가 있어서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회의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왕안지 정도 되는 의사라면 참석할 학회를 갑자기 찾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축동익은 실눈을 뜨고 빙긋이 웃으면서 몇 마디 건네곤 전화를 끊었다.

운리 제약회사 맥순이 웃는 얼굴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축 원사님 좀 짓궂으시네요.”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축동익도 젊고 예쁘장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기뻤다.

운리 구조조정 후 순조롭게 승승장구하던 맥순은 자신감도 커져서 대담하게 말을 이었다.

“축 원사님, 이건 누가 봐도 장난이시잖아요. 오늘 병원에 원사님이 이렇게 많이 오시는데요. 왕 원장이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든 인사하러 왔을걸요? 통화하실 때 왜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맥순은 마지막 말로 축 원사가 잘난 체를 할 기회를 주었고, 축 원사도 받아들이고 빙긋이 웃었다.

“왕 원장이 묻지도 않았는데 뭘.”

“아이고, 제 말이요. 원사님 진짜 짓궂으세요.”

맥순이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에 축 원사가 더욱 신이 나서 껄껄 웃었다. 한 열 살은 젊어진 것처럼 얼굴에 주름도 많이 사라졌다.

“그 정도는 알아서 생각했어야지. 두가 같이 좋은 사람이 병이 들었는데 치료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냥 둘 수 있어야지. 그런데 수술 구경을 하고 싶다는데 내가 나서야지 어째. 어쨌든 여긴 왕 원장 구역이니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많을 걸세.”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축 원사의 핸드폰이 바로 울렸다.

“거 보게.”

축 원사가 흡족한 듯 맥순 쪽으로 핸드폰을 흔들었다.

“다 귀가 있다니까.”

“원사님 대단하세요!”

맥순이 바로 엄지를 치켜들었고 주변 의사들은 익숙한 듯 덤덤하게 바라봤다.

머지않아 왕안지가 허둥지둥 달려와서는 축 원사를 보자 반쯤 농담인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축 원사님 정말 이러시깁니까. 하실 말씀 있으면 바로 하시면 되지, 제가 안 들을까 봐요.”

“내가 유머 감각이 있어서 그러네. 공정원에서는 다들 이런 내 성격을 알지.”

왕안지는 이게 무슨 유머 감각이냐고 생각하며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축 원사가 공정원 이름까지 들고나오니 왕안지는 더는 반항할 여력이 없었다. 공정원 원사가 된다는 건 의사로서 최고 명예였고 왕안지는 그런 사람들을 존중해야만 했다. 왕안지는 더는 축 원사와 옥신각신할 엄두가 나지 않아 바로 물었다.

“두 원사님이 어느 분이신가요?”

“내가 불러주지. 어이, 두 원사!”

축동익은 이리저리 목을 빼고 한참을 찾다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안색이 심각한 둥근 얼굴 노인네가 뒤에서 걸어 나왔다.

“여기 있네.”

“아이고, 간암에 걸리니까 알아보지도 못하겠구만.”

“잔인하지.”

“됐네. 인사 나누게. 여기 6 병원 왕 원장. 두 원사가 사람은 좋은데 고집이 좀 세다네.”

축동익이 고개를 돌리고는 하는 말에 왕안지가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허리를 굽혔다.

“왕안지라고 합니다. 부원장이고요.”

“안녕하시오. 폐를 끼치게 됐소.”

얼굴이 둥근 두 원사는 길게 대화를 나눌 마음이 없어 보였다.

“폐까지는 아니지만, 골치는 조금 아프게 됐습니다. 두 원사님, 수술 결과가 걱정되어서 수술 참관하시려는 건가요? 사실 지금 수술 기술은 매우 발전했습니다. 게다가······.”

“누가 능연인가?”

두 원사는 계속 들을 생각이 없음이 분명했다.

“불렀으니 곧 올 걸세.”

축동익의 말이 끝나자마자 앞쪽이 소란스러워졌고 서은이 의외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왔나 봅니다.”

곧 능연이 간호사들에게 둘러싸여서 회의실에 나타났다.

“아, 어쩐지.”

시력은 좋은 편인 두 원사는 멀찌감치 능연의 얼굴을 똑똑히 봤다.

“축 원사님, 왕 원장님, 서 선생님.”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점호를 부르듯 인사하며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예의를 갖췄다.

“여기, 두 원사라네.”

“능 선생, 자네가 내 간암 수술을 한다면 내가 몇 년이나 더 살겠나?”

축동익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두 원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능연은 바짝 곤두선 모습으로 사람 잡아먹을 듯 구는 두 원사가 조금 이상한 듯 입을 열었다.

“원발성 간암에 전이가 없으면 4, 5년 더 살 확률이 높습니다.”

환자한테 함부로 이야기했다가 나중에 환자나 보호자가 찾아올까 봐 두려워하는 다른 의사와 달리 능연은 언제나 자신의 판단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편이었다. 말릴 틈도 없던 축동익이 곁에서 헛기침했다.

두 원사는 멍해졌다. 전에도 의사에게 자문을 구했었지만, 이렇게 단호하게 긍정적 결과를 내놓은 의사는 하나도 없었다.

축동익을 힐끔 본 두 원사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남다르군.”

“그렇다니까.”

축동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 더 묻겠네. 능연 선생이 특수한 간암 수술 항목을 전개했다던데, 그걸로 내 수술을 하면 자네 수술에 도움이 되겠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능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이런 늙은이의 몸이라도 남은 힘을 발휘할 수 있길 바란다는 말일세. 내 수술로 자네 항목에 도움이 되고 의학 발전에 작은 공헌이라도 한다면 죽는대도 아깝지 않을 걸세. 생로병사는 제왕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 말에 축 원사와 왕 원장은 저도 모르게 침묵에 잠겼고, 맥순은 눈시울까지 붉혔다.

주변의 심각한 분위기를 느낀 능연은 이상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살아남으시면 항목에 더 도움이 됩니다만.”

눈물을 흘리던 맥순은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었다. 눈물은 계속해서 나오는 게 아니란 말이다.

“일단 수술 보세.”

축동익은 혼란스러운 틈에 두 원사를 참관실로 이끌었다.

경화 6 병원 의사 몇은 왕 원장을 힐끔 보고는 그가 말이 없자 그들도 못 본 척했다.

현장에 원사가 6명이나 있었고 평소에 발끝에도 닿지 못하는 인물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들이닥치니 왕안지는 내심 뜨끔한 상태였다.

“능연, 조수더러 먼저 준비하라고 하고 우리랑 같이 참관실 구경하세. 아직 참관실이 어떤지 못 봤지?”

축 원사가 자연스럽게 능연을 당겼다. 모처럼 원사가 이렇게 많이 모였고 그중에 의학계에 영향 있는 북경 토박이도 있으니 능연을 그대로 인사만 하고 가게 둘 수 없었다.

“그저께 새벽에 시간이 나길래 참관실 둘러봤습니다.”

능연은 별생각 없이 축동익을 따르며 그렇게 말했고, 어리석은 녀석이 너무 협조를 안 한다는 생각에 축동익이 눈을 슬쩍 흘겼다.

그러자 왕 원장이 웃는 얼굴로 분위기를 풀며 나섰다.

“둘러보니 어떻던가?”

“좋더라고요. 동기화 영상 시스템 좋았습니다.”

“그렇지? 내가 애쓴 시스템이라네. 수십 미터 밖에서 수술을 보면서 똑똑히 볼 수 있어야지 말이야.”

능연이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자 왕 원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능연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고, 곁에 있던 맥순은 묵묵히 능연의 말을 기록했다.

일행은 느릿느릿 참관실로 향했고 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짝지어 대화하다 보니 긴 줄로 늘어서서 가게 되었다.

맹삼은 뻔뻔하게 뒤에 서서 따랐다. 그는 지금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능연과 단독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지금 같은 장면에 나타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원사가 뒤에 있다니, 맹삼의 나이와 경력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맹삼이 그 당시 축동익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면, 어쩌면 공립 병원을 떠날 일도 없었으리라. 뒤에 누군가가 있다면 어리석게 진료과 신설 경비를 요구하느라 다급하게 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 안 되면 병원을 떠나 다른 공립 병원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축동익 같은 나이 많은 의학 원사는 상해 북경 두 곳에서 영향력이 대단하니까.

원사 무리 뒤를 따르고 있자니, 맹삼은 어서 척옥천과 관련된 일을 해결할 수 있길 바라면서도 능연이 원사를 뒤에 세우고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할까 봐 걱정도 되었다.

세상 이치를 잘 아는 원사 무리와 기세등등한 광산 주인 중에 맹삼은 그래도 일단은 원사들을 선택했다.

철컥.

앞에서 걷던 의사들이 참관실 문을 열었다.

“나는 의사가 아닌데 수술을 봐도 되나?”

그제서야 두 원사가 망설이며 물었다.

“괜찮다네.”

축 원사는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하고는 두 원사의 표정을 살피며 껄껄 웃었다.

“들어가 보면 안다네. 환자 얼굴은 시트로 가려졌고, 몸도 마찬가질세. 절개할 부분만 드러낸다네. 이론적으로 자네는 수술 부위만 보게 되는 거지. 그리고 또 하나, 참관실 달린 수술실에서 수술하는 것도 환자와 보호자한테 설명하고 동의받았네. 서명도 했고.”

“온몸을 가린다고?”

“음. 수술하는 동안에 우리는 질환 자체에 집중해야 하니까. 일반적으로 시트 까는 방법이나 의사들의 서는 위치 모두 의사들 평소 습관에 따라 달라지네. 서로 다른 환자의 질환을 같은 방식으로 노출해서 의사들이 수술할 때마다 유사한 구역을 보게 되는 거지. 이게 길어질수록 자네가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것처럼 모니터 안에서 발생하는 이상 현상을 민감하게 발견하는 거지.”

축동익은 두 원사가 알아들으리라 생각하면서 설명했고 두 원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축동익을 따라 참관실로 들어갔다.

거대한 통유리창을 통해 수술실에서 바삐 움직이는 조수와 간호사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환자의 머리 부분이 들려 있었고, 위엔 시트가 덮여 있었다. 목 아래는 녹색 시트로 완전히 덮여 있었고 온몸을 통틀어 수술 부위인 허리 부분만 작게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두 원사는 애써 침착하게 아래를 바라보며 입을 우물거렸다.

“사람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군.”

비의학적이었지만 매우 정확한 설명이었다.

축동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학도, 의학윤리도 발전 중이니까.”

“음.”

두 원사는 한마디 대꾸하고는 더는 소리를 내지 않은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축동익도 말을 더 걸지 않고 그가 침착해질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원사 몇 명도 안으로 안내하고는 능연을 붙들고 수술 과정을 설명하면서 원사들과 인사를 주고받게 했다.

능연은 사교 생활을 싫어했지만, 의학 토론에 대해서는 반감이 없어서 다음에 환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는 게 싫지는 않았다. 그는 유리 앞에서 서 있는 두 원사를 향해 수술 과정을 설명했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말투로 간단하고 핵심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말에 원사들은 매우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두 원사는 특히나 집중해서 능연을 심사했다.

심사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두 원사는 수술을 능연 같은 젊은이에게 맡긴다면 안심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축 원사는 더욱 흡족했고 경계하는 눈으로 다른 원사 몇 명을 힐끔 봤다. 특히 의료 계통에 있는 원사를 보는 표정이 마치 ‘보는 건 괜찮지만, 만지지 마.’라는 것 같았다.

맹삼이 앉아 있는 참관실 구석에서는 수술실 장면을 직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전방에 걸린 FULL HD 시스템으로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사실상 수술 디테일을 보려면 모니터를 보는 게 낫다. 하지만 의사 상태나 수술실 의료팀의 협조 상황을 보려면 참관실에서 지켜보는 게 더 낫다.

철컥하고 참관실 문이 다시 열렸고, 하얀 옷을 입은 전칠이 들어왔다.

그는 의사들의 사적인 공간을 침범한 것에 대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문 앞에 서서 심사하는 눈빛으로 모두를 훑어본 후 능연을 발견하고서야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능 선생님, 수술 시간 됐어요. 저랑 같이 가요.”

전칠이 맑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손을 까딱이자 손목 시계가 등불 아래 찬란하게 빛났다.

뒤에 앉은 맹삼은 단번에 오데마피게 시계에 보석이 가득 박히기까지 한 걸 알아봤다. 맹삼은 눈을 비볐다. 상대의 옷을 살피고는 대체 무슨 대단한 메이커인지 모르겠는데 각이 바짝 잡혀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전칠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리 없었고 능연을 향해서만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

“수술실 동영상 시스템 소개하러 왔는데, 능 선생님도 설명 들을래요?”

“응? 제약회사에 들어갔어요?”

능연이 놀라서 묻자 전칠은 능연을 놀라게 했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제약회사 하나 샀어요.”

“아아, 회사 경영하는 것도 재미있죠.”

“전 재미있는 부분만 하면 돼요. 우리가 지금 하는 동영상 시스템 재미있는데, 운화병원 수술실에도 하나 달아 드릴까요? 곽 주임님이 참관실 달린 수술실로 개조할 생각이래요. 마침 끝나가니까 그 김에 하죠.”

“벌써 다 됐다고요? 그렇게 빨리?”

“그럼요. 곽 주임님이 능 선생 없을 때 빨리 하드웨어 작업 끝내자고 하셨거든요. 동영상 시스템도 하드웨어 작업이죠?”

“그렇죠. 그런데 곽 주임님이 결정하셔야 할걸요.”

“곽 주임님이야 당연히 좋다고 하시죠. 우리 동영상 시스템 유명하다고요. 음, 할인해 드릴게요. 시범 수술 자주 하니까 동영상 시스템 홍보도 될 거고, 그렇게 되면 리포트 쓰기도 쉽겠네요.”

전칠은 턱을 문지르며 생각하면서 능연을 따라 움직였다. 하반신은 능연을 따라잡으려고 재빨리 움직였지만, 상반신은 여전히 매너 훈련을 받은 안정적인 모습이라 멀리서 봐도 기세가 대단했다.

능연은 어떻게 봐도 멋졌다.

두 사람이 복도를 지나 다시 수술 구역에 진입하자, 쟁이나 꽹과리 없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수술 구역 문 앞에서 전칠은 걸음을 멈추고 팔을 치켜들고는 작은 주먹을 꾹 쥐었다.

“힘내요!”

“네.”

능연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전칠은 문 앞에 잠시 서서 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온 몇십 초를 회상하고는 신이 나서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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