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441화 (422/877)

능연은 목욕하고 온몸에 걸친 옷을 몽땅 갈아입고 수술실에서 나왔다.

그로서는 난도 높은 수술에 대한 존중 표시였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두 원사는 능연을 보자마자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건지 물었다.

“아니요.”

능연은 여전히 단호하게 대답했고 축동익은 눈꺼풀이 다 튀었다. 의사가 질문에 대답을 이토록 통쾌하게 하다니, 정말 어려도 너무 어렸다. 직접 가르치기도 뭐해서 바로 좌자전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장안민 선생하고 같이 보호자와 이야기하러 갔습니다.”

능연은 본인이 가족들과 교류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장안민은 수술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 문외한인 가족들에게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좌자전한테 전화 좀 하겠네.”

축동익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직접 일일이 능연을 따라붙을 순 없지만, 좌자전은 가능했다.

전화가 연결되기도 전에 두 원사는 벌써 능연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능 선생, 수술하면 10년은 더 살 수 있다는 게 진짜인가?”

“10년 안에 같은 암으로 죽지는 않을 겁니다. 높은 확률로요.”

능연은 마스터급 간 절제 기술이 있고, 가상 인간이 있고, 그랜드마스터급 림프 절제 기술이 있으니 지극히 높은 확률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환자 개인의 생존 시간은 다른 증상도 봐야 한다지만, 능연의 기술로는 간암 외과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원사는 뚫어져라 능연을 바라봤다.

“농담 아니고?”

능연이 고개를 흔들자 두 원사가 갑자기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나도 5년이든 10년이든 연연하는 건 아닐세. 물론 10년 살 수 있으면 좋지. 그래도 나는 2년 정도만 더 살면 좋겠다네. 지금 하는 일만 끝낼 수 있으면 그럼 돼.”

능연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능 선생, 휴가 때 가서 내 보물 구경해보게나. 광석을 적잖게 모았거든. 어떤 건 꺼내 놓으면 정말 휘황찬란하다고.”

두 원사가 눈을 깜짝이며 웃었다.

“저는 휴가가 없습니다.”

“휴가가 없어?”

담담하게 말하는 능연의 모습에 두 원사가 멈칫했다가 곁에서 막 통화를 마친 축 원사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축 원사 자네, 사람을 이렇게 부려 먹는지 몰랐네.”

“나랑 상관없는 일일세. 능연은 자네처럼 일 중독이야. 휴가를 쓰라고 해도 안 갈걸? 게다가 능연은 운화병원 사람이라네.”

마지막 말을 하는 축 원사는 더욱 언짢아졌다.

두 원사는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능 선생, 그럼 나랑 같이 하루 보내고 휴가인 셈 치게. 만날 수술만 하다가는 에너지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살도 찔걸? 자네가 살이 찌는 건 너무 아쉽잖아.”

그 말에 축동익은 흥미가 생긴 듯 정형외과 의사의 눈으로 위아래 능연을 살폈다. 그리고 한참 만에 한숨을 내쉬었다.

“됐네. 아무리 봐도 잘생기기만 한걸.”

“아니 축 원사, 딴지 걸지 말고. 수술 전에 능 선생한테 내 보물 보여주면서 지리학 얘기하고 싶다는데, 그렇게 심한 일인가?”

“아니 이 사람 참.”

축동익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능연이 얼마나 바쁜지 너무 잘 알았다. 능연은 하루에 기본적으로 수술 세 건을 하고 많을 때는 아홉 건까지 한다. 수술 한 번 하자고 환자의 바람을 다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대놓고 두 원사를 거절할 수 없어서 직접 결정하라는 듯 능연을 바라봤다.

그러나 두 원사는 능연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가로챘다.

“아무리 그래도 나도 원사 아닌가. 예전에 티베트 지역에서 광산 탐사를 하면서 몇 달이나 집에 안 간 적도 있어. 마누라가 애 둘을 데리고 이웃의 도움으로 생활했고, 애들은 사고 쳐서 이웃 아이들한테 두들겨 맞았지. 내가 얼마나 사과하고 다녔는지 모른다네.”

축동익이 한숨을 내쉬었지만, 두 원사는 말을 멈추지 않고 멀리 바라보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별별 일을 다 했지. 방사선 마셔야 하는 일은 다들 꺼렸는데, 나는 앞장서서 했어. 설산도 갔지. 타히티도 갔어. 거얼무 탐사도 나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어. 또 한 번은 우리 팀원이 두 명이나 죽었지. 다들 오래된 동료였는데······.”

“두 원사, 다 옛일 아닌가.”

축 원사가 못 들어주겠다는 듯 말을 끊었다.

“과거라니! 다 나의 공적일세! 이유도 모르고 수술대에서 죽기는 싫다네! 나도 알아, 능 선생이 얼마나 실력이 대단한지 나도 안다고. 능 선생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도. 하지만 내가 이런 특권을 누릴 자격도 없단 말인가? 단 하루도?”

“알겠습니다.”

능연은 담담하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다고? 알겠어?!”

두 원사는 어리둥절해졌다가 홍조를 띠고는 가볍게 콜록콜록 기침했다. 그러고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긴장된 목을 풀어주고는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요즘 시대 젊은이는 늙은이랑 달리 마음 씀씀이가 좋을 줄 알았어!”

축 원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표정으로 두 원사를 바라봤다. 그를 우습게 보는 건 아니었고, 생각이 많아져서였다.

병이라는 건 매우 개인적인 일이었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사적인 경험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당당한 사람도 병에 걸려 목숨이 다해가는 순간에는 담담함을 유지하기 힘든 법이다.

“어디로 갑니까?”

능연의 질문이 축 원사의 생각을 멈췄다.

“지금 간다고?”

두 원사 본인조차 너무 갑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뒤에 아까 환자가 깨어난 다음 문제없으면 가도 됩니다.”

“좋아, 좋아. 그럼 전화 한 통 하겠네.”

두 원사는 무슨 생각지도 않은 대단한 이득이라도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좌자전이 그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고 그 뒤를 전칠이 따랐다. 전칠이 따랐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객잔(客棧) 일꾼이 길을 안내하는 모습이었다.

좌자전은 그마저도 기꺼웠다. 전에 위생병원에 있을 때는 고작 아우디를 타고 와도 조심스럽게 모셔야 했는데, 지금은 헬리콥터를 타고 오는 사람을 극진히 모시니 자기 가치도 올라간 거 같아서 흡족했다.

전칠은 하얀 치마를 입고서 두 원사를 지나 능연 앞에 서서 능연에게 인사했다. 능연은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칠은 살짝 고개를 숙여 흔들리는 자신의 치맛자락이 능연의 다리에 닿는 걸 보고는 얼굴을 붉게 붉혔다.

양고기 골목 입구, 하얀 아치 철문 위에 ‘지질 전당 보석 거리’라고 쓰여있었다.

대충 쓴 글씨에 낙관도 없어 주목할 만한 점이 없는 간판이었다.

사람들은 전혀 글씨가 보이지 않는 듯,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철문 아래를 오갔다.

두 원사는 기다렸다는 듯 롤스로이스 뒷문을 열고 거리 안쪽을 멀리 바라봤다.

이곳에 그의 청춘, 소년의 의기, 중국에 대한 기대, 순탄하길 기대했던 인생이 담겨 있었다.

양고기 골목이라는 이름이 우아하진 않지만, 중국 지질 탐사인에게는 조국의 천하를 가르는 핵심 좌표였다.

두 원사는 지금도 초짜 시절 처음으로 양고기 골목에 왔을 때 기억이 생생했다.

두 원사는 저도 모르게 깊은숨을 들이쉬었고, 아름답고, 익숙하고, 기억에 남은······.

콜록콜록콜록.

마침 지나가던 자동차가 그에게 매연을 내뿜었다.

롤스로이스에서 내리기 아쉬워하던 좌자전이 조수석에서 그 모습을 보고 저절로 고개를 저었다.

“참 희한한 원사님이시네.”

능연과 전칠은 차에서 내린 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양고기 골목이라는 이름 자체가 옛 북경 냄새가 풍겼다. 푸른 벽돌에 오래된 회나무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길가에 작은 가게의 떠들썩함도 여전했다.

가까운 곳에 있던 행인과 가게 사람들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롤스로이스를 살폈다. 보석 거리에 나타난 롤스로이스 팬텀은 미묘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지질부 후문이 예전엔 여기 있었지. 앞에 지질 전당도 있어. 전에는 영화도 자주 틀어 줬지.”

두 원사가 다가가 추억에 잠긴 모습으로 주변을 소개했다.

“보석 거래 중심지가 바로 앞에 있었어. 비싼 보석 거래가 여기서 이뤄져서 자주 구경하러 왔었지.”

능연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수다에 대한 용납도도 떨어졌지만, 두 원사가 환자라는 걸 고려하고 지금 상태가 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의 하소연을 어느 정도 더 들어 줄 수 있었다.

“전에 여기에 가게를 샀지. 나중에 보석 가게를 열고 큰 손자한테 맡겼어. 안에 창고 절반이 그 녀석이 사 온 물건을 담는 곳이고 나머지는 내 보물이라네. 지질 소장품은 다른 소장품보다 간단해. 다 돌 같은 거라 환경에 영향을 덜 받아서 조금만 개조하면 잘 보관할 수 있거든.”

“북경에 가게도 있으신 분이셨습니까?”

좌자전이 쉬익 소리를 내며 물었다.

“전에 소장했던 걸 좀 팔아서 샀지. 놓을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마누라는 청춘을 바쳐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은 다 컸고, 손자는 우리 손자일 뿐만 아니라 아이의 아이니까 어쩔 수 없지. 지질학은 괴롭고 힘들어. 달콤함은 적고 괴로움이 크지.”

두 원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좌자전도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자식이라면 의대에 보낼지 고민하겠지만, 손자는 아까울 것 같았다. 물론, 손자가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정말로 손자가 있는 두 원사는 턱을 치켜들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 큰 손자는 말이야, 소장하는 데 재능이 있는 거 같아. 물건도 볼 줄 알고. 가끔 시장에 흘러들어오는 걸 잘 골라온다니까. 다들 혹시 생각 있으면 그 녀석더러 몇 개 사오라고 하겠네.”

“아이고 일은 힘드셨어도 이제 돈 생각하면 전혀 안 힘드시겠어요. 전에 수집한 것들은 이제 꽤 돈이 되지요? 전에는 수집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면서요. 그럼 어르신이 크게 이득 보셨겠습니다.”

“우표 수집 같은 건 있었지. 지질 소장품은 최근 몇 년에야 가치가 생겼어. 그래도 아직은 보석이지. 순수한 돌은 그다지 인기가 없어.”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제법 떠들썩했다. 능연과 전칠은 모두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다.

능연은 휘황찬란한 점포보다 오래된 건물에 더 눈길이 가서 오래 시선을 두었다. 오랜만에 능연과 놀러 나온 전칠은 주변 환경이 문제가 아니었다.

롤스로이스 뒤를 따르던 아우디 S도 멈춰 섰고, 문이 열리자 세 사람이 내렸다. 몸매 좋은 중년 남자 둘, 그리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하나였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전칠과 거리를 두고 가까이 가지도 인사도 하지 않고 묵묵히 서 있었다.

두 원사는 힐끔 보고는 바로 잊어버렸다. 내일 수술할 사람이라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갑시다. 내 가게에 가자고. 가서 내 소장품 보여줄게.”

두 원사는 흥미진진한 듯 능연을 끌고 그의 가게로 들어가 퉁퉁한 큰 손자를 소개하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줄 지어선 책장에 두 원사의 소장품이 놓여 있었다.

문 근처에 있어서 바로 보이는 자연산 금덩이가 가장 눈에 띄었다.

“문원에 어슬렁어슬렁 갔다가 주운 걸세.”

두 원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설명했지만, 좌자전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슬렁거리면서 금을 줍는다고요?”

“자네는 안 되지. 우리는 그때 광산을 찾다가 한 지역 끝나면 몇 주는 쉬었거든. 나이 든 사람들은 다 집에 갔는데, 나는 아직 젊을 때라, 문원에 금이 있다는 걸 알아서 친구 몇 데리고 포부를 품고 그쪽으로 갔지.”

퉁퉁한 손자는 할아버지와 함께 온 사람들이 누구지 잘 알았다. 그는 최대한 전칠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고 능연은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이 금덩이 반으로 할머니 금반지를 만드셨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 아버지 주신다고 여기 두었죠.”

“아, 그런데 왜 안 쓰셨어요?”

“아버지도 직접 찾아내셨거든요.”

“우아, 문원이 아주 원사님 집안 광산이 됐군요.”

“걔는 두 달이나 걸려서 겨우 콩만 한 금을 찾았지. 반지가 얼마나 얇은지, 그게 무슨 금반지라고. 드러난 금도 잘 못 찾고 아무튼 그 녀석은······.”

두 원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할아버지!”

“자자, 토파즈 보여주지.”

퉁퉁한 손자가 고함치자 두 원사는 아들 험담을 접고 능연을 끌고 들어갔다.

“토파즈는 사파이어랑 비슷하다네. 대체품으로 좋지. 내몽골에서 파온 것도 있고 강서에서 파온 것도 있지. 친구가 브라질에서 보내준 것도 있고. 일하러 갔을 때 만난 친구인데, 선물도 받았고, 판 것도 있고.”

두 원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책장 앞에 서서 검은 상자 하나를 열어 안에서 투명한 보석을 꺼내 보였다. 엄지만 한 크기가 등 아래 제법 아름답게 빛났다.

사람들 뒤에 서 있던 회색 머리 노인이 성큼성큼 다가가 능연과 전칠을 뒤로 막아섰고, 좌자전은 맨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파이어라는 말에 흥분한 그의 눈빛이 원사의 손자 나이쯤 된 아이처럼 반짝였다.

“한 번 보게나.”

두 원사는 손톱만 한 토파즈를 얇은 천에 싸서 좌자전의 손에 올렸다.

좌자전은 보석을 손가락을 쥐고 등불에 대고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바라봤다.

“딱 파냈을 때, 반감기 100일이었지.”

두 원사가 웃으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멈칫해서 손을 달달 떨었다.

“반감기라는 말씀은······. 방사능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여기 토파즈는 거의 일 년에서 이 년은 된 거라 이제 방사능이 거의 없어서 몸에 영향이 없다네.”

좌자전은 간암 환자인 두 원사의 장담에 아무런 자신감도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 석탄은 내가 내몽골에 있을 때 손수 파낸 거라네. 어릴 때 교과서에서 중국은 석탄 대국이라고 배웠지? 예전엔 석탄 주요 산지가 산서였지만, 지금은 내몽고도 큰 산지라네. 게다가 얕고 보존량이 많지. 석탄밭도 크게 있어서 중국의 커다란 에너지 자원이라네.”

“이건 내가 구한 게 아니라, 스승님이 선물하신 거라네. 대야 철광에서 나온 광석인데 영국 사람이 발견한 거지. 중국 첫 철광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 참 우습지, 중국의 철광 부족이 중국 지질 발전을 촉진하게 되다니 말이야. 장건(張謇: 청나라 말기 정치가, 교육가)이 면철(棉鐵) 정책을 제안했을 때는 언젠가 강철 생산량이 최고가 되고 중국 방직물이 전 세계에서 다 쓰지 못할 정도로 많이 생산되리라 상상도 못 했을 테니 말이야.”

“이건 변질암(岩)이라네. 가치 없는 물건이지. 안에도 아무것도 없어. 하하. 처음엔 스몰트광인 줄 알았어. 그런데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나중에 내 사형이 나를 지지해줘서 마지막 인원을 보내서 겨우 찾아냈지.”

사람들은 두 원사의 뒤를 따르며 소장품 소개를 들었다. 소수 가치 있는 보석을 제외하고는 소장품은 대부분 평범했으나 두 원사 본인에게는 의미가 큰 것 같았다.

‘코발트’ ‘스몰트 광’이라는 단어는 더욱 좌자전의 골치를 아프게 했고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었다.

“두 원사님, 어디 아프신 거 같아. 창고 안에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고.”

좌자전은 못 견디겠다는 듯 능연의 귓가에 속삭였고, 능연은 그런 좌자전을 힐끔 봤다.

“우리는 의사입니다. 두 원사님 병세는 확진했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에휴, 됐다. 님하고 무슨 말을 하겠어.”

말문이 막힌 좌자전은 입을 다물었고, 그런 모습을 본 능연은 더는 캐묻지 않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전칠은 더욱 좌자전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았다. 살짝 어두컴컴한 방에서 능연 뒤를 따라 걷고 있었으며, 사방은 넓고 조용하고 또 예쁜 보석까지 있는 곳이라 기뻐하기도 부족한데 누가 뭐라고 하든 아예 한 귀로 듣고 흘리는 상태였다.

오히려 두 원사의 퉁퉁한 큰 손자가 좌자전의 말에 심히 언짢아져서 두 번이나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세 번째 뒤돌아봤을 때, 그는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좌자전만 들리게 입을 열었다.

“좌 선생님, 이건 우리 할아버지 마지막 소원입니다. 노인 존중 좀 하면 안 되겠습니까?”

“마지막 소원이라니. 할아버지는 내일 수술하러 가는 거지 형장에 가는 게 아니라고.”

“말씀 좀 가려 하세요.”

손자는 거의 폭발 직전이었다. 나이가 비슷한 상대였다면 ‘내 말이 뭐?’하면서 대꾸해서 순식간에 큰 싸움이라도 날 상황이었다.

그러나 좌자전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고, 머릿속에 대화를 한참 나눈 후 중간 부분을 제거하고 바로 대답했다.

“할아버지 암은 치료 가능합니다. 4, 5년 정도는 우습게 사실 거고, 잘하면 10년도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마지막 소원 이야기는 너무 이른 거 아닙니까?”

퉁퉁한 손자는 말문이 막혔다. 할아버지가 그렇게까지 오래 사는 건 그도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암의 위력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암에 걸려서 못 버틴 사람이 주변에 여럿 있었다. 간암의 위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할아버지 역시 수많은 병원을 전전했고, 6 병원까지 가게 된 것도 다 불가피해서였다. 축 원사가 장담한 게 아니었다면, 두씨 가문에서는 6 병원을 아예 고려하지조차 않았으리라.

“의사라고 다 같은 의사가 아니고 환자라고 다 같은 환자가 아닙니다.”

좌자전은 손자 곁으로 조금 다가가서 말을 이었다.

“두 원사님은 원발성 간암이라 암 자체가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닙니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게 심각해서 그렇지. 어쨌든 다른 사람은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수술할 엄두를 못 낸대도 우리 능 선생은 달라요. 이 방면에 기술이 뛰어나거든요. 내일 원사님 수술 끝나고 나면 상황이 명확해질 겁니다. 좋아질 가능성이 매우 커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아요.”

손자는 멍해졌다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소장품 보신다고 하셨는데요. 그리고 여러분도 불러온 거고.”

“그건 할아버지 생각이죠. 사람이 안 죽는 건 불가능하지만, 할아버지 나이만 봐도 아직 7, 8년, 못 해도 3, 4년은 더 있다가 그런 일 생각해도 됩니다. 아닌가요? 병이 났다고 다들 두 원사님처럼 이렇게 의사를 데려다가 자기 소장품 보여줘 봐요. 우리가 어떻게 일을 하겠어요? 안 그래요?”

“미, 미안합니다.”

퉁퉁한 손자가 입가를 덜덜 떨며 사과했다.

“그거 봐요. 다들 지식인인데 말로 잘하면 되지. 뭐하러 아까처럼 화를 냅니까.”

좌자전의 말에 손자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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