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한생! 동한생!”
좌자전이 동한생을 부르면서 사람들을 비집고 나왔다.
하구 진료소에서 손바닥 비비던 때 동한생을 본 적 있고, 그에게 마사지를 받은 적 있어서 이 동자승에 대한 인상이 좋은 편이었다.
좌자전을 본 동한생도 친밀감을 느끼며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은 편에 앉은 열 명쯤 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앞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절에 찾아오세요.”
“동한생, 뭐 하고 있었니?”
좌자전은 동전이 꽂힌 자수정을 보며 눈꺼풀이 파르르 튀었다.
“여러분이 이런저런 의문이 있다고 해서 제가 아는 건 대답하고, 모르는 건 나중에 사부님한테 물어보려고 적어 두었습니다.”
“사부님이 얼마나 멀리 계신데, 그래. 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이분들이 여기 계시겠니.”
좌전이 헛웃음 짓자 동한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사부님, 저랑 약속하셨어요. 매일 밤에 화상 통화 하면서 그날 공부 봐주시기로요.”
“화상 통화? 시간 약속해서? 사부님 절에서 매우 바쁘시다면서.”
“사부님은 바쁘긴 하죠. 아침마다 채소 심고 단련도 하고 제 아침 숙제도 봐주셔야 하고 아침 만들어서 먹고 난 다음에는 절 청소하고 점심 만들고······. 저녁 식사 후에는 신문도 보셔야 하고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치질약도 바르셔야 하고, 그리고, 그러고 난 다음에야 시간 나시겠네요.”
동한생은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진지하게 셌다.
처음에는 그래도 진지하게 듣던 좌자전은 뒤로 갈수록 안색이 굳었다. 나이 든 스님이 매일 치질약을 대량사용할 걸 생각하던 좌자전은 갑자기 치질약도 회원 카드가 있다면 스님은 플래티넘 등급이리라 생각했다.
“됐다. 같이 가자꾸나.”
좌자전은 아들의 손을 잡은 것처럼 동한생을 잡고 걸었고, 동한생도 온순하게 그를 따랐다. 동냥 밥을 먹고 자란 만큼, 태생이 남의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그런데 곁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아쉬운 듯 다급하게 달라붙었다.
“동 사부, 정말 간다고? 내일도 올 거야?”
“내일은 수업하러 가야 합니다.”
“아이고 아쉬워라. 이야기 참 재미있는데 말이야.”
아주머니 하나가 고개를 흔드는 모습에 곁에 있던 노인이 헛기침했다.
“동 사부, 북경에 혼자 계십니까? 아니면 어느 절에 계십니까?”
“저는 불교원에서 연수해서 학원 안에 머뭅니다.”
“오, 그렇군요. 그럼 내일 우리가 찾아가도 될까요?”
노인은 실눈 뜨고 웃는 얼굴로 명함을 내밀었다.
“다들 스님 이야기 듣는 걸 재미있어하네요. 재미있기도 하고 마음도 밝아지고요.”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지요. 다들 주말에 오세요. 주말엔 수업이 없을 겁니다.”
“괜찮아요. 스님은 스님 일 보시고, 우리가 가게 되면 혹시 스님을 못 만나도 알아서 구경이나 하지요.”
몇 사람은 이야기를 확실히 마친 후 동한생과 좌자전을 놓아주었다.
좌자전은 혀를 끌끌 차면서 동한생을 바라봤다.
“어린 나이에 사람을 이렇게 잘 꼬시다니.”
“사부님이 제가 불가 인연이 깊다고 하셨습니다.”
“불가 인연? 그런 게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좌자전이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동한생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사부님께서 저는 앞으로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큰 절을 지어 줄 거라고요. 사부님께서 그런 날이 오면 남쪽 방에 묵으시겠다고······.”
좌자전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잘 먹고 잘산다는 정의가 참 애매하지. 스님들 가사(袈裟: 승려의 법복)도 비싸다던데 절을 짓는다니 그건 너무 하잖아. 요즘 절 하나 짓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
사부님이 치질에 걸리기 전엔 매우 용했다고 생각하는 동한생은 그를 굳건히 믿었고, 굳이 좌자전과 입씨름을 하지는 않았다.
좌자전은 동한생을 데리고 로비를 지나 복도를 거쳐 수술 구역으로 바로 들어가서 문 앞에서 동한생이 입을 수술복을 받아 갈아입혔다.
“능 선생은 안에 식당에서 밥 먹고 있어. 오늘은 안 나갈 거야. 들어가면 아무 데나 돌아다니지 말고. 여기저기 의사랑 간호사뿐이니까. 수술실은 들어가면 더 안 되고.”
“예. 능 선생님은 북경에서도 매일 수술만 합니까?”
“다들 몰려들어서 안 할 수가 없지.”
좌자전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대장이 사랑받아야 수하가 잘사는 법이었다.
경화 6 병원 왕 원장이 병리과를 가능한 한 수술실에 가깝게 두자는 원칙을 꺼낸 후, 빙 교수가 그것을 통일하는 이론을 제출했다. 간단히 말하면 간 절제 병리 검사를 위해 그린 패스 통로를 두어 검사를 최대한 빨리하자는 얘기였다.
수술 과정에서 시간 단축 처치는 이론상 수준이 괜찮은 엘리트 의사가 간 절제 수술을 한 건 더 할 수 있게 했고, 능연처럼 수술 환자를 선택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적응증을 어느 정도 확대할 수는 있었다.
병원으로서 이런 혁신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능연이 더 많은 출장 수술로 증명해줄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은 능연 곁에 몰려들어서 순서를 차지하려고 다퉜다.
초반에 이런 수술을 하는 병원이나 주목받지, 늦으면 큰 의미가 없었다.
좌자전은 동한생을 데리고 수술 구역 안 식당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능연은 의사 대여섯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능 선생! 동한생 왔어!”
좌자전이 소리를 높이자 고개를 돌린 능연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렴. 금방 끝나.”
능연의 말에 현장에 있던 의사들도 눈치 빠르게 빠른 속도로 설명하고는 잠시 후 뿔뿔이 흩어졌다.
능연이 다가가자 좌자전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이야기 잘 됐어? 어느 병원부터 하기로 했어?”
“동황구 병원이요.”
좌자전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문질렀다.
“동황구 병원 괜찮지. 조건도 괜찮은 편이야. 간담 기초도 있고. 하아, 북경 병원은 좋겠다. 아무 병원이나 간담은 다 하고 말이야. 얼마나 좋겠냐고.”
능연은 좌자전이 말을 마치길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동황구 병원에 환자가 바로 있대요. 71세 여환자, 병력 수집 다시 하세요.”
“응? 다시 하라고?”
“빙 교수님이 제안하신 겁니다.”
좌자전이 의아해서 묻는 말에 장안민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빙 교수님 생각에 북경이랑 창서성은 다르다는 거죠. 우리가 창서성 안에서 출장 수술할 때는 어느 병원이든 함부로 못 했지만, 북경은 우리 마음대로 하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고요.”
그의 말에 좌자전도 저절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빙 교수님이야 경험 있는 분이니까.”
“북경은 너무 복잡해요. 의사도 많고, 병원 시스템도 많고. 의사들 내력도 복잡하고요. 밥도 우리 운화보다 비싸고요.”
장안민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빙 교수님이라고 해도 모든 병원에서 다 통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본인 출장 수술도 익숙한 병원으로 가지.”
“그럼 우리 조심해야겠다. 병원 고르는 기준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좌자전이 갑자기 신중해졌다.
“동황구 병원이 바로 빙 지상 교수님이 키워낸 병원이에요. 지금 외과 주임도 빙 교수님 학생이고. 동황구 병원은 적당하죠. 그런데 환자 본인은 수술하고 싶어 하는데, 수술할 수 없어서 병원에서 여럿 거절당했대요. 가족들이 상의해서 집에서 좀 먼 동황구 병원에서 보존 치료하기로 했다나 봐요. 그래서 병력 수집이니 뭐니, 다 느슨하게 했나 봐요.”
“OK, OK.”
좌자전의 머릿속엔 이미 능연이 메스를 잡고 휘두르는 모습이 선했다.
좌자전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장안민과 낮은 목소리로 한참 디테일을 상의한 다음 고개를 돌렸더니 능연은 책을 읽고 있었고 동한생은 작은 노트를 꺼내 만년필을 들고 필사적으로 뭔가 쓰고 있었다.
“숙제도 하니?”
“그럼요.”
좌자전이 궁금하다는 듯 묻는 말에 동한생이 멍해져서 대답했다.
“모처럼 북경에 왔는데 가서 구경하고 싶지 않아?”
동한생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나중에 가고 싶은데 있으면 내가 시간 내서 데리고 가마.”
좌자전은 온순한 동한생의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생각해 보면 아들과 나이가 비슷해서 보면 볼수록 아들 같았다.
“저는 숙제하고 싶습니다. 좌 선생님, 혼자 나가서 노실 수 있죠?”
“나는······.”
동한생이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는 말에 화가 난 좌자전은 우리 아들은 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좌자전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능 선생, 얘 좀 봐······.”
테이블 한쪽에서 능연은 손에 <네이트 외과학>을 들고 옆에서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읽고 있었다.
다음 날, 햇살이 가득하고 미풍이 서서히 부는 휴게실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동한생은 경화 6 병원에서 1박 2일째 머물고 있었다. 그는 혹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개학보다 이틀 일찍 북경으로 왔다. 그런데 순조롭게 도착한 결과 불교원의 지난 연수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있을 곳을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오래 머물기 좋지 않다는 북경 물가는 완벽하게 호텔 가격에 드러났고, 동한생이 손을 꼽아 계산해도 근처 호텔에서 하루 머물 돈이면 치질약 커다란 한 상자는 살 돈이었다. 주지 스님의 건의하에 동한생은 좌자전에게 의탁해 6 병원 침대 하나를 얻었다.
잘 곳이 생긴 동한생은 마음을 푹 놓았다.
하루를 보내고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실 청소하고 수술 층 자수정 원석 옆으로 가서 불경을 외우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휴게실로 돌아가 숙제하고 복습하고 예습을 반복했다.
그는 능연, 좌자전, 장안민에게 마사지를 해주는 것 외에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식당에 가서 능연 등이 수술을 마치고 오길 기다렸다가 같이 식사를 했다.
식사는 당연히 채식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맛있게 하려면, 주방장은 귀한 균류, 정교한 콩 제품 같은 비싼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칠도 식사 시간에 맞춰 달려왔다. 교통 체증을 피하려고 자전거를 타고 온 바람에 배가 꼬르륵댔다.
“오늘은 뭐 먹어요?”
전칠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약속한 자리로 다가갔다.
능연과 동한생이 햇살을 마주하고 나란히 앉아서, 한 사람은 책을 읽고 한 사람은 숙제를 하고 있었다.
어른과 꼬마, 모두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능연은 하얀 가운, 동생은 하얀 티셔츠였다.
두 사람 모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있었다.
찰칵찰칵.
전칠은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고, 테마를 이리저리 바꿔 찍었다.
마지막에, 전칠은 흑백 사진을 한 장 맥순에게 보냈다.
-이렇게 사진이 멋진데, 잡지사에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말이야. 잡지 엄청 팔리겠지?
맥순은 일단 ‘아······.’ 하고 보내고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
-잡지사에 연락해 볼까요? 평소에 접촉하는 건 의료 위생 방면 매체고, 사회 매체는 보통 신문인데, 그래도 관련 잡지를 찾으려고 하면······.
-잡지사 문제가 아니야.
전칠은 메시지를 보내고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뒤에서 능연을 바라봤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능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전칠을 바라봤다.
“두 원사님이 어제 ICU에서 나와서 일반 병실로 갔어요. 같이 가서 인사할래요?”
“좋아요. 이 박사님도 계속 두 원사님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전에 ICU라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그럼 두 원사님 몸 괜찮아진 거네요?”
“수술 성공했고, 적어도 몇 년은 더 살 수 있겠죠. 그래도 암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순 없어요.”
능연이 덧붙이는 말에 전칠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능 선생님은 사람 살리는 일을 하네요. 정말 좋네요.”
식사 후, 세 사람은 어슬렁거리며 병실로 향했다.
병실 안은 두 원사 일가가 거의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두 원사는 상태도 좋고 혈색도 나쁘지 않았고 말할 때도 기력이 있었다.
능연은 두 원사 신체 검진하면서 속으로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나이 많은 두 원사가 이렇게 큰 수술을 끝내고 어떤 상태일지, 능연도 서서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학초도 따라 들어가 두 원사를 향해 인사했다.
“뭘 또 이렇게 다 오고.”
두 원사는 애써 웃어 보이면서 이학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오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서 늦었습니다.”
“무슨 일?”
막 수술을 마쳐서 조금 반응이 둔한 두 원사가 묻는 말에 이학초는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남직에서 유색금속 광산을 탐색하느라 너무 바쁩니다. 서류를 보내자마자 바로 원사님 뵈러 왔다니까요. 요즘 입찰은 전보다 복잡합니다. 점점 더 복잡해져요.”
그제야 알겠다는 듯 두 원사가 미소 지어 보였다.
“아쉽지만 나는 입찰하고 큰 관련이 없다네. 그건 다 위원회가 할 일이라서.”
“압니다. 에휴, 걱정이 되어서 그렇지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은 얼굴색으로만 보면 침대에 있는 두 원사보다 훨씬 안 좋았고, 정말이지 지친 것 같았다.
“흥, 유색 금속 광산이라. 전에 나도 남직에서 여러 곳 탐색했지. 그런데 모두 정밀 조사를 못 했어. 아쉽다, 아쉬워.”
“이제 젊은 사람들 몫이지요.”
“내 생각엔 거기서 정말 뭐가 나올 것 같다네.”
두 원사는 피곤함을 느끼며 그렇게 대답했다.
잠시 후, 이학초는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아깝네. 나중에 원사님 쉬실 때 다시 물어봐야겠어.”
“지금 있는 광산을 입찰하시려고요, 아니면 탐사하시려고요?”
퉁퉁한 손자가 따라 나와 물었다.
“차이가 있나?”
“탐사는 몰라도 직접 입찰하시면 경쟁 상대가 줄어들 겁니다. 세밀하게 탐사하지 않은 광산은 아무래도 가격이 저렴하겠죠.”
“그럼 사들이죠. 두 원사님 말씀대로요.”
전칠이 바로 결정을 내리자 손자가 멍해졌다.
“에? 정말로요?”
“어차피 싼데요 뭐.”
전칠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이학초는 쓴웃음을 지었고, 손자는 바짝 긴장했다.
“아니, 우리 할아버지 말씀은, 그러니까 광산이 있을 거로 추측한다는 거지 진짜 있다고 장담하시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광산 규모나 조건도 차이가 나고요. 곧이곧대로 믿으시면······.”
“저는 두 원사님을 믿어요.”
전칠이 간단하게 말을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