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금억은 ICU에서 사흘 지낸 후 겨우 일반 병실로 옮겼다.
사흘 동안 동황구 병원엔 수많은 유언비어가 넘쳤고, 허금억 면회가 허용되자 벌떼처럼 몰려간 의사들이 부속 2 병원 병실을 침몰시켰다.
“방에 사람이 너무 많아 환자 회복에 방해됩니다. 다들 나가세요.”
특별 간호사가 손을 휘저으며 들어오려는 사람을 막았다.
병실 안 의사들은 관심을 표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나는 괜찮아. 다들 돌아가.”
우해진은 병실에서 최대한 손님을 접대하면서 몇 마디 나누고는 사람을 내보냈다. 진심으로 온 건지, 거짓으로 온 건지 알 수 없어도 진심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허금억의 14살짜리 딸은 침대 곁에 앉아 한 손으로 아버지 손을 잡고 가능한 한 아버지 대신 대답했다.
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딸의 대답은 점점 다급해졌고 결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의사 선생님이 병실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다들 왜 말을 안 들어요! 병실이 이렇게 꽉 찼는데 감염되면 어쩌려고요!”
“그래, 그래. 알았다. 나가마, 나가. 거기, 나가.”
의사 몇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순식간에 의사 몇이 다시 들어왔다.
앞에 있던 주임이 어색하게 웃으며 금방 나가겠다고 속삭였다. 그리고는 우해진에게 몇 마디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자연스럽게, 다른 의사가 그 자리를 채웠다.
허금억의 딸은 입을 삐죽이며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허금억은 그런 상황을 보고 들으며 우습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했으나 말할 기운이 없어서 손으로 살며시 딸의 손등을 두드렸다. 울 것 같은 아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깨질 것만 같았다.
허금억은 공부해서 운명을 바꾼 남자였다. 시골에서 또래 아이들이 무작정 뛰어놀 때 허금억은 공부했고 대부분 시간을 농촌 학교에서 보냈다. 마을 또래들이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허금억은 현 고등학교로 진학해 대학에 합격했다. 또래들이 코 흘리는 아이와 함께 산에서 뛰어놀 때, 허금억은 박사가 되었다. 또래들의 아이가 중학교 시험에 떨어져서 도움을 청하러 왔을 때, 허금억은 수많은 스승을 모시고 순조롭게 커나가고 있었다.
나중에 또래의 아이들이 직장을 구할 때, 허금억은 늦둥이를 낳았고 그렇게 얻은 딸이니 귀한 게 당연했다.
기운만 있으면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다들 꺼져!’라고 고함쳤을 텐데.
“다 나가세요.”
문 입구에서 기세등등한 목소리가 들렸다.
침대 곁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있었지만, 문 앞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엔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다 나가세요.”
방 가운데로 들어온 능연이 다시 한번 말했다.
“면회 시간 끝났습니다. 다들 돌아가세요. 서 있지 말고 나가세요.”
곁에 있던 좌자전과 장안민이 사람들을 밖으로 이끌면서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여기도 다 나가세요.”
이번엔 허금억 가족에게 한 말이었다.
허금억 딸이 침대 옆에서 일어나 눈을 깜빡이며 능연을 바라봤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기꺼이 병실에서 나갔다.
아이의 눈엔 능연이 백마 탄 왕자처럼 반짝였다.
“허 주임님, 검사 좀 하겠습니다.”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벌써 허금억 신체 검진을 시작했다.
“음, 지금 상태 어떤가?”
“문제없습니다. 푹 쉬세요.”
능연은 외과 의사가 늘 하는 대답을 했고, 허금억은 저도 모르게 소리 내서 웃었다.
“검사 결과 보고 싶네.”
“뭐 하시려고요.”
능연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나도 의사 아닌가. 검사 결과 좀 보고······.”
“안 됩니다.”
능연은 한마디 남기고 바로 병실에서 나갔다.
허금억이 헛기침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아네. 검사 결과 보여주······.”
“허 주임님. 우리 능 선생, 벌써 나갔습니다.”
장안민이 나지막이 하는 말에 허금억이 그를 바라보며 입술을 들썩였다.
“능 선생 불러오라고요? 우리 능 선생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허금억 입술이 다시 우물댔다.
장안민은 모니터를 보고는 수액 상태를 체크하면서 미간을 좁혔다.
“허 주임님, 초조해하지 마세요. 검사 결과 보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허금억이 장안민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우물댔다. 장안민은 그의 말을 들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넌 누구냐?”
허금억의 상태는 하루하루 좋아졌고, 며칠 만에 비행기를 타고 미국 앤더슨 암센터를 향해 출발했다.
그가 출발하는 날, 능연은 동황구 병원 응급실에서 ‘통증 해소’ 퀘스트를 끝냈다.
- 퀘스트 완성: 통증 해소
- 퀘스트 목표: 환자 100명 통증 해소
- 퀘스트 보상: 가상 인간 2시간
퀘스트를 완성하고 보상을 받은 능연은 맞은편 환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생선 가시 가지고 가시겠어요?”
눈앞 트레이에 날카로운 생선 가시가 등불 아래 번쩍였다.
“가지고 가도 돼요? 그럼 가지고 가겠소. 사흘 고생한 벌은 받아야지!”
맞은편에 앉은 중년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말을 마친 중년 남자는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 조심스럽게 생선 가시를 싸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생선 가시에 가시 있어요.”
“당연한 소리를.”
어린 간호사가 상기시키는 말에 중년 남자가 웃으며 걸음을 옮기다가 몇 걸음 만에 아이쿠 하고 고함쳤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간호사가 냉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중년 남자가 다시 걸음을 옮기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사람이 중년이 되면 어쩔 수가 없었다. 체면이 중요해서 지금 주머니에서 가시를 꺼내기엔 창피했다.
간호사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사람이 병원에서 일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의교과에 투서가 들어오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년 남자가 몸을 돌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역시 사내대장부였다.
간호사가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이 파래질 정도로 웃음을 참았다.
날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