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사라지는 걸 바라보며 능연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능연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퀘스트를 받고 지금까지 수술을 몇 백 건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통증 해소’ 퀘스트는 이제야 백 건을 채웠다. 그리고 그중 절반은 응급실에서 완성했다.
아직 요양 중이라 통증 해소와 거리가 먼 환자가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비율과 속도는 경계할 만했다.
“능 선생님, 다음 환자 들어오라고 할까요?”
동황구 병원 응급의학과 간호사가 정성껏 화장한 얼굴로 능연을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아니요. 오늘은 쉴래요.”
능연은 고개를 흔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곁에 있던 좌자전도 순간 한숨을 내쉬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건 출장 수술 비용을 받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응급실에 박혀 있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조수로 이런저런 연습하는 건 좋았다. 그러나 응급실은 거의 작은 고질병이라 좌자전은 정말이지 별 흥미가 없었다. 이런 건 운화병원에서도 실습생이나 훈련의가 할 일인데 이런 일로 인생을 바꾼다는 건 불가능했다.
좌자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빵은 북경에 출장 수술 올 자격이 생겼는데 제자인 그도 이제 더 높은 목표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은퇴 전에 좋은 학군에 집 하나는 사야 하지 않겠나. 아들은 늦었더라도 손자는 쓸 수 있게 해야 인생에 낙이 있을 것 같았다.
좌자전은 고개를 숙여 능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 그를 따라 나갔다.
대빵은 아직 젊으니 너무 찰싹 달라붙으면 안 되고, 뒤에서 따라가면 싹싹해 보이기도 하고 대빵이 싫어하지도 않으리라.
“능 선생. 이제 어디 가? 차 부를까?”
“그냥 어슬렁거리려고요.”
능연이 느릿느릿 걸으며 대답했다. 좌자전은 능연의 입에서 ‘어슬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멈칫했다. 비꼬는 건가?
“아까 환자 때문에 기분 나쁜 일 있어?”
“아니요.”
“그럼, 왜 어슬렁거리려고?”
“오늘은 수술하기 싫어서요.”
능연은 근골을 움직이면서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동한생 오늘 뭐 하는지 물어보고 시간 있다고 하면 보러 가죠.”
“좋아.”
좌자전은 동황구 병원에서 막 사귄 의교과 주임에게 전화해 차 한 대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바로 동한생에게 위챗을 보내 구체적인 주소와 가는 길을 묻고 시간 약속을 했다.
한 시간 후, 능연은 편안하게 회나무 아래 앉아 동한생의 야무진 마사지를 받았다.
추나 기술은 처음에 능연이 동한생에게 가르쳤다. 하구 진료소에서 같이 배운 연자보다 동한생이 훨씬 잘 배웠고, 골목 노인 사이에도 동한생의 기술이 좋다, 연자한테 눌려 죽기 싫다, 이런 말이 퍼졌다.
능연은 점점 높은 기술을 동한생에게 알려주었다.
그때, 능연은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경추 근육이 서서히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문가 중급 수준이네.”
능연이 자연스럽게 평가를 내렸다.
“전문가는 어디 절입니까? 제가 거기 스님급은 됩니까?”
제대로 못 알아듣고 이상하게 묻는 동한생의 말에 능연은 설명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불교원에서는 어떻게 지내니?”
“재미있습니다. 사부님들도 매우 온화하시고요.”
동자승은 그렇게 말하며 헤헤 웃었다.
“다들 제 마사지도 좋아합니다.”
“응? 사부님 마사지도 해주냐?”
좌자전이 조금 놀란 듯 묻자 동한생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가 절에 있을 때도 사부님 마사지해 드렸는데요. 저는 특히 이 사부님이 좋습니다.”
“왜?”
“이 사부님한테 우리 사부님 냄새가 나거든요.”
동한생은 이어서 자신의 일상생활이 어떤지도 설명했다.
“처음에 여기 왔을 때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부님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놓였어요. 나중에 하나씩 맡아보니 여기도 사부님 냄새가 나고, 저기도 사부님 냄새가 나고, 저쪽에서 사부님 냄새 같고······.”
좌자전은 머릿속으로 혹시 치질약 냄새가 아닌가 생각했다.
동한생은 능연과 좌자전에 마사지해준 다음 두 사람을 데리고 사원을 참관했다.
평범한 건축물이었지만, 북경에 와서 수술실에 틀어박혀 있던 두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새로운 구경거리였다.
특히 좌자전은 마음이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야 정상적인 출장이지. 절 구경도 하고 절도 올리고.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병원 환경이 안 좋긴 하죠.”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매일 병원에 틀어박혀 있으면 병나요. 쉴 때가 됐지. 능 선생, 만리장성 가본 적 있어? 장성에 못 가본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고 했어.”
“그럼 가죠.”
“응? 정말? 시간 낭비라고 할 줄 알았는데.”
“동황구 병원 응급의학과엔 제가 필요한 거 같지도 않고요.”
능연은 입을 삐죽였다. 사실 동황구 병원 원내 감염을 재정비하고 싶었는데, 돕는 사람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능연 앞에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났다.
- 퀘스트: 신인 키우기
- 퀘스트 목표: 의사의 기술 등급을 UP 시켜라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
능연은 위아래로 좌자전을 살폈다.
시스템에서 신인을 훈련하라는 퀘스트를 받았는데, 이론상으로 이 사람이 신인일까 아닐까?
재고 20년짜리 의학생······ 사실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니었다.
어찌 됐든, 의사의 체력에 대한 요구도 그렇게 높은 건 아니었다. 평균 10시간 서 있어도 쓰러지지 않고, 반나절 뛰어도 지치지 않고, 두 끼 굶어도 배고프다 울지 않고, 40시간 집에 못 가도 떼쓰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합격선이었다. 그런데 좌자전 님은 이미 평소에 자신을 증명했으니 재고라고 해도 쓸 만한 재고였다.
그러나 어느 방면의 기술을 올려야 할지, 그게 고민이었다.
전문가급에서 마스터급으로 올리는 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능연이 담낭 수술을 그렇게나 했어도, 거기에 복강 해부 경험까지 있는데도 아직 담낭 절제 기술을 마스터급으로 올리지 못했다. 그것만 봐도 양자의 차이는 어마어마했고, 경험만으로 채우려면 수술을 얼마나 많이 해야할지 모른다.
잘못하면 집도 수술을 대량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에 비하면 입문에서 전문가급이 되기는 쉬웠다.
능연은 좌자전을 바라보며 속으로 봉합을 가르칠까 고민했다. 그러나 느릴 것 같았다.
단지? 그건 에너지 소모가 컸다. 능연의 에너지가 아니라, 마흔 넘은 좌자전은 일고여덟 시간 걸리는 단지 이식을 견딜 에너지가 없을 것이다. 그것만 아니라면 단지 이식 환자는 넘치는데.
간 절제, 알 절제······ 그건 너무 복잡해서 좌자전의 이해력으로는 몇 년이 지나도 깨닫지 못할 테고.
솔직히 좌자전의 이해력이 큰 문제였다. 인간관계를 처리하는 것에 비해 의학 방면 이해력은 정말 큰 문제였다. 능연이 일대일로 가르쳐도 기술이 빨리 올라가지 않으리라.
젊을수록 배움이 빠르다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만리장성이나 가죠.”
능연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의사의 실력을 올리는 일이란 단시간에 되는 일도 아니고 반드시 좌자전이 타겟일 필요도 없었다. 능 치료팀에만 해도 의사가 여럿이었고, 같은 팀이 아니라도 응급의학과 동료, 운화병원 그리고 하구 진료소에도 의사는 많았다.
좌자전은 자신이 인생의 갈림길에 선 것도 모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차를 준비하고 간식을 사고 동한생의 결석계도 친절하게 써주었다. 동한생은 전에 결석계를 써 본 적이 없으니 좌자전만큼 형식을 잘 알지도, 거짓말을 잘 하지도 못했다.
장성에 사람이 구름같이 몰려 있었다.
능연은 차에 타고 나니 위에 올라가기가 귀찮아져서 억지로 한 층 오르고는 벽에 기대 멀리 바라봤다. 사람들이 개미처럼 앞으로 쉴 새 없이 전진했다.
그때 전방에 여행객 대군이 빠르게 이동하는 게 보였다.
능연은 순간 무슨 생각을 떠올렸다.
“여기 여행객이 이렇게 많은데, 다치는 사람도 많겠죠?”
“당연하지. 사람이 많으니 부딪히는 일도 많지. 게다가 여행 나온 사람은 배탈이니, 감기니, 별별 병에 걸려도 이상할 게 없지.”
좌자전이 경험 많은 듯 대답하는 말에 동한생이 양손을 합장하며 ‘나무아미타불’하고 경을 외웠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음’ 소리를 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요. 나는 의무실에 가볼게요.”
“능 선생, 모처럼 나왔는데 쉴 땐 쉬자. 여기 공기도 좋잖아. 신선한 공기도 좀 쐬고. 환자 걱정은 좀 잊자. 여기도 의사 있을 텐데 뭘.”
“알아요. 선생님을 위해서입니다.”
“어?”
능연의 말에 좌자전이 어리둥절해졌다. 동한생은 더욱 멍해져서 능연 한 번 좌자전 한 번 바라봤다.
“좌 선생님, 어디 아프세요?”
동한생은 그렇게 물으며 치질약을 꺼냈다.
“이거 쓰실래요?”
“아니 필요 없어. 난 괜찮아.”
좌자전이 황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능연을 바라봤다.
“선생님한테 적당한 환자가 있는지 보려고요. 연습하게.”
능연의 말에 좌자전이 헛기침하며 웃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어떤 환자가 나타나면 그 기술을 알려준다는 건 줄 알겠어.”
“바로 그 말인데요.”
능연은 저도 모르게 턱을 치켜들고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급실에 있어도 그건 되잖아.”
“응급실에는 의사도 많고 오는 환자를 선생님이 맡으리란 보장이 없잖아요. 일대일로 하는 게 효과적일 거 같아서요.”
“그거야 그렇지. 응, 그렇지.”
좌자전은 드디어 능연이 자기에게 작은 수업을 해주려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놀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기대하는 눈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여행객들이 꼬리를 물고 긴 줄을 서서 조용히 조용히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아주 안전하게.
“계단이 높으니까 넘어질 수도 있겠네. 커플이 싸우다가 장성에서 뛰어내리는 그런 사고는 없을까? 아이고, 배 아픈 사람도 없네.”
중얼거리던 좌자전은 문득 ‘배 아픈 사람 있으면 뭐하냐, 능 선생이 내과도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
순간 좌자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간담 문제로 배가 아플 수도 있잖아. 장 문제일 수도 있고. 음, 그래도 간담이 낫겠군. 능 선생은 장도 잘 안 하니까.
동한생은 좌자전의 표정이 걱정 많은 큰 스님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물었다.
“좌 선생님, 여기 사람들 걱정이 많이 되나요?”
“음, 걱정이 되긴 하지.”
좌자전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앞에 있던 소녀가 성벽 돌출구로 올라서서 크게 고함치려고 하다가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몸이 흔들리더니 굴러떨어졌다.
“생겼다!”
좌자전은 다리를 철썩 내리치며 눈으로 전방을 쫓으며 ‘콜리스일지도 몰라’ 하고 중얼거렸다.
“콜리스? 아는 분이세요?”
동한생이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콜리스 골절이란다.”
좌자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능연을 향해 돌렸다.
“능 선생, 그럼 나 정형외과 배우는 거야?”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상황 보고 오세요.”
좌자전은 앞으로 비집고 나가면서 아름다운 미래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중년 정형외과 의사, 돈 있고, 차 있고, 집 있고, 집을 나서면 퍼스트 클래스에 5성급 호텔에 묵고, 마오타이를 마시고 싶으면 마오타이 마시고, 족발 먹고 싶으면 족발 먹고, 기사도 고용하고, 보모도 고용하고, 주방장도 고용하고, 예쁜 여자친구도 있고, 후회하는 전처도 있고······.
셀카를 찍으러 성벽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소녀가 바닥에 엎드린 채로 통증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구경꾼들이 저절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거나 셀카를 찍었다.
소녀와 친구들 모두 말릴 여력이 없었다. 햇볕도 뜨거워서 손으로 햇볕을 막으면서 그 김에 얼굴을 가리면서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 하나가 맨 앞에서 둘러싸고 보고 있는 인간 울타리를 힘껏 뜯어내고는 핸드폰을 들고 바닥에 누워있는 소녀를 향해 다가가 찰칵찰칵 연속으로 셀카를 여러 장 찍고는 부드러운 말투로 충고했다.
“얘, 사진 찍는다고 그렇게 위험한 짓 하면 안 되지. 얼마나 위험하니. 동영상 하나 찍어서 우리 식구한테도 이러면 안 된다고 보여줘야겠다.”
소녀는 싫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야생 동물원에 있는 야생 동물들도 사람들이 사진 찍는 게 짜증 나도 결국 사진 찍히는걸.
그때 좌자전이 헐떡거리며 올라갔다.
“다친 사람 어디 있습니까? 다른 사람은 버티고 있지 말고 다 비켜요.”
구경꾼들이 슬금슬금 틈을 비워 주었다. 그 틈으로 좌자전이 뚫고 들어가는 모습에 소녀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의사입니다. 저쪽에서 넘어진 걸 봤어요. 좀 볼게요.”
좌자전은 헐떡거리며 우선 신분을 설명하고 시선을 소녀의 얼굴을 스쳐 골절 위치에 고정했다.
콜리스 골절은 응급실에서 자주 보는 질환이라 좌자전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가장 흔한 골절이고 본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야외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야외에서 만난 콜리스 골절 환자는 얼마나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좌자전에게는 특별했다. 이제 능연의 손을 거쳐 콜리스 골절을 배우게 될 환자니까!
“넘어질 때 손 다친 거 같아요.”
“음. 맞아요.”
좌자전은 다리를 꿇고 우선 환자의 상처 위치를 확인했다.
“일단 기본 검사할 겁니다. 제 스승님도 이제 오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아픈 소녀는 그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좌자전은 다른 위치도 살폈는데 찰과상밖에 없는 걸 확인했고 살짝 마음을 놓았다. 아까 떨어지는 걸 멀리서 볼 때만 해도 무슨 희한한 골절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했었다.
잠시 후, 능연이 체력이 여전히 완전한 모습으로 느긋하게 올라와 좌자전을 바라봤다.
“좌측 팔목 콜리스 골절 확진했어.”
좌자전은 능연의 시선이 돌아가는 것만 봐도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능연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역시나 신체 검진을 하겠다고 했다.
원래 신중한 성격인 능연은 환자 본인의 상태 설명만 듣고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었다. 지금 마스터급 신체 검진 기술까지 있으니 당연히 쓰려고 들었다.
소녀의 친구가 능연을 잠시 주시하다가 직접 말 걸기도 어색해서 좌자전을 노려보며 물었다.
“스승님이 온다고 한 거 아니에요?”
“응. 이분이 내 선생님이야.”
좌자전은 능연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젊은 선생님이 어디 있어요.”
소녀의 친구가 콧방귀를 뀌며 그 김에 능연을 훔쳐봤다. 좌자전은 해명할 필요를 못 느끼고는 그저 웃었다. 사실 상대도 정말로 해명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소녀의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떠들면서 능연이 대답하길 유도했다.
“아까 밑에서 얘 넘어진 거 본 거예요? 저 멀리서 어떻게 알았어요?”
“어느 병원 의사예요?”
“왜 자꾸 검사만 해요. 정 안 되면 업고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때 좌자전이 상대를 힐끔 보며 물었다.
“팔을 다쳤는데 왜 업고 내려가.”
“그치만, 다쳤잖아요.”
“다쳐도 걸어 내려갈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소녀의 친구가 멈칫해서 하는 말에 좌자전이 대답하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좀 비키세요. 뭘 계속 이렇게 봅니까. 심심해요?”
“안 그러면 뭐하러 왔겠수.”
무리에서 느긋한 소리가 들렸다.
좌자전은 머릿속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경꾼들은 더욱 편안하게 구경했다.
멀리 보이는 장성이 묵묵히 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천년 문명사를 호소하고 있었다.
다친 소녀도 점점 조용해졌고, 사진 찍을 사람들도 거의 찍었는지 조용해졌다. 다들 능연의 사진을 찍고 싶어서 핸드폰을 들고 있긴 했지만.
“좌 선생님, 수법 복위합니다.”
검사를 마친 능연은 한마디 하고는 손으로 소녀의 엄지와 그 아래 손바닥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검지, 중지, 무명지를 잡고 계속 힘을 주었다.
좌자전도 다급히 나가서 도왔다.
병원에서 능연은 이미 여러 번 수법 복위로 콜리스 골절을 처리했었다. 좌자전도 여러 번 지켜봤지만, 지금처럼 유심히 지켜본 건 몇 번 없었다.
전에는 자기가 직접 할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계속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었다.
“아파요.”
좌자전의 이마에 순간 땀이 흘러서 냉큼 소녀를 바라봤더니 소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능연을 보고 있었다.
“이 녀석, 거짓말하면 안 돼.”
“거, 거짓말 아니에요.”
“아플 때 소리 지르고 눈물 좀 흘리는 건 상관없지만, 안 아픈데도 일부러 아프다고 하면 우리가 판단 착오하게 된다고. 알겠어?”
“아.”
소녀는 알아들은 듯 가볍게 대답했다.
“능 선생, 시작해.”
“이제 좀 아플 거예요. 좌 선생님, 제가 압박하는 방향, 유심히 보세요.”
소녀는 멈칫했다가 조심스럽게 얼마나 아픈지 물었다.
“자, 이렇게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양손에 힘을 주었다.
“아아아악!”
소녀가 꽥 고함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멀리서 메아리가 들렸다.
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은 재미있어하며 다들 목소리를 높였고, 더 많은 메아리가 ‘아아아아아’ 하고 돌아왔다.
고개를 숙이고 드레싱을 마친 좌자전은 장성 안에 온통 메아리가 가득한 걸 보고는 저도 같이 ‘아아아아’ 하고 큰 소리로 고함쳤다. 10년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바닥에 앉은 소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몰려 있던 구경꾼을 포함해서 장성에 길게 줄 선 여행객 모두 멀리 바라보며 고함치고 있었다.
소녀는 망연자실해졌다.
나, 이렇게 금방 인기가 식은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