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468화 (449/877)

다친 소녀를 의무실로 보낸 좌자전은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큰 관광 구역에 팔 다친 사람 하나로 끝은 아니겠지.

물론, 지금은 다시 올라갈 기운도 없었다. 배불리 먹고 느긋하게 관광하러 온 여행객도 아니고, 그는 마흔셋 중년 · 매일 25시간 일하면서 · 지쳐서 인생에 회의를 느껴도 · 여전히 집에 가지 못하는 · 왜냐하면 응급실에 새로운 환자가 오기 때문에 · 그리고 집에 가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 따듯한 밥도 없고 · 집에 안 들어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 기술도 없는 · 기술을 배우고 싶어도 재능도 없는 · 재고 20년 신입 레지던트니까.

지금은 병원으로 돌아가도 환자를 볼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능연이 기분이 좋아 보이는 틈을 타서 여기서 환자를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좌자전은 의무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드디어, 드디어!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을 때 남자 하나가 여자를 업고 느린 걸음으로 한 발짝씩 좌자전을 향해 다가왔다.

좌자전은 바로 일어섰다. 남자가 업은 여자가 좌측으로 기울었다. 그건 여자의 오른 다리 혹은 오른팔이 다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남자의 손이 여자 무릎을 두르고 있는 걸 보니 다리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여자 왼팔이 남자 목을 두르고 있는 걸 보면 다른 측면에서 앞에 했던 판단을 점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여자가 몸을 아직 떨고 있는 걸 보면 굴러서 다친 바람에 오는 통증 때문인 것 같다.

좌자전이 선 자리에서는 여자의 오른팔이 보이지 않았고 어쩌면 오른팔이 다친 건지도 모른다.

좌자전은 환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 내리고, 우선 의무실로 들어가 휠체어를 받아 펼쳐서 밀면서 앞으로 달려갔다.

좌자전에게 장점이 있다면, 의무실에서 반나절 머물면서 의무실의 모든 설비를 쓰고 빌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좌자전은 미소 지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매우 건장했다.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다리가 일반인 허리보다 굵었다. 좌자전은 볼록 나온 배로 상대의 허벅지 둘레를 이길 수 있었지만, 전혀 뿌듯하지 않았다.

이렇게 건장한 친구가 의료 소동이라도 일으킨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더 자세히 보다 보니 조금 동정심도 생겼다. 저렇게 건장한 친구가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업고 있는 여자가 어디서 다친 건지는 몰라도 혹시 봉화대 쪽에서 계속 업고 내려왔다면 정말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으리라.

좌자전은 그런 생각을 하며 휠체어를 밀고 나갔다. 그때, 바람 소리를 타고 은연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럇, 이럇! 이럇.”

좌자전이 명백하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의 시선은 남자의 등 쪽에 고정되었다.

남자 등 뒤에 업혀있던 여자는 분명 허리를 곧추세우고 큰 말을 타고 있었다.

여자는 왼손으로 남자의 목을 두르고 중심을 왼쪽에 두고 오른손을 휘두르며 뒤에서 앞으로 남자의 허리를 두드리며 몸을 흔들면서 입으로 계속해서 ‘이럇, 이럇’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남자는 반쯤 죽어가는 마차용 말을 흉내 내는 듯 때때로 목을 치켜들었다. ‘말’은 제대로 흉내 내지 못했지만, 반쯤 죽어가는 건 매우 비슷했다.

양쪽이 점점 더 가까워지자 ‘이럇, 이럇’ 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다리 두께가 허리만 한 남자가 좌자전을 휙 노려봤다.

“너! 뭘! 봐!”

그의 눈엔 분노가 가득했다. 사람을 죽여 입을 막을 기세가 등등한 분노가.

여자는 언제든 내리칠 기세로 팔뚝을 들며 ‘이럇’하고 외쳤다.

좌자전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내려다보다가 또 눈앞에 휠체어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천천히 휠체어 방향을 돌려 느릿느릿, 느릿느릿 위에 앉았다.

그리고 손으로 휠체어를 굴려 있는 힘껏 현장에서 벗어나려 손을 놀렸다.

오래된 휠체어는 사람을 태우더니 재고 20년짜리 오래된 자전거가 오토바이 추격을 피해 달리는 것처럼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끼익.

끼익끼익.

작은 평지에 이른 휠체어는 기쁜 듯이 빙그르르 맴돌았고, 바람을 따라 ‘이럇’ 소리가 들려오자 휠체어는 제 나이가 된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보슬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 공기가 맑았다.

북경 공항 로비에 푸르른 식물이 바쁘게 오가느라 눈길조차 주지 않는 손님을 맞이했다.

곽종군은 당당한 걸음으로 게이트에서 나와 순조롭게 제약회사에서 보낸 자동차에 탔다.

“곽 주임님, 우선 호텔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병원부터?”

조수석에 탄 제약회사 직원이 공손하게 물었다. 자기 고객은 아니지만, 회사 내부에서 서로 도와야 할 상황도 불가피했다.

곽종군은 우호적으로 웃어 보였다.

“호텔에 데려다주면 됩니다. 아, 그리고 차 한 대 필요한데······.”

“벌써 준비했습니다. 호텔 주차장에 있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곽종군은 재빨리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좌자전에게 전화했다.

두 시간 후, 곽종군은 동황구 병원 응급의학과에 도착했고 능연은 응급실에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능연으로서는 동황구 병원 응급의학과의 업무량은 조금 적었지만, 그래도 대충 만족할 만했다. 어쨌든 동황구 병원 면적이 크고 병실도 넓은 편이라 그가 일할 마음만 있으면 응급의학과에는 환자가 넘쳤다.

“능연.”

곽종군이 미간을 찌푸리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곽 주임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환자 신체 검진을 하던 능연은 손도 멈추지 않고 물었다.

“학회.”

곽종군은 가장 간단한 말로 능연의 질문에 대답했다.

“왜 아직 여기 있나. 운화병원 침대가 다 비었어. 자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의교과에서 우리 침대를 다른 진료과에 줘버리겠다고 하더군.”

“우리 침대를 왜요?”

능연이 고개를 휙 들었다.

“그렇지? 그런데 자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 다른 진료과에 침대가 모자란다고 환자를 응급의학과에 두겠다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침대를 비워둔 채로 거절할 수 없지 않은가. 다른 루트로 들어오는 환자도 많다네. 지금 병원에 빈 침대가 있다는 건 정말 크나큰 유혹이거든.”

곽종군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말의 핵심 내용은 모두 빈 침대였다.

사실 능연이 들어가기 전에 운화병원 응급의학과는 그렇게 운영했다. 다 못 쓴 침대는 잠시 다른 진료과에 빌려줘도 다들 별 의견이 없었다. 어차피 응급의학과 회복병실은 침대 회전율에 포함되지도 않았고.

그러나 검소한 사람이 사치하기는 쉬워도 사치하던 사람이 검소해지기는 어렵다고, 능연이 침대를 독점하던 것에 익숙해진 곽종군은 이제 침대를 남에게 빌려주고 싶지 않았다.

능연은 더욱 신경 쓰이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북경에서 출장 수술 연결해 주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고령 간암 환자는 많지 않은 데다가 환자의 개인 의견이 중요해서 능연이 환자를 끊임없이 구하기는 어려웠다.

곽종군이 하하 웃었다.

“케이스가 없으면 우선 돌아가세. 충분히 모였다고 하면 다시 와서 하면 되지. 정 안 되면 환자를 운화병원으로 모셔오라고 하지.”

생각해 보니 꽤 일리 있는 말 같았다. 능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틀 뒤에 돌아가죠.”

그렇게 말해놓고 능연이 휙 고개를 들어 곽종군을 바라봤다.

“주임님은 언제 돌아가십니까?”“내일 아침 일찍.”

곽종군이 툭 내뱉은 말에 좌자전이 흠흠흠 헛기침을 해댔다. 오늘 아침에 막 도착한 곽종군이 내일 아침에 바로 돌아간다는 건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곽종군은 전혀 개의치 않고 능연을 바라봤다.

“비즈니스 석 끊어서 오늘 저녁에 가도 되고.”

밤이 길어지면 꿈이 많다고,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굳이 하루 더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능연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좌자전은 조금 다급해졌다. 운화병원으로 돌아가면 본인의 기회가 적어진다. 그렇다고 돌아가지 않고 다른 사람 구역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동황구 병원은 환자가 많지도 않았다.

“선생님, 의사 선생님.”

환자 하나가 피에 얼룩덜룩해서 실려 들어왔고, 스트레처 카 옆에 소녀가 울고불고 난리였다.

“갑니다.”

좌자전이 대답하면서 바로 다가갔다.

그와 능연이 며칠 동안 동황구 병원에 편안하게 머물 수 있던 것도 모두 실력은 좋고 공짜로 일을 해주니 다른 의사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응급의학과는 일반 외과 주임의 체면을 생각해서 일반 외과로 보냈을 것이다.

좌자전은 며칠 동안 콜리스 골절을 두 건 해결했다. 가장 간단한 수술 유형이었지만, 그래도 형식을 따지면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었고 좌자전도 열심히 노력해서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었다.

이번 환자도 다른 증상과 합병된 콜리스 골절이었다. 좌자전은 신이 나서 가위를 들고 나섰다.

“안녕하세요, 차에 치여서 다리를 다쳤나요? 옷 처리하겠습니다.”

“잠시만요. 티셔츠는 자르지 마세요. 딸이 선물한 겁니다.”

환자 상태가 괜찮은 편인지 실실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잠시만요. 제가 벗을게요.”

환자는 침대에서 몸을 비틀면서 이미 피범벅이 된 티셔츠를 벗으려고 했고 좌자전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근골 손상도 있을지 몰라요. 그렇게 힘주지 마세요. 티셔츠 아닙니까. 잘 설명하면 따님도 이해하겠지요.”

“그건 안 되죠. 게다가 이거 새로 산 거란 말입니다. 며칠밖에 안 입었어요. 더러워진 것도 모자라서 자르겠다고요? 안 돼요. 좀 도와줘요.”

환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해서 침대에서 버둥거렸다.

좌자전은 스트레처 카 옆에서 이제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소녀를 바라봤다.

“제가 사고 낸 사람이에요.”

“아.”

좌자전도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환자가 고집하니 티셔츠를 벗길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티셔츠가 정리되길 기다렸다가 다가가 보조 신체검사를 했다.

소녀가 또 울기 시작했다.

“심각한 건 아닙니다. 어깨 골절에 찰과상이 여러 곳 있어요. 그밖에 큰 문제 없습니다. 골절이랑 찰과상 처리하고 하루 이틀 지켜보면 됩니다.”

능연은 소녀 들으라고 설명하는 듯 소녀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러나 소녀는 여전히 목을 놓아 울었다.

“죄송해요. 자꾸 눈물이 나와요. 울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평소에 개를 쳤을 때도 며칠 동안 운단 말이에요.”

“평소에······. 개······.”

환자는 눈꺼풀이 다 튀었다.

“죄송합니다. 차라리 개를 친 거면 좋겠어요, 저도.”

환자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좌자전을 바라보며 팔을 내밀었고, 좌자전이 다가가 어깨를 잡고 수법 복위를 시작했다.

능연이 옆에서 도와서 두 사람이 매우 빠르게 콜리스 골절을 또 한 건 끝냈다. 좌자전은 자신감 폭발해서 지금 당장에라도 곽종군에게 수법 복위를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곽종군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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