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자전은 동황구 병원 응급실에서 떠나기가 아쉬워서 환자가 있으면 환자를 보고 없으면 책을 보면서 밤을 꼬박 새웠다.
이렇게 능 선생을 독점해서 배울 기회도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
그 기회를 매우 소중히 하던 좌자전은 아침에 콜리스 골절 환자를 만났을 땐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동황 구민은 나를 박대하지 않는구나.”
골절 환자는 의사의 그렁그렁한 눈을 보며 묘하게 불안해졌다.
“전 동황구 사람이 아닌데요.”
“아, 네. 북경 사람들은 저를 박대하지 않네요.”
“전 북경 사람이 아닙니다.”
골절 환자는 바로 언짢아했다.
“구급차로 온 건데, 현지 주민 아니면 안 되면 보내지 말았어야죠.”
“아니요! 상관없습니다.”
환자 기분을 보니 여기서 더 기분을 거슬렸다가는 고소한다고 난리 칠 것 같았다. 좌자전은 매우 공손한 말투로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사실 아들이 연극을 한다고 해서요. 스토리 짜고 있었습니다. 화 푸세요. 정말이지 너무 바쁜데 말이죠. 그런데 아들 학교 선생님이 너무 재촉해서······.”
그 말을 들은 환자가 바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맞습니다. 요즘 학교 정말 엉망이에요. 툭하면 부모를 귀찮게 해요. 오늘은 이거, 내일은 저거. 우리는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잖습니까. 하루에 몇백 위안 버는데, 청소하라고 부르고 말이야. 돈도 안 벌고 가서 청소해야겠습니까? 결근까지 해야 한다고요. 차라리 돈을 내고 말지.”
환자가 그렇게까지 투덜거릴 줄 몰랐던 좌자전은 말을 끊지 않고 주절주절 내뱉는 대로 다 들어주었다.
응급실에서 수액 맞던 다른 환자도 그 말을 듣더니 흥미가 생긴 듯 골절 환자를 따라 투덜대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 대화하는 모습에 좌자전은 한숨 돌렸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교사한테 불만 많은 사람은 종종 의사에게도 불만이 많던데······.
하지만 좌자전이 조치하기도 전에 화제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렀다.
“병원도 참 속이 시커메요.”
“지금 병원에 있지만, 할 말은 해야겠네요. 약 처방 해준 것 좀 봐요. 위염인지 뭔지, 검사도 잔뜩 하고 채혈이니 뭐니, 게다가 약도 잔뜩 줬다니까요.”
“그래도 의료 보험 되면 낫죠. 저는 자비랍니다. 아, 여기 천 같은 거 있습니까?”
쉰쯤 되어 보이는 건장한 아저씨였는데, 말투는 부드러워서 듣기 좋았다.
좌자전이 껄껄 웃으면서 다가갔다.
“형님, 학교 이야기만 합시다. 아저씨, 붕대 좀 드리면 될까요? 손목이 불편하십니까?”
건장한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좌자전을 바라봤다.
“이 의사 선생님은 그래도 친절하네. 그렇지만 아저씨라는 말은 좀 그렇네. 누가 나이가 더 많소?”
“환자분이 많습니다. 아까 차트 봤거든요. 은퇴까지 하신 분이, 제가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뭘 그러세요.”
좌자전은 상대 기분을 거스르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말했다. 마을병원에서 태도가 험악한 환자를 많이 봤었다. 조금만 기분을 거스르면 큰일이 나곤 했다. 지금 눈앞에 환자들은 그래도 처리하기 쉬울 것 같았다.
게다가 다른 병원 응급실에서 배우고 있는 처지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건장한 아저씨는 그래도 좌자전을 유심히 살피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말한다면야. 저기, 좌 선생 맞죠? 좀 신경 쓰셔야겠수. 나이 몰랐다면 내가 아저씨라고 부를 뻔했소.”
좌자전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기분 좋으시다면야.”
“좋지, 좋아.”
건장한 아저씨가 껄껄 웃는 모습에 좌자전은 어이없이 돌아서 다시 콜리스 골절 환자에게 다가가 검사했다.
장성에서야 조건이 안 돼서 그저 신체검사만 했지만, 병원에서는 사진 찍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인생에 회의를 느낄 만큼 자주 고소당한다.
좌자전이 콜리스 골절 환자 검사로 바쁜 새에 붕대를 손에 넣은 아저씨가 느릿느릿 침대에 붕대를 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건장한 아저씨가 침대 머리맡에 커다란 매듭을 두 개 만들고는 크기를 재는 듯 손으로 붕대로 만든 둥근 원을 쟀다.
컴퓨터에서 콜리스 골절 환자 X-ray를 살피던 좌자전이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시발, 응급실에서 목매달아 자살하려는 사람도 있어? 의사들이 한가할까 봐 죽는 김에 사회 봉사하려고?
좌자전은 쏜살같이 달려가서 순간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몰라 ‘꼼짝 마’ 하고 크게 소리 질렀다.
건장한 아저씨는 수액을 꽂지 않은 팔뚝을 둥근 원 안에 넣고 몸을 위로 끌어당겼다가 서서히 내려와서는 좌자전을 바라봤다.
“며칠 동안 가슴 운동을 못 해서요. 여기 튼튼해서 괜찮아요. 고장 안 나.”
“그······ 그래도 안 됩니다. 수액도 맞고 있잖아요.”
좌자전은 몰래 식은땀을 훔치며 묵묵히 물러섰다. 다행히 정말 바보는 아니었다.
능연의 지도하에 애지중지하던 마지막 콜리스 골절 처리를 마친 좌자전은 동황구 병원 의료진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다음 제약회사에서 제공한 작은 차를 타고 곽종군을 따라 공항으로 향했다.
곽종군은 신이 나서 조수석에 앉아 주절주절 떠들었다.
“학회 끝나셨어요?”
“끝났지. 작은 학회야. 잠깐 발표 좀 하고 포럼에 참석했다가 잠시 앉아서 이야기 나누면서 후배들한테 인생 경험 좀 전해주고. 그게 끝이지.”
능연이 묻는 말에 곽종군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좌자전이 시계를 꺼내 확인하자 아직 10시도 되지 않았다. 그런 좌자전의 모습을 본 곽종군도 시계를 흘끔 보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이번 학회는 아침 8시에 시작했지. 오늘 일정이 빽빽하더라고. 다들 바쁜 사람이니 일찍 일어나는 게 나아서 말이야.”
“그렇죠.”
좌자전이 협조하듯 맞장구를 쳤다.
“포럼도 아주 짧았어. 얼굴만 내민 거라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어.”
좌자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면 시간에 관한 허점은 대충 채워졌다.
두 사람은 말 없는 소통을 마친 후 같이 흡족한 표정을 드러내며 능연을 바라봤다.
“환자는 준비됐나요? 지금은 어떤 환자가 많은가요?”
곽종군이 고개를 돌린 걸 본 능연이 질문을 던졌다.
“간 절제가 많아. 급한 수술이 아니니까, 환자들이 보존 치료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하더라고. 참, 아까 내가 한 말 들었나?”
“학회 말씀입니까? 끝났다고 하셨잖습니까.”
“응······. 맞다, 탕 환자는 안 필요한가? 연문빈이 하고 싶다던데.”
“필요합니다!”
능연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 침대는 돌고 도는 것, 병실 구역이 텅텅 비었다는데 당연히 환자가 많이 필요했다.
좌자전은 불안해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곽 주임님, 골절 환자도 받아도 됩니까? 콜리스 골절 이런 거.”
“좋지.”
곽종군은 대번 허락했다. 다른 진료과 밥을 먹는 걸 제일 좋아하는 곽종군이었다.
운화병원, 흐린 날의 수증기가 응급센터 통유리를 축축하고 뿌옇게 적셨다.
분수가의 큰 거위가 흥분해서 꽥꽥 울며 물 안에서 몇 바퀴 돌다가 사료 접시를 들여다보고 깨끗한 걸 확인하고는 안심한 듯 놀러 나갔다.
아이들은 가서 거위와 놀고 싶지만, 부모에게 붙잡힌 채 처마 밑에서 눈을 뜨고 큰 거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실내 다른 쪽에서는 의료진 한 무리 역시 눈을 부릅뜨고 창밖을 지켜봤다.
드디어 롤스로이스 팬텀이 문 앞에 섰다.
“능 선생님 왔다!”
다들 흥분해서 고함쳤다.
롤스로이스 특유의 마주 보는 문이 활짝 열리고 능연과 생긋 웃는 얼굴의 전칠이 내렸다.
타히티에 있는 가족이 운영하는 진주 양식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능연이 운화에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된 전칠은 하늘이 돕는 느낌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능연도 기분이 좋았다. 편안한 롤스로이스로 공항에서 병원까지 와서 기분 좋았고, 병원에 수많은 침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무궁한 동력이 되었다.
“능 선생님! 드디어 오셨네요!”
왕가는 나이 어린 것을 믿고 수간호사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기뻐하며 달려나왔다.
“다녀왔습니다.”
능연은 굳건히 서서 미소 지었다. 개학할 때마다 겪는 과정이었다.
뒤에서 따라 나오던 좌자전과 장안민도 따라 웃었다.
“왕 간, 우리 없을 때 어땠어? 푹 쉬었어? 연휴도 있었어?”
“연휴는요. 능 선생님 있을 때보다 더 바빴는데. 오늘은 이거 배우고, 내일은 저거 배우고. 정말 느린 의사도 있고. 게다가······ 과 보너스도 줄었다고요.”
왕가가 고개를 세게 내저으며 하는 말에 좌자전은 뜨끔해서 왕가의 등 뒤를 쳐다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못 하는 말이 없어.”
“못 할 말이 뭐가 있어요. 듣기 좋은 말을 들으려면 적어도 능 선생님처럼 모두에게 보너스 나눠 줄 정도는 되어야죠.”
왕가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뭐하고 하는 의사는 과연 아무도 없었다.
자리에 있는 의사는 대부분 일선 주치의와 레지던트, 그리고 아직 한 사람으로 셀 수 없는 훈련의와 실습생이라 능연과 비교하기엔 확실히 부족했다.
게다가 능연이 없는 한 달 동안 간호사들의 보너스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의사 보너스도 줄었다. 백 개 넘는 침대를 계속 굴리는 건 한두 가지 분야를 정통한 응급 의사가 채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응급센터 부주임 혹은 주임이라도 해도 매일 네 건 이상 수술을 도전할 사람이 없었다. 사실 그 정도가 되면 한 가지 수술로 그 정도 환자가 모일지도 의문이었다.
적어도 응급의학과에서 자주 보는 질병으로 채우기엔 부족했다.
“이제 됐네. 능 선생 돌아왔으니 모두의 보너스도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좌자전이 하하 웃으면서 화제를 슬쩍 넘겼다.
곽종군도 그 김에 앞으로 나섰다.
“오늘 회식이나 하지. 능연 선생 귀환 기념에 능연 선생이 북경에서 고령 간암 환자를 여러 건 성공적으로 끝낸 기념에 또······. 음. 또······. 음. 어쨌든 이렇게 하지.”
“소가 식당 갈까요?”
좌자전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거기에 다 들어갈 수 있나?”
“소 사장 입원 중입니다.”
곽종군이 의문이라는 듯이 하는 말에 안에서 걸어 나온 주 선생이 풀린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소 사장님이 왜요?”
“정기 점진.”
능연이 걱정되는 듯 묻는 말에 주 선생이 어깨를 으쓱했다.
“소 사장님 검진은 보통 사흘은 걸리니까.”
“소 사장님처럼 다들 열심히 건강 검진받으면 우리 일이 확 줄겠네요.”
“아까는 일이 없다고 투덜댄 것 아니었나?”
옆에 있던 의사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곽종군이 툭 내뱉었다. 다른 의사는 다정하게 대하는 법이 없고 가부장적으로 ‘자식은 욕하면서 키우는 거야!’ 방안을 채택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던 의사들이 웃음을 거두고 고분고분한 고양이처럼 굴었다.
“성원으로 가지.”
곽종군이 매우 빨리 결정을 내렸고 의료진들이 순간 박수를 쳤다.
“멋지십니다!”
“나 새우 먹을래! 한 손으로 잡히지도 않는 그런 거!”
“출혈이 크실 텐데요!”
사실 다들 맞장구치는 것이었다. 몇 년 전이라면 진료과 회식을 성원에서 한대도 다들 참여할지 모를 일이었다. 워낙 자주 있는 일이니까.
요즘은 회식에 이런저런 제한이 많아져서 성원 식당에 가는 게 대단한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것뿐이었다.
물론 그렇게 비싼 식당에 가면서 진료과에서 돈을 다 낼 수는 없다. 곽종군은 사무실로 돌아가 핸드폰을 꺼내 제약회사 두 곳에 전화할 것이다.
“됐어. 회식은 저녁이고 이따 남을 사람은 남아서 당직 서. 당직 서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나오고. 다른 사람들은 지금 빨리 일하고, 최대한 당직한테 일 남기지 말라고.”
도 주임이 슬렁슬렁 앞으로 나섰다. 이제 은퇴를 앞둔 주임 의사라, 접대에도 별 관심 없고 그저 사람 좋은 노인네 모습이었다.
응급센터 의료진은 삼삼오오 해산했고 할 일 있는 사람은 계속 일하고 없는 사람은 계속 멍 때렸다.
전칠은 궁금한 듯 능연을 바라봤다.
“오자마자 일하려고요? 한 며칠 쉬거나 어디 여행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제 다시 익숙해져야죠. 사실 수술실도 분위기 괜찮아요.”
“휴가 보내는 것보다 더요?”
능연이 싱긋 웃으면서 하는 말에 전칠은 손으로 머리를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를 바라봤다.
“수술실은 깔끔하고 공기도 좋고, 항온이거든요. 그럴만하지 않아요?”
지나가던 주 선생이 한마디 거들었다. 게으름 피우는 데 매번 핑계를 찾다 보니 이유를 붙이는 데 경험이 풍부했다.
잠시 생각하던 전칠이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일리 있네요. 휴가지는 대부분 멀고, 비행기 타도 몇 시간이나 걸리는데 같은 조건이면 차라리 수술실이 낫겠네요.”
“그죠, 그죠?”
주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이론을 마누라한테 얘기해야겠어요. 다음에 놀러 가자고 하면 이 얘기해 줘야지.”
좌자전은 바보 보듯이 주 선생을 바라보며 웃었다.
“나도 한때는 주 선생처럼 순진했지.”
“예?”“그랬다고.”
“안 통해요?”
“안 통해.”
주 선생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분고분 처치실로 돌아갔다.
병실 구역을 한 바퀴 휑 돈 능연은 미용실에 간다는 전칠을 배웅하고 옷을 갈아입고 수술실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주 선생이 얼굴을 찌푸리고 손을 씻고 있는 게 보였다.
“응? 능연? 하하하하.”
주 선생은 저절로 웃음을 터트리며 손도 씻지 않고 허리를 펴며 물었다.
“능 선생, 긴급이야. 안에 충수염 환자 있는데, 할래?”
“네.”
능연의 대답은 전혀 예상에서 어긋나지 않았고 뒤이어 세면에 앞에서 열심히 손 씻는 사람은 능연이 되었다.
주 선생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손 씻기를 포기하고 소독 수건으로 깨끗이 닦고 허리춤에 손을 댔다.
“능연, 드디어 돌아왔구나. 네가 없는 동안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너는 모를 거다.”
“네. 충수염 맞아요? 사진 찍었어요?”
“찍었어. 볼래?”
“수술실에서 보면 됩니다.”
손을 깨끗하게 씻은 능연은 수술실로 들어가 간단히 필름을 보고는 오랜만에 보는 소가복을 향해 마취해도 된다고 했다.
소가복은 인사를 하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능연은 양손을 세운 채 옆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소식을 들은 치프 레지던트 여원이 달려와 어시 준비를 했다.
능연이 돌아오자마자 하는 수술이 충수염이라니, 여원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받침대 하나 더 가지고 와.”
여원은 크게 한탕 할 기세였다.
곽종군도 느긋하게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는 바삐 움직이는 소가복이 남긴 둥근 의자에 털썩 앉아서 다년간 군의관 생활을 하며 훈련한 눈빛을 부릅뜨며 물었다.
“능연, 좀 쉬지도 않나? 그냥 한 번 둘러보러 온 거라면서.”
소가복은 눈이 파르르 떨렸지만, 늙은 군의관의 시선과 마주쳤을 때 그저 고개를 숙이고는 속으로 반성했다.
‘곽벼락이 그동안 수술실에 오지 않아서 방심했어. 능연이 돌아왔는데 안 올 리가. 이럴 때 의자에서 일어나다니, 과로사할 생각이냐, 나.’
“마침 충수염 환자가 있어서요. 개복 수술을 요청했다길래요.”
능연이 실수로 자기 얘기를 할까 봐 조마조마하던 주 선생은 몰래 한숨 돌렸다.
다른 사람은 농땡이 피우면서 잠시 즐긴다고 하지만, 주 선생은 평생 농땡이 피우면서 즐기는 게 꿈인 사람이었다. 지금 곽종군에게 걸린다면 다른 건 몰라도 오늘 밤 당직은 땅땅땅 확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밤에 환자가 없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 선생은 저도 모르게 기도를 시작했다.
“지금도 개복 요구하는 환자가 있어? 돈 때문에?”
곽종군은 그렇게 물을 뿐, 환자가 어디서 온 건지 묻지 않았다.
사실 수술실에 있는 의사는 뻔했고, 곽종군은 그저 묻기 귀찮은 것뿐이었다. 한 번 농땡이에 찌든 사람이 쉽게 돌아갈 리도 없고.
주 선생은 찔려서 다급하게 나섰다.
“딱 보니까 형편이 안 좋은 거 같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의료 보험도 없어요. 환자가 강하게 개복 수술을 요구해서 개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 이번만이네. 앞으로 의학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아니면 개복 충수염 수술은 최대한 안 하는 거로 하게. 환자가 고집을 피운다면 환자 체력이 된다면 다른 병원으로 보내던가 해.”
복강경 하 충수염 수술은 개복 이외의 방법이 모두 환자에게 유리했다.
곽종군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었다.
“우리 때는 돈 때문에 환자 쪽에서 싼 약이나 돈 덜 드는 기술을 요구하기도 했지. 음, 좋은 기억은 아니야. 그래도 그때는 말이야······.”
곽종군은 저도 모르게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능연은 조용히 모니터 기기 숫자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려 소가복을 바라봤다.
소가복은 이를 악물며 곽종군, 그리고 곽종군 엉덩이 밑에 의자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모니터링 기기를 힐끔 봤다.
“준비됐어. 심박 75, 혈압 112/80. 고혈압 환자인데 전에 치료한 적 없고 약도 안 먹었어.”
능연이 막 이어받은 환자인 만큼, 능연 들으라고 설명해준 것이다.
“수술 시작하죠.”
고개를 끄덕인 능연이 손을 뻗자 메스가 바로 그의 손에 올려졌다.
메스를 받은 능연은 가볍게 그어 동전만 한 크기의 절개구를 열었다.
복강경 시대 전, 개복 충수염 수술에서는 절개구 크기로 영웅을 논하곤 했다. 능연은 그런 방면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지만, 일반 의사가 하는 개복 충수염 수술보다는 절개구가 작은 편이었다.
수술 구역에 있지만 할 수술이 없던 의료진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었다. 고향에서 마실 나온 사람처럼 팔짱을 끼고 가슴을 편 채 수술을 구경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드디어 능 선생 수술을 다시 보는군.”
“돌아오자마자 충수염 수술이라니. 나라면 간 이하는 쳐다보지도 않을 텐데.”
“그래? 그럼 이거 대답해봐. 만약에 네가 드디어 장가를 간단 말이야. 상대는 심지어 미녀야. 그런데 조건이 있대. 그거 만질 수 있으면 결혼하겠다고. 그럼 어쩔래?”
“누구 거? 내 거? 아님 미녀 거?”
탁.
탁탁.
간호사는 타이밍 좋게 능연의 손에 기구를 놓았다.
수술실 분위기는 가볍고, 엄숙하고, 유쾌하고, 복잡해서 막 수술실에 들어온 사람은 간 이식이라도 하는 줄 알 것이다.
탁.
능연은 손을 뻗어 기구를 받고 또 내려놓고. 그의 표정도 간 이식 수술하는 사람처럼 진지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익숙한 생활이었다. 엄숙하고 긴장되고, 깨끗하고 정갈하고. 어쩌고저쩌고 할 여지도 없고 짜증 나는 사람이 옆에서 어슬렁거리지도 않고.
스크럽 간호사도 평소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협조했다.
사실 운화병원 응급센터 간호사 수준은 최근 1년 동안 상당히 높아졌다.
여러 그룹 중에 심지어 자발적으로 모여 동영상을 보며 학습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간호사들의 일하는 공간도 수다가 줄어들고 엄숙 진지한 분위기가 늘었다. 바로 능연이 좋아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간호사, 특히 스크럽 간호사들은 트레이닝 받고 수술 방식, 그리고 의사에 익숙해지면서 일정 레벨에 오르면 큰 폭으로 발전한다.
능연이 처음에 수술했을 때 기구 이름을 부르는 습관이 있었고, 지금은, 사실 지금도 명확하게 기구 이름을 종종 부른다.
그러나 운화병원에서 수술하는 기회가 늘어날수록 기구 이름을 부르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간호사들이 그가 자주 하는 수술 방식에 익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수술 습관에도 익숙해졌다. 충수염 같은 간단한 수술은 간호사가 초짜 의사보다 더 노련할 수도 있다.
옆에 있는 여원은 심지어 할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훅 당길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 능연이 환자의 피부를 자른 다음 복근, 지방층을 비활성 분리해서 직접 손으로 당기고 핀셋으로 집어서 바로 맹장을 잡아냈기 때문이다.
염증이 생기지 않은 충수염 수술에서 조금 까다로운 부분이 바로 맹장을 찾는 것이고, 이제 맹장을 찾았으니 기본적으로 게임 끝이었다.
발밑에 받침대 다섯 개를 본 여원은 이대로 끝내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닫을게.”
“여자 환자잖아요. 제가 닫을게요.”
능연은 니들홀더를 받아서 감장 봉합을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실을 정리해주는 여원은 변함없이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됐습니다.”
능연은 기구를 내려놓으며 수술 완료를 선포했다.
그때, 밖에는 아직도 소식을 듣고 속속 몰려드는 의사들이 있었다.
“역시 능 선생 수술은 보기만 해도 속 시원하군.”
“보너스 희망 있겠어.”
“앞으로 병실도 떠들썩해지겠네.”
총체적으로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능연이 돌아오기를 꽤 기대하고 있었다. 능연 같은 의사는 그의 대단함과 잘생김만 받아들이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의 대단함과 잘생김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의사들도 대부분 현실 교육을 받았을 테니 언젠간 고분고분해질 것이다.
“손 씻고 밥 먹으러 가세.”
능연의 수술이 순조로운 걸 지켜보던 곽종군 본인도 기뻐했다.
“앞으로 수술은 얼마든지 할 거야. 여긴 주 선생한테 맡기면 되네.”
곽종군은 능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의 등을 밀고 수술실에서 나갔다.
주 선생이 어리둥절해서 눈을 껌뻑였다.
성원 호텔에 예정보다 20분 늦게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의료진들이 속속 도착했다. 차를 가지고 온 사람, 얻어 타고 온 사람, 택시 타고 온 사람, 그리고 버스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진작 준비를 마친 식당 측에서는 즉시 음식을 주르륵 테이블에 올렸다. 제약회사 직원 둘은 각자 술 한 상자를 들고 와 시중들면서 술 마시고 싶어 하는 의사 곁에서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곽종군도 투명한 유리 주전자에 술을 담아서, 술을 따르고 잔을 비우며 즐거워서 어쩔 줄 몰랐다.
병원 시스템에서 외과 의사가 가장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족속들이었다. 술을 좋아하고 마실 줄도 아는 외과 의사는 많았고, 술을 안 마시고도 항상 몽롱한 마취의와 막상막하로 취해있었다.
제약회사 대표는 여러 유형이 있다. 함께 술 마시는 데 능통한 그런 유형은 이럴 때 재능을 대대적으로 발휘하며 평소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의사를 붙잡고 다음에 방문할 때는 까다롭지 않길 바라며 신나게 술을 마셨다.
“능 선생님, 한잔하실래요?”
가슴 큰 제약회사 직원 하나가 웃는 얼굴로 능연 곁에 앉아 자기소개했다.
“소금이라고 해요. 강소성 할 때 소, 풍금 할 때 금이요. 그리고······.”
“안 마십니다.”
능연은 여자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술 한 방울도 안 마시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소금 님은 매우 자신감에 넘쳐 술을 권했다. 그녀가 아는 외과 의사는 당직만 아니라면 다들 한두 잔 정도는 같이 마셨다.
의사는 사실 매우 억압받는 직업이라, 부주임이 되어도 마음이 우울해서 사람 괴롭힐 때나 조금 괜찮아질까, 좀처럼 마음을 편하게 먹지 못했다
진료과 주임이 되면 대부분 인생을 즐겼다. 의사가 일단 진료과 주임이 되면 정말로 모든 걸 견뎌낸 셈이니까. 하루 만에 사람이 달라져서 부주임일 때는 순하던 사람이라도 술 마실 때 매우 호탕해진다.
능연의 눈빛은 매우 평온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의사가 되었고, 수술은 그의 취미이며, 술은······.
능연은 거절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살짝 고개를 저었다.
소금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잔을 치켜들고 간드러지게 웃었다.
“능 선생님. 기회 주세요. 제가 서비스할 기회요.”
“아. 갯가재 껍질 잘 벗기세요?”
능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고 물었고 소금은 멍해졌다.
“아마······도요?”
능연이 갯가재를 바라보았다.
갯가재는 맛있지만, 껍질이 딱딱해서 손가락 다칠 수가 있다. 외과 의사는 손가락 보호를 당연히 해야 했다.
소금은 입술을 악물면서 의연하게 갯가재를 집어 들었다.
“미안하지만 장갑 낄래요? 다 까면 깔 줄 모르는 사람에게 주시면 됩니다.”
능연은 갯가재를 집어 들어 능숙하게 껍질을 벗겼다.
가재를 든 소금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곁에 있던 좌자전이 손을 들었다.
“저요, 저 껍질 못 깝니다.”
“저도요.”
연문빈도 소금을 슬쩍 보고는 손을 들었다.
위에 구멍이 나도 운화병원 응급센터를 공략하려던 소금은 묵묵히 손에 든 술잔을 내려놓고 미소 지었다.
“다들 갯가재 좋아하시니, 껍질 벗겨 드려야죠.”
이어서 소금은 자기 회사 장갑을 끼고 갯가재 껍질을 열심히 벗겼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한 접시, 두 접시, 세 접시.
좌자전과 연문빈뿐만 아니라 테이블에 앉은 사람 모두 껍질 벗긴 갯가재를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몇 근이나 더 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저녁 내내 갯가재 껍질을 벗긴 소금은 위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저녁 내내 갯가재 껍질을 벗긴 것만큼 손이 아팠다.
옆에 있던 제약회사 직원은 두 번이나 토하고 돌아와서 부러운 듯 말했다.
“신세대라더니, 요즘 대단한 제약회사 직원은 두 종류네요. 술 잘 마시는 사람, 갯가재 껍질 잘 벗기는 사람.”
그 말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고, 흥건하게 취한 곽종군이 가장 크게 웃었다.
소금은 내심 한숨 돌렸다. 어쨌든 목적을 달성하면 그만이었다. 위출혈이든 손가락 출혈이든 차이도 없고.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룸 안에 울려 퍼지자 순간 고요해졌다.
곽 주임은 본인의 BGM 속에 미소 지으면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더니 몇 번 ‘응응’거리는 사이 표정이 심각해졌다.
“바로 가서 준비하지.”
전화를 끊은 곽종군은 조금 전보다 긴장 풀린 모습으로 일단 물을 마셨다.
“능연, 유 원장이랑 친분 있는 사람 둘이 손가락이 끊어졌다네. 돌아가서 수술하겠나? 싫으면 수부외과에 보내고. 자네도 오늘 고생했는데 오늘은 가서 푹 쉬고 내일 다른 손가락 찾아주지······.”
병원에 부원장은 여럿이고, 응급센터 주임인 곽종군은 주 원장 외에 다른 부원장은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다.
능연은 시간을 보고는 단호하게 가서 하겠다고 했다.
수술 끝내고 편안하게 자면 될 시간이라 능연이 좋아하는 리듬이었다.
“나도 같이 가자.”
좌자전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운화병원으로 돌아왔으니 경쟁이 시작될 테고, 자신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좌자전은 다른 젊은이보다 더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능연은 좌자전의 다크서클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마 선생님 병원에 있을 겁니다. 우리 수술실 가서 준비하라고만 말씀해주세요.”
마연린은 응급의학과로 오기로 결정됐지만, 아직은 정형외과 사람이라 응급센터 회식엔 참석하지 않았다. 확실히 발령 나기 전엔 거리를 둬야 수술할 때 불러오기도 쉽고.
좌자전은 자신은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휙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휘청거렸다.
곁에 있던 의사들이 냉큼 그를 부축하고는 재빨리 진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중풍?”
“뇌출혈? 아닌데, 눈 좀 봐.”
“심장 터졌나?”
“단순히 다리 저린 거 아니고?”
좌자전은 필사적으로 눈을 떴다.
“난 괜찮습니다.”
“조심해야지.”
“좌 선생, 나이도 있는데 조심하게. 수술 같은 거 너무 욕심내지 말고.”
“맞아요. 북경에도 한참 있었잖아요. 좀 쉬세요.”
좌자전은 입가를 실룩거리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다 압니다. 그렇지만 유 원장님 연줄이라면서요. 어쩌다 두 분이 같이 손가락이 잘렸답니까?”
마지막 말은 곽종군을 향해 물은 것이다.
그 옆에서 종알종알 대던 사람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잠시만, 한번 물어보겠네.”
곽종군도 그제야 깨달은 듯했다. 응급의학과에 원플원 혜택도 없는데, 유 원장이 갑자기 단지 환자를 둘이나 보내다니,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잠시 후, 곽종군의 시선이 위챗에서 떨어져 모두를 바라봤다.
“게임을 하다가 같이 부러졌다고 하네.”
“무슨 게임을 그렇게 격렬하게 한대요.”
선임 레지던트 정배 님이 부주임급 되는 농도의 야한 이야기할 기세로 말을 꺼냈다.
“동서 셋이, 하나는 웅대, 하나는 웅이, 하나는 대머리강을 맡았다는군.”(*중국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곰과 사람.)
잠시 침묵하던 곽종군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전기톱으로요?”
그 자리에 있는 의사들도 대부분 아이가 있어서 본능적으로 흠칫하며 물었다. 그러자 곽종군이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까지 폭력적은 아니고. 도끼라네. 나무 베는 그런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