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470화 (451/877)

‘웅대’와 ‘웅이’가 서로 아무런 말 없이 나란히 처치실에 누워있었다.

두 사람 모두 ‘곰껍질’을 입고 있었고 옆에 ‘대머리강’도 있었다.

눈을 멍하니 뜬 ‘대머리강’도 후회 가득한 표정이었고, 다친 사람의 손을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달려온 세 자매도 빛을 잃은 얼굴로 모두 모여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마연린이 손에 사정 동의서 같은 문서를 잔뜩 들고 왔다. 여원도 그 뒤를 따랐다. 치프 레지던트라 항상 병원에 있었는데 다만 아무도 못 볼 뿐이었다.

“누구부터 수술할지 결정하셨습니까? 아니면 다른 의사가 같이 진행할까요?”

마연린은 본인도 묻기 싫은 질문을 했다. 전 같으면 좌자전이 이런 일을 모두 했을 텐데, 그때는 몰랐지만 직접 하려니 정말로 껄끄러웠다.

“그게······. 그건 아직 생각 안 했어요.”

큰 언니도 어쩔 줄을 몰랐다. 이런 문제는 가족 싸움이 되기 쉬웠다. 그는 다친 사람들을 번갈아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이 결정해 주시면 안 되나요? 외국에서는 이런 건 의사가 결정하던데요.”

“환자 상태에 따라 우선 순위를 정할까요? 그럼 두 명 모두 능 선생한테 수술받겠다는 거네요? 아니면 심한 사람을 능 선생이 하고 좀 덜한 사람을 수부외과 다른 선생님한테 넘길까요?”

마연린은 선택을 세분화했지만, 선택권은 여전히 보호자에게 넘겼다.

중국풍 의학 전통이었다.

국내에서 의료 결정권을 쥐고 있는 건 환자 본인이 아니라 보호자였다. 의사를 포함해서, 어떨 때는 의료 방안까지 환자 보호자의 의견을 존중해서 수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환자 보호자가 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마연린은 더욱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는 그저 옆에서 어서 결정 내리셔라, 빨리 수술하는 게 좋다고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유 원장한테 전화 좀 해볼게요.”

큰 언니는 ‘대머리강’의 부인이라, 사람을 다치게 한 입장으로서 도저히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웅이’ 역할을 한 셋째 딸 남편이 그때 헛기침하며 나섰다.

“처형, 걸지 마세요. 아까 의사 선생님도 다 결정해 주셨잖아요. 제가 나중에 할게요. 형님부터 하죠. 능 선생님이 하는 게 좋겠어요.”

웅이가 고개를 돌려 마연린을 바라봤다.

“몇 시간 차이 나도 큰 차이는 없죠? 그죠?”

“위험은 분명히 더 커집니다.”

마연린 역시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차이가 나면 그때 가서 환자와 환자 보호자가 잡아먹으려고 들 텐데, 얼마나 억울하냔 말이다.

“조금 더 위험하면 위험한 거죠, 뭐. 됐어요. 형님부터 합시다.”

웅이는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셋째 딸은 다른 사람들을 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웅대를 연기한 둘째 남편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내가 손 위인데 모범을 보여야지. 내가 나중에 할게.”

“먼저 하세요. 디자인하는 사람인데 손가락 중요하잖아요.”

“자네도 게임 자주 하잖나. 손가락이 안 좋으면 망한다고.”

“됐습니다. 먼저 하세요!”

“다들 조용히 해.”

대머리강이 ‘후욱’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나 때문이니까, 이렇게 하지. 동전 던지자.”

그 말에 큰 언니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도끼를 번쩍 치켜들었다.

“야, 이 미친놈아.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애들하고 같이 놀아 주랬더니 10킬로 도끼를 휘둘러? 뭐? 동전? 너만 똑똑하냐? 진짜 머리를 쪼개 버리고 싶네. 안에 똥 들었냐?”

대머리강을 연기한 큰 형부가 목을 쑥 움츠렸다.

“똥은 아니죠.”

여원이 대머리 강 옆을 지나며 판단을 내렸다.

가족들이 어리둥절해서 여원을 바라보자 마연린이 냉큼 끼어들었다.

“자자, 이제 수술실 들어가야 합니다. 계속 이러다간 수술 하나도 못 끝내요.”

가족들은 그제야 깨달은 듯 다시 순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한테 자문을 구해 고른 병원과 의사인데 또 바꾸기는 싫었다.

결국 웅대가 먼저 수술실로 들어갔고, 웅이도 수술 준비하러 가서 마연린이 곁에서 데브리망을 우선했다.

능연은 수술실에 앉아 현미경을 조절하면서 현미경 세상에 빠진 듯이 환자의 미세혈관을 가지고 놀았다.

반 마취 상태의 웅대는 당연히 더 긴장해서 능연을 바라봤고, 뭐라고 말을 걸고 싶었지만, 방해될까 봐 그러지 못했다.

그때 능연이 고개를 들었다.

“도끼가 꽤 날카로웠군요.”

“응, 운이 좋았어.”

곁에 어시로 있던 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웅대는 속으로 껄껄 웃었다.

운이 좋아? 운이 좋은데 동서한테 도끼로 까이냐?

안타깝게도 두 의사 모두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웅대 얼굴은 커다란 시트 아래 덮여 있었다.

그때 여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오늘 갯가재 맛있더라.”

귀를 쫑긋 세우고 정보를 수집하던 웅대는 갯가재는 무슨 암호일까 생각했다.

“그러게요. 신선하더라고요. 부두에서 바로 잡아 보낸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신선해야 맛있죠.”

곁에 있던 간호사도 한마디 했다.

웅대는 참지 못하고 ‘으음’ 소리를 내서 좀 집중하라는 표시를 했다.

이제 치프 레지던트 생활 일 년 가까이 한 여원은 모니터를 먼저 힐끔 보고 모든 게 정상인 걸 확인하고 난 다음 고개를 돌려 시트를 걷고 환자를 바라봤다.

“제 손 어떻습니까?”

“앞으로 한 시간 정도?”

여원은 머리를 시트에서 빼내고는 능연을 따라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에 간호사에게 주의사항을 잔뜩 들은 웅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이 훅 흘렀다.

의사와 환자로서 한 시간은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 선생님, 나머지 이어서 하세요.”

능연은 재빨리 두 손가락 봉합을 마치고 바로 옆 수술실로 넘어갔다.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의료진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옆 수술실에 웅이 수술은 데브리망 부분은 이미 마연린이 끝내 놓아서 능연은 좀 더 손쉽게 수술을 진행했다.

마연린도 곁에서 진지하게 협조하며 관찰했다.

능연이 자리를 비운 동안 마연린은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도 대부분 시간에 수술 연구를 했다.

능연은 균일한 속도로 차근차근 수술을 완성했고, 역시 한 시간 정도에 마지막 매듭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에서 제시어가 튀어나왔다.

- 퀘스트 완성: 신인 훈련

- 퀘스트 목표: 의사의 기술 등급을 UP 시켜라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

능연은 멍해졌다가 그제야 깨달았다. 이번 임무, 마연린이 먼저 끝내버린 것이었다.

마연린이 능연 밑에 있던 시간이 좌자전보다 더 길었다.

처음에 탕법 봉합할 때부터 마연린은 능연 조수를 했었다. 나중에 아킬레스건과 단지 이식을 할 때는 같이 수백 건 수술했다.

마연린이 따라 들어간 수술은 다른 의사가 레지던트 기간 동안 들어간 수술보다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마연린에게는 훈련의라는 신분의 단점이 있었다. 끌어주는 곽종군이 있는 능연과 달리 그저 평범한 의사고 게다가 정형외과에 묶인 일반 훈련의인 마연린은 응급의학과 능연을 따라 배우는 데 적잖은 트러블이 있었다.

지금 삼갑병원엔 훈련의와 실습생이 정직 의사보다 많아서 배울 기회가 크게 줄었고, 공짜 인력은 크게 늘었다. 운화병원 같은 병원엔 훈련의와 실습생이 천 명 가까이 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계약도 없는 단순 훈련의와 실습생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마연린이 독립 수술을 할 기회를 얻는 건 매우 어려웠다. 능연 조수라고 해도 아주 가끔 기회가 있었고 그에 비해 비슷한 시간에 능연의 조수가 된 연문빈은 더 어려운 탕 봉합도 벌써 단독으로 하기 시작했다.

마연린의 유일한 장점은 다른 팀원보다 조금 젊다는 것이었다. 능연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젊음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오늘, 홀로 한 달 동안 학습하다가 다시 능연과 수술을 했고, 특히 노련해질 대로 노련해진 단지 이식 수술이라 오히려 돌파한 느낌이 들었다.

웅이의 데브리망을 할 때도 너무 숙련되어서 머릿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내가 집도의라면’을 가정해서 어떻게 할지 상상했었다.

능연이 집도해서 수술할 때, 마연린은 능연이 조작하는 걸 보면서 중요한 부분이 놀랍게도 본인이 생각한 것과 비슷하다는 걸을 깨달았고 순간 자신감이 크게 늘어서 능연 대신 매듭을 지을 때도 본인의 기술이 크게 늘었다고 생각했다.

능연이 보기에도 마연린은 분명 기술이 조금 늘었다.

시스템 기준에 따르면 마연린의 단지 이식 기술 수준은 아마도 입문에서 전문가급으로 올랐을 것이다.

전문가!

듣기에는 고작 입문보다 한 단계 오른 것 같아도 경쟁으로 보면 99% 의사들을 PK시킬 수 있었다.

운화병원 같은 병원에도 선임 주치의가 전문가급 기능이 된다면 괜찮은 편이었다. 연차로 승진한 대다수 주치의도 4년 차, 5년 차가 되어도 전문가급 기능 하나 터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첫 번째 기말고사에서 90점을 받는 아이도 있고, 평생 90점을 단 한 과목에서도 못 받는 아이도 있는 법이니까.

완벽하지 못한 의사도 많고,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의사도 많다.

그러나 어쨌든 의사가 한 가지 기술을 정통하면 입신할 기본은 갖춘 셈이다.

단지 이식이라는 기술이 공립 병원에서는 대접받지 못한다고 해도, 의학이나 의술이란 대접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다.

사람의 손가락은 부러질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단지 이식이 필요하다.

병원과 사회에서 아무리 심장 이식을 대우한다고 해도 이식할 심장이 없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손가락이 부러졌을 때, 단지 이식 기술을 아는 의사가 필요하지 그것보다 훨씬 대단한 의사가 필요하지는 않다.

능연은 눈을 치켜들고 마연린을 바라봤다.

“슬슬 단지 이식 집도해 볼래요?”

“응? 그래도 돼?”

마연린은 흥분해서 일주일 동안 마누라 시중드느라 생긴 피로감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 한 번 해보세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목욕을 하고 중급 보물 상자를 열었다.

푸르른 불빛 사이로 ‘가상인간: 4시간 증가’라는 제시어가 나타났다.

“나쁘지 않아.”

가상 인간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던 능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상 인간은 용도가 매우 많았다. 허투루 낭비하지만 않는다면, 1분만 사용해도 환자가 1년은 제대로 살게 해줄 수 있다. 어려운 케이스는 5분, 10분 사용해서 환자 생명을 5년에서 10년 늘일 수 있다. 게다가 꽤 퀄리티 높은 생활을 준다.

의사로서 이런 시스템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방면으로 가상 인간은 연구에 쓸 수도 있다. 능연에게 충분한 시간과 가상 인간이 있다면 일단 가상 인간으로 맨손 시험해서 답을 얻고 얻은 답으로 원인을 찾으면 많은 것이 쉬워진다. 갈릴레이가 그랬던 것처럼.

옷을 갈아입고 나온 능연은 마연린이 벌써 나와서 적극적으로 환자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 봤다.

수술이 순조로우니 가족 면담도 즐거운 과정이 된다.

능연이 다른 방향에 있는 출구로 나갔더니 대머리강이 홀로 외롭게 서 있었다.

저쪽에 마연린 앞에 웅대, 웅이와 대머리강의 아내가 얼싸안고 울고 있었다.

응급센터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또 다른 두 가족이 부러운 듯, 혹은 짜증 나는 듯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 세세한 부분을 알아차린 능연은 더는 보고 싶지 않아졌다.

“능 선생님. 차 키요.”

능연이 나오는 걸 본 접수대 어린 간호사가 냉큼 그의 차 키를 들고 다가갔다.

“수간호사님이 아는 서비스 센터가 있어서 차를 보냈었어요. 오일도 갈고, 기름도 가득 채웠어요. 그리고 열흘마다 한 번씩 차 끌고 휙 돌기도 해서 차 상태도 문제없을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능연은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수간호사님한테 바로 돈 보낼게요.”

“아니에요.”

간호사가 바로 말렸지만, 능연은 고개를 저으면서 바로 돈을 보내고 열쇠를 받았다.

“그럼, 능 선생님 조심해서 가세요. 아침에도 차 타고 오세요. 선생님은 너무 잘생겨서 자주 택시 타면 위험해요.”

간호사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눈은 점점 더 초롱초롱해졌다.

드디어 능연이 병원 로비를 떠났다.

간호사는 참고 있다가 꺄악 하고 소리쳤다.

“나랑 능 선생님이랑 말을 이렇게 오래 했어. 능 선생님 정말 예의 바르시고 통도 크시고 정말 좋다. 차도 되게 좋아. 일부러 자랑하려고 외국 투자차나 외제차를 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제타도 외국 투자차야.”

같이 접수대에 있는 간호사도 마찬가지로 눈에 별을 박은 채 양손을 가슴팍에 꼭 모아쥔 채 감동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그래도 저렴한 거니까, 외국에 돈 많이 안 들어가겠지. 아오, 능 선생님 너무 잘생겼어.”

능연은 자기 소형차 제타를 타고 제한 속도를 지키며 집까지 날아갔다.

차를 세우고 입구로 향했는데 문틈 사이로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능연은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가 정원으로 향했다. 운화의 밤이 참 조용하기도 하지.

능연의 뇌리에 바로 유사한 기억이 떠올랐다.

문 앞 기둥엔 먼지가 가득했고, 대문이 잠겨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물쇠까지 걸려 있었다.

방마다 깜깜했다.

능연은 말없이 정원으로 돌아가 좌로 세 걸음 옮겨 복도 아래 벽돌을 들어 올렸다. 역시나, 쪽지가 있었다.

열어보니 익숙한 능결죽체가 보였다.

-아들, 고향집에서 돼지 잡는대서 먹으러 간다. 연자한테 열쇠 있다. 제때 밥 먹으렴.

능연은 쪽지를 돌돌 말고는 창고 문을 열어 왼쪽 두 번째 보이는 큰 통에 집어넣었다.

종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밤늦은 시각에 유난히 똑똑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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