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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레이트 닥터-471화 (452/877)

다음 날, 능연은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 침대에서 게임 한 판 하고 일어나 죽을 끓인 다음 정원 청소도 하고 물도 주고 진료실도 정리했다. 그리고 이어서 원발성 담즙성 간경화 논문을 몇 편 보고 어슬렁거리는 사이 날이 밝았다.

하구 골목도 깨어나서 오가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해졌다.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생활해온 능연은 별 색다른 느낌도 없었다. 그는 편한 신발로 갈아 신고 열쇠를 챙겨 문을 열고 나가 유유자적 한 바퀴 돌고 손에 요우타오, 찐빵, 짠지와 훈둔을 들고 돌아왔다.

찐빵과 요우타오는 돈 주고 샀는데 훈둔은 길거리 입구 이모님이 억지로 챙겨준 것으로 능연도 결국 받아들고 돌아와 집 입구 노트에 적었다.

능결죽이 오래전부터 시행해온 ‘가정교육’이었다. 나중에 훈둔 파는 이모님이 진료소에 오면 자연스럽게 그 가격을 빼주는 것이다.

‘내 아들은 평생 돈 부족함 없이 산다’는 도평이 지금까지 관철해온 금전관념이고, ‘내 아들은 지금도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능결죽이 지금까지 관철해온 금전관념이었다.

능연은 급하게 진료소 대문을 열지 않고 정원에 앉아 훈둔과 짠지 찐빵과 요우타오를 펼쳐서 핸드폰에서 아무 X-ray를 꺼내 식사하면서 판독하며 느긋한 아침을 보냈다.

10시 좀 넘어서 진료소에 온 연자는 능연을 보고는 기뻐하며 그를 둘러업었다.

“연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다들 네 얘기 했어. 북경에 가서 수술하다니! 아, 맞다. 연아 마사지 팻말 걸까? 네 아버지가 이제 3위안 더 받아도 된다고 하던데?”

“일단 됐어요. 오늘은 게임 좀 하다가 오후에 책 볼 거예요.”

능연은 처마 밑 선베드에 누워 핸드폰을 꺼냈다.

“그거도 좋지. 사람 없으면 편하고.”

연자는 당연히 반대하지 않았고, 손에 커다란 물통을 들고 촤르륵 안에 있는 물을 모두 정원에 부었다.

“묘 선생님이 좋아하겠다. 완전히 미칠걸?”

묘 선생은 돈을 조금 더 벌기 위해 봉합을 철저히 연구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능결죽과 도평이 느긋하게 돌아왔다.

“아들! 아버지가 뭘 가지고 왔는지 와서 좀 보렴!”

능결죽은 여행 가방을 펼쳐서 늘어놓았다.

평범한 비행용 케리어였다. 공항에서 파일럿이나 스튜어디스가 자주 끌고 다니는 그런.

능결죽은 천천히 안에 물건을 꺼냈다.

가득한 생돼지 고기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때? 어때? 우리 고향 흑돼지란다.”

능결죽은 어깨를 으쓱하며 진지하게 고향 돼지고기를 소개하는 듯 상자를 가리켰다.

능연은 시커먼 여행 가방을 바라봤다. 가방에 언짢은 표정이 그려진 것 같았다. 기름진 돼지고기를 담았던 가방을 앞으로 멋있게 끌고 비행기에 들고 탈 수 있을까?

“오겹살 가지고 왔지. 그리고 갈비도. 맞다. 귀도 하나 가지고 왔다. 보렴, 한 마리에 두 개밖에 없는 거잖니.”

능결죽이 뿌듯한 듯 자랑했다.

“고향에 이제 우리 가족은 없다고 하지 않았어?”

“우리 직계는 없지. 그래도 네 증조할아버지부터 계산하면 할아버지의 숙부뻘인 분은 아직 건재하셔.”

능연의 질문에 대답하던 능결죽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이번에 그분이 우리를 초대했단다. 한번 오라고 말이야. 족보도 수정하고 어쩌고 그런다고.”

“너한테 진찰도 받고 싶으시대.”

도평이 조금 피곤해 보이는 모습으로 뒤에서 나와 한마디 하고는 눈을 깜빡였다.

“그 생각뿐이겠어요? 우리 초대하는 게 목적이었다고요. 돼지도 얻어먹었는데 좋게 생각해야지. 당신이 돼지 배를 좋아한다니까 사촌 고모님이 바로 배를 줬잖아요.”

“사촌 이모님이요.”

“아버지 쪽이니 고모죠.”

“본인이 이모가, 이모가, 이러시던데요?”

능결죽은 망설이다가 이따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웅 선생이 옆에서 나타나 돼지고기를 뒤적여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이거 우리 진료소 복지?”

“이럴 때는 사장이라고 부르는군요. 흥흥. 어느 부위로 드려요?”

“나는 나이 많으니까, 갈비로 하지.”

“그럼 두 근 가지고 가세요.”

능결죽은 저울을 꺼내 정밀하게 1,026그램을 재서 웅 선생에게 건넸다.

“흑돼지라 몸에 아주 좋다고요. 웅 선생님, 내가 준 고기도 먹었으니까 적극적으로 일 좀 해요. 996은 아니더라도 요즘 다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하루 이틀 더 출근하면 우리도 좋고 본인 미래 발전도 좋고.”

“나는 곧 70일세.”

고기를 받아든 웅 선생이 능결죽을 힐끔 봤다.

“의사는 나이 들수록 느낌이 생기지요.”

능결죽은 웅 선생을 툭툭치고는 연자와 묘 선생 줄 고기를 재서 상자에 담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이따 저녁에 홍소육 해 먹어야지. 좀 오래 삶아서.”

도평은 옷을 갈아입고 2층으로 올라가 차를 내리면서 능연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층엔 골목 사람들이 오가면서 수액도 맞고 2층으로 올라와 수다도 떨고, 오랫동안 그래온 것과 별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새로 리모델링한 하구 진료소엔 사람이 더 많이 들어올 수 있었고 환경도 더 쾌적했다.

능연은 사람이 제일 많은 시간에 게임 한 판 했고, 역시나 졌다.

집에 있는 느낌이 참으로 좋았다.

능연은 다음 날에도 아예 늦잠을 자고 오후까지 침대에서 뒹굴다가 병원에 가서 회진을 했다.

능연은 이번에 별 환자가 없어서 웅대와 웅이의 상처 유합 상황만 보면 됐다. 그리고 앞으로 할 간 내 담관 결석 환자 사전 검사를 하고 응급 수술 두 건 하고 나니 퇴근 시간이 되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 처치실로 나오던 능연은 문 앞 작은 의자에 앉아서 하염없이 응급실 방향을 바라보는 좌자전과 마주쳤다.

“능 선생.”

능연을 본 좌자전은 목을 돌려 인사했는데 몸은 여전히 응급실 방향으로 향해있었다.

“뭐 하세요?”

“오늘은 콜리스 골절이 한 건밖에 없었어. 운이 안 좋아.”

“곽 주임님이 환자 찾아준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아직 못 찾으셨겠지.”

좌자전은 주임에게 뒤집어씌울 수 없어서 냉큼 그렇게 설명했다.

“다른 병원에 연락하고 어쩌고 시간 걸리겠지. 며칠 기다리면 있을 거야. 아니면 오늘은 콜리스 골절 환자가 없거나.”

그가 이야기 하고 있는 사이 능연은 벌써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저녁부터 올 거예요. 가서 한숨 붙이시고 체력 챙긴 다음에 준비하세요.”

“아, 알았어!”

좌자전은 이제 훈련장에서 막 나온 경찰견처럼 바로 정신을 차렸다.

팔 하나, 둘, 셋.

콜리스 골절에 집중하기 시작한 후 좌자전의 머릿속엔 온통 갖가지 부러진 팔뚝뿐이었다.

창서성 유일한 응급센터 주임으로서 곽종군은 각지에서 상당한 환자를 모을 수 있었고, 특히 실력이 안 되어서 종종 큰 병원으로 트랜스 보내는 지방 작은 병원은 휘두르기 쉬웠다. 곽종군이 빈번하게 비용 감면 같은 방법을 써서 더욱 많은 환자를 끌어당겼다.

작은 병원 의사로서 본인이 하기 어려운 수술을 확실한 곳에서 받아 준다면 환자를 기꺼이 보낸다.

능력이 허락하는 한 의사는 어찌 됐든 환자가 가장 좋은 치료를 받기 원하니까.

그런 쪽으로 운화병원은 장점이 있었다.

의사도 입으로는 3급 진료제도라고 외치면서 정말로 의사가 필요할 때는 현지에서 가장 좋은 병원으로 간다.

곽 주임이 환자 범위를 창서성 전체로 넓히자 환자가 그야말로 끊이지 않았다.

일반인은 팔 부러진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매일매일 팔이 부러진다.

좌자전은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콜리스 골절 환자를 보면서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피어났다.

꿈이 이뤄지는 기분이 어떤지, 겪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좌자전은 정형외과 쪽을 제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킬레스건이든 단지 이식은 나이 든 좌자전은 탐탁해 하지 않았다. 현미경 수술은 듣기에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외과 계통에서 가장 바닥이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현미경 수술은 의사의 눈과 손에 달려서 의사는 죽을 것같이 힘들지만, 하필 현미경 수술은 소모품이 딱히 필요 없어서 의사가 따로 돈을 벌지도 못한다.

의사의 노동 강도를 요구하면서 수입은 높지 않다면, 있던 의사도 당연히 빠질 것이고 나중에는 들어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연문빈과 마연린이 ‘스포츠의학’을 꿈꾸면서 그쪽에 환상을 가졌다면, 올해 마흔셋인 좌자전은 그렇게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콜리스 골절만 할 수 있어도 위생병원에서는 강자 중의 강자였다.

좌자전의 기억 속에 당시 가장 대단한 동료도 영상을 판독할 때 자주 실수했다. X-ray는 괜찮았지만, 밖에서 누가 MRI라도 가지고 오면 전혀 읽지 못했다.

물론, 좌자전은 지금도 MRI를 읽을 줄 모른다. 그러나 콜리스 골절 처리는 이미 배웠다.

능연의 말대로 ‘입문급’이라고는 하나 좌자전은 그것만으로도 흥분했고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역시 나이 많은 의사가 좋다니까. 병원을 며칠이나 돌아다녔는데 웃는 얼굴로 대하는 건 그쪽뿐이요.”

맞은편에 앉은 노부인이 좌자전을 보더니 갑자기 한마디 했다.

싱글벙글하던 좌자전이 멍해졌다가 순간 알아차리고 다급히 대답했다.

“제가 웃으면 환자분도 웃고, 병을 고치지 못한대도 기분은 좋잖습니까.”

“그렇지요. 나는 이제 병 고친다는 생각도 안 해요. 그냥 기분이라도 좋으면 좋겠네.”

팔뚝을 내민 노부인은 담담했다.

좌자전은 다시 웃음을 지었다.

“치료 효과가 좋으면 기분이 더 좋겠지요.”

“치료할 수 있어요?”

“됩니다. 그냥 콜리스 골절인걸요.”

그런 대사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좌자전은 드디어 그렇게 말하고는 통쾌함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칠 수 있으면 됐지. 선생님이라면 믿어봅시다.”

기분이 좋아진 노부인은 곁에 있는 아들을 툭툭 쳤다.

“봤지? 좋은 의사란 이런 의사야. 알았어?”

“좌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훌륭한 의사시네요.”

아들은 온순하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옆에서 기다리던 다른 환자와 보호자도 하나같이 칭찬했다. 누구나 웃는 얼굴로 서비스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오늘 일반 의사들은 전혀 하려 들지 않고 할 생각도 없는 웃음 팔이를 좌자전은 열심히 하고 있었다.

“별거 아닙니다. 제가 원래 성격이 좋습니다.”

좌자전은 말을 골라서 환자와 소통하면서 치료하다가 뒤에 있는 능연을 앞으로 내세웠다.

“지금 제 기술은 다 능 선생한테 배운 겁니다. 훌륭한 의사라는 말은 능 선생한테 어울리는 말이죠.”

능연은 전방을 주시하며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환자와 보호자는 당연히 자기들을 더 살펴주는 좌자전을 더 좋아했다.

순식간에 처치실 분위기가 유난히 좋아졌다.

다음 날, 우승기를 들고 들어온 환자까지 있었다.

‘의자인심(醫者仁心: 자비롭고 정의로운 의사)’라고 적힌 글귀를 본 의사들이 부러워서 탐을 냈다.

우승기라는 게 돈이 많이 드는 건 아니지만, 생판 모르는 환자가 보낸 우승기는 자신에 대한 커다란 인정이었다. 주치의나 부주임이 되어서도 우승기를 못 받아 본 의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자기가 돈을 써서 거짓으로 만들 수도 없고.

좌자전은 우승기를 들고 사진을 여러 장 찍어서 SNS에 올리고 나서야 침착해졌다.

하루 바쁘게 움직이다가 밤이 되어 일선 의사 당직실로 돌아온 좌자전은 핸드폰 사진을 바라보며 열심히 연습했었던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푹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일하자.”

좌자전은 거울을 향해 다짐하고는 바로 꿈나라로 들었다.

새벽 5시, 벌떡 일어난 좌자전은 다급하게 세수하고 응급센터 처치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좌자전은 자기가 팀을 이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간 위풍당당한 모습을 상상했다. 그때가 되면 돈도 중요하지 않고 신분 지위가 중요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호응이.

“좌 선생님, 어서 옷 갈아입어요.”

주 선생이 부르는 소리에 좌자전이 꿈에서 되돌아왔다. 좌자전은 긴장해서 하얀 가운을 받아들고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바다로 가야 해요.”

주 선생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그도 새로운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고, 기운을 빠짝 집중하고 있었다. 평소에 나른했던 분위기는 싹 사라졌다.

좌자전은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바다?”

“배에 선원한테 문제가 생겨서 우리가 구조 지점까지 가야 합니다.”

주 선생이 잠시 말을 멈췄다.

“병원에 올 시간이 안 된대요. 배에 완벽한 수술실도 있다고 하고. 그래서 우리더러 와 달랍니다.”

좌자전은 예민하게 여러 세세한 부분을 그려냈다. 특히 주 선생의 태도가 좌자전의 마음을 애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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