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자전은 허둥지둥 주 선생을 따랐고 연문빈과 조낙의도 동행했다.
주 선생과 조낙의는 외출용 트렁크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 두 사람이 자주 쓰는 의료 기구가 든 걸 좌자전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출장 갈 땐 언제나 그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두 주치의에 레지던트 둘, 이론상은 응급 수술 두 건을 할 수 있고 다급할 때는 간호사까지 해서 세 건도 할 수 있다.
물론, 대형 응급 수술이라면 부주임 이상 의사가 있어야 한다. 주 선생과 조낙의가 해본 위급 환자는 드물었으니 밖으로 보내 연습을 할 리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좌자전은 차가 출발하길 기다렸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주 선생, 구체적으로 상황이 어떤 거야? 능 선생은?”
병원에 많은 의사 중에 좌자전과 연문빈을 보냈다는 건 분명히 능연과 협조하라는 뜻일 것이다. 좌자전은 자기가 단독으로 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미치지는 않았다. 다른 의사와 협력하는 것조차 그의 순서가 오려면 멀었다.
주 선생은 차 안에서 옷을 가다듬고 의자를 눕힌 다음 나른하게 대답했다.
“구체적인 상황은 모르겠고요. 능 선생은 첫 번째 증원 팀으로 나갔어요. 저희가 두 번째고요.”
“능 선생이 증원 팀 첫타라고?”
“첫 번째랬지 첫 타랬어요?”
주 선생이 이상하다는 듯 좌자전을 바라봤다.
“첫 번째 팀 앞에 긴급 구조팀이 있고 긴급 구조팀 앞에 긴급 보장팀이 있고 맨 앞에 선봉팀이 있죠. 첫 번째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좌자전은 멍해졌다가 갑자기 주 선생하고 대화하는 건 정말 괴롭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혼자 생각하는 게 낫지. 그러다가 갑자기 지금 이 말도 다 헛소리가 아닌가 싶어졌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좌자전은 더는 주 선생에게 이것저것 묻지 않았다.
주 선생은 미소 지은 채 창밖의 경치가 점점 황량해지는 걸 바라보다가 점점 점점 의식을 잃고 깊지도 얕지도 않은, 코를 골 듯 말듯 꿈나라로 들어갔다.
소형차는 매우 빠르게 그들을 부두로 데리고 갔고, 이어서 곧 배에 태워졌다.
“출발합니다.”
길 안내하는 젊은이가 무전기에 대고 몇 마디 했고, 잠시 후 선체가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기, 지금 무슨 일인지 아직 모르는데요. 아직도 비밀인가요?”
좌자전은 어딘가 불안했다. 병원에서 순조롭게 콜리스 골절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가버리면 새로 오는 콜리스 골절 환자는 모두 정형외과로 가버릴 것이다. 좌자전은 아무리 응급 출장이라고 해도 설명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알려드려도 상관없을 겁니다. 곧 뉴스에도 나올 거예요. 보원초 부근에서 화물선이랑 어선이 충돌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암초 주변에 있었는데 파도 때문에 부상자가 많이 생겼어요. 비행기는 환자 세 명밖에 보낼 수가 없어요. 나머지 부상자는 배로 왕복해서 육지로 오려면 늦을 텐데 마침 근처에 의료선이 있어서 의사랑 부상자를 그쪽으로 보내고 있어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좌자전의 안색이 진지해졌다.
“의료선이라면 그 배에도 의사가 있나요?”
“아마 모자랄 겁니다.”
거기까지 말한 젊은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좌자전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응급센터 사람이군요. 이럴 때 사회 책임을 져야지요. 보너스 받을 땐 신나고, 막상 쓸 일이 있을 땐 서로 미루고 그러면 안 되죠. 이 팀 책임자죠? 이것저것 묻지 말고 일이나 제대로 하면 됩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요.”
첫 마디부터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뭐라고 고쳐주고 싶어도 고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뒷부분에서는 자기가 팀장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조낙의나 주 선생이 나서 줄까?
결국 43세 레지던트 좌자전은 눈을 내리깔고 자기 아들보다 열 몇 살 많은 젊은이의 설교를 들었다.
좌자전을 힐끔 본 조낙의는 동정하는 마음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능연만 보면 눈에 거슬리는데 좌자전은 더욱 눈에 거슬렸다.
주 선생은 여전히 쓰레기 같은 모습으로 의자에 눕지 못해 안달이었고, 좌자전을 상대할 생각은 더욱 없었다. 젊은이 말 중에 맞는 말도 있었다. 누가 이것저것 물어보라고 했나? 알아서 뭐 한다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배는 항구를 떠나 깊은 바다로 점점 들어갔다.
우르릉거리는 발동기 소리가 좌자전의 귓가에 울렸다. 아까 청년의 훈계처럼 뇌리에 각인되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같은 시각, 능연은 우르릉거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보원초 80해리 떨어진 의료선에 내렸다.
운화 893이라고 붙은 의료선이 고요히 푸른 바다에 누워있었다. 하늘은 맑고 미풍이 살짝 불어와서 여기에 작은 섬이나 물고기가 있다면 그야말로 여행사 홍보 화면 같았다.
사실 주변 환경이나 풍경은 매우 멋졌다. 그러나 아무도 그 광경을 감상하는 사람이 없었다.
헬리콥터가 서서히 갑판 위에 내렸고, 곽종군은 서류 가방을 안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능연도 바짝 붙어 있었다. 그의 곁엔 곽종군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표정이 냉랭한 관원이 바람막이 차림으로 있었다.
“어떻게 됐나?”
“환자는요?”
능연과 바람막이 관원이 동시에 물었다.
“환자는 모두 갑판 아래층에 있습니다.”
이등항해사가 서둘러 달려와 능연과 곽종군을 데리고 길을 열었다.
바람막이를 입은 관원은 뒤에 남아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수술실 있나요? 상태는 어때요? 흔들리지는 않을까요?”
능연은 배 바닥을 밟으며 걱정되는 듯 물었다. 수술은 흔들림이 가장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만 흔들려도 혈관이 터질 수 있다.
이등항해사는 우선 곽종군을 한 번 보고서야 능연의 말에 대답했다.
“수술실은 갑판 아래 있습니다. 배에서 흔들림이 가장 적은 곳이죠. 현재 정박 위치는 폭풍 구역과 가장 먼 곳입니다. 오늘 낮은 수술하기에 조건이 괜찮은 편입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곽종군이 나서서 능연을 소개했다.
“능 선생은 우리 운화병원 응급센터 5개 치료팀 중에 능팀 치료팀장입니다. 독립해서 마친 수술이 천 건도 넘고요. 수술 성공률도 매우 높습니다. 실력도 좋고 고난도 수술을 완성할 수 있는 의사를 찾는다면 능 선생이 적격입니다.”
이등항해사가 바로 눈빛이 바뀌었다.
“수술 천 건이라니. 대단하군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혈액 더 가지고 와!”
앞쪽 복도에서 갑자기 커다란 고함이 들렸고, 간호사가 울면서 뛰어나왔다.
수술실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사이, 바닥에 핏자국이 보였다.
“바로 수술실로 가죠.”
능연은 더 질문하거나 기다릴 생각 없이 바로 수술실로 향했지만 이등항해사가 그를 막았다.
“능 선생님, 잠시만요. 수술실에 지금 수술이 끝나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능연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바로 수술실 문을 밟아 열었다.
문이 열린 몇 초 사이에 능연은 이미 수술실 안이 제어를 잃은 상태임을 알아차렸다.
통에 피가 얼마나 가득 찼는지 몰라도 바닥에 널린 거즈만 봐도 환자의 목숨이 위급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혈이 안 되는 상태는 큰 병원이 작은 병원보다 훨씬 많이 겪는다.
작은 병원에서는 위급 수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들의 리스크 감당 능력도 떨어진다.
사실 작은 병원에서는 거의 죽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대형 삼갑병원에서는 환자가 죽는 것도 정상으로 간주했다.
지혈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병원 의사는 대량 출혈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환자를 트랜스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큰 병원에서는 대량 출혈은 수술실 사망의 천적이었고 능연은 달마다 한두 건 구원 수술을 한다.
눈앞의 상황을 본 능연은 당연히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수술실에서 바삐 움직이느라 정신없던 집도의 임홍후는 곁눈으로 슬쩍 낯선 하얀 가운 입은 사람인 걸 보고는 민간 의사임을 알고 바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도움 필요 없어요.”
군의관 시절을 지냈던 곽종군은 그 모습을 보고 바로 집도의가 폭발 직전임을 깨달았다.
물론, 수술이 이 정도가 되면 공립병원 일반 의사도 폭발 직전이 된다. 다만, 군대에 있는 의사 성격이 훨씬 불같을 가능성이 있다.
곽종군은 목을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능연, 도움이 필요 없다니 우린 나가세. 여기 수술실 하나 더 있을 걸세. 먼저 가서 분위기 좀 보고······.”
능연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보다가 임홍후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고 욕하려는 순간 그제야 곽종군을 따라 수술실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손을 씻으러 갈 생각이었고 나가면서 “환자 곧 죽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곽종군은 다급해졌다.
“출혈 포인트만 찾으면 돼. 수술 중에 대량 출혈이 일어나면 위급해 보이지만, 지혈만 하면 괜찮아. 능연, 자네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나가세.”
“방향이 틀렸습니다.”
능연은 아주 직접적으로 말했다.
거의 폭발 직전이던 임홍후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탁하고 손에 든 모스키토 포셉을 던지며 고함쳤다.
“여기는 구조 현장입니다. 멋진 척하는 곳이 아니라고요. 왕 간사님, 뭐 하는 겁니까? 적당한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방해할 사람을 구해오는 건 아니잖습니까? 이게 얼마나 긴박한 구조 현장인······.”
“비장이 출혈 포인트일 겁니다.”
능연은 상대가 쏟아놓는 말을 자르고는 손을 씻으러 밖으로 나갔다.
배 위의 수술 구역은 매우 단순해서 운화병원 응급의학과 수술 구역과 비교할 수 없었다. 층류 설비도 없고, 층고도 낮고, 더욱이 면적은 운화병원 응급실 절반 정도였다. 다만 있어야 할 설비는 그래도 상당히 갖춰져 있었다.
수술실 환경은 2급 병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움직이는 선박임을 고려하면 매우 괜찮은 편이었다.
한편, 공간을 절약하기 위해 수술 구역 동선은 문을 나와 몇 걸음 만에 세면대가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었다.
임홍후는 상당히 언짢아서 능연의 등 뒤에 대고 고함쳤다.
“비장 출혈? 비장 출혈을 누가 못 찾는다고. 비장에 출혈이 많은 걸 누가 몰라. 아까도 찾았었다고.”
그는 뜨끔함을 감추려고 큰 목소리로 욕을 하고 또 구원팀 간사에게도 욕을 퍼부었다.
수술 중 출혈은 외과 의사에게는 위협이었다. 아무리 세밀하게 대비해도 별 희한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외과 의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확률을 낮추고, 치명적인 유형이 아니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아직 마흔이 되지 않은 임홍후는 벌써 여러 가지 수술 방식을 장악했고, 여러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술 중 출혈 경험은 턱없이 부족했다.
눈앞의 환자만 해도, 임홍후는 벌써 15분 이상 출혈 포인트를 찾고 있었다. 외과 의사로서 자신감이 깎여 거의 극한에 이른 상태였다.
“모스키토 포셉.”
임홍후는 으르렁거리며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환자 복강에 손을 넣을 때, 저도 모르게 비장 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복강 검사를 시작할 때 이미 비장은 검사했다. 그때 출혈이 없었는데 지금 다시 검사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시간적으로도 이런저런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임홍후가 여기저기 살피는 동안 출혈은 확실히 줄었지만,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출혈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치익.
능연이 다시 수술실 문을 밟고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수술대 맞은편에 가서 섰다.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 기술을 통해 능연은 이미 출혈 방식과 위치를 판단했다. 그러나 확실히 하기 위해 가상 인간을 불러 십 초 정도 사용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능연은 연달아 두 번 테스트하고는 가상 인간을 거뒀다.
“제가 해봐도 될까요?”
임홍후의 조작 면적이 너무 크고 수술실 공간이 넓지 않아서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고서는 바로 손을 넣을 수 없었다.
임홍후는 침착해진 상태였다. 화도 낼 만큼 냈고, 긴말하기도 싫었다.
“잠시만요.”
마찬가지로 긴말을 늘어놓을 생각이 없던 능연은 수술대 앞으로 걸어가 다시 자세히 관찰한 다음 바로 손을 환자 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임홍후는 잠시 후에 호통칠 준비를 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잠시 후, 환자 복강 내 고인 피를 석션으로 빨아 당기니 맨눈으로 봐도 피가 줄어 있었다.
아까도 석션기는 사용했지만, 환자가 계속 피를 흘려서 그렇게 티가 나지 않았었다.
임홍후는 바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시발.”
임홍후는 온몸이 경직된 것처럼 능연의 손과 팔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능 선생님은 저희가 모셔온 전문가입니다. 국내 유명 전문가고요.”
욕을 먹어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젊은 간사가 아까 받은 모욕을 생각하며 이때다 싶어 능연을 추켜세웠다.
임홍후는 안색이 흐려진 채 능연의 팔을 바라보다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미안하지만, 서둘러 수처하시죠.”
능연이 고개를 들어 임홍후를 힐끔 봤다. 손을 환자 배에 넣고 있는데, 눈앞에 이분은 보기만 하고 손을 놀리지 않는다니. 그러라고 이러고 있는 건 아니란 말이다.
“나······.”
임홍후는 입을 열었다가 말이 나오지 않아 그대로 다물었다. 아까 너무 까칠하게 굴고 수술실에 있는 모든 사람한테 밉보인 바람에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없으니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임홍후는 능연의 도움으로 복강을 넓히고 다시 출혈 포인트를 찾아 봉합하는 방법으로 출혈을 막았다.
능연이 환자 배에서 손을 뺐을 때, 임홍후의 얼굴은 원숭이 엉덩이보다 더 빨갰다.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임홍후는 한참을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겨우 한마디 했다.
곽종군은 능연을 힐끔 보고는 헛기침하며 사람들이 모두 들을 만한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호적으로 대하게.”
능연은 우호적이라는 정의를 자세히 생각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수준으로 출혈 포인트를 못 찾는 건 당연합니다. 미안할 거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