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른다섯인 임홍후는 의료선 ‘운화893’의 상주 의사이자 기지 병원의 선임 주치의였다.
공평하게 말하면, 임홍후는 실력이든 경험이든 중상 수준이었고, 그건 운화 시 일반 선임 주치의 수준이란 말이었다. 예를 들면 조낙의 정도? 그러니 부족한 건 아니었다. 운화병원은 지역 정상급 병원이고 창서성 각 병원 중의 실력 있는 병원이니까. 임홍후가 의료선에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서 갖가지 중요 임무를 한다는 건, 비슷한 나의 의사 중 1%가 아니라면 그런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은 젊은이에게 비우호적이었다.
다른 직업에서 35세까지 일한다면, 다는 아니라도 그중 실력자는 주축 소리를 들을 것이다. 같은 동종업계에서 실력자를 뽑는다면, 35세 정상급 종사자는 인맥이나 사회적 요소를 제외하고 오로지 기술만 따지면 분명히 상위에 랭크될 것이다.
그러나 의사 업계에서는 35세는 고작 출발 단계에 불과했다.
임홍후가 재능있고 지식도 있고 배움을 위해 줄곧 노력하면서 기회도 적잖게 얻고 경험도 많이 쌓았다고 해도, 전체 의사 체계에 던져 넣으면 여전히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의 비교 상대는 같은 35세가 아니라 똑같이 노력하고 더 많이 축적한 45세, 55세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업계는 35세부터 45, 그리고 55세가 되면 등 떠밀려서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이 오르막길을 걷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의사 업계는 주임이 되기 전까지는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임홍후의 기술은 정말이지, 눈에 띄기 어려웠다.
의료선에는 젊은 상주 의사가 필요해서 임홍후를 선택한 거지, 기지 병원 다른 의사보다 우수해서가 아니었다.
비슷한 선에서 비교해보면 조낙의급 의사는 실력만 따지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고, 외래 진료일이 되면 ‘일반 외래’ 앞에 앉아 환자를 기다리는 초짜 의사에 불과했다.
능연은 출장 수술 때, 이런 수준의 주치의를 얼마나 불러다 훅을 잡게 했는지 모른다. 임홍후 기술에 대한 평가는 중립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다지’라는 말이었다.
임홍후의 안색이 흐려졌다.
조낙의 같은 주치의에 비해 임홍후는 사실 수에 밝은 사람이 아니었다. 일 년에 반은 바다에서 보내고 나머지 반은 트레이닝에 쓰는 임홍후는 병원 시스템에 파고드는 기간이 사실 그렇게 길지 않다.
병원 안에서 상급 의사를 마주하는 그런 거리감을 임홍후는 지방 병원 의사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덜 느꼈다.
평소에 그가 마주치는 질환도 사실 상대적으로 단순했다.
상급 의사와 부딪히는 시간도, 하급 의사가 필요한 시간도 적어서 임홍후는 자신감이 넘치는 편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능연을 노려보고는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능 선생이라고요? 내 수준이 이래서 그거참 걱정스럽겠군요.”
능연은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력 없는 의사를 많이 만나서 익숙했다.
그러나 임홍후는 그런 능연의 미소에 익숙하지 않아서 참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예, 좋습니다. 님이 수준이 높으니 잘 가르쳐 주시길 바랍니다.”
곽종군은 속으로 망했다고 생각하며 다급하게 능연을 불렀다.
능연은 곽종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임홍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까 수처에는 큰 문제 없었습니다. 혈관 수처가 거칠긴 했지만, 그건 더 연습해야 하고요. 복강 내 해부 구조를 잘 모르는 건, 음, 그것도 바로 어쩔 수 있는 건 아니고요. 먼저 비장 해부 구조부터 배우시는 게 좋습니다.”
임홍후는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가 띵했지만, 능연이 보여준 맨손 지혈 기술은 상당히 놀라웠다. 그래서 임홍후는 곁에 있는 곽종군과 구조대 인원에게 입을 삐쭉여 보이고는 아예 깔끔하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그는 능연의 실력을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적당한 각도를 찾아 벼락을 뿜을 생각이었다.
외국으로 나가 구조 활동을 여러 번 해온 의사로서, 임홍후도 사실 국내외 의사들과 실력을 경쟁할 기회가 적은 건 아니었다.
물론, 동년배 의사들과 한 경쟁이었다.
능연은 망설임 없이 임홍후가 비켜준 자리에 섰다.
지도 성격을 띤 출장 수술을 적어도 몇백 번 해왔다. 범위를 넓히면 어쩌면 천 건 이상인인지도 모른다. 허심탄회하게 배우는 사람도 혹은 능연을 시험하는 듯 구는 사람도 다 만나 봤었다. 그리고 능연은 그런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잘난 친구 못난 친구, 구분하지 않았듯이, 능연은 언제나 누구든 똑같이 대했다.
곽종군은 이마를 짚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본인이 불벼락이긴 했지만, 실제로 벼락을 뿜을 때는 그래도 T.P.O.를 아는 사람이었다.
이제 막 배에 올랐을 뿐이라 좀 더 살펴보고 싶었는데, 뭐,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곽종군은 조용히 지켜보기로 하고 자세를 조절했다.
임홍후도 점점 조용해졌다.
어떻게 능연을 비꼬아 줄까 생각하는 사이 능연이 벌써 비장을 깔끔히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임홍후는 트집거리를 조금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거의 처음이었다. 외과 의사마다 습관과 방식이 다르고, 수술 과정에도 잘 처리하는 부분, 혹은 서투른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다.
학생들이 문제를 풀 때, 어려운 문제는 잘 풀고 쉬운 문제를 틀리는 것처럼.
임홍후는 원래 작은 실수를 잡아내 거기부터 혼낼 생각이었다. 능연 같은 나이의 의사는 작은 실수를 너무 많이 하지만 않으면 오케이였다. 임홍후가 기억하기론 기지 병원의 젊은 의사들은 욕을 더 하려야 더할 수 없을 만큼 수시로 실수를 했다.
그런데 능연이 작은 실수 하는 걸 찾을 수가 없었다.
임홍후는 당황하지 않았다. 간단한 문제를 학생이 풀었다고 해도 선생이 혼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혼낼 길이 있지 않은가.
임홍후는 보고 또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능연이 비장 처리를 끝내는 걸 보고, 파손된 혈관을 봉합하기 시작하는 걸 보고, 간을 건드리기 시작하는······.
“간, 저기······.”
임홍후가 당황했다. 간도 건드린다고? 간이 부은 거 아냐?
“금방 됩니다.”
능연은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간은 임홍후 레벨에서는 어려운 편이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알아보면 보는 거고, 모르는 게 당연했다.
능연은 재빨리 박리하고 매듭을 지은 다음, 아주 작은 조각을 떼어냈다.
“병리 검사 보내요.”
“병리실로요? 암이라고 의심하시는 거예요?”
수술실 순회 간호사도 멍해졌다.
“그런 것 같습니다. 최근에 한 간암 수술이랑 상황이 비슷해요.”
능연은 조금 더 설명하고는 바로 재촉했다.
“빨리 보내세요. 저는 우선 환자 다른 부분을 처리하겠습니다.”
곽종군이 그제야 기회를 잡은 듯 입을 열었다.
“능연은 올해 간 절제 수술을 5백 건 이상했습니다. 능 선생 판단대로 하면 됩니다.”
“아? 아······.”
임홍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하지만 배 위에서 간암 수술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한참 생각하던 임홍후가 겨우 머뭇머뭇 한마디 했다.
아까였다면 매우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간 절제 수술 조건이 얼마나 각박하냐는 말이다. 무수한 혈관과 풍부하기 짝이 없는 혈액 공급이 가장 복잡한 점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못 자르면 순식간에 피가 뿜어 나올 것이다. 아까 임홍후가 겪은 대량 출혈은 새 발의 피 수준이리라.
그래서 삼갑병원 수술실이라고 해도 간을 건들지 말지는 매우 진지한 화제다. 간암 수술 전에 하는 검사만으로도 책 한 권은 나온다.
능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안 하면 못 합니다.”
이 환자는 좀 전에 이미 대량 출혈로 심각한 상태였다. 돌아가서 재입원하고, 게다가 암이 퍼질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생존율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능연이 보기에 환자 간 상태는 기껏해야 중초기였고, 차라리 모험을 무릅쓰고 배에서 하는 게 나았다.
물론, 수술할 사람이 있다는 전제하에.
임홍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능연의 말을 듣고도 고개를 흔들었다.
“의료선에서 수술하는 위험을 모르는 것 같군요. 의료선이 폭풍 구역을 벗어난 곳에 정박했고 수술실 위치도 엄선했다고 해도, 바다 위입니다. 예상치 못한 파동이 있을 확률이 너무 높아요. 이런 수술은 하더라도 부두로 돌아가서 파도 없는 곳에서 해야 합니다.”
“그때까지 환자가 못 버틸 수도 있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능연이 대답했다.
“그래도 수술대 위에서 죽는 거보단 낫잖습니까?”
임홍후가 이를 악물고 대답하고는 곧바로 ‘여기까지’라는 태도를 보였다.
능연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임홍후를 바라봤다.
“수술 성공하면 되죠.”
“간암 수술입니다. 갑자기 흔들려서 간이 터지면 어쩌려고요.”
“예기치 않은 위험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닥치면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능연의 표정은 담담했다. 모든 게 컨트롤 되는 상황을 매우 좋아하는 능연이라 수술 중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고민은 임홍후보다 많이 한다.
임홍후는 그게 그렇게 쉽냐고 하고 싶었지만, 문득 아까 능연이 했던 맨손지혈 장면을 떠올렸다.
간 수술에서 최대 위기는 바로 출혈이다. 혹은 어느 외과 수술이든 최대 위기는 출혈이다. 출혈을 제어할 수 있다면 다른 문제는 그래도 해결할 시간이 있는 편이다.
물론 출혈 제어도 출혈 제어 나름이었다.
임홍후도 출혈을 컨트롤 할 수 있다. 본인이 가장 잘하는 부분이 바로 외상류 수술이고 평소에 수술할 때도 각종 출혈에 맞서왔다. 아까 수술도 능연이 없었더라도 꼭 실패하리란 법은 없었다. 모든 출혈 가능 포인트를 하나씩 배제하다 보면 불가능한 포인트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예를 들어 비장으로. 물론, 출혈량이 무시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젊은 편이라 견뎠을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임홍후가 아까 출혈을 잡는 걸 포기 하지 않은 건 출혈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그것 역시 35세 우수 선임 주치의가 터득한 기술 중 하나였다.
다만 능연의 기술과 수준 차이가 너무 났다.
임홍후는 능연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앞으로 펼쳐질 수술 장면을 상상했다.
능연이 간 절제 수술을 하고 메스를 떨어뜨린다. 혹은 포셉을 넣을 때 배가 흔들린다. 그리고 뜨거운 피가 솟구친다. 이어서 능연이 손을 뻗어 막고는 맨손 지혈하고 재빨리 봉합하고 이어서 수술을 계속한다······.
임홍후는 느낌상 정말로 문제가 없을 거 같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수술하면 환자 예후가 좋지 않겠지만, 그래도 부두로 돌아가는 것보다 생존율은 높다.
임홍후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능연에게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할 수도 없고, 그냥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임홍후의 표정에, 곽종군은 갑자기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상급 의사가 하급 의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 압박감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기술 진압에 있다.
지금 능연의 모습처럼, 그가 제시한 관점을 아무리 반박하고 싶어도 이성을 잃지 않은 이상 임홍후는 전혀 반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임홍후가 정말로 이성을 잃었다고 해도 말이다.
능연은 조용히 손을 놀렸다.
오늘은 단순한 간암 수술이 아니라서 제대로 마무리를 짓고 간 수술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나 임홍후 눈에는 능연이 그야말로 기술 자랑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까 그가 처리한 비장도 능연이 다시 처리했다. 북방 만두처럼 투박하던 비장이 남방 만두처럼 동그랗고 정교해졌다.
임홍후는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면서 서서히 침착한 표정이 되었고 남아 있던 분노마저 얼어붙었다. 활활 타던 모닥불에 한 통 또 한 통 얼음이 부어져서 처음에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던 모닥불이 이제 얼음 떨어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것처럼.
잠시 후, 병리 검사 결과 전화가 왔다.
“악성 종양입니다.”
전화를 받은 순회 간호사가 감탄하는 눈빛으로 보고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위치를 재조정했다.
“그럼 간 인대 박리 시작하겠습니다. 저기 선생님, 간 절제 해보셨습니까?”
“아, 아뇨.”
임홍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와서 좀 도와주세요.”
능연은 곧 아까 자기 어시를 해주던 임홍후의 어시를 바라보며 물었다.
“좀 쉴 겁니까?”
“아니요.”
조수는 가슴이 두근댔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 상태를 다시 살폈다.
“종양 커버 범위가 넓진 않을 겁니다. 문정맥과 하대정맥을 주의해야 합니다.”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놀리기 시작했고, 조금 진행하다가 임홍후를 지휘했다.
“간원인대 절단.”
“손가락 좀 더 원활하게 놀려요.”
“양손 매듭, 너무 깊습니다.”
능연의 습관이었다. 항상 외부에서 출장 수술을 하는 그는 수술실에서 다른 병원 의사를 어시로 쓰니 이런저런 질문을 받거나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 요구받는 게 불가피했다.
어떨 때는 능연이 참가한 출장 수술은 거의 보모 수술이었다. 상대 병원에서 독립 수술을 하고 싶은데 자기 병원에는 독립 수술을 할 의사를 지켜봐 줄 의사는 없고, 돈을 들여 보모가 될 상급 의사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수술 내용을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고, 기회를 다른 의사에게 주는 편이었다. 특히 수술이 잘 진행되고 있을 때.
지금 임홍후는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능연은 실력 없는 의사를 항상 동등하게 대했고, 일부러 임홍후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임홍후는 ‘능연 선생 지도를 받으며 일하는’ 포상을 받고 있었다.
임홍후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몸은 솔직하게 따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