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떼어낸 간을 복위하고 신속하게 봉합을 마친 후 거즈를 집어넣어 지혈해서 연문빈에게 폐복을 넘겼다.
연문빈은 놀라며 기뻐했다. 수술마다 폐복은 조금씩 달랐고 능연이 폐복을 넘긴다는 건 한 발짝 나간 학습 기회를 준다는 뜻이었다. 탕 법 봉합 때도 능연은 자주 연문빈에게 마무리 작업을 맡겼고 그렇게 연문빈이 탕 법 봉합을 할 줄 알게 되었다.
기회는 원래 한 발짝씩 주어지는 법이다.
그 방면에 능연은 공평한 편이었다. 그는 의사의 등급, 나이 혹은 잘생 못생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고 가장 잘하는 의사에게 언제나 기회를 주었다.
연문빈은 간단한 폐복에 기뻐하며 흥분해서 앞으로 나섰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의사들도 모두 이해했다. 능연은 이미 창서성 내 간 절제 수술에서 가장 강한 전문가였다. 게다가 여차하면 중국 최고의 간 절제 전문가가 될 수도 있었다.
전국은 너무 범위가 넓으니, 현장에 있는 지방 삼갑병원 의사로서는 거기까지 상상하지 못해도 성에서 가장 전문가만 되어도 상당한 지위가 있는 셈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해마다 열리는 국가 자연 과학 기금에 간 절제 부분에서 능연은 이제 이름을 내밀 정도가 된다. 그것만 해도 놀랄 일이었다.
게다가 능연은 아직 25살도 되지 않았다.
전문가는 은퇴도 없고, 그저 일하는 곳이 바뀔 뿐이다.
현대 인류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능연은 간 절제 분야에서 60년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즉, 반세기 이상이었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간 의학 발전에 능연이 필요할지 아닐지, 다른 병원 간담췌외과 책임자 교체에 능연이 간섭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상상해볼 만했다.
수술실에 있는 다른 병원 의사들은 연문빈이 샘이 나서 이가 다 흔들릴 정도였다.
능연은 몸을 돌리고 중급 보물 상자를 열었다.
‘스킬 북이면 좋겠는데.’
능연이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엔 특별히 간암 수술을 하지 않아서 가상 인간을 별로 쓰지 않았고, 아직 3시간 넘게 사용 시간이 남아 있었다. 상당히 오래 쓸 수 있는 시간이라 지금 당장은 별 필요가 없었다.
물론, 시스템이 가상 인간을 준대도 나쁘지는 않았다. 너무 좋은 물건이었다. 수술 압박을 줄여 주기도 하고 환자의 생존율과 예상 수명도 늘려준다. 수량만 충분하다면 과학 연구에 써도 좋고.
은빛 보물 상자에서 같은 은빛 스킬북이 튀어나왔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1급 스킬북, 기초 스킬 하나를 그랜드마스터급으로 올림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당장 소리를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맨손 지혈 스킬도 바로 1급 스킬북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 스킬은 지금까지 능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하는 간 수술을 비롯해서 마스터급 간 절제 스킬로도 성에서 탑이 되고 전국 범위로도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 덕분이었다.
간 수술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점이 출혈 문제였다. 맨손 지혈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다고 해도 능연에게 상당한 자신감을 주었고, 위험한 시도도 더욱 과감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의학계에 이런 말이 있다.
의사가 위험한 도전을 하면 할수록 이득이 더 많다고.
여기서 말하는 이득이란, 환자의 이득이 아니라 총체적인 이득을 말한다.
환자 하나는 어쩌면 의사의 위험한 시도 때문에 건강에 피해를 보고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환자 집단으로 보면, 의사의 위험한 시도는 절대적으로 플러스가 된다.
의학 발전이란 처음에 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다.
약품의 임상 시험, 1기, 2기. 3기, 4기. 막대한 비용. 아무리 교묘한 말로 꾸며도, 근본을 따지면, 약품 임상 시험은 모두 사람으로 하는 것이고, 그럴 때마다 필연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이 생긴다. 목숨을 잃는 사람도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전체 환자로 보면, 결과적으로는 당연히 수혜자가 된다.
외과 수술도 마찬가지다. 가장 초기의 외과 의사, 그리고 지금의 외과 의사 모두 수술 위험을 높이면서 환자를 이롭게 해왔다.
비 연구형 의사라고 해도 외과 의사가 크게 위험한 시도를 하는 경우는 환자가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크게 위험한 시도를 하지 않으면 환자에게 이득이 없는 때라는 뜻이다.
의사와 환자는 어떤 때는 투자자와 기업 관계 같을 때가 있다.
다만, 그들이 투자하는 건 의료 서비스고 수확 혹은 손실은 건강이다.
맨손 지혈 스킬을 터득한 다음 능연의 자본과 위험 대항력이 매우 높아졌다. 수많은 수술은 맨손 지혈 스킬이 있어서 할 수 있었다. 대다수 투자 회사가 막대한 자본력으로 하이 리스크 산업에 투자해서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능연은 그리운 마음으로 ‘1급 스킬북’을 클릭했다.
노출+
절개+
박리+
지혈+
봉합+
배농+
외과 기본 조작이 다시 획득 가능한 상태가 되어 능연 앞에 나타났다.
능연의 시선이 ‘노출’과 ‘박리’ 두 항목에 한참 머물렀다.
현재 그의 상태로는 봉합, 지혈, 배농을 키워야 하는 건 맞지만, 노출이나 박리 부분이 더 중요했다.
노출은 외과 의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고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상당한 경험이 아니면 적당한 해부면을 어떻게 노출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날 배에서 임홍후가 지혈 때문에 환자를 거의 반 토막 낸 것도, 노출 기술이 좀 더 높았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순조롭게 환자의 출혈 포인트를 찾았을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박리’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간 절제 혹은 간암 수술 혹은 일반 외과 대다수 수술은 근본을 따지면 박리와의 싸움이다.
가장 기초적인 담낭 절제술의 핵심은 사실 담낭과 간을 박리하여 떼어내는 데 있어서, 담낭 절제 자체는 신인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암 수술에서 박리 기술의 가치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실력이 있고 없고가 수술의 성공과 실패를 바로 좌우한다.
이 6가지 기초 스킬은 의사의 실력을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전면적으로 발전시킨다. 이건 수술 방식보다 더 가치 있는 기술이었다.
곰곰이 고민하던 능연은 결국 ‘박리’를 선택했다.
박리+를 클릭하자 리스트에 다음 선택 항목이 나타났다.
- 피하 조직 박리
- 근막과 근건 박리
- 조직 박리
- 피하 활액낭 박리
이번엔 별 고민 없이 바로 ‘조직 박리’를 선택했다.
아무리 근막과 근건 박리가 수부 외과 수술 그리고 관절경, 아킬레스건 보건술 같은 정형외과 수술에 유리하다고 해도 난도나 응용도로 따지면 아무래도 ‘조직 박리’가 가장 어려웠다.
간, 비장 같은 일반 외과 수술을 하지 않고 정형외과 의사가 될 생각이라면 ‘근막과 근건 박리’를 선택했을 것이다. ‘피하 조직 박리’는 성형외과 같은 진료과에 더 적합하다. 그리고 ‘피하 활액낭 박리’는 피하 활액낭 자체처럼 자투리 기술에 불과했다.
물론 선택하지 않고 모두 얻을 수 있다면야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기술은 없다.
의사의 스킬엔 난도와 희귀도가 있지만, 환자의 병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다른 각도로 보면, 능연은 수술만 할 수 있으면 수술 ‘품종’은 그렇게 개의치 않았다.
은빛 스킬북이 잠시 깜짝이더니 자취를 감췄고 동시에 능연이 장악한 ‘조직 박리’ 기초 스킬이 그랜드마스터급으로 올라갔다.
고개를 숙여 수술대를 바라보니 연문빈이 거의 폐복을 마친 상태였다.
능연은 바로 좌자전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따 간 절제 환자 둘 더 배정해주세요. 그리고 자료 저한테 보내주시고.”
“넵.”
“저랑 간 절제 수술하실래요?”
좌자전이 한참 콜리스 골절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는 생각을 한 능연은 혹시 다른 방향으로 시도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좌자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역시 콜리스 골절부터 하는 게 좋겠어. 아직 환자도 있고.”
바로 그때, 시스템이 또 튀어나왔고 능연 앞에 퀘스트 화면이 나타났다.
- 퀘스트: 신인 훈련
- 퀘스트 목표: 의사의 기술 등급을 UP 시켜라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
능연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퀘스트, 아무래도 좌자전을 위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좌자전은 벌써 세 번째 퀘스트를 받은 셈이었다.
“알겠어요. 가서 하세요. 문제 생기면 오시고요.”
능연도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기술을 배운다는 건 대부분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좌자전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굳건한 걸음으로 수술실에서 나갔다.
능연은 바로 좌자전의 콜리스 골절을 지켜보러 가지는 않았다.
배움이란 원래 길고 긴 과정이고 스승이 노력한다고 학생이 수확하는 건 아니었다. 교육이 그렇게 단순했다면, 인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의학의 배움의 길, 특히 외과학의 배움의 길은 더 굴곡지다.
좌자전은 콜리스 골절 기술 등급을 입문에서 전문가급으로 올려야 했다.
본인의 학습 능력이 어떤지는 둘째치고, 온 성의 엘리트를 모은 운화병원 같은 병원에서 의사가 전문가 수준이 되려면 보통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느 레지던트든 전문가급 기술을 장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현재 병원 구조에서 레지던트는 혼자 수술할 기회를 얻기도 힘든데, 전문가급을 논할 수가 없었다.
입문만 되어도 아미타불이었다.
좌자전은 지금 좋은 조건과 나쁜 조건 사이에 있었다. 수술할 기회가 많아지고 능연도 혼자 수술할 기회를 안심하고 내어주고 열심히 지도하지만, 한편으로 좌자전의 기초가 너무 안 좋았다.
시간과 경험을 따져도 좌자전의 수술 경험은 같은 연차 레지던트에 비해 높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연차란, 운화병원에 들어온 시간을 말한다.
좌자전이 위생병원에서 20년 동안 근무하면서 배운 것은 수술실에서는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와 동시에, 좌자전의 이론, 지식 체계는 낡은 것인 데다가 대부분 잊어버렸다.
예를 들어 해부 지식, 해부 원리는 이미 잊어버렸고, 기억한다고 해도 20년 전에 배운 낡은 지식이었다. 일반 수술에 사실 해부 지식은 많이 필요하지 않으며, 대다수 병원 외과 의사도 수술하면서 해부를 배운다.
해부를 잘 몰라도 수술할 수 있고, 순서대로 착착 해나가면 꽤 괜찮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 수준이 되어 높은 수준의 수술을 해내려면, 그리고 그런 수준을 장기간 유지하려면, 수술 범위 안의 해부 구조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좌자전은 과외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다른 레지던트보다 훨씬 더 많이 해야 했다.
입문에서 전문가가 되는 건 길고 긴 과정이었다.
능연은 케이스 중에서 적당한 케이스를 뽑아냈다. 바로 장안민이 추천한 58세 간 내 담관 결석 간디스토마 합병증 환자였다.
능연이 결정을 내렸다는 걸 알게 된 장안민은 버선발로 수술 구역 휴게실로 달려가 패드를 펼쳤다.
“관심 있을 줄 알았어. 확실히 의미 있는 케이스거든. 환자 이름은 뇌백함, 지방간, 간경화 그리고 간디스토마, 그리고 간 내 담관 결석. 전방위 간 환자라고 할 수 있지.”
“간담췌외과에서 받은 환자예요?”
능연은 이미 케이스를 살펴봤었다.
“님 결정에 달렸죠.”
장안민이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인즉슨, 능연의 결정에 따라 환자를 빼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곽종군과 응급센터 기세만으로 간담췌외과에서 사람을 빼올 수 있는데 지금 능연은 이미 간 절제 대가였다. 호랑이 간을 이식한다고 해도 하원정은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능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정식 루트로 가야죠.”
그리고 능연은 바로 곽종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안민은 진료과 의사들 걱정에 불안한 듯 목을 움츠렸다. 괴롭힌 당한 하 주임이 이성을 잃고 초짜 의사에게 메스를 대지 않으면 좋으련만.
풉.
수술 구역 구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장안민이 고개를 돌려보니 ‘잠시 쉬지 않고는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연기를 하던 주 선생이 실례를 한 것이었다.
주 선생은 미안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미안, 어제 너무 잘 잤나 봐.”
장안민은 웃지는 못하고 입가를 실룩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환자 한 번 보고 올게. 수술 준비도 하고.”
“에휴, 나도 이만 가 봐야겠다.”
주 선생은 말만 그렇게 하고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수술 없어? 처치실 가서 한 바퀴 휭 돌래?”
“조직 좀 자르고 싶어요.”
능연은 솔직히 대답했다. 그랜드마스터급 ‘조직 박리’ 스킬을 얻었으니 시험해 보고 싶었다.
“아이고 와일드해라.”
주 선생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찍 이야기하지. 충수염이라도 구해줬을 텐데.”
능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운화병원에서 충수염 수술하려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모른다.
슬쩍 능연을 본 주 선생은 침착한 그의 표정에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둘이 여기서 떠들면 뭐 하냐. 의미도 없고. 할 일도 없는 거 같은데 같이 가자. 조직이든 뭐든 너 하고 싶은 거 줄게.”
능연은 주 선생 같은 스타일을 제법 좋아했다. 다투지도 않고 뺏지도 않고, 수술도 양보해주고.
벽걸이 시계를 본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럴까요.”
“좋지. 앞장서시지요.”
주 선생은 큰 고객을 문 영업사원처럼 신나 했다.
운화병원 응급센터엔 언제나 사람이 넘쳤다. 멀리서 바라보니, 의사, 환자, 보호자가 거의 빈틈 하나 없이 큰 방을 다 채웠다. 다들 근심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 가득했다.
“주 선생님.”
그를 발견한 레지던트 하나가 냉큼 달려왔다.
“부르려고 하던 참입니다. 복통 환자가 있는데요. 사진은 찍었습니다.”
“보자.”
주 선생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담담하게 굴었다. 그리고는 환자에게 다가가 신체검사를 하고 다정하게 물었다.
“어르신, 변비가 며칠이나 됐나요?”
“사나흘 정도.”
“쪼끔 나온 건 빼고요.”
주 선생이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노인은 좌우를 두리번거리고는 민망한 듯 대답했다.
“그럼 일주일 넘었어.”
“일주일 넘었다는 게 얼마나 됐을까요? 쪼금 나온 건 빼고요.”
노인이 고개를 푹 숙이고 나지막이 21일 됐다고 말했다.
“알았습니다. 별일 아니에요. 정상이니까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주 선생은 위로의 말을 몇 마디 더 하고는 몸을 일으키고는 보호자를 바라봤다.
“일반 외과로 보내드릴게요. 더 전문적입니다.”
“아까 우리도 물었는데, 계속 사나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여기 응급의학과에서 처리하면 안 되나요?”
환자 보호자도 할 말이 없다는 듯 물었다.
“일반 외과가 훨씬 환경이 좋습니다. 여기 응급의학과는 침대 비용이니 뭐니, 보험도 안 되고요. 다 자비로 처리하셔야 해요. 일반 외과로 가서 정식으로 입원하시는 게 낫습니다.”
주 선생은 가볍게 설득해서 가족 동의서를 받아냈다.
옆에 있던 레지던트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똥 꺼내는 작업은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지만,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하기는 더욱 싫었다.
변비라는 말을 들은 능연은 벌써 방향을 틀어 사라지고 없었다.
같은 수술이지만, 똥 꺼내는 수술엔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때 발걸음이 표범 같고 몸 형태도 표범 같은 그림자가 그의 곁을 휙 지나더니 문득 멈춰 섰다.
여원의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렸다.
“변비 환자는? 갔어?”
“네, 좀 전에요.”
능연은 고개 숙여 여원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
여원의 말투에 끈적끈적한 실망이 가득했다.
능연은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여원이 지금 얼마나 실망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까 그 환자는 어쩌면 여원이 며칠이나 기다려온 케이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까 그 환자의 몸에 여원이 다년간 기다려온 소장품이 있을지도 모르고.
비록 여원의 소장품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의사로서 수술하고 싶은 다른 의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 팀에 인원이 차 있으니까, 일반 외과 수술하고 싶으면 일반 외과에 며칠 가 있어도 돼요.”
능연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한 다음 여원에게 길을 하나 열어 주었다.
다른 진료과 혹은 치료팀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료과가 바쁘지 않다고 해도 다 같이 일이 없어야지, 한 사람이 줄게 되면 다른 사람이 바빠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진료과와 치료팀 보너스도 다 정해져 있는데, 여원이 일반 외과로 가면, 일반 외과 의사도 기분 좋지 않을 것이고, 응급의학과를 비우게 되면 응급의학과 의사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능연은 그런 걸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게다가 능 팀은 원래 많은 업무량을 담당하고 있었고, 능연 때문에 전체 응급센터 의료진은 보너스를 더 받고 있어서 능연이 어떻게 배정을 하든, 반박하기 쉽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능 팀 내부 수입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건 바로 출장 수술 수입이었다. 다른 의사들도 능 팀과 함께 몇 탕만 뛰면 1, 2천 위안을 벌었다. 한 달 모이면 월급보다 더 많이 벌었고 원래 들어오는 진료과 보너스에 치료팀 보너스 그리고 이상한 수입까지 합하면 능 팀 수입은 전 진료과에서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정형외과, 심장 내과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정형외과 의사의 수입을 받는데, 무슨 트집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여원도 조금 마음이 흔들렸고 일반 외과에서 훈련하던 시절이 그리워······질 것도 없었다. 수술을 별로 못했으니까.
여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지금은 치프 레지던트잖아. 일단 치프 생활 끝내고 생각하자.”
치프 레지던트는 25시간 병원에 있는 존재니까.
치프 레지던트는 외국 병원 제도를 따온 것으로, 그 목적이 바로 고강도 수술로 의사의 기술을 높이는 것이다. 대입 시험 전에 집중 클래스 같달까?
실제로 그런 생활을 하면서 레지던트들은 힘들어 죽을 거 같아도 확실히 수준이 높아진다. 높아지고 싶지 않아도 그냥 높아졌다. 일반 의사는 한 달에 2, 30번 수술하는데, 치프 레지던트는 일주일에 그만큼 한다. 게다가 치프 레지던트는 야간 당직의 신이고, 대다수 병원에 치프 레지던트가 있는 진료과는 야간 수술을 우선 치프 레지던트에게 배정했다.
여원은 치프 생활이 힘들긴 했지만, 기술도 매우 빨리 늘었다고 생각해서 그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능연이 이제 대빵이 되었지만, 일반 외과에서 여원의 수술량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머릿속으로 재빨리 이득과 손해를 계산한 여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응급의학과에도 자주 일반 외과 수술을 만나긴 하는데. 특히 항문 쪽은 대부분 응급이잖아. 그런데 아까 같은 케이스는 대부분 우리가 안 하지.”
“곽 주임님이 수술실 몇 개 더 지으시면 그런 수술하기도 편해질 거예요.”
능연은 그런 수술을 어째서 많이 할 수 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항문 방면 수술은 대부분 오염 수술이고, 수술실에서 하고 나면 멀쩡한 수술실의 청결 기준이 수직으로 하강한다. 그래서 오염 수술은 보통 청결 지수가 떨어지는 수술실에서 진행한다.
응급의학과에는 지금 총 수술실이 4개가 있는데 오염 수술을 할 수는 없었다. 사후 청소가 골치 아파서였다. 어쨌든 응급의학과 수술실은 전문 항문 수술실이 아니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지. 사실 요즘 님이 한 간 절제 수술 정리하고 있어. 환자 방문 지도를 하면 괜찮은 논문이 나올 거 같아.”
“좋아요. 좌 선생님하고 이야기해보세요.”
논문이든 환자 방문 지도든 경비가 필요했다. 능 팀에서 그런 일은 기본적으로 모두 좌자전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여원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날 준비를 하는 표범처럼 자리에서 뜨려고 하는데 접수 간호사가 갑자기 달려왔다.
“여 선생님! 다행이다, 다행. 안 계실까 봐 걱정했어요.”
달려온 간호사는 능연을 보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응급 환자예요.”
“그럼요! 우리가 응급과잖아요.”
“여 선생님!”
간호사가 발을 동동 구르고는 능연을 힐끔 보더니 여원을 잡아끌었다.
“저 따라오세요.”
여원은 별생각 없이 간호사를 따라갔다. 접수 간호사는 보통 어느 의사를 찾아서 뛰어 다니지 않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분명히 특수한 환자임이 틀림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능연도 뒤를 따랐다.
응급센터에서 자유롭게 환자를 고를 수 있는 그는 재미있는 케이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그들은 접수 쪽에서 환자를 만났다.
스트레처 카에 누워있는 중년 남자가 손으로 이마를 짚고 심하게 다친 것처럼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구급차로 막 실려 왔어요. 48세 남성. 직장 안에 들어간 전구를 꺼낼 수가 없습니다.”
환자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마친 간호사는 능연을 힐끔 보고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여원은 멍해졌다가 몸으로 살짝 가리고 환자를 덮은 이불을 젖혀서 힐끔 봤다.
“전구 멀쩡해요? 아니면 깨졌어요?”
“멀쩡해요.”
“확실해요?”
“네.”
환자가 웅얼거리면서 대답하는 걸 보니 심하게 고통스럽진 않은 것 같았다. 여원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됐습니다. 그럼 우선 X-ray 찍고 꺼낼 수 있는지 볼게요.”
“선생님, 저 수술 안 합니다. 절대로 안 해요!”
남자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도저히 못 꺼내면······.”
“죽어도 수술은 안 해요. 수술하고 나면 가짜 항문 끼워야 하는데 필요도 없고, 냄새도 나고······.”
“알겠어요. 일단 사진 찍어 봅시다.”
여원은 한숨을 내쉬고는 실습생 하나를 불러서 환자를 밀고 갔다.
우선 데브리망실로 온 여원은 손을 씻고 장갑을 낀 다음 간호사를 불러 기구를 배열하고는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할래?”
“아니요.”
능연은 고개를 흔들고는 데브리망실에서 나갔다.
몇 분 후, 심각한 표정의 남자는 끽소리 없이 조용히 데브리망실로 실려 들어갔다.
문이 닫힌 다음 남자의 얼굴이 무너졌다.
“선생님, 안 되겠어요. 괴로워 죽겠어요.”
“한 번 볼게요.”
여원은 실습생에게 X-ray 사진을 들라고 하고 묵묵히 읽기 시작했다.
흑백 X-ray 사진에, 구식 가정용 전구가 명확하게 직장 끝 쪽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게, 뭔가요······.”
실습생이 참지 못하고 묻는 말에 여원이 표범처럼 민첩하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알아서 뭐 하게?”
“저는······.”
실습생의 말문이 막혔다.
“지금 핵심 포인트는 이걸 어떻게 꺼내냐는 거야.”
여원은 표범이 기린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목을 쭉 치켜들었다.
“이 정도 깊이면 전신마취해야겠는데. 마취의 불러와.”
여원은 X-ray를 바라보며 모든 준비가 다 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환자는 긴장해서 어쩔 줄 몰랐다.
“전신마취 싫어요. 수술 싫어요.”
“꺼내려고 전신마취하는 거예요. 수술이 아니라.”
여원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지금처럼 긴장한 상태로는 꺼낼 수가 없어요.”
“정말로 수술 안 해요?”
“안 해요.”
환자는 의심하는 듯 여원을 바라봤다. 여원도 수술 후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전구에 불과하지만, 정말로 수술로 꺼내려면 배를 열어 장을 꺼낸 다음 인공 채변봉투 방식으로 배설을 유도하는 과정을 채택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사람의 생활이 완전히 바뀌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일, 특히 사교에 막대한 영향이 생긴다.
선택할 여지가 있다면, 여원도 수술 없이 꺼내는 시도를 하고 싶었다.
여원의 표정은 진실하고 단호했다.
스트레처 카에 누워 여원과 눈높이 맞는 환자의 긴장된 정신이 조금 풀어졌다.
“꺼내기 쉽지 않다던데요. 정 안 되면 부숴버려요.”
“그건 안 되죠. 장 다치면 큰 문제가 됩니다. 딴생각 마세요. 제가 더 경험이 많아요.”
“경험이 많다고요?”
“당연하죠. 응급의학과 생활을 얼마나 했는데요. 거기에 물건 넣은 사람이 환자분이 처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여원은 말을 멈추고 다시 단어를 배열했다.
“물론, 전구는 드물지만. 어쨌든, 꺼내려면 전신마취가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환자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물었다.
“어떻게 꺼내시려고요.”
여원은 다시 단어를 배열한 다음 부드러운 말투로 설명했다.
“우선 전신마취하고 근육 이완제를 놓을 거예요. 약효가 퍼진 다음에, 손으로 꺼내 보고 안 되면 기계를 써서 통로를 확장하고 거즈로 감싸고 꺼낼 겁니다. 대충 이래요.”
“듣자 하니 가능할 거 같은데요. 그런데 의사들이 뭘 꺼낼 때 보통 핀셋 쓰지 않나요?”
환자도 열심히 방법을 생각했다.
“전구라서, 너무 미끄러워서 안 돼요.”
여원이 고개를 흔들자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미끄럽긴 하죠.”
“음.”
“질문 하나 더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다른 환자, 그러니까 다른 물건 넣어서 온 사람은 뭘 넣었던가요?”
긴장이 풀린 환자는 학술 토론이라도 하는 모습으로 물었다.
여원은 냉랭하게 그를 바라보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매우 포악한 표범 같았다.
환자는 눈치 빠르게 입을 닫고 침대에 엎드려서 ‘아이고, 아이고’ 외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소가복이 수술 구역에서 와서는 별말 없이 질문 몇 개 하고 리스트를 채운 다음 바로 마취제를 놓았다.
환자의 호흡이 편안해지고 확실히 마취된 걸 확인한 소가복은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둥근 의자에 앉아 몸을 흔들면서 떠보듯이 물었다.
“이물질이라던데? 전구라고? 몇 와트?”
“꺼내고 나면 직접 보시죠. 근육 이완제 더 써요.”
“로저. 맞다. 뭐로 꺼내려고?”
여원이 입을 삐죽이는 모습에 소가복은 웃으면서 근육 이완제를 추가하고는 물었다.
여원은 팔을 뻗어 허공에서 휙 돌렸다.
“작은 손으로 아이 꺼냈다는 이야기 들어 본 적 있어요?”
“들어는 봤지······.”
“같은 이치입니다.”
여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준비하면서 손을 쥐었다 폈다 했고, 매우 전문적인 그 모습이 참 믿음직스러웠다.
주변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봤다. 병원에 작은 손 전설이 있기는 했다. 산과에서 도구 없이 작은 손으로 아이를 꺼냈다거나, 일반 외과에서 포셉 없이 작은 손으로 맹장을 휙 꺼냈다던가.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여원을 작은 손 달인과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