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더, 이제 시작할까요?”
예정된 시간이 되자 허금억이 시계를 보고 영어로 로이더에게 말을 걸었다.
로이더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금 수술을 다 보고 시작하자고 했고, 허금억은 수술을 언제까지 볼 거냐고 생각하며 눈썹을 치켜들었다.
허금억은 고개를 내저었다. 본인이 병에 걸린 다음, 시간 개념을 새로 확립한 그는 저도 모르게 다시 한번 재촉했다.
“수술이 끝나려면 두어 시간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수술하시죠. 나중에 제가 하이라이트 장면 편집하거나 아니면 풀 영상 구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음, 상대방이 지금 생중계 중인데, 우리도 생중계하면 시청률 싸움이 되는 건가요? 우리가 못 이길 거 같은데요?”
로이더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허금억도 따라 웃었다.
“앤더슨 암센터 서전인데요. 능연 선생도 대단한 의사지만 선생님하고야 상대가 되나요. 게다가 우리 관중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북경 유명한 병원이랑 그 밑에 하급 병원 간담췌외과, 일반 외과라서 서로 겹치지도 않습니다.”
로이더는 허금억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궁금한 듯 물었다.
“이 의사를 알아요? 지금 수술하는 의사 말이에요.”
운리제약에서 설치한 고화질 렌즈는 풀스크린이 아니라서 동황구 병원 모니터에는 수술 장면만 나와서 집도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금억은 수술 동작을 보고는 내용을 짐작한 것이어서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제 수술을 바로 이 운화병원 능연 선생이 한 겁니다. 능 선생은 젊지만, 실력이 상당합니다.”
“아, 생각났다. 허 선생 예후도 매우 좋았죠.”
로이더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앤더슨 암센터에서 허금억이 로이더를 알게 된 것, 혹은 로이더가 허금억을 주목하게 된 건 허금억이 다년간 훈련된 아부 기술을 사용한 것 외에 그의 수술 흔적이 시선을 끌어서였다.
앤더슨 암센터 같은 곳은 당연히 외과, 내과 수술을 모두 할 수 있다. 그런데 각국에서 온 환자는 다른 신체조건과 의료 배경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중에 수술하고 와서 후기 암 치료를 하는 환자가 제일 많았다. 미국 비자의 문턱은 점점 높아졌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 속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환자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허금억처럼 외과 수술을 하고 온 환자는 로이더가 초기 검사와 평가를 내리기 마련이었다.
환자 중에는 간암 세포가 사실 깨끗하게 제거되지 않은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미국 병원에도 외과 의사는 옥석이 섞여 있기 마련이니까.
로이더는 마땅히 깨끗이 제거해야 하는데 제거되지 않은 환자 처리하는 데 시간을 투자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확실히 제거할 수 없는 게 당연한 환자를 처리했다.
완벽히 처리된 근치 수술이 오히려 더 드물었다.
사실상, 로이더가 보기에는 수술을 마치고 온 허금억은 더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예후가 너무 좋아서, 허금억이 정말 치료를 하러 온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허금억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판단을 흡족해하기까지 했다.
“몇 년 지나면 어쩌면 능 선생 수술이 선생님 수술보다 시청률이 더 좋을 수도 있죠.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수술하셔야 하고요.”
“같은 시간에 수술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린 나중에 하죠.”
로이더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알겠습니다.”
조금 더 설득하려던 허금억은 바로 생각을 바꾸고 동의했다.
로이더 말대로 다들 시청률에 연연했다. 볼 사람 없는 시청률이지만, 정말로 비교되는 상황이 닥치면 누군가는 난감해진다.
능연이 난감하게 되어도 허금억은 난처하고, 자기가 불러온 로이더가 난감해지는 상황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수술 2시간 미룬다고 통지하겠습니다.”
허금억은 그렇게 말하고 직접 보호자에게 설명하러 갔다.
시청률 낮은 생중계는 일일이 전화해서 시간이 변경됐음을 알릴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일도 어려울 건 없었다. 아직 마취도 하기 전이라 조금 기다려도 아무 상관 없었다. 보호자가 보기에도, 외국 의사가 중국에 왔으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허금억은 환자와 보호자를 달랜 후 느긋하게 돌아왔고, 사람들은 참관실에서 긴장한 듯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문정맥 차단 중입니다.”
“아.”
궁금해서 묻던 허금억은 의사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의 수술을 본 사람이니, 능연이 이런 수술을 얼마나 노련하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문정맥 차단 따위, 허금억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로이더는 그런 허금억이 안타까운 듯 한마디 더 설명했다.
“이 환자, 보상 사이드 체인 순환입니다.”
“정맥이 하나 더 많단 말입니까?”
‘의료 사고 인정서’라는 생각이 허금억의 척추를 타고 올라갔다.
“음. 환자 정맥이 가는 편인데, 이 능 선생이라는 의사, 매우 신중하게 금방 멈췄습니다.”
노란 머리 파란 눈의 로이더는 거기까지 이야기하더니 살며시 손짓도 했다. 그는 눈앞의 수술에 정말 많이 놀랐다.
실력이 훨씬 떨어지는 허금억은 추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멈춘 다음에 정맥 하나가 더 많다는 걸 발견했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능 선생은 한 2, 3분 생각하더니 바로 정맥을 찾기 시작했어요.”
“첫 판단에 바로 사이드 체인 순환 정맥이라고 판단했단 말이군······.”
허금억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혼잣말했다.
“간 상태가 매우 안 좋습니다. 보세요, 얼마나 조심스럽게 수술하는지. 구체적으로 얼마나 나쁘길래······.”
로이더는 말하면 할수록 조바심이 나는 듯했다. 이렇게 참관실에서 영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렇게 이야기 주고받는 사이, 능연은 간 수술의 초반 준비를 모두 마치고 간을 천천히 들어 올려 메스를 잡고 그 자리에서 두 조각 냈다.
노출된 벌집형 간 내부에 납작한 간디스토마가 꿈틀대고 있었다.
환자의 나약한 간 구조가 눈앞에 훤하게 드러나자 로이더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운화에 가고 싶습니다.”
로이더는 고개를 돌리더니 바로 그렇게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