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03화 (484/877)

“그럼 내 병도 고칠 수 있소?”

간낭종 환자가 심사하는 눈으로 능연을 관찰했다.

능연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질문부터 했다.

“우리 병원에서 MRI 찍으신 적 있나요?”

“있지. 사진도 가지고 왔소.”

그리고 몸에 지닌 가방에서 커다란 MRI 사진을 꺼냈다. 의심은 의심이고, 병원 진료실에 있는 만큼 협조할 건 해야 했다.

사진을 건네받은 능연은 곁에 있는 연문빈에게 원본을 불러오라고 지시했고 연문빈은 바로 컴퓨터를 조작했다.

병원에서 찍은 MRI니 이름을 검색하면 원본을 찾을 수 있었다. 달랑 환자가 가지고 온 사진 한 장보다 원본엔 훨씬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능연은 우선 환자가 건넨 MRI를 살펴보고 고개를 돌렸을 때, 연문빈도 마침 원본을 불러냈다.

모니터를 통해 능연은 바로 환자의 낭종 위치와 형태를 확인했다.

“복강에 물이 차기 시작했어요.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전에 수술하자는 말 들으셨죠? 지금 바로 입원해서 다시 MRI 찍어 보시길 바랍니다.”

환자는 능연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직 수술 생각이 없어요. 보존 치료로 조금 더 버티면 안 되겠소?”

“그래도 입원은 해야 합니다.”

“그건, 좀 생각해보리다.”

환자는 능연의 얼굴과 나이를 생각하면 역시 못미더운 듯했다.

원래 외래 진료 오는 환자는 응급환자보다 의사 오더를 잘 안 따른다.

능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가상 인간을 꺼냈다.

몇 초만에 바닥에 피를 뿌린 가상 인간이 사라지고, 능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적으로 환자의 간 상태는 그가 판단한 대로 반드시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긴급 수술할 필요는 없었다.

“한두 달 안에는 수술하시길 건의 드립니다. 환자분 상태는 지금보다 안 좋아질 거예요. 계속 지켜보는 게 좋아서 최대한 빨리 입원해야 합니다.”

“알았소. 그러지. 그럼 일 보시오.”

환자는 인사를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진료실에서 나갔다.

연문빈은 놓친 고객 바라보듯 입을 삐죽였다.

“저 상태를 보니 아마도 안 오겠네. 능 선생, 우리는 외래 진료랑 안 맞나 봐.”

운화병원 규칙은 진료팀이 받은 환자는 해당 진료팀에서 치료를 책임지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환자와 의사의 이익 구조도 있어서, 환자를 받는 건 의무가 아니라 권력에 더 가까웠다. 진료팀에서 수술을 많이 하고 싶으면 환자를 많이 받으면 된다. 정상 진료팀으로서는 외래 진료가 환자를 받은 가장 좋은 경로였다.

그것 외엔 응급에서 트랜스 된 환자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대가 의사가 자주 외래 진료 보는 이유도 대부분 그런 이유에서였다. 대가는 자기 환자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진료팀 제자를 위해서 환자를 받아야 할 때도 있다.

제자들이 직접 진료를 본다고 환자가 오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렇게 조건에 부합하는 환자를 만나기는 힘들다.

의사들 사이에도 경쟁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간 절제 환자가 해마다 그렇게 많이 나와도, 다들 큰 병원, 대가 의사를 찾아가고, 그 나머지나 이름 없는 부주임, 주치의 몫이 된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환자 공급이 필요한 의사는 눈먼 환자가 달려오길 바라고 있을 수만은 없다.

빙지상 교수 같은 의사도 외국에서는 같은 업계에서 트랜스된 환자만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여전히 외래 진료를 봐야 한다.

국내는 아직 전과 의사(全科醫師)가 없고 전문 진료과 의사끼리 융통하는 경우가 없어서 외래 진료가 기본 임무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많은 의사가 전과 의사 제도를 외치고 있지만, 사실상 이득을 보는 높은 의사들은 흥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지금 제도로는 환자들이 실력 있는 의사를 찾고 상급 의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환자를 고르고 원하지 않는 환자를 내려보낼 수 있다. 그러니 간접적으로 환자를 분배할 권력을 가진 셈이다. 즉 이익 분배 체계를 장악한 것과 같다.

전과 의사 제도가 확장되면 환자와 의사가 격리되고, 의사가 원하는 환자를 찾으려면 전과 의사가 보내주길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실력 있는 의사가 기술로 컨트롤 할 수 있다고 해도 권력을 놓은 셈이 된다.

그런데 권력은 그렇게 쉽게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안민은 능연의 얼굴을 보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의사는 늙을수록 좋대잖아. 능 선생은 너무 젊어 보이긴 해.”

“그럼 좌 선생님 불러다가 외래 보게 하면 다 싹 쓸어 오겠네요?”

좌자전 얼굴의 주름을 떠올린 연문빈이 한마디 덧붙였다.

“적어도 간담췌외과에서는 가장 믿음직한 의사겠네요.”

간담췌외과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의사는 하원정이었다. 그러나 편안하게 올라온 하원정은 관리를 잘해서 마흔 넘어서도 여전히 젊어 보여서 모진 고생을 한 좌자전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 생각을 한 장안민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가 바로 웃음을 거두고 입을 삐죽였다.

“우리가 일반 진료를 걸어서 그래. 다음에 전문가 진료를 받게 되면 상황이 나아질 거야. 환자들은 의사가 아니라 전문가 팻말 보고 오는 거니까.”

“그러니까 그게 문제죠.”

연문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뭔가 더 말하려고 하는데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안녕하세요. 능 선생이신가요?”

이번엔 중년 둘이 들어왔다.

“능연입니다.”

능연이 자기 이름이 쓰여진 팻말을 다시 앞으로 내밀었다.

“저는 무신 시 1 병원 간담췌외과 유 선생이 소개해서 왔습니다. 간 경화가 조금 있어서.”

중년 남자는 능연 맞은편에 앉아서 5위안짜리 접수증을 내밀었다. 연문빈이 건네받아 바로 차트를 열었다.

“흠, 일단 보죠.”

천천히 차트를 훑은 능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신체검사 하겠습니다.”

능연은 장갑을 끼고 환자의 우 복부를 눌렀고 환자는 고분고분 겉옷을 벗고 몸을 내밀었다.

“그럼 제가 4번 맞죠?”

뒤에 있던 환자가 앞에 환자를 사이에 두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제성시 병원 왕 선생님이 소개해서 왔습니다.”

연문빈은 밖에서 기다리라고 눈치를 주었다.

문 앞으로 가자 입구에 또 사람 모습이 보였다.

“저기, 저는 운화 3 병원에서 소개해서 왔습니다. 능 선생을 찾아가라고 하던데요.”

“저는 무신 시 2 병원에서 왔습니다.”

환자 하나가 또 냉큼 앞으로 나왔다.

연문빈은 앞에서 기다리라고 그들에게 지시하고는 한 줄로 앉은 환자를 보면서 문득 꽃바구니를 받는 접수처가 된 기분이란 생각을 했다.

맞은편에 하원정은 소리를 듣고 진료실에서 나와서 주름이 별로 없는 목을 길게 내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