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06화 (487/877)

하원정은 오늘 30명만 진료볼 생각이었다.

그의 간담췌외과는 작은 진료과였다. 재직 의사가 적을뿐더러 훈련의와 실습생도 적었고, 결정적으로 큰 수술을 집도할 실력 있는 의사가 없었다.

의사가 모자라니 환자를 많이 받아도 무의미했다. 외과는 수술을 해야지 검사를 많이 하고 수액을 많이 놓아도 그렇게 벌어들인 수입은 의료 보험에 붙들려서 세월아 네월아 정산되지 않으니 진료과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것 역시 능연이 간담췌외과 침대를 차지하는 걸 하원정이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반대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차라리 응급의학과에 환자를 뺏기더라도 새로운 부주임이나 주임을 모집해서 자신과 권력 다툼을 할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부주임이 새로 들어오더라도 진료팀 하나는 꾸려 줘야지, 아니면 모집한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모르는 의사를 모집해 진료팀을 꾸려준다면, 하원정이 사람을 모집한 의미가 또 어디 있을까.

하원정은 수하에 있는 직계들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것 역시 (상대적으로) 젊은 의사들의 단점이었다. 마흔 초반인 하원정은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기에, 제자나 제자의 제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쓸만한 후배도 너무 젊었다. 그들이 당장 한몫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누르면서 그들이 크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외과 의사를 키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의대를 정식 졸업한 의사가 주치의 나이가 됐을 때 기회를 주면 2, 3년 지나면 부주임 정도는 한다.

물론, 기회를 주는 게 쉽지는 않았다. 젊은 의사가 나설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의사가 모든 것을 드러낼 기회를 주는 게 가장 중요했다.

가장 간단한 담낭 절제만 봐도, 수많은 신인은 수술 후반이 되면 담낭을 완벽하게 꺼내지 못하고 담즙이 흘러나오게 실수하는 사람도 있다. 선임 주치의는 이런 초급 실수를 더는 하지 않지만, 고차원적인 실수를 하게 되면 모든 것을 드러내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하원정으로서는 능연이 나타난 게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해결해준 셈이었다.

예를 들어, 보너스 문제가 그랬다. 하원정 혼자 진료과를 먹여 살리는 건 힘들 뿐만 아니라 수술량과 수입 역시 늘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들뿐만 아니라 간호사, 훈련의 그리고 실습생 모두 수입이 적다고 느꼈다.

능연이 수술만 하고 수입은 가지고 가지 않는 방식으로 간담췌외과 간호사와 담당 의사의 일은 늘었지만, 그들의 수입도 크게 늘어서 진료과가 크게 안정되었다.

그 외에도, 비록 자주 쓰지는 못해도 능연을 최후 보루로 보고 있었다. 사실 지금 운화병원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의사가 적지 않았다.

평소에 능연을 불러다 쓴다는 기대는 하지 않아도, 정말로 생명이 위급할 때, 환자가 4000cc 이상 피를 흘린 그런 상황이 되면 능연은 운화병원에서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혹은 유일하거나.

바로 이런 이유로 병원 의사들이 실력 있는 의사를 존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능연이 외래를 시작한 것에 대해 하원정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외래를 보면 이름을 알리게 되어 유명해질 수 있다. 앞으로 운화병원에 오는 간담췌외과 환자가 모두 능연을 찾는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일반 초짜 의사라면 신경 쓰지 않겠지만, 능연은 기술도 좋고, 나이도 어리고, 생긴 것도 잘생겼고, 뒷받침해주는 사람도 있고, 화제성도 충분했다.

하원정은 자기가 무슨 마음인지도 점점 모르게 됐다. 그는 재빨리 환자 30명을 진료하고 오후까지 진료를 늘린 다음, 목운동하는 것처럼 진료실에서 나와 복도로 나갔다. 그는 고개를 들어 간호사의 대기 환자 모니터를 바라보며 은근슬쩍 물었다.

“능 선생 끝났어? 아직 진료 봐?”

운화병원 외래는 접수한 다음 위층 각 대기 로비에서 번호를 부르길 기다리는 방식이었다. 각 진료과 진료실은 문어발식으로 각 대기 로비와 중앙 로비를 둘러싸여 있고, 복도 앞에 간호사가 번호를 불러서 순서가 된 환자를 진료실로 들여보냈다.

간호사 앞쪽에 있는 모니터엔 앞으로 불러야 할 번호와 환자 이름이 있었다. 맥도널드 시스템하고 비슷해 보이는데, 물론 맥도널드 시스템보다 쓸모 있진 않았다.

의사들은 대기 순번에 어떤 요구가 생기면 나와서 간호사에게 묻고 간호사가 처리했다.

하원정은 당연히 그런 플로우에 익숙했다. 그런데 오늘 담당 간호사는 바로 컴퓨터를 조작해서 살펴보지 않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생각하더니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고 귀여운 척을 했다.

“능 선생님 오늘 10명만 보신댔어요. 중간에 검사도 있고 해서 지금 검사 끝낸 환자 두 사람이 진료실에 있어요.”

안 그래도 간호사의 태도에 언짢아하던 하원정은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10명밖에 안 본다고?”

“네.”

“아직 진료한다고?”

“네.”

“알았어.”

하원정은 의심 가득한 모습으로 뒤를 돌아 직접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그가 복도 끝으로 사라진 걸 확인한 간호사가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하 주임님 귀가 이상한 거 아닐까? 왜 다시 한 번씩 확인하지?”

“조용히, 듣겠다.”

다른 간호사가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하원정은 능연의 진료실 앞에서 발걸음을 늦췄다.

“MRI 소견으로는 간과 담낭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습니다. 용종이 조금 있지만, 지장 없고요. 다만, 위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위궤양이 심한 것 같아요. 이쪽으로 보면 위 바닥에 정맥류성 정맥이 보입니다.”

능연의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가 진료실에서 흘러나왔다.

하원정은 잠시 듣다가 갑자기 퍼뜩 정신 차렸다. 내 간담췌외과에서 진료 보면서 위 진료도 해?

그는 그런 쪽으로 능연에게 설교를 좀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하원정은 아예 문 앞에 앉아서 환자가 나오길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리고.

능연은 여전히 환자와 증상 이야기를 나눴다. 증상 이야기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의학 상식까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통 의사의 외래 진료는 3분이면 끝나는데, 하원정이 핸드폰을 내려다보니 벌써 15분이나 지나있었다.

“일부러 이러나?”

하원정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환자가 일어나는 기척이 들렸다.

“능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알기 쉽게 자세히 설명해주시니 확실히 알겠어요. 그럼 일단 수술은 안 하고 약부터 먹어 볼게요.”

환자가 매우 감사하며 하는 말에 능연이 옥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꼭 수술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치료받으러 오세요. 식사 제때 하시고요.”

“네네. 아유, 선생님 정말 외국에서 진료받았던 의사보다 더 세심하세요. 다른 의사들은 엉망진창인데.”

“질서 있는 게 좋죠.”

“그러니까요.”

환자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띤 채 감사 인사하며 밖으로 나왔다.

하원정이 머뭇거리는 사이, 다른 환자가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하원정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굳게 닫힌 진료실을 바라보고는 계속 기다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서니 문앞에 걸린 알콜겔이 갑자기 그의 시선을 끌었다.

오색찬란한 알콜겔 옆에 ‘출입 시 소독하시오’라는 글자가 A4에 프린트되어 있었다.

조금 짜봤더니 시트러스 향이었고 손에 바르는 느낌도 좋았다. 그런데······.

“웬 알콜겔?”

“다 있는 거 아닌가요?”

하원정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서 꿍얼거리는 말에 환자 하나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하원정이 멀리 바라보니 진료실 입구마다 오색찬란한 알콜겔이 놓여있었다.

이건 언제?

누가 산 거지?

누가 놓은 거고?

나는 왜 모르고?

하원정 눈에 진한 ‘NO 이해’가 가득해졌다.

점심 때쯤 능연은 오늘 마지막 접수 환자를 배웅했다.

능연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연문빈과 장안민이 벌써 힘들다고 아우성이었다.

“능 선생, 오늘 반나절 동안 외래로 겨우 4명 봤어. 이러느니 차라리 응급실에서 기다리는 게 훨씬 낫겠다.”

“의학 설명하는 일 같잖아. 환자한테 장염이 뭔지도 설명하다니 말이야. 아니 의학 설명이라고 해도 간담췌외과 걸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니야?”

능연의 환자 수가 크게 적은 건 아니지만, 환자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3분에 한 번씩 새 환자 받는 데 익숙한 연문빈과 장안민은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상급 의사가 없어서 편안한 능연은 그런 두 사람의 투덜거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 외래로 환자 4명을 입원시켰을 뿐만 아니라 6명의 문제도 해결해줘서, 그가 보기에는 효율이 낮은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퀘스트도 완성 했는걸?

연문빈과 장안민이 눈치 못 채는 사이 능연은 막 퀘스트를 끝내고 얻은 가상 인간을 손을 흔들어서 거둬들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세밀하게’ 퀘스트가 그렇게 완성되었다.

“오후 휴가 드릴게요.”

시간을 본 능연은 연문빈과 장안민을 방생하기로 했다.

장안민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팔채향 출장 수술과 가난이란 선택 문제를 풀었고, 연문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능 선생, 그럼 내일 아침 몇 시에 출근해?”

“6시로 하죠.”

능연은 정상 휴식 시간을 주기로 했다.

연문빈과 장안민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장안민은 더욱 통쾌함을 느꼈다. 18시간 휴식이라니, 그러면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당연히 출장 수술이지! 한 번에 2천 위안인 걸?

능연은 방에서 나가 새로 얻은 가상 인간을 체크했다.

두 시간을 더 얻어서 능연의 가상 인간 사용 시간이 5시간으로 늘었다.

연구에 쓰기는 부족한 시간이지만, 환자의 임상 문제를 해결하기엔 충분했다.

각종 영상 시스템으로는 확진하기 어렵고 개복해 봐야 확실하게 결론을 얻을 수 있는 질환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일반 외과에서 가장 흔한 개복 검사도 장을 조금씩 꺼내 확인해야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생체 조직 검사가 필요한 각종 항목도 ‘눈으로 직접 보는 게 확실한’ 경우가 많았다.

어느 쪽이든 가상 인간으로는 미리 쓸 만한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가상 인간 사용에 점점 능숙해진 능연은 매우 짧은 시간으로도 결과를 낼 수 있었다. 5시간 가상 인간은 정말 얻기 힘든 자원이었고, 능연의 자신감도 올려주었다.

능연이 몇 걸음 떼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능 선생, 몇 번 출구로 나오는 게 편해요?

전칠이 전화 너머에서 물었다.

“3번이요.”

-OK. 그럼 롤스로이스 팬텀이랑 벤츠, 어떤 거 타고 싶어요? 롤스로이스는 편하긴 한데, 벤츠가 눈에 좀 덜 띄어서요.

“롤스로이스요.”

능연은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당연히 편한 게 좋지.

-나도 롤스로이스가 좋아요. 좌석이 더 편하거든요. 그럼 3번에서 만나요.

“그래요.”

전칠이 주차장에서 손을 흔들면서 지시 내리자 누군가 무전기를 들고 명령을 내렸다.

순식간에 벤틀리와 벤츠 몇 대가 멀리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벤츠 한 대는 타이어를 도로 턱 위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황금색 롤스로이스가 전칠을 태우고 조용히 한 바퀴 돌아서 3번 출구 앞에 조용히 세웠다.

운화병원 의료진은 멀리서 바라보고는 익숙한 듯 고개를 돌렸다.

수시로 갱신되는 환자들은 놀란 모습으로 바라봤다. 밖으로 산책 나온 환자 둘은 3번 출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최신 롤스로이스 팬텀이다. 멋지다. 누가 이런 차를 준다면 신장도 떼줄 수 있어.”

“친구, 우리 신장으로 4, 5년 고생했잖아. 그런 신장이면 거의 사기 아니야?”

“신장이 좋으면 왜 팔겠냐. 야, 이거 6.8t라고. 100킬로 5초컷. 차체가 2톤이야. 진짜 겁나게 끝내준다고. 하아, 신장 두 개 다 멀쩡하면 하나는 팔아도 되는데.”

같은 신장병 환자는 듣기도 싫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무리 좋아도 그냥 차 한 대잖아. 신장 두 개가 아니라 세 개라도 신장 팔아서 차 사기는 싫다.”

“네가 정말 신장이 세 개면 팔아서 차를 사는 게 아니라 병원에 돈 내고 떼 달라고 해야 돼. 하아, 야, 이건 6.8t 롤스로이스 팬텀이라고. 이거보다 빠른 건 이런 외형이 안 나오고, 이런 외형인 건 이런 속도가 안 나와. 알아?”

같은 신장병 환자가 환자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비행기 안 타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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