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12화 (493/877)

운화병원 응급센터 2번 수술실.

능연은 등을 구부리고 팔을 치켜들고 수술실을 맴돌면서 기구와 설비를 검사했다.

환자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연문빈과 마연린은 시트를 소독한 다음 관절경 등 장비를 옮겨와 커버를 씌웠다.

응급센터 1번 수술실은 지금 마지막 인테리어와 에어컨 작업 중이라, 보먼이 무릎을 조금만 늦게 다쳤다면 참관실이 있는 1번 수술실에서 수술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운리 동영상 시스템도 매우 쓸 만했다. 특히 관절경 하 수술은 바로 신호를 받아서 수술실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저는 평소에 자주 테니스를 칩니다. 가끔 피크닉도 가고요. 그리고 탁구도 칩니다. 정말로요.”

보먼은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능연의 얼굴을 보니 자신의 선택이 정확한지 아닌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능연의 수술 역사는 훌륭했다. 그가 수술한 유위신은 지금도 트랙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 외에 각국 운동선수들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보먼이 다친 다음에야 그와 로이먼은 능연이 스포츠의학에서 유명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일반 외과 유명세보다 훨씬 높았고, 특히 외국에서도 유명했다. 능연은 평균 달마다 10에서 20건 아킬레스건 보건술 혹은 반월판 성형술을 했고 대부분 운동선수 혹은 준 운동선수 대상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보먼은 능연에 대한 신뢰감이 크게 높아졌다. 비록 능연이 지금은 개발도상국 운동선수 위주로 수술하지만, 의학계에 몸담은 의사라면 국제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이미 차원이 다른 의사라는 걸 잘 알았다. 그리고 어느 나라, 어느 계층 수술을 한다는 것도 사실 자본 문제지 의사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보먼은 여전히 걱정됐다.

어쨌든 본인 무릎이니 말이다.

수술이 순조롭지 못하면 무릎은 힘을 받지 못하는 합병증에 걸리기 쉬웠다. 의사의 무릎에 힘을 받지 못한다면 의사 생활에 영향을 주는 건 불가피하다.

보먼은 아직 외과 의사 중에 초급 의사고 평소 수술할 때 당연히 상급 의사에게 맞춰야지, 상급 의사에게 맞춰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즉, 무릎이 손상되면 보먼은 하급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앤더슨 센터에서 그를 오래 두지는 않을 것이다.

능연은 그저 보먼을 힐끔 보고는 영어로 긴장하지 말라고 말했다.

“압니다. 긴장 안 해요. 안 합니다.”

보먼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환자가 너무 긴장하네요. 마취하세요.”

능연이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자, 그와 수술을 오래한 소가복도 다른 말 없이 바로 마스크를 가져와 보먼에게 씌웠다.

“숫자를 셀 겁니······.”

거친 숨을 내쉬던 보먼은 자신에게 마스크가 씌워진 것도 의식하기 전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소가복은 어이없는 듯 그를 내려다 봤다.

“이 외국분 안 되겠네. 덩치만 커서는, 게다가 외과 의사 아니야. 온종일 피워대는 그런 유형일 줄 알았더니 이렇게까지 못 견딜 줄이야.”

“큰일 내는 건 아니죠?”

연문빈이 조금 걱정이라는 듯 힐끔 그를 봤다.

“걱정 마. 외국 사람도 자주 마취했어. 이번에 조금 착각해서 그렇지. 아이고, 불쌍한 놈. 평소에 놀지도 않고 파티 같은 것도 안 가나 봐.”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전에 나 운동선수 마취한 거 몰라? 그 덩치 큰 선수 있잖아. 일반인 세 배는 썼어. 몸무게도 얼마 안 나갔는데. 운동선수가 단련하면 거의 다른 생물이나 마찬가지야.”

소가복은 연신 감탄하며 둥근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몸을 들썩거렸다.

연문빈은 필사적으로 근육을 부풀려 보였다.

“우리 헬스남들도 체력은 끝내주죠.”

“그건 쓸모없는 근육이고.”

소가복이 머뭇거리지도 않고 무시하자 연문빈이 입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머리가 쓸모없고요. 이따 쉬는 시간에 한 번 봅시다.”

“관절경 하 반월판 성형술 시작합니다.”

능연은 모니터 기기의 바이탈 사인을 확인하고는 미리 선을 그어둔 슬관절 상부에 메스를 그었다. 렌즈에 연결된 시스템을 통해 관절 내부 영상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그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고, 참관실에 있던 엔지니어가 자이언트 베이비를 위해 모니터를 조절하자마자 영상이 송출되었다.

“좀 비켜주세요. 모니터가 안 보입니다.”

로이드가 다급하게 엔지니어에게 손짓했다.

엔지니어가 허둥지둥 자리를 비켰지만, 능연은 벌써 반월판 검사를 마치고 기구를 받아 반월판 수정을 시작했다.

“빨리 보내기 한 건가요?”

모니터에 이미 반월판 수정 영상이 나오자 로이드는 미간을 좁혔다.

“되감기 되나요? 처음부터 보고 싶습니다.”

로이드는 참으로 책임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보먼에게 처음부터 잘 지켜보겠다고 한 약속 때문에 전체 수술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힐끔 곽종군을 본 엔지니어는 그가 별 반대 의사를 보이지 않자 당연히 로이드의 말을 따랐다.

모니터는 재빨리 녹화 방송 모드로 바뀌어서 가장 첫 단계로 돌아갔다.

로이드는 정신을 집중하고 지켜봤다.

모니터의 영상이 또다시 처음 상태로 돌아갔다.

드디어 상황을 깨달은 로이드가 미간을 좁히며 놀라운 듯 말했다.

“능 선생, 관절경 수술 정말 노련하군요.”

“당연하죠.”

곽종군이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

로이드는 껄껄 웃어 보이고는 다시 열심히 모니터를 바라봤다.

로이드는 관절경을 잘 모르지만, 복강경은 했어서 관절경을 배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할 줄 아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른 개념이었다. 로이드가 관절경 수술을 한다면, 그저 전외측 입구로 들어가는 수술 방법이나 익숙할까, 다른 통로로 들어가는 방법은 그의 숙련도와 수술 성공률이 매우 감소할 것이다.

이건 오토바이 타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은 조금만 배우면 오토바이 시동 걸 수 있고, 조금만 더 연습하면 길에서 달리는 건 별문제 없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노련하게 타고 레이싱에 나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로이드가 외과 수술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차를 몰고 경주로를 달리는 정도지 오토바이 고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모니터에 보이는 손놀림을 보며 로이드의 마음이 몹시 복잡해졌다.

“능연은 우리 병원 외과 의사를 통틀어도 가장 젊습니다. 앞으로 자주 그를 만나게 될 것 같군요.”

능연은 눈으로 모니터를 보고 손은 가볍게 놀리면서 머릿속에 수많은 해부 이미지를 떠올렸다.

총 100번인 족부 해부 경험은 딱 아킬레스건까지라서 능연은 무릎 부분 해부 경험은 획득하지 못했다. 그의 슬관절경 방면 기술이 오래도록 힘을 못 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만, 능연의 MRI 판독 능력은 마스터급이고, 슬관절경 하 반월판 성형술도 그랜드마스터급인데다가 그랜드마스터급 관절경 하 십자인대 재건술이 있어서 슬관절 방면 기술은 이미 충분했다.

환자 본인의 상태가 유일하게 고려할 문제였다.

완벽하게 고려해야만 좁은 슬관절 공간에서 최대한 보먼의 반월판을 남기고 완전하게 회복시킬 수 있다.

MRI에서 보먼의 반월판이 상당히 심하게 부서진 걸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반월판을 회복하려면 조직을 최대한 덜 건드려서 가능한 한 적은 상해로 반월판 내 해부 관계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

이건 인간과 기계의 큰 차이이기도 하다.

기계 보수는 원상태로 돌려놓으면 가장 좋은 상태고 중간에 어떻게 분해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계는 대부분 설계 당시에 유지보수 편의성을 고려해서 제작되니까.

사람 수술은 그렇지 않다. 한편으로 사람마다 해부 구조가 크게 다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 수술할 땐 분해할 수 없으니 기계 보수와 비교하면 사람 수술은 제한 조건이 너무나 많다.

능연이 현재 채택한 관절경 수술을 비롯해 각종 내시경은 사실 수술에 갖가지 제한 때문에 만들어진 자아 제한이었다.

내시경을 사용함으로써 상처는 더 작아졌지만, 의사가 조작할 때 난도가 불가피하게 올라갔다.

개방성 수술과 비교하면 관절경 내 수술은 전형적인 소라 껍데기 안에 도장(道場)을 짓는 것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적었다.

이럴 때는 ‘블럭을 가장 적게 이동하여 퍼즐을 맞추시오’ 같은 시시한 문제가 오히려 현실적 의미가 있었다.

“워싱.”

생각은 생각이고, 능연의 손놀림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랜드마스터급 관절경 하 반월판 성형술을 획득한 다음, 능연은 슬관절경 수술을 2, 3백 건이나 해서 경험이 풍부했다. 보먼의 슬관절 구조도 정상에 가까워서 심하게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능연이 차근차근 진행만 해도 지극히 좋은 예후를 얻을 수 있었다.

“좀 오래 헹구세요.”

능연은 수술 시야가 또렷하지 않은 것이 짜증나서 속도를 조금 줄였다.

그렇다고 해도 밖에서 지켜보는 의사 눈에는 능연의 속도와 리듬은 여전히 사람을 심취하게 만들었다.

“스포츠의학은 모르지만, 능 선생 관절경은 제 눈엔 매우 우아해 보이는군요.”

로이드는 솔직하게 칭찬했다. 그 정도 위치가 되면, 행정 업무를 하든 순수한 의사를 하든 모두 손쉬운 일이라 남을 견제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었다.

좋은 수술, 대단한 의사를 보면 알고 지내고 싶어 하는 것이 로이드의 일상이었다.

능연의 수술을 보면서 로이드는 심지어 쾌감까지 느꼈다.

고압으로 떨어지는 물이 지면의 오물을 조금씩 청소해내는 느낌이랄까, 사람이 많아 혼란스러운 현장이 조금씩 가지런해지는 느낌이랄까.

“어때? 괜히 온 건 아닌 거 같지?”

로이드가 침묵을 지키는 보일을 바라봤다.

작고 마른 보일이 콧방귀를 뀌었다.

“나라면 반월판 절제술을 하겠어요. 깨끗하게 절제해도 운동 기능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보먼이 장기 이식 수술을 해낼 만큼인가?”

그러나 로이드는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 말투였다.

장기 이식 수술은 외과 수술의 핵심이었다. 중국은 제공자가 희소해서 의사의 지표로 보지 않지만, 미국 같은 나라는 장기 이식은 실력 있는 의사에게는 빠질 수 없는 기술이었다. 장기 이식 수술을 할 수 없으면 앤더슨 암센터 같은 대형 병원에 발붙일 수가 없었다.

“진통제를 달고 사는 것보다 낫죠.”

보일이 입을 삐죽이며 모니터를 가리켰다.

“반월판이 이 정도로 손상됐는데, 이걸 지키려고 해 봐야 갖가지 문제만 유발할 겁니다.”

“그 말도 일리는 있지.”

로이드는 보일과 논쟁하지 않았다. 논쟁할 화제도 아니었다. 수술 전에 의사마다 각각 판단이 있고, 수술 후엔 어떤 판단도 의미가 없다.

“보먼이 너무 모험을 했어요. 욕심도 너무 냈고.”

보일이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욕심?”

로이드가 다시 보일을 바라봤다.

“이렇게 다쳤는데 정상 상태로 회복되길 바라잖아요. 욕심 아닙니까? 이럴 때는 손상을 인정하고 현명하게 본인한테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했어야죠.”

로이드는 눈을 치켜뜨면서 속으로 이러니까 보먼이 죽어도 보일이 아니라 능연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월판 성형술로 만들어 낸 무릎은 반월판 절제술로 만들어낸 무릎보다 몇 년은 더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훌륭한 인공 관절이 나올지도 모른다.

보일은 모니터의 재빠르고 정확한 동작을 보며 속으로 짜증이 났다.

“보먼이 자기 반월판이 끝장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일은 이미 벌어졌고, 재수 없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의사한테 기적을 바라서야 되겠어요?”

“반월판 성형술이야, 그게 무슨 기적이라고. 게다가 보먼은 그냥 넘어진 거잖아. 그것 때문에 일을 포기한다고? 누구라도 안타까워할 걸세.”

로이드가 할 말이 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만 이미 손상된걸요. 수술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반월판 절제하는 게 더 안전해요. 이건 확률 문제입니다. 반월판 절제술 성공률이 더 높아요. 반월판 성형술로 실패하면······.”

“됐습니다. 수술 끝. 워싱 하세요.”

능연의 말투에 짜증이 조금 배어 있었다.

연문빈은 목을 가다듬고는 영어로 마이크에 대고 ‘수술 끝, 순조로움, 이제 마무리함’ 하고 말했다.

사실 그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로이드 등도 모두 알고 있었다.

보일은 입을 삐죽이며 다시 반복했다.

“제 말은, 확률 문제입니다.”

로이드는 싱긋 웃어 보이고는 확 변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곽종군을 바라봤다.

“지금 보먼 보러 가도 됩니까? 제 말은 수술실로 말입니다.”

“아무것도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제가 같이 가도록 하죠.”

곽종군은 매서운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외국 친구는 당연히 존중해야 하지만, 수술을 망치면 큰일나는 건 운화병원이었다.

로이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건들지 않겠습니다.”

“저도요.”

곽종군은 두 사람을 데리고 나와 수술실로 들어갔다.

능연은 장갑을 벗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저기, 무릎 안 상태를 좀 보여드리게.”

곽종군은 오는 길에 들은 부탁을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능연을 힐끔 보고 허락을 얻은 연문빈이 스틱을 가지고 보먼 무릎 안을 찌르고, 찌르고 또 찌르고, 찌르고······.

정형외과가 일반 외과 등 진료과보다 무시당하는 원인 중 하나가 정형외과 수술이 비교적 거칠어서였다. 관절경 수술 때도 뼈의 내구성이 좋아서 힘껏 찌르고 찔렀다.

연문빈이 안쪽부터 바깥쪽까지 찌르는 동안 로이드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지켜봤다.

“훌륭합니다. 감사해요, 능 선생.”

로이드가 다시 능연을 바라봤을 때, 말투가 더 공손해졌다.

“다음에 당신의 간 절제를 다시 보게 되길 기대합니다.”

능연은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로이드 한 번, 보일 한 번 바라보며 말했다.

“곧 간 절제 수술이 있을 겁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로이드는 백인의 인사치레를 하며 앤더슨 암센터 정상급 의사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능연의 미소에 화답했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바라보고 웃는데, 미소로 화답하는 것 말고 무얼 할 수 있을까.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보일은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한편으로 동료의 수술이 잘 되고, 본인 수준을 넘는 수술을 봤으니 기뻐해야 하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 능연처럼 (밑줄 쫙) 잘생기고 우수한 의사가 자신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게 실로 언짢았다. 그러나 능연의 감염성 강한 미소를 보니 고분고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 씻으러 수술실에서 나갔다.

그로서는 관절경 수술이라고 해도 데브리망보다 더 복잡할 것도 없었다. 운동선수 수술할 때도 특별히 부담을 더 느끼지는 않았었다. 능연은 수술할 때 항상 정밀함에 더 정밀함을 추구했기에, 일반인이든 운동선수든 수술 중 리스크 변화가 문제였다. 그러나 정상 수술 중엔 이것 아니면 저것이란 이분적 선택을 자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수술 전에 미리 선택을 한다. 운동선수는 보통 미리 축-능 아킬레스건 보건술을 선택하는 것처럼.

로이드는 능연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곽종군에게 인사한 후, 간호사들을 따라 보먼을 회복실에 보냈다가 병실까지 같이 갔다.

운화병원 응급센터는 전문적인 국제 병실이었고 응급의학과에서 응급센터로 승급한 곳 중 하나로서 외국 환자를 다수 유치했다. 총인원도 현재 150명이 넘었다.

로이드는 중국말을 모르지만, 국제 병실 구역 안의 병실과 설비가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해서 달리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물론, 감탄까지는 아니었다. 미국엔 매일 입원비만 1만 달러가 넘는 병실이 있고, 사람이 득실대는 무료 진료소도 있다. 운화병원 병실과 설비는 일반적이고 앤더슨 수준엔 못 미쳤다.

병실을 오가는 간호사도 많지 않고 게다가 다들 바쁘게 움직였는데, 좋은 점은 영어를 할 줄 아는 간호사도 몇 있다는 것, 그리고 태도가 친절하고 다정해서 로이드는 제법 안심했다.

이런저런 처리를 마치고 나니, 창밖은 이미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보일은 시계를 보고는 하품을 했다.

“보먼한테 나중에 감사 인사 들어야겠네요. 라스베이거스에 데리고 가준다던가 그런 거로요. 힘들어 죽겠어요.”

“음. 우리도 돌아가서 쉬세나.”

나이 든 로이드는 오히려 그렇게까지 피곤해하지는 않았다. 그는 능연의 모습을 흉내 내며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지금 자기 모습이 매우 멋지다고 생각하며 흔들흔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닥터 로이드.”

연문빈이 반투명한 락앤락을 들고 들어와 보일과 인사를 주고받은 후 영어로 말을 꺼냈다.

“간 절제 수술 보신다고 하셨죠? 지금 가실 겁니까?”

“지금?”

로이드는 거의 날이 샐 것 같은 창밖의 하늘을 바라봤다.

연문빈은 당연하다는 듯 중국어로 투덜거렸다.

“밤이든 말든 간 절제하기 좋은 시간이죠. 중환자와 가족은 시간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고. 수술만 잘하면 새벽 1시면 1시, 3시면 3시. 다 잘만 일어납니다. 관절경 수술 환자, 보호자처럼 그렇게 투덜거릴까.”

“무슨 말씀이신지.”

로이드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통역도 없었다. 통역은 진작에 지쳐서 돌아갔고, 악마도 아니고 24시간 일을 시킬 수는 없었다.

“예.”

연문빈이 영어로 대답했다.

로이드는 매우 의심스러운 듯 연문빈을 바라봤다.

“아까 엄청나게 길게 이야기하던데요? 중국어였지만, Yes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요점만 말하자면, 바로 ‘예’입니다.”

연문빈은 껄껄 웃으며 대답하고는 중국어로 계속 말했다.

“정말 중국말 모르는구나. 에휴, 외국 사람은 참 좋겠네. 모국어만 배우면 되니까. 게다가 엄청 유창하잖아. 국제회의든 뭐든 다 영어로 말하는 바람에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영어 배워도 막상 쓸 때는 발음 안 좋다고 태클 걸리고. 발음 같은 소리 하네. 알아들으면 됐지.”

“뭐라고요?”

로이드는 귀를 벅벅 긁고 싶은 심정이었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 정말로 답답했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족발 드실래요?”

연문빈이 웃으며 하는 말에 로이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에도 매우 길게 이야기하셨는데요.”

“예, 드실래요?”

연문빈이 다시 반복했다.

로이드와 보일은 잠시 머뭇거렸다. 둘 다 족발에 의문이 있었다.

“뼈 제거한 족발입니다. 신상이에요.”

영어로 설명한 연문빈은 다시 중국어로 중얼거렸다.

“먹는 것도 되게 따지네. 너무 잘 살아도 문제야. 사람이 굶어 죽는 나라도 얼마나 많은데. 너희는 만날 음식 낭비하고. 그래놓고 나중에 식량 모금이니 뭐니, 무슨 대단한 좋은 일 하는 것처럼.”

로이더는 연문빈의 기관총 같은 중국어에 어질어질해져서 결국 손을 휘휘 내저었다.

“연 선생, 아까 하던 수술 이야기나 마저 합시다. 지금 간 절제 수술을 한다고요? 왜 이런 시간에 수술을 하죠?”

“능 선생이 좋아하니까요.”

연문빈은 이번엔 바로 영어로 대답했다.

타당한 이유라고 생각한 로이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

“외과 의사의 괴벽이로군요.”

“음. 가실 겁니까?”

연문빈은 외국 의사의 정신력 극한을 테스트하고 싶은 듯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로이드도 그런 그의 눈빛을 읽어내고는 갑자기 훗 하고 웃었다.

“좋습니다. 저도 앤더슨 암센터에서 30시간 가까이 되는 수술을 했습니다. 맞다, 당신도 온종일 쉬지 못한 것 같은데, 버틸 만한가요? 지쳐서 수술에 영향을 주면 안 됩니다.”

“괜찮습니다. 저희 어시들은 다 돌아가며 쉽니다.”

“그럼 집도의 능 선생은요?”

로이드의 질문에 연문빈이 미소 지었다.

“능 선생이요. 가서 보시면 압니다.”

로이드는 환자 보호자를 먼저 만났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는 여자아이 둘 그리고 어른인 척하는 열세 살쯤 된 남자아이였다.

간호사 왕가가 세 사람 곁에 있었고, 잔뜩 가지고 온 간식을 내밀었다.

“자, 이것 좀 먹어. 능 선생님이 좋아하는 간식들이야. 이거 가지고 오느라고 엄청 고생했어.”

왕가도 이제 스물 몇 살이라 아이를 돌본 적이 없어서 속수무책인 모습이었다.

열세 살 먹은 남자아이는 손으로 여동생들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늠름하게 앞으로 나왔다.

“누나, 감사합니다. 지금은 배 안 고파요. 나중에 배고프면 집에 가서 밥 먹을게요. 저희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어서 가서 일 보세요.”

“엄마가 입원하셨는데, 집에 가도 밥 없잖아.”

왕가가 타이르는 말에 남자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도 제가 밥해요. 수술 끝나면 가서 밥할 거예요. 버스 첫차 5시 반이면 있으니까 갔다가 다시 오면 돼요. 딱 아침 먹는 시간일 거예요. 그리고 다녀오면 엄마도 깨어 있겠죠.”

왕가는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한참 만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간식들 간호사 누나들이 모은 거야. 먹어도 돼. 이거 먹으면 집에 가서 밥 안 해도 되잖니.”

“오늘은 안 가도 내일은 가야 하잖아요.”

남자아이는 고개를 숙여 잠시 간식을 바라보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도움 필요 없이 잘 살 수 있어요. 다른 사람 도움을 바라면 안 돼요.”

“물론 잘 살 수 있지.”

왕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연문빈이 발을 굴러 쿵 소리를 냈다.

“연문빈 선생님! 깜짝 놀랐잖아! 이 늦은 시간에 먼저 인사할 줄 모르는 거야?”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본 왕가는 연문빈인 걸 알고 다급하게 눈물을 훔치고는 일부러 화난 척을 했다.

“외국 손님 모시고 왔어. 이따 수술 본다고.”

연문빈은 대기 로비 구석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세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목소리를 조금 낮춰서 물었다.

“가족들 연락 안 됐어?”

왕가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환자 아이들인가요? 다른 가족은 없고요?”

아이들을 본 로이드 역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연문빈은 헛기침하고는 영어로 대답했다.

“환자가 싱글맘이라서요. 게다가 가족들과 인연도 끊었고.”

그래서 다른 가족들과 연락이 안 된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로이드는 그런 상황을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싱글맘이군요. 참 안 됐네요. 음, 이 아이들은 아동보호 시설에 보내지나요?”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죠.”

로이드가 외국인의 기부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 떠벌릴까 봐, 연문빈은 그런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 않았다.

“능 선생은 원래 간암 수술 안 하는데, 이런 환자의 사정을 듣고 수술하는 겁니다.”

사실 간담췌외과에서 보내온 환자였다. 장안민이 이 환자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능연에게 살짝 부탁한 다음 환자를 하원정 손에서 뺏어왔다.

하원정도 장안민이 그런 배신자 짓을 하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못 이기는 척 환자를 보냈다.

한편으로는 장안민이 배신자 짓을 한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라 화를 내도 개뿔 소용이 없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원정 역시 환자의 예후가 조금이라도 좋고, 좀 더 오래 살고, 생존 퀄리티도 좀 더 높길 바라서였다.

장안민의 이야기를 들은 능연도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바로 수술도 배정하고는 시간을 아껴 수술 전 준비를 하고 환자를 수술실로 보냈다.

능연이 그동안 고령 환자가 간암 절제 수술을 해줬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이 환자도 30년이 아니라, 20년 심지어 10년이라도 오래 살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이 환자로서는 오래 살면 살수록 당연히 좋겠지만, 지금 더 중요한 건 5년, 안 되면 3년을 더 사는 것과 1, 2년 더 사는 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환자의 아들은 올해 13살이니 환자가 5년만 더 살아도 아들은 18살이 된다. 그러면 독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 두 여동생도 돌볼 수 있다. 환자들이 자주 하는 말로 ‘그러면 안심하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5년 목표를 채우지 못한다고 해도, 수술 후 수명이 3년 늘어나고, 합병증과 회복기를 줄일 수 있다면 환자 가정엔 큰 도움이 된다. 적어도 그때는 지금 13살인 남자아이가 16살 청소년이 되니까.

비록 요즘은 16살이면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15살, 14살보다는 눈에 띄게 어른스러울 것이다.

간암 생존률이 80%를 못 넘고, 말기 간암 생존률은 더욱 낮은 이 시대에, 능연이 대단하게 오래 생존 시간을 늘리지 못한다고 해도 환자의 생활 퀄리티만 높일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잘라내는 부분을 적게, 그리고 깔끔하게 자르고, 수술 중 판단을 보다 정확하게 한다면······. 사실 그래도 마지막엔 암세포의 기분에 달렸지만, 그래도 능연은 이 수술이 환자와 환자 가족의 생활에 큰 변화를 줄 것으로 믿었다.

10살짜리 아들이 있는 로이드는 중국말을 몰라도 눈앞의 상황, 그리고 연문빈의 간단한 설명으로 상황을 바로 알아챘다.

로이드는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고, 표정이 매우 진지해져 있었다.

“혹시 능 선생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도 돕겠습니다.”

“능 선생한테 전해드리죠. 그런데 푹 쉬고 일어난 조수가 있어서 아마도 선생님께서 나설 일은 없을 겁니다.”

연문빈은 말을 멈추고는 다시 중국어로 중얼거렸다.

“나도 그래서 밀려난걸? 아직 쉴 때도 안 됐는데. 그러니 별수 있나. 족발이나 좀 삶아······ 아, 족발!”

연문빈은 자신의 머리통을 툭툭 치면서 허둥지둥 락앤락 통을 꺼내 왕가에게 건넸다.

“뼈 없는 족발이야. 원래 외국 손님 드리려고 했는데, 그냥 애들 나눠줘.”

왕가가 저도 모르게 로이드를 바라봤다. 중국말 공격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로이드는 이제 신경 쓰지 않는 듯 미소지었다.

“그러지 뭐. 아무리 외국 사람이라도 누가 뼈 없는 족발 먹겠어. 이런 생각을 하다니. 역시 멍청해. 껍질 벗긴 해바라기 씨 파는 거랑 뭐가 달라?” (역주: 중국인이 좋아하는 간식 중에 꽈즈라고 해바라기 씨를 껍질째 파는데 껍질 까는 재미로 먹습니다.)

“신제품 개발이지. 누가 알아? 대박 날지.”

연문빈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다시 영어로 바꿔서 로이드에게 말했다.

“수술실로 가시죠.”

“좋습니다.”

연문빈을 따라 몇 발짝 떼던 로이드가 고개를 돌려 왕가를 바라봤다.

“혹시 필요하면, 그러니까 제 말은, 수술 성공하든 말든 저한테 이메일 보내주세요.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겁니다.”

로이드가 명함을 한 장 내밀자, 왕가는 경계하는 눈으로 연문빈에게 물었다.

“뭐라는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필요하면 돈 내겠대······.”

이야기하던 연문빈은 왕가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걸 보고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아니. 애들. 너 말고.”

왕가가 눈을 축 늘어뜨리고 연문빈을 노려봤다.

“통역 엉뚱하게 한다고 사람들한테 하나도 빠짐없이 말할 거야.”

“내가 뭘? 말 이상하게 하네.”

연문빈이 멍해져서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뼈 없는 족발 만드는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남한테 이상하대!”

왕가가 짜증 난다는 듯 입을 내밀었다.

“연 선생?”

“아아, 네. 가시죠.”

로이드가 재촉하자 연문빈이 냉큼 대답했다. 간호사와 말싸움 해봤자, 이길 수도 없고 더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로이드는 보일과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주고받다가 수술실로 들어갈 때 목소리를 더 낮춰서 말했다.

“연 선생, 우리 앤더슨 암센터의 원격 의료 센터를 통해 이 환자 협진을 돕고 싶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전해주실 수 있나요? 단순히 돕고 싶어서입니다.”

로이드는 능연 등이 오해할까 봐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로이드는 능연이 오해해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에 환자의 상태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고, 도움도 필요 없다는 사람이라면 그 역시 그런 의사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연문빈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가 능연에게 그 소식을 전하러 수술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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